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제100장 과거 過去
“응? 윤 후배가 떠났다고?”
무림맹 사천 분타에서 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돌아온 천풍.
그가 나를 바라보며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예. 아주 급한 일이 생겨 저희도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심각한 일은 아닌가?”
“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하더군요.”
천풍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그에 천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주, 뭘 그리 아쉬워합니까?”
“그럼 아쉽지 안 아쉽냐?”
아쉬워하는 천풍의 모습에 청룡단의 부단주, 민규가 핀잔을 주듯 말하자 천풍이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남자를 좋…….”
퍽!
민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천풍은 민규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청수검의 초대를 받았다고 들었네.”
“네, 오늘 저녁에 가기로 했습니다.”
나의 대답에 천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술에 환장하는 자신의 외숙부.
천풍을 보며 내가 묻자 천풍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니, 오늘 무림맹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오늘 말입니까?”
천풍의 대답에 내가 살짝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천풍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고, 옆에 있던 민규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망할 꼰대들! 툭하면 우리 단주님만 잡습니다!”
“망할 꼰대들……?”
“예! 장로 그 꼰대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단어, 꼰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들을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민규를 보며 나는 천풍을 바라보았다.
“저 때문입니까?”
정파 무림의 안녕을 위해 만들어진 무림맹.
그곳을 대표하는 무력단주 천풍의 이번 행동은 무림맹의 설립 목적과 맞지 않았다.
물론, 개인의 협을 행한 천풍의 행동은 훌륭했지만 민규가 말하는 꼰대, 장로들에게는 탐탁지 않은 행동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을 파악한 내가 묻자 천풍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니, 왜 극 후배의 잘못이야? 아니, 애초에 나는 잘못을 하지 않았어.”
“…….”
“걱정 마. 뭐하면 뒤집어엎어 버릴 거니까.”
거참.
미안했다.
걱정 말라는 듯 나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짓는 천풍을 보며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 떠나십니까?”
“이제 가야지.”
“지금 말입니까?”
“이별이 짧아야 다음 만남까지도 짧은 법일세.”
나의 아쉬운 음성에 천풍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민규를 바라보았다.
“야, 가자.”
“그럼 안 갑니까?”
“하…….”
민규의 삐딱한 대답에 천풍은 깊은 짜증을 느꼈는지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천풍의 행동에 민규는 빠른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또 봅시다!”
삼십 대의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 민규.
고수답지 않게 가벼운 행동을 취하는 그를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 가요.”
“그럼 잘 가지 못 가…….”
퍼억!
“진짜, 부끄러워서 못 다니겠다.”
민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뒤통수를 한 대 더 후려친 천풍.
그가 싸늘한 어조로 민규를 보며 말한 다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언제 정색했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또 봅세.”
“네.”
천풍의 말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천풍과 민규는 사라졌다.
‘다음에는…… 외숙부라고 부르겠습니다.’
나의 외숙부 천풍.
그는 전생에서 보았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호인이었고, 또 인간적이었기에 호감이 갔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은 다음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저녁에 연회에 가서 술을 마실 텐데 왜 또 마시냐고?
내 맘이다.
* * *
쾅쾅쾅!
‘형님! 살려 주십시오!’
개와 고양이의 사체가 가득한 방 안.
그냥 사체가 아니라 분해된 사체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곳에 갇힌 한 아이가 방문을 두드리며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서 이곳에서 꺼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가득 담긴 아이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푸하하!’
‘크큭.’
간절한 아이의 마음과 달리 문밖에서는 유쾌한 웃음소리만이 들려왔다.
그에 아이는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살려 줘…….’
다섯 살이라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의 아이.
그 아이는 그날 밤, 개와 고양이의 사체가 가득한 방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었다.
* * *
짜악!
움찔.
창가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만이 밝혀 주고 있는 어두운 방 안.
온몸을 최대한으로 웅크린 아이가 등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몸을 움찔거렸다.
‘아프냐?’
‘…….’
‘안 아프구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은 청년.
그가 다시 손에 들린 채찍을 휘둘렀다.
짜악!
청년이 채찍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하얗고 연약한 아이의 피부에는 끔찍한 자상이 생겨났다.
피부가 터져 갈라져 버린 수많은 자상들.
움찔!
계속해서 청년에게 맞고 있는 아이의 피부에는 아이에게 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흉터가 가득했다.
* * *
퍼억!
‘좋겠구나.’
‘…….’
아이의 배를 걷어차 버린 청년.
그가 쓰러진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에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퍼억!
청년은 그런 아이의 얼굴을 그대로 걷어차 버렸다.
청년의 발길질에 입술이 터져 버린 아이.
아이는 입에서 흐르는 피를 먹으며 정신을 차렸고 청년은 그런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네깟 놈이 검황의 재림이라고?’
‘…….’
청년의 싸늘한 음성에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늘 그렇듯이.
꾸욱.
몸을 말며 이 끔찍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몸을 움츠리는 아이의 모습에 청년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너는 쓰레기야. 그러니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
청년의 신랄한 비난.
그 비난에도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 *
‘훌륭하구나.’
가문의 어른들이 모인 연무장.
그곳에서 본가의 기본 검공, 대연검을 선보인 아이를 보며 중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흡족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아이의 옆에 있던 청년이 인상을 찌푸렸다.
움찔!
그에 아이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그것을 눈치챈 중년 사내가 고개를 돌려 청년을 바라보았다.
‘쓰레기 같은 놈.’
움찔.
중년 사내의 입에서 나온 싸늘한 말.
그 싸늘한 말에 청년이 움찔거렸다.
‘쯧쯧, 저런 놈이 왜 장남으로 태어나서…….’
‘가주님.’
‘가문의 수치다. 썩 꺼져라!’
중년 사내의 일갈에 주변에 있던 장로들이 그를 말렸지만 중년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청년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렇게 청년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연무장에서 물러났고.
‘다시 펼쳐 보거라.’
어린아이는 중년 사내와 장로들의 앞에서 다시 대연검을 펼쳤다.
그리고 그날 밤.
퍼억!
‘…….’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는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 * *
모든 어른들의 앞에서 창궁무애검을 펼쳐 인정을 받고 걸음을 옮기던 한 청년.
‘일류에 올랐다지?’
‘…….’
시간이 흘러 헌앙한 청년이 된 아이는 자신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짓는 사내를 보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내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시릴 정도로 차가운 표정.
그 표정과 눈빛에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표정 짜증 나는구나.’
‘…….’
사내의 짜증이 가득한 음성.
그 음성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사내를 내려다볼 정도로 성장한 청년.
그런 청년의 모습에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들었다.
움찔!
사내가 손을 들자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청년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거만한 표정과는 달리 움찔하는 청년의 모습에 손을 들었던 사내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피식 미소를 지었다.
터억!
그러고는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면 뭐 하냐? 병X인데.’
‘…….’
비웃음이 가득한 사내의 말.
그 사내의 말에 청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내보다 더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를 옭아매어 사내의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청년이었다.
자신보다 경지가 낮은 무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병X, 네가 대단한 것 같지? 너는 그냥 병X이야. 그러니 나대지 말아. 보기 역겨우니까.’
그런 청년을 향해 사내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청년의 어깨에서 손을 내리고 걸음을 옮겼다.
점점 멀어지는 사내.
청년은 고개를 들어 멀어지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 * *
“허억!”
남궁세가의 사천분가.
피곤함에 낮잠을 청했던 남궁정은 끔찍한 꿈으로 인해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꿈인가…….”
몸을 일으키고 잠시 후.
꿈이었다는 것을 자각한 남궁정이 땀으로 인해 축축해진 목을 훔쳤다.
그러고는 침상에서 일어나 옷을 벗었다.
“찝찝하군.”
새로운 의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의복을 집어 들던 남궁정은 땀으로 인해 찐득해져 버린 상체를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같았으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바로, 자신의 의형.
극신의 환영 연회가 있으니 말이다.
그에 남궁정은 집어 들었던 의복을 내려놓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씻으시겠습니까?”
방을 나와 걸음을 옮긴 남궁정.
그는 욕실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중년 여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이것을 걸치시지요.”
남궁정의 대답에 여인이 얇고 긴 하얀 옷을 건네었다.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가기 전 가볍게 걸치는 옷이었다.
“아…….”
그제야 남궁정은 깨달았다.
지금 자신은 웃옷을 입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말이다.
끔찍한 꿈으로 인해 정신을 그만 놓아 버리고 만 남궁정.
그가 서둘러 여인이 건넨 옷을 받아 입었다.
“…….”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남궁정의 방에서 이곳까지.
복도에서 청소를 하던 하녀들과, 복도를 거닐던 수많은 무사들 모두가 보았다.
남궁정의 몸에 새겨진 끔찍한 상처들을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남궁정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멀었군.’
고작 꿈 때문에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너무 한심했다.
그에 자책을 한 남궁정이 걸음을 옮겼다.
한시라도 빨리.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쉬고 싶었다.
* * *
채채챙!
“재수 더럽게 없네.”
신강에서 주로 활동하며 서역의 대제국, 파사국과 명나라를 오가며 수많은 부를 저축해 온 흑룡상단주 해천은 자신의 앞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파사국에서의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신강으로 돌아가는 길.
해천은 재수 없게도 사막의 도적인 비적 匪賊 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것도 비적들 중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박트리아 비적단을 말이다.
상단의 물품은 물론, 사내는 모두 죽이고 여인들은 납치하여 포로로 삼는다는 악명 가득한 박트리아 비적단.
그들에게 맞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자신의 호위무사들을 보며 해천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생 참…….’
은퇴 전 마지막 상행이라 생각하고 움직였더니 이곳에서 죽게 생겼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와 버린 해천.
그렇게 어이없음에 실소를 하던 그때.
“크아악!”
마지막 호위무사까지 죽어 버렸다.
이제는 중원인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린 해천.
그가 당당한 눈빛으로 말에 올라타 있는 비적을 올려다보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진한 이목구비에 초록색의 눈.
그 사내를 보며 해천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새끼, 못생겼네.”
기왕 죽기로 한 거.
당당하게 죽어야지.
그렇게 다짐한 해천은 당당하게 행동했고.
꿈틀.
그런 해천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비적이 눈가를 꿈틀거렸다.
스윽.
그러고는 해천을 죽이기 위해 손을 들었고 해천은 두 눈을 감았다.
콰앙!
그때.
비적들의 뒤에서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에 비적들의 우두머리는 검을 내리고는 말 머리를 돌렸고, 두 눈을 감고 칼을 기다리던 해천이 두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그러자 보였다.
“푸하하하!”
가장 선두에서 두 주먹을 휘두르며 비적들을 쓰러트리는 거대한 곰 한 마리…… 아니, 사내 한 명.
푸푹!
서걱!
“쯧.”
혀를 차며 두 개의 단창을 빠르게 휘두르고 찌르며 비적들을 처리하는 청년.
“…….”
서걱.
그런 청년의 옆으로,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한쪽 얼굴을 가린 절세미남이 차가운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하하, 박트리아 비적단이다! 설마 했는데 정말 우리 서역에 와 버렸네?”
그들의 뒤에서 소리 내 웃으며 이마를 짚는 사내까지.
갑작스러운 네 명의 등장에 박트리아 비적단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짧은 시간에 더 이상 살아 있는 비적단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비적단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되는 박트리아 비적단이 단 네 명에게 전멸당하고 만 것이다.
그것도 젊은 사내들에게 말이다!
그에 해천이 멍한 표정을 짓자 이마를 짚으며 웃던 사내가 해천에게 다가왔다.
“중원인입니까?”
“아…… 예…….”
“여기가 어딥니까?”
“아…… 파사국으로 통하는 사막길…….”
퍼억!
해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차가운 인상의 절세미남과 단창을 들고 있던 청년이 거대한 덩치의 사내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 망할 놈!”
“내가! 동쪽으로 가랬지! 서쪽으로 가랬어?”
“…….”
길을 잘못 들어 중원이 아닌 서역으로 와 버린 네 명의 사내.
바로, 위극신을 찾아 가출을 행한 사마천, 야율민, 단진, 구양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