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제102장 남궁세가의 소가주 小家主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와, 목소리 엄청 크다.
아둔한 모습을 보여 주는 남궁패를 보며 혀를 차던 것도 잠시.
골을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를 내는 분가주, 남궁청을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협공자 대협! 아무리 대협이 귀빈이라 하더라도…….”
“분가주.”
분노 어린 남궁청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남궁패의 낮은 목소리가 그의 말을 막아섰다.
피가 흘러내리는 왼쪽 어깨를 지혈하고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남궁패.
그런 남궁패의 모습에 언성을 높이던 남궁청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선 자네는 의각부터 가지.”
어린 시절 함께 무공을 수련해 왔던 동기.
우직한 무인, 남궁패를 보며 남궁청이 말하자 남궁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답답한 표정을 지은 남궁청이 다시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시지요.”
“뭣!”
남궁패의 말이 더 빨랐다.
조용히 넘어가자는 남궁패의 말.
그 말에 남궁청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두 눈을 크게 뜨며 다시 언성을 높였다.
남궁세가의 사천분가 정문.
남궁세가의 구역과도 같은 이곳에서 본가가 자랑하는 무력대, 창천단의 부단주가 팔이 잘렸다.
이러한 대형 사건을 그냥 넘어가자고?
분가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아니, 그냥 넘어간다면 남궁청의 입지가 흔들릴 것이 분명했다.
그에 남궁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될 말일세.”
“분가주!”
“이곳은 남궁세가 사천분가의 구역! 이곳에서 그대가 팔을 잃었네. 절대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네.”
“…….”
남궁청의 단호한 목소리에 남궁패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남궁청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당당하군.”
팔짱을 끼며 옥신각신하는 두 중년인을 바라보던 나.
그런 나를 보며 남궁청이 말하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상황이 재미있습니다.”
“무엇이 재미있단 말인가?”
말투가 다시 짧아졌네.
아주 제멋대로다.
나의 대답에 인상을 찌푸린 남궁청이 말했고,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남궁세가의 대공자가 등 뒤에서 저를 습격했습니다. 살기를 담아서. 그에 저는 피했고, 당한 것을 돌려주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습니다.”
“자네가 사파인가?”
나의 대답에 남궁청이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사파에서도 등 뒤에서 습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자네는 고수가 아닌가. 고수로서 관용을 베풀 수 있었네.”
“…….”
이것 참.
진짜 제멋대로 해석하고 생각해 버린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당당하게 내뱉는 남궁청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왜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가?
싫었다.
그에 남궁청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당당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대답하게.”
“…….”
뭐라 대답해야 할까.
아니, 굳이 대답해야 할까?
저런 쓰레기 같은 사내를 설득하기 위해 사용되는 나의 시간이 아깝다.
처억.
그렇게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가만히 서 있자 남궁청의 뒤에 있던 무사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나를 둥글게 포위했다.
언제라도 나를 제압할 수 있도록 말이다.
겁을 주려는 듯한 그들의 행동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한 걸음.”
“…….”
계속해서 다물어져 있던 나의 입에서 나온 낮은 음성.
그 음성에 모두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모두 죽습니다.”
진심이었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옥색의 뇌선은 어느덧 왼손에 쥐어져 있었고, 오른손은 나의 허리춤 안쪽에 걸려 있는 검병에 얹어져 있었다.
언제라도 검을 출수할 수 있도록 말이다.
* * *
‘이건 아니다.’
남궁청의 뒤를 따라 분가의 정문에 나선 남궁정.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창천단의 부단주이자, 남궁세가의 고수인 남궁패의 팔이 떨어졌을 때.
남궁정은 절망했다.
자신의 의형이라면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자신은 남궁세가의 소가주이다.
본가의 사람이 팔이 잘린 이 상황에서 의형인 위극신의 편에 설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이 절망스러웠지만 이내.
위극신의 뒤를 습격하려 했다는 남궁영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듣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린 시절 지독히도 자신을 괴롭혀 왔던 남궁영.
그가 이제는 자신을 넘어 존경하는 의형마저 괴롭히려 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남궁정은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리고.
남궁청의 입에서 나온 지극히 개인적인 발언에 남궁정은 실망하고 말았다.
남궁청.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서자였던 자신을 살뜰히 보살펴 주던 좋은 숙부가 아니었다.
이기적인 발언도 모자라 겁을 주며 압박하는 남궁청의 모습과, 그 명령을 당연하게 따르는 무사들의 모습에 남궁정은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이…… 정말 이런 가문의 소가주가 되어야 할까?
저런 추악한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굳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할까?
어린 시절.
남궁준광의 명령으로 인해 남궁영의 협박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수련을 해 왔던 남궁정은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고, 또 회의감이 들었다.
그렇게 깊은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사천당가에 쳐들어갔을 때도 뽑지 않았던 검병.
허리춤 안쪽에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검병에 손을 올린 의형의 모습에 남궁정이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이제, 자신이 직접 정리해야 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로서.
* * *
저벅.
“그만.”
남궁청의 뒤.
남궁정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남궁청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너는 물러가 있거라!”
앞으로 나서는 남궁정의 행동에 남궁청이 어린아이에게 명령하듯 호통쳤다.
강압적인 남궁청의 모습에 기분이 나빠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거참.
왜 애먼 우리 애한테 화풀이하고 난리야?
우리 애 기죽게 말이야.
그에 짜증이 난 내가 한 소리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사천분가주.”
남궁정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작지만 은은한, 넓게 울려 퍼지는 남궁정의 목소리.
좌중을 완벽하게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 남궁정이 싸늘한 눈빛으로 남궁청을 바라보았다.
“예를 갖추십시오.”
“뭐…… 뭐?”
이런 남궁정의 행동이 처음이었을까?
남궁청이 놀란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에 남궁정은 흔들리는 남궁청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분가주가 가문의 어른이며, 사사로이 나의 숙부라고 하지만 나는 대남궁세가의 소가주입니다. 예를 갖춰 주십시오.”
“…….”
“분가주.”
남궁정의 말에 멍하던 것도 잠시.
또다시 들려오는 남궁정의 목소리에 남궁청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꾸벅.
“실수했소이다.”
정중히 예를 취하며 사과를 건네었다.
정중한 행동과는 달리 여전히 싸가지가 없는 남궁청의 표정은 심히 거슬렸지만 남궁정은 상관이 없었나 보다.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남궁청의 사과에 고개를 끄덕인 남궁정이 고개를 돌려 나를 둘러싼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무협공자 대협은 본가의 귀빈이시다. 모두 물러나라.”
스윽.
남궁정의 말에 눈치를 살피던 무인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거참, 행동이 재빠르다.
그렇게 무인들이 물러나자 남궁정이 걸음을 옮겨 나의 앞에 멈추어 섰다.
꾸벅.
“못난 모습을 보여 드려 죄송합니다, 형님.”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 고개를 드시오.”
사사로이 나의 의제이지만 이곳에서의 남궁정은 남궁세가의 소가주이다.
세가의 무인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남궁정을 보며 내가 말하자 남궁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
“그러니 손을 떼어 주시겠습니까?”
남궁정의 미소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어진 녀석의 부탁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스윽.
그러고는 검에서 손을 떼었다.
평소 보기 힘든 미소를 짓고 있는 남궁정.
그런 남궁정을 보며 나는 한 녀석을 떠올렸다.
‘단진…….’
늘 차가운 표정으로 검을 수련하는 단진.
그런 녀석이 미소를 지었을 때는 깨달음을 얻어 내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런 단진의 모습이 남궁정의 모습에서 보였고 말이다.
아무튼, 내가 검에서 손을 떼자 남궁정이 다시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의 뒤에 서 있는 남궁패를 바라보았다.
“부단주.”
“예, 소가주.”
남궁정의 부름에 남궁패가 예를 차리며 대답했다.
한 팔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한 기색 없이 예를 차리는 남궁패의 모습에 나는 살짝 감탄했다.
‘진짜, 난놈이네.’
신기한 녀석이었다.
“형님이 본가의 귀빈을 뒤에서 습격한 것이 사실입니까?”
“예.”
“부단주!”
남궁정의 물음에 남궁패가 순순히 대답하자 뒤에 있던 남궁영이 무서운 표정으로 남궁패를 불렀다.
스윽.
그에 남궁정이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 주저앉아 있는 남궁영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하십시오.”
“뭐?”
차가운 남궁정의 말.
명령과도 같은 남궁정의 말에 남궁영이 벙 찐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남궁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행동을 했습니다. 입을 열 자격이 없습니다.”
싸늘한 남궁정의 말.
그 말에 남궁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푸하하!!”
얼굴을 가리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싸늘한 분위기와 달리 너무나도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남궁영의 웃음소리.
그 웃음소리에 남궁정이 눈가를 찌푸렸다.
“입 다…….”
그에 한 소리를 하려던 순간.
“지X하지 마라! 감히 네놈이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냐! 첩의 자식 주제에!”
박장대소를 터뜨리던 남궁영의 입에서 상스러운 말과 함께 노성이 터져 나왔다.
거참.
내가 저런 단어를 내뱉으면 고급스럽던데 저놈이 내뱉으니 상스러웠다.
얼굴이 달라서인가?
아무튼.
그런 남궁영의 말에 남궁패가 움찔했고 남궁청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 양반은 또 왜 웃어?
짜증 나게 말이다.
그렇게 미묘한 공기가 오가는 가운데.
서걱.
서늘한 파육음이 들려왔다.
그에 남궁패와 남궁청, 그리고 분가의 모든 무인들이 두 눈을 크게 떴고, 나 또한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뚜욱.
남궁정의 오른손에 들린 검.
그의 검 끝으로 붉은 피가 떨어지며 바닥을 적셨고.
“으아아악!”
한쪽 팔을 잃은 남궁영이 괴성을 지르며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고 있었다.
거참.
누구 동생인지 몰라도 아주 화끈했다.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그런 남궁영을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남궁정이 모든 사람들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소가주!”
그에 남궁청이 격분하며 언성을 높였지만.
스윽.
“소가주의 결단입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정식으로 가주님에게 항의하십시오.”
검을 들어 올려 남궁청을 겨눈 남궁정의 싸늘한 경고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
남궁정, 잘했다.
괜히 내가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