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제98장 신념 信念
“이렇게 갑자기 말입니까……?”
은하객잔의 창가.
나는 나의 앞에서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하는 남궁정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무슨 일!”
그런 남궁정의 옆.
왕일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고 왕일의 품에 안긴 혜정이 깜찍한 표정으로 왕일의 말을 따라 하였다.
그런 혜정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 참.
엄청 귀여웠다.
“큰 문제는 아니겠죠?”
그때.
남궁정의 옆에서 가만히 눈치를 살피던 남궁연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늘 남궁정과 함께 다녔기에 매일 인사를 나누는 관계였지만 이상하게 어색했던 남궁연화.
그런 남궁연화를 보며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 녀석들이 이토록 걱정하고 있는 존재.
그 녀석은 바로, 오늘 아침 말도 없이 사라진 주윤문이었다.
내심 갑자기 사라진 녀석에게 섭섭했지만 급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또 나와의 대화로 인해 당황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하며 녀석을 이해한 나는 녀석을 나 못지않게 좋아하는 이 녀석들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혹여나 갑자기 사라진 주윤문의 행동을 원망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별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큰일은 아니겠지? 제가 알아볼까요?”
섭섭해 하기는 커녕 오히려 녀석을 걱정하는 둘을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것 참.
내가 의제를 참 잘 들인 것 같았다.
그렇게 흐뭇한 모습을 보여 주는 둘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아. 그 녀석이라면 잘할 거야.”
비록 전생에서는 숙부에 의해 폐위가 되어 버리는 비운의 황제이지만, 현생에서는 아닐 것이다.
내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도울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확신 어린 어조로 말하던 그때.
남궁연화가 갑자기 나를 향해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참, 공자님.”
“네.”
부담스러웠다.
나의 코로 갑자기 훅 들어오는 여인의 체취에 당혹스러웠던 것도 잠시.
부담스러운 남궁연화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나는 몸을 살짝 뒤로 뺐다.
그래 이래서였다.
이래서 부담스러웠고 어색했었다.
그런 나의 행동에 잠깐 입술을 삐죽인 것도 잠시, 남궁연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혹 군부의 사람은 아니지요?”
“연화!”
남궁연화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옆에 있던 남궁정이 매서운 표정으로 주의를 주었다.
정체를 밝히지 않은 나에게 혹여나 실례가 되는 물음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녀석, 차가운 얼굴과 말투와는 달리 배려심이 아주 깊었다.
그런 남궁정의 주의에 남궁연화가 입술을 삐죽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정체도 모르잖아. 혹 군부의 사람이라면 지금 위험하니까 정보를 알려 주어야지.”
“하하.”
남궁연화의 변명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정체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나의 잘못이 크지.
그렇게 내심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궁연화를 바라보았다.
“저는 군부의 사람이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시지요.”
“네!”
나의 확답에 남궁연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옆에 있던 남궁정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다. 조만간 이야기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겠느냐?”
“얘기 안 하셔도 됩니다.”
나의 말에 남궁정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은 다음 고개를 돌려 다시 남궁연화를 바라보았다.
“헌데, 군부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 북원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하더라구요.”
멈칫.
남궁연화의 대답에 나는 술잔을 들어 올리던 행동을 멈추었다.
북원?
분명 전생에서 북원의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는데?
“연왕의 죽음 이후, 북쪽의 번왕 자리가 비어 북원이 힘을 합쳐…….”
벌떡!
남궁연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나는 생각지 못한 변화에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연왕이 죽어……?’
그럴 리가 없다.
그자는 장차 황제가 될 사내.
그 사내가 이렇게 죽었을 리가 없다.
그런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남궁연화는 말을 하기 위해 열었던 입을 다물었고, 남궁정과 왕일, 그리고 혜정이까지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남궁연화만을 바라보았다.
“연왕이…… 죽었단 말입니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에 내가 떨리는 음성으로 묻자 남궁연화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왕일을 바라보았다.
하오문주의 제자인 녀석이라면 확실하게 알고 잇을 것이다.
연왕의 죽음이 사실인지 아닌지 말이다.
그런 나의 심증을 읽었을까?
그 눈빛에 왕일이 당혹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정말입니다……. 극비인 상황이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아…….”
그제야 연왕의 죽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멀쩡하게 살아서 황제가 될 운명을 지닌 연왕이 죽었다고?
현 황제에게 제대로 난도 일으키지 못한 채?
복잡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에 내가 머리를 부여잡고 있자 남궁연화가 역시 하는 표정을 지었다.
“관아 쪽 사람…….”
휘익!
남궁연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몸을 돌렸다.
정보.
제대로 된 정보가 필요했다.
* * *
“미치겠군.”
천마신교 사천 지부.
환천표국이라는 이름 아래에 이루어진 그곳에 들러 지부장을 만난 나는 손에 들린 서류를 읽으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가 또 바뀌었다.
내가 속한 천마신교의 미래가 아니다.
주윤문과 만나기 이전, 전혀 관계가 없던 황궁의 미래가 바뀌었다.
도대체 왜?
“이상해…….”
아무리 사소한 것이 나아가 큰 것이 된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내가 황궁에 간접적으로라도 영향을 끼칠 만한 행동을 한 적도 없으며 할 능력……은 되었지만 아무튼.
황궁의 미래가 바뀔 이유가 없었다.
“저…….”
그런 나의 앞.
사천 지부의 지부장인 섭주라는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미안하오.”
그런 섭주의 비굴한 모습에 그제야 나는 매서운 기세를 거두어들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에 나도 모르게 그만 기세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후우…….”
내가 사과를 하며 기운을 거두어들이자 섭주는 그제야 똑바로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소신은 위대한 신교, 사천 지부의 지부장인 섭주라고 하옵니다. 소교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부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도 나누지 않고 황궁의 정보를 원했던 나의 행동.
그 행동으로 인해 제대로 예도 갖추지 못했던 섭주가 무릎을 꿇으며 정중히 인사를 건네었다.
교인들에게 신과 같은 천마의 핏줄인 나에게 마치 숭배를 하듯 경건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 섭주의 예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흘러도 부담스러운 예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일어나시오.”
“예, 소교주님.”
부담스러웠던 나의 명에 섭주가 몸을 일으켰다.
그에 나는 손에 들려 있던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황실에 대한 정보 더 있습니까?”
“그것이…….”
나의 물음에 섭주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괜찮으니, 편히 말하시오.”
나는 정말 괜찮았다.
고작 이런 걸로 부하를 닦달하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나의 미소와 목소리에 안심했을까?
섭주가 조금은 풀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약 십오 년 전부터 황실의 모든 세작으로부터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다른 줄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했으며, 본교만이 아닌 다른 세력 또한 마찬가지로 끊겼기에 도무지 비집고 갈 틈이 없었습니다.”
“…….”
난감했다.
드넓은 중원의 주인인 명 제국.
그곳 황실에 세작이 비집고 들어갈 조금의 틈도 없다고?
그럴 리가.
내가 알기로는 혜제, 주윤문은 즉위 이후 번왕들의 견제로 인해 제대로 황권을 장악하지 못했었다.
헌데, 조금의 틈도 없다?
그 뜻은 나약했던 전생과는 달리 현생에서는 혜제 주윤문이 황권을 확실하게 잡고 또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연락이 끊기기 전 정보를 모은 것입니다. 군사 어른에게 보고를 한 서류입니다만…… 소교주님께서도 한번 보시겠습니까?”
미리 준비를 하였을까?
섭주가 품속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며 물었다.
그에 나는 빠른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섭주에게서 빠른 속도로 서류를 받아 든 나는 다시 서류에 적힌 정보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후우…….”
모든 서류를 읽은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윤문.
그는 나와 같은 다섯 살의 나이에 하룻밤 사이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해맑고 장난을 좋아하던 어린아이의 모습을 버리고, 어른 못지않게 의젓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였으며 그런 행동을 토대로 미래가 기대되는 사람들에게 접촉하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이 행하는 행보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치워 버렸고, 또 치우기 부담스러운 존재라면 철저하게 짓밟아 버렸다.
평소 유약하던 모습과는 달리 너무나도 독해졌다는 세작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주윤문이 열 살이라는 나이가 되었을 시점부터 더 이상의 서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황제…… 아니, 주윤문에 의해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서류에 적힌 정보를 모두 읽은 나는 두 눈을 감았다.
“…….”
회귀한 내 힘이 아니라, 다른 영향으로 인해 바뀐 미래.
단 하룻밤 사이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준 바뀐 미래의 주인공 주윤문.
그의 모습은 곧 어린 시절 내 모습과 같았다.
나 또한 다섯 살이라는 나이에 회귀를 하여 어른의 의식을 가지고 생활해 갔으며, 천마신교에서 나의 영향력을 넓히고 장로의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천마신교의 사상 자체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갔다.
주윤문이 보여 준 행보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나의 행보.
아니 배경이 다를 뿐 똑같았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말이다.
시작 또한 나와 똑같을지도 몰랐다.
그 시작이 뭐냐고?
바로.
‘회귀.’
회귀이다.
나의 벗 주윤문.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회귀를 하였고, 또 알고 있는 미래와 경험을 토대로 주변을 바꾸어 나갔다.
아직은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다.
단지 가설일 뿐이지만 내 본능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주윤문.
녀석도 나처럼 회귀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이다.
그동안 나에게만 있었던 행운이라 생각을 해 왔던 회귀.
그 회귀라는 기연이 타인에게도 주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복잡함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저 두 눈만 감고 있자 가만히 눈치를 살피던 섭주가 나를 불렀다.
“소교주님.”
귀로 들려오는 섭주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그래, 아직 확실하지 않다.’
가설일 뿐이다.
절대 속단해서는 안 되었다.
가설은 말 그대로 가설일 뿐, 단정을 짓고 생각하지 말고 다시 찬찬히 알아보면 되었다.
아직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고 생각을 정리한 나는 두 눈을 굴리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섭주를 바라보았다.
움찔!
그런 나의 눈빛에 움찔한 섭주.
그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혹, 황실의 정보를 원하신다면 다시 접촉해 보겠습니다.”
“…….”
“황제가 바뀌고 번왕들의 탄압이 시작되어 빈틈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 틈을 파고든다면 세작을 심는 것도 무리는 아니…….”
“그만.”
섭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잘랐다.
그에 섭주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혹여나 나의 심기를 상하게 하지 않았을까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 섭주의 모습에 나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안도하라는 듯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실에 대한 모든 행동은 멈추시오.”
“하지만…….”
“소교주의 명이오.”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어진 나의 말에 섭주가 두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부장.”
“하명하시옵소서.”
나의 부름에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한 섭주.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사천성도가 훤히 보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본전에 있는 군사에게도 전하시오. 황실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고,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말라고.”
“…….”
“만약 행동을 취한다면…….”
우웅!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천마신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공포심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섭주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친히 처단할 것이라 전하시오.”
주윤문.
그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가설처럼 회귀를 한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실보다는 녀석이 나의 벗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예!”
매서운 나의 명에 섭주는 온 힘을 다해 우렁차게 대답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는 몰랐다.
나의 이러한 신념이 그런 큰 파도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