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제101장 아둔한 놈 鈍
스스로 천하제일가문이라 자부하는 남궁세가의 사천분가.
무협공자의 환영 연회로 한창 바쁘던 시기에 최악의 손님을 맞이하고 말았다.
바로, 남궁세가의 수치, 개망나니 남궁영!
분가의 정문.
하늘을 누비는 매가 그려진 깃을 단 마차를 호위하던 사내가 수위무사에게 소속 패를 가볍게 던지며 입을 열었다.
“대공자님의 행차시다, 문을 열도록.”
사내가 던진 소속 패.
그것을 받아 들고 확인한 수위무사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사내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창천단의 부단주, 남궁패 대협을 뵙습니다.”
분가의 말단인 수위무사에게 있어서 하늘과도 같은 상사이며 개인적으로 흠모하는 무인 남궁패.
그런 남궁패의 방문에 예를 마친 수위무사가 정중히 남궁패에게 소속 패를 돌려주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분가에는 어쩐 일로 행차하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없었느냐?”
수위무사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남궁패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에 수위무사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쯧.”
서둘러 위에서 내려온 서류들을 확인하는 수위무사를 보며 남궁패는 혀를 찼다.
남궁세가의 무인으로서 저런 가벼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남궁패의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며 서류를 전부 살펴본 것도 잠시.
수위무사가 서류를 내려놓고, 남궁패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합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없습니다.”
송구스럽다는 듯 조심스레 말하는 수위무사를 보며 남궁패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궁세가의 주인, 검왕 劍王 남궁준광의 명을 받고 창천단의 부단주인 자신이 직접 대공자를 데리고 이곳, 사천분가로 왔다.
헌데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없다고?
대공자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지만 자신은 창천단의 부단주.
절대 이렇게 내버려 둘 위치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였기에 위에서 내려온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짜증 나는군.’
가뜩이나 쓰레기…… 아니, 대공자를 호위하는 것이 짜증 났는데 고작 사천분가의 정문 앞에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기분이 더러웠다.
그에 남궁패가 분노 어린 표정으로 수위무사에게 한마디 말을 하려던 순간!
끼익.
마차의 문이 열렸다.
“크큭, 재미있네, 재미있어.”
열린 마차의 문 사이.
한 사내가 입가를 가린 채 웃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남궁세가의 수치인 대공자, 남궁영이 마차에서 내려 수위무사에게 다가가 그를 바라보았다.
좀 전에 소리 내 웃던 사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싸늘한 눈빛에 수위무사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며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어이.”
“예, 대공자님.”
차가운 남궁영의 목소리에 수위무사는 언제 뒷걸음질 쳤냐는 듯 당당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좀 전 남궁패에게 보여 준 모습과 달리 정중함이 느껴지지 않는 수위무사의 모습에 남궁패는 인상을 찌푸렸고, 남궁영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 분가가 소란스럽지? 내 방문 때문에 이런 것은 아닐 테고 말이야.”
자신의 등장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분가의 수뇌부들과 문 너머로 보이는 바쁜 사람들의 모습에 남궁영이 물었다.
그에 수위무사가 입을 열었다.
“소가주 남궁정의 의형이신 무협공자 극신 대협의 방문이 있기 때문에 연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협공자?”
수위무사의 말에 남궁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남궁패가 목소리를 낮추며 남궁영에게 말했다.
“최근, 젊은 무림인들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성입니다.”
“아…… 그 겁대가리 없이 사천당가랑 싸운 놈?”
“대공자님!”
남궁패의 말에 남궁영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수위무사가 굳은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갑작스러운 수위무사의 행동.
그 무례한 행동에 남궁패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본가의 대공자에게 언성을 높인 것인가?
감히 분가의 수위무사가?
이 무사는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는 것일까?
남궁패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 당황하는 동안.
남궁영은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수위무사를 바라보았다.
“계속해 봐.”
흥미로운 듯 두 눈을 반짝이며 묻는 남궁영의 모습에 수위무사는 가슴을 쫙 폈다.
그러고는 당당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무협공자는 가문의 위세를 등에 업고 어린아이를 핍박하던 사천당가의 망나니를 벌하였으며, 나아가 아이를 계속해서 지키기 위해 그 무섭다는 사천당가와 척을 진 대협입니다. 그 의협심에 소가주님이 감복하여 의형으로 모신 분. 그분은 아무리 대공자님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분입니다.”
더더욱 남궁세가가 포기한 개망나니라면…….
마지막 말까지 마치기에는 수위무사의 간이 크지 않았다.
마지막 말을 힘들게 삼킨 수위무사의 말에 남궁패는 얼굴을 굳혔다.
저 수위무사.
선을 넘었다.
“푸하하!”
선을 넘은 수위무사의 행동에 분노한 남궁패와 달리 남궁영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호쾌해 보이는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는 동안, 아니 계속해서 남궁영과 엮였던 남궁패는 알고 있었다.
그가 미친 짓을 하기 전. 항상 이렇게 웃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남궁패는 먼저 선수를 치기 위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지만…….
짜악!
이미 늦었다.
“…….”
“계속 이야기해 보거라.”
붉어진 뺨으로 고개가 돌아가 버린 수위무사.
그런 수위무사를 보며 남궁영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그에 수위무사가 고개를 돌렸고.
짜악!
또다시 남궁영이 그의 뺨을 쳤다.
“하아…….”
그런 남궁영의 행동에 남궁패는 한숨을 쉬었지만 차마 나서지 못했다.
이번 행동.
남궁영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저 수위무사가 너무 무례했다.
아무리 쓰레기, 남궁세가의 수치, 개망나니라고 하더라도 남궁영은 아직 남궁세가의 대공자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다.
장로들도 대공자인 남궁영에게는 저렇게 행동을 못 하는데 한낱 분가의 수위무사가 저런 행동을 취한다?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스윽.
“물러서라.”
그에 수위무사에게 다가가 만류하려는 동료들을 보며 남궁패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움찔.
그런 남궁패의 경고에 움찔한 동료들이 발길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남궁패의 뒤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남궁영에게 계속해서 맞고 있는 동료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동료가 맞는 것을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 * *
‘저 미친놈은 뭐지?’
본교의 사천분타에 남궁세가의 초대를 받아 분가에 방문한다는 전언을 남기고 걸음을 옮긴 나는 정문 앞에서 벌어진 모습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위무사로 보이는 자의 뺨을 후려치는 젊은 사내와, 그런 둘을 방관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 어이없는 모습에 나는 당혹스러워 순간 굳어 버렸다.
아니,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쥐 잡듯이 패고 있는데 그냥 구경만 한다고?
짜악!
턱!
“헐…….”
하도 맞아서 양 볼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었으며, 그의 입에서는 새하얀 옥수수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털썩!
하도 많이 맞았기 때문일까?
다리에 힘이 풀린 수위무사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수위무사의 모습에 그만할 법도 하건만, 그를 내려다본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을 들어 올렸다.
타격 지점이 낮아지니 공격하는 부위를 바꾼 것이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폭행.
그 폭행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그저 방관할 뿐이었다.
‘하아…….’
그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말려야 했다.
저러다가는 저 무사가 죽겠으니 말이다.
스윽.
그에 나는 걸음을 옮겼고.
턱.
사내의 발을 막아섰다.
“……?”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당황했을까?
사내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보기 흉하군요.”
나는 지금 무협공자라는 대협이다.
또한 이곳 남궁세가의 손님.
최대한 예를 갖추어 만류했다.
하지만.
“너는 누구지?”
돌아오는 대답은 싸가지가 바가지였다.
대뜸 반말을 하며 나의 정체를 묻는 사내.
그런 사내의 모습에 나는 순간 주먹에 힘이 들어갔지만 힘들게 참았다.
그래, 한 번만 더 참자.
“상대의 이름을 묻기 전에, 본인의 소개가 먼저 아니겠습니까?”
“아아…….”
나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턱!
나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손에 들린 뇌선으로 사내의 팔을 막아선 나.
그런 나를 보며 사내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뭐 하게?”
“하.”
이 새X. 미친놈이다.
풀려 있는 두 개의 동공.
그 동공을 마주한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새X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미친놈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에 나는.
턱.
신경질적으로 사내의 팔을 뇌선으로 밀어내었다.
휘청!
미친 성격과 달리 무공은 따라 주지 않았던 사내는 휘청거렸고,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 씨X 새X가 싸가지를 밥 말아 처먹었나, 초면부터 반말에 주먹질이야?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처받았길래 이딴 행동을 보여 주고 지랄이야 지랄이?”
아…….
순간 나도 모르게 사황 邪皇 시절의 언행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나는 싸가지에게 그만 자제력을 잃은 나.
그런 나의 말에 사내는 물론 주위에 있던 모두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에 나는.
“야.”
제법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꿈틀.
나의 부름에 눈가를 꿈틀거리는 사내.
나는 그런 사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쓰레기 호위인 거 같은데, 관리 안 하냐?”
“…….”
“그리고, 거기 무사들.”
“옙!”
인상을 찌푸린 사내를 무시하고.
동료로 보이는 사내들을 부르자 그들 모두가 신입 무사처럼 군기가 바짝 잡힌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쓰러진 사내를 부축해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의원에게 데려가.”
“아……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동료들은 대답했고, 곧 내가 부축한 사내를 업고 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대충 상황을 정리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스르릉.
어느새 검을 뽑고 나를 향해 겨누고 있는 싸가지의 호위.
그 사내를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감당되겠나?”
“아름다운 외모와, 옥색의 섭선. 무협공자가 맞나?”
“맞다.”
사내의 물음에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에 사내가 검을 강하게 쥐며 입을 열었다.
“창천단 부단주, 남궁패다. 대공자의 호위로서 지금의 상황을 묵과할 수가 없다.”
“없으면?”
남궁패의 말.
그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없으면 네가 대신 처맞으려고?”
“…….”
“저런 놈 호위하면서 참…… 열심히 한다?”
빈정거리는 나의 말에 남궁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검만 강하게 쥘 뿐이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스윽.
퍼억!
몸을 돌려 뒤에서 찔러 들어오는 검을 피하고는 검을 쥐고 있는 사내를 그대로 걷어차 버렸다.
“크윽!”
나의 발길질로 인해 그대로 엎어진 사내, 아니 남궁세가의 대공자 남궁영.
남궁세가의 개망나니라고 불리는 남궁영을 내려다보며 나는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뒤에서 검 찌르는 쓰레기를 내가 어찌 용서할 수 있을까?”
촤라락!
싸늘한 나의 말이 끝나고 나는 손에 들린 뇌선을 펼쳐 들었다.
그러자 구름이 각인된 아름다운 옥색의 섭선이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뇌선을 들어 올렸다.
“그만!”
그런 나의 행동에 남궁패가 나를 말렸지만 나는 무시했다.
이 상황이 두렵지도 않은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린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남궁영.
그런 남궁영을 내려다보며 나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뒈져라.”
서걱!
나의 뇌선이 휘둘림과 동시에.
고깃덩어리가 썰리는 듯한 소리가 남궁세가 사천분가를 울렸다.
“허억!”
“흐읍!”
뒤늦게 상황을 보고받고 정문으로 뛰쳐나온 남궁청과 사천분가의 총관, 그리고 무사들.
그들의 놀란 소리를 들으며 나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휑한 왼쪽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사내, 남궁패를 바라보았다.
“이 새끼, 진짜 아둔한 놈이네?”
저 쓰레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왼팔을 포기한 호위무사.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당당하게 신체를 포기한 남궁패를 보며 나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놈들 꼭 하나씩 있다.
슬기롭게 일 처리하지 못하고 둔하고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놈.
그런 멍청하고 아둔한 놈이 바로 나의 눈앞에 있는 남궁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