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제99장 남궁분가주의 초대 招待
“으음…….”
“정신이 드느냐.”
약초 향이 가득한 방 안.
어지러운 가문을 정리하고 피해 보상 준비로 인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이곳에 들러 당첨을 손수 돌보아 온 당독.
오늘도 어김없이 당첨을 돌보던 당독은 당첨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 소리에 황급히 상체를 기울이며 물었다.
“하…… 할아버님……?”
어린 시절.
자신의 무재를 잇지 못한 아들과 달리 자신보다 더 뛰어난 무재를 지닌 손자를 직접 가르쳤던 당독.
그에게 있어서 손자이며, 제자인 당첨이 두 눈을 뜨자 그간 자신의 가슴을 꾹 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치워진 것만 같았다.
믿기지 않는 듯한 당첨의 떨리는 목소리.
그 물음에 당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못난 아들의 입장을 위해 그간 일부러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당독.
그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더욱더 괴로웠을 당첨의 앙상한 손을 잡으며 당독이 입을 열었다.
“그래…… 할애비다…….”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그 좁은 뒤주 속에 갇혀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손자를 보며 당독이 복잡한 심정으로 말하자.
“하하…….”
당첨이 웃었다.
평소 헌앙하던 얼굴이 아닌, 홀쭉해진 얼굴로 말이다.
그렇게 미소를 짓는 손자의 모습에 당독은 더욱더 가슴이 메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착한 아이를 그 망할 놈에게 맡기다니…….
못난 아들의 성격을 알고 있음에도 애써 부정하던 과거의 자신이 너무나도 후회가 되는 당독이었다.
“왜…… 왜 웃느냐…….”
아비에게 끔찍한 취급을 받고, 이러한 꼴을 하면서도 웃는 당첨을 보며 당독이 묻자 당첨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있으니, 모두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까?”
흔들림 없는 믿음.
그러한 신뢰를 보내는 당첨을 보며 당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다 정리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극신 공…….”
“멀쩡하다.”
“사람들은…….”
“죄 없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에 맞는 보상을 해 두었다. 그러니 걱정은 집어넣고 조금 더 자 두거라. 잠이 최고의 보약이니 말이다.”
당독의 부드러운 음성에 당첨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그래…… 푹 쉬거라.”
의식이 없을 때와 달리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든 손자 당첨을 보며 당독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헝클어진 당첨의 머리칼을 정리하며 말이다.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은하객잔.
나는 친히 이곳으로 찾아온 남궁청을 맞이하며 전에 있었던 일을 사과했다.
나보다 배분이 높은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꺼지라는 막말을 했던 나의 행동.
뭐, 솔직히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나의 의제인 남궁정의 숙부.
남궁정 때문에 한 번은 사과를 해 줄 의향이 있었다.
쩝,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네.
아무튼.
“하하! 아닙니다!”
그런 나의 사과에 남궁청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후배를 대하며, 알게 모르게 얕잡아 보던 과거의 행동과 달리 너무나도 정중한 남궁청의 행동.
그런 남궁청의 행동에 나는 속으로 피식 미소를 지었다.
사천당가와의 분쟁으로 무협공자라는 별호가 유명해졌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왕일의 말에 따르면 세간에서는 무협공자라는 나의 별호를 오룡삼봉보다 더 높게 쳐준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나에게 호쾌한 선배의 모습으로 행동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천하의 무협공자 대협에게 제대로 인사드립니다. 남궁세가 사천분가주 남궁청입니다. 부족하지만 청수검 靑水劍이라 불리고 있지요.”
얼씨구, 대협이란다.
나와의 관계를 아예 재정립하고 싶었을까?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를 하는 남궁청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하수처럼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극신이라고 합니다. 청수검 선배님의 위명은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또,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지 않은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남궁청의 별호를 띄워 주자 역시, 그 나이대의 흔한 아저씨처럼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역시 칭찬은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하하! 무협공자, 이곳은 대협이 머물기에는 너무 누추하니 분가로 오심이 어떠십니까? 무협공자는 본가의 귀빈입니다. 분가주로서 귀빈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 질책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하아…….
이 새X, 진짜 마음에 안 드네.
사천에서 가장 큰 객잔이 바로, 이곳 은하객잔이다.
나의 의제인 왕일과 그를 모시고 있는 수노가 평생을 바쳐 일군 객잔!
그런 곳을 누추하다고 평가한다고?
지가 뭔데?
내 눈에는 사람 좋은 척 웃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못나 보였다.
그리고.
“하하!”
저 웃음소리도 역겨웠다.
웃음소리 하면 우리 적이인데 말이다.
“분가주님. 제 의제의 가게입니다. 누추하지 않습니다.”
나와 같은 심정을 느꼈을까?
남궁정이 굳은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남궁청에게 말했다.
꿈틀.
그런 남궁정의 지적에 눈가를 꿈틀거린 남궁청.
건방진 조카의 발언에 기분이 나빴나 보다.
하여튼, 자기 잘못은 생각 안 하지…….
“하핫, 그래그래, 미안하다.”
그래도 분가주라는 직책과 청수검이라는 별호를 그냥 얻은 것은 아닌 듯 금방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말실수를 인정하며 사과를 건네었다.
“이보게,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점소이인 왕일에게까지 남궁청이 사과를 건네자 왕일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무림의 고수인 청수검의 사과에 영광이라는 듯 화답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저 자식.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욕하고 있다.
확실했다.
어쩌면 오늘 청수검 남궁청의 치부가 탈탈 털릴지도…….
“크흠. 아무튼, 본가에서 모시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제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은 찾아 주시지요.”
그렇게 왕일을 보던 나는 헛기침을 하며 제안하는 남궁청의 행동에 고개를 돌렸다.
스윽.
그러고는 옆에 있던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의중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시선에 남궁정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편하게 하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나의 귀로 들려오는 전음.
남궁정의 전음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은 뭐든지 다 괜찮다고 할 것만 같았다.
정말, 단진 녀석과 다를 바가 없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청을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남궁청을 바라보았다.
아, 저 표정 보니까 짜증 났다.
당연히 내가 받아들일 것이라는 저 표정에 괜한 반발심이 일었지만 나는 꾸욱 참았다.
그러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예를 취했다.
“대남궁세가의 초대를 받다니. 영광이지요.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나의 정중한 대답에 남궁청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헌데, 적협공자는 안 보이십니다?”
“아. 그 친구는 급한 일이 생겨 떠났습니다.”
“아…… 아쉽군요…….”
무협공자라는 나의 별호와 함께 무림의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는 적협공자.
위험을 무릅쓰고 벗과 함께하여 우정을 지키며 협을 행한 주윤문의 행동이 백성들, 아니 젊은 고수들에게 아주 좋게 퍼지고 있었다.
물론 나와 주윤문의 협행이 대단하긴 하지만 무림 전역을 울릴 정도는 아니다.
헌데 왜 이 정도로 유명해졌냐고?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씨익.
저 구석에서 나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짓고 있는 왕일의 작품이었다.
전생에서는 하오문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기에 녀석의 능력을 보지 못해 몰랐는데 지금 보니 진짜 대단한 놈이다.
‘칼보다 말이 더 무섭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원하는 소문을 내고 거기에 서사를 더하여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군중들의 심리를 말 그대로 가지고 노는 왕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야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는 왕일의 모습을 상상하니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친하게 지내야지.
“지금 바로 제가 모시겠습니다.”
왕일의 모습에 소름이 돋은 것도 잠시.
미소를 지으며 권하는 남궁청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오후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귀빈을 맞이하는 데 있어 부족하지 않을 연회를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흔쾌히 대답하는 남궁청을 보며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렇게 사천분가의 방문을 확실하게 약조하고 남궁청은 물러났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한 잔 드릴까요?”
자리에 앉자마자 귀신같은 솜씨로 술병을 들며 묻는 왕일의 모습.
그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응.”
술은 거절 안 하지.
내가 웃으며 술잔을 들자 왕일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나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고,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
남궁청과 그의 뒤를 따르는 남궁세가의 무인들.
그런 남궁 일행들의 행차에 자신의 삶에 집중하던 모든 사람들이 행동을 멈추고 길을 비켜 주었다.
혹여나 그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조심하는 백성들의 모습.
그리고 그런 백성들의 행동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뿌듯한 미소를 짓는 남궁세가의 일행들까지.
이것 참.
보기 역겨웠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차던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를 향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궁정.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한 번은 가야겠지. 내가 너의 의형이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지 않느냐?”
오룡 중 수좌로 꼽히는 창궁검룡과 젊은 고수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무협공자가 의형제라는 사실은 이미 중원 전역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물론, 왕일이 소문낸 것이 아니다.
“죄송합니다.”
바로, 남궁세가에서 대놓고 홍보하듯 소문을 내고 다녔다.
그에 남궁정이 다시 사과를 하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녀석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고일대로 고여 썩어 버린 어른들이 문제이지.
“사천당가와의 이야기는 잘된 거지?”
남궁세가의 정식적인 초대.
사천당가와 척을 진 나를 정식으로 초대한다는 뜻은 같은 오대세가인 사천당가를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을 콕 짚어 내가 묻자 남궁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주 대행으로 나서 주신 독황 선배님이 형님과 당가의 은원은 해소되었다고 공언하였으니 상관없습니다.”
무림에 정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독황이라는 별호를 반납했던 당독.
그가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세상에 드러난 행동은 심히 부끄러운 행동일 것이다.
자존심이 아주 상하는 일.
가문과 손자를 위해 자신의 명예를 저버린 당독을 떠올리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다 늙어서 바쁘겠군.”
여든이 넘은 나이이다.
무림인이 아니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장수한 노인네.
그 노인네가 노구를 이끌고 가문의 정사를 돌보아야 하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아, 당첨 그 녀석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건강은?”
“문제없다 합니다.”
“다행이군.”
남궁정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정만큼이나 순수하고 올곧았던 청년.
미래가 기대될 정도로 올곧았던 당첨이 건강하다는 이야기는 상당한 희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