제103화
제103장 용기를 내다 克服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은하객잔에 위치한 접객실.
사천 제일 객잔이라는 이름에 걸맞기 위해 마련한 최고급 접객실 중 한 곳에서 왕일이 말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년 사내가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는 계속해서 왕일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 사내.
그런 사내의 행동에 왕일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요즘 보기 좋습니다.”
“그렇습니까?”
의문 어린 목소리로 반문하는 왕일을 보며 사내가 말하자 왕일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에 사내, 아니 하오문의 삼장로 필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문주님께서 그분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형님을 말입니까?”
“예.”
“흐음…….”
필현의 대답에 왕일이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그에 필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문주님의 입장도 이해해 주십시오. 말 더럽게 안 듣던 제자가 생각을 고쳐먹고 문파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기똥차게. 문주님의 입장에서는 그분은 은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거참, 더럽게 안 듣지는 않았습니다.”
“완전 소귀에다가 경 읽기였지요.”
“크흠.”
정곡을 찌르다 못해 후벼 버리는 필현의 대답에 무안해진 왕일은 코를 훔쳤다.
그에 미소를 지은 필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위마참군 僞魔斬君.”
“…….”
“소문주님 작품 맞지요?”
“부정해서 뭐 하겠습니까. 맞습니다.”
필현의 물음에 왕일은 시원하게 인정했다.
필현이 저렇게 묻는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왕일의 시원한 대답에 필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십니다. 마교의 악명을 교모하게 돌려 협객의 인상을 만들다니. 이 필모. 감탄했습니다.”
“에휴, 그만 띄우시고.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필현의 대답에 손사래를 친 왕일.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필현이 미소를 지웠다.
그러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왕일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확실하게 정해야 합니다.”
“노선을 말입니까?”
필현의 말에 짐작했다는 듯 왕일이 대답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필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문주가 의형으로 모신 위마참군. 그분을 만나 봐야 합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정할 것입니다.”
“제 의견은?”
“솔직히 이미 결정 난 것과 다름없습니다.”
필현의 대답에 왕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필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문주.”
“예.”
“소문주는 소문주의 뜻대로 하십시오.”
“……?”
필현의 말에 왕일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그 행동이 하오문의 목을 조를 수 있을 텐데도?
그런 왕일의 모습에 필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문주님과 우리 장로들. 모두가 소문주님을 믿고 밀기로 했거든요.”
그동안 잠잠하던 소문주.
그가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보여 준 모습은 대단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모두가 왕일을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믿음이 가득한 필현의 말에 부담감을 느낀 것도 잠시.
씨익.
“사황성에서의 입지도 줄어들었기 때문입니까?”
이미 하오문 전체를 어느 정도 파악한 왕일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 필현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본문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습니다.”
“후계가 없는 사황성. 그로 인해 부성주 사권 死拳 권진욱을 중심으로 권력이 나누어지고 있지요. 그 사이에서 하오문은 중립을 지키고 있고.”
“…….”
왕일의 말에 여유로운 미소를 짓던 필현이 얼굴을 굳혔다.
그에 왕일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삼장로님.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
“그래도 뭐. 저를 믿는다는 말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왕일.
그가 창가로 걸어가며 말하자 필현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정말, 못 당하겠군요.”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필현을 보며 왕일이 사과하자 필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정보를 파악하고 정보를 토대로 핵심을 꿰뚫는 소문주의 안목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필현의 솔직한 말에 왕일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 다음 다시 걸음을 옮겨 의자에 앉았다.
그런 왕일의 모습에 필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문주, 왕일과의 대화가 너무 즐거워 그만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아. 서역의 이야기 들었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려던 것도 잠시.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필현이 입을 열자 왕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네 명의 청년 고수 말입니까?”
“역시, 파악하고 있군요.”
“예. 아무래도 천산 출신인 것 같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필현의 말에 왕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필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천산 天山.
신강에 위치한 천마신교의 본전이 있는 곳이었다.
“자세한 정보는?”
“어느 정도 압니다.”
왕일의 대답에 필현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한쪽 다리를 꼬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뭡니까?”
갑작스러운 필현의 거만한 모습에 왕일이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묻자 필현이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입을 열었다.
“제가 그자들의 정체를 압니다.”
“…….”
“바로…….”
“저도 압니다.”
필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왕일이 먼저 선수 치며 대답했다.
그에 필현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왕일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형님이 무림 출두를 한 시기와 겹치는 네 명의 청년 고수. 일장로인 검마와 같은 환검을 쓰는 슈팅스타스워드 한어로 유성검 流星劍, 이장로인 권마와 같은 덩치와 파괴적인 주먹을 사용하는 블러드 베어 한어로 혈웅 血熊, 삼장로인 창마와 같이 두 개의 단창, 때로는 두 개의 단창을 합쳐 장창을 사용하는 윈드 스피어 한어로 풍창 風槍, 마지막으로 그들의 리더이며 뛰어난 지혜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와이즈 맨 한어로 현자 賢者 까지.”
“…….”
왕일의 입에서 나온 자세한 정보에 필현은 언제 거드름을 피웠냐는 듯 다소곳한 자세로 입을 다물었다.
아니 분명 파악만 하고 있다 하지 않았는가?
헌데 저렇게 자세한 정보까지 모두 알고 있다고?
저 정도면 파악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소곳해진 필현이 당혹 어린 표정으로 왕일을 바라보자 왕일은 그런 필현의 두 눈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정보에는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그에 우리는 그저 정보를 파악하고 그에 짐작하여 수많은 가설을 세우며 대비하는 것뿐.”
“…….”
“공부 다시 하셔야겠습니다.”
이십 년간 하오문의 정보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삼장로 필현.
그는 소문주 왕일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
* * *
“괜찮겠느냐?”
남궁세가 사천분가의 응접실.
그곳에 들어선 내가 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남궁정에게 물었다.
그에 남궁정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형님.”
“그래.”
뭐든 말해라.
나는 너를 도울 테니.
아무도 모르게 남궁영이라는 사내를 죽여 줄 수도 있다.
아니, 남궁세가주를 죽이고 너를 가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남궁정의 씁쓸한 어조, 그의 부름에 나는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다짐하며 대답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느꼈을까?
남궁정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탁자 위에 있는 찻잔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술이 아닌 게 아쉽습니다.”
“뭐?”
“윤문 형님이 계셨으면 벌써 품속에서 술병을 꺼내셨겠지요?”
생각지 못한 남궁정의 말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어진 남궁정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문.
그 녀석은 비상용이라며 품속에 술 한 병씩은 꼭 넣어 놓고 다녔으니 말이다.
그런 나의 긍정에 남궁정이 미소를 지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짓는 남궁정.
그런 남궁정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되느냐?”
여유로운 표정과는 상반되게 계속해서 떨리고 있는 남궁정의 손과 다리.
그 행동에서 불안감을 느낀 내가 묻자 남궁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남궁영.”
흠칫.
나의 입에서 나온 개망나니의 이름.
그 이름에 반응하듯 남궁정이 흠칫했다.
그에 나는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이 모습.
많이 본 적이 있었다.
“그자가 너를 괴롭혔었느냐?”
어린 시절.
창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야율령.
그녀는 창마의 이름만 들어도 지금의 남궁정처럼 반응을 하고는 했다.
그에 대충 어느 정도 짐작이 된 내가 묻자 남궁정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서자였고, 형님은 적자였으며 장자였습니다.”
“…….”
남궁정이 서자인 것은 몰랐다.
아니, 남궁세가의 수뇌부들이 아닌 이상 모를 것이다.
남궁세가주가 그렇게 통제를 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남궁정의 말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남궁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천한 서자 놈이 뛰어난 무재를 보이며 자신의 자리를 위협했고, 결국 뺏었습니다.”
“…….”
“인정하기 싫었겠지요. 그래서 저를 괴롭혀 왔습니다.”
“…….”
“어린 저를 동물 사체가 가득한 방에 가두었으며, 채찍으로 저를 때리고, 물과 불로 고문을 시켰습니다. 저는 어른들의 칭찬이 싫었습니다.”
“왜……?”
“칭찬을 들은 날 밤에는 끔찍한 고문을 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
“그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저는 아직도…… 형님이 무섭습니다. 저보다 약하다는 것을 아는데…… 저보다 키도 작고 힘도 약하며, 무공의 경지도 낮은데…….”
“정아.”
손과 다리를 넘어 전신으로 퍼져 가는 떨림.
남궁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가자 나는 녀석의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멍청하지요……? 바보 같다는 것 압니다. 하지만 저는 도저히…….”
나를 바라보며 슬픈 미소를 짓는 남궁정의 모습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퍼억!
고개를 숙이려는 남궁정의 뒤통수를 그대로 후려쳤다.
“……?”
갑작스러운 나의 공격.
그 공격에 일격을 허용한 남궁정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 진정이 되느냐?”
“예……?”
나의 물음에 남궁정이 벙 찐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당황스러울 것 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녀석이 주화입마에 빠질 것만 같았다.
내가 그 꼴은 절대 못 본다.
아무튼,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두려워해. 그게 뭐가 바보 같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지.”
“하지만…… 무인으로서…….”
“무인은 사람 아니냐?”
녀석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물었다.
그에 녀석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 네가 남궁영의 팔을 잘랐잖아.”
“그건…….”
“그래, 나를 지키기 위해서지.”
“…….”
“너는 너를 지키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자신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용기를 냈어.”
“……?”
나의 말에 남궁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이미, 그 쓰레기를 극복했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아…….”
나의 말에 녀석의 두 눈가가 떨려 왔다.
무서워해도 된다.
무인도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이 멍청하다 손가락질하더라도 각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 또한 자신이니 말이다.
게다가 남궁정은 이미 그것을 극복한 상태이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멋진 놈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녀석이 자랑스러웠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했고 수고했다.”
너는 충분히 훌륭한 놈이야.
그런 쓰레기는 이제 무시하고 드넓게 펼쳐진 너의 미래로 뛰어가.
저 화창한 미래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으으!”
아, 소름 돋아 버렸다.
오글거려 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