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제93장 최대 고비 苦悲
황허강 상류에 위치해 있으며, 고대 유적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감숙성 甘肅城.
그런 감숙성의 도시 중 가장 큰 주천부 酒泉府 에는 무림인들에게 유명한 사파의 본거지, 사황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사황성의 심층부.
“아가씨!”
“응.”
심층부에 위치한 방 안에서 동경을 바라보며 다소곳한 자세로 머리카락을 빗던 여인이 시녀의 부름에 대답했다.
하늘을 메운 밤하늘처럼 반짝이는 윤기가 흐르며,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고운 흑색의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 그리고 뚜렷한 이목구비까지.
중국 최고의 미녀로 꼽히는 서시, 양귀비, 왕소군, 초선도 이보다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내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도 남을 정도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리고.
“와아…….”
바다처럼 푸른 색의 두 눈.
그 두 눈이 신비감을 더하여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럽게까지 보이는 여인의 모습에 시녀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런 시녀의 모습이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여인, 서은설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왜 불렀니?”
서은설의 입에서 나온 아름다운 음성.
옥구슬 굴러가듯 영롱한 그녀의 음성에 시녀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도 치장을 하시는 거예요?”
요 며칠.
아니,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은설은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 장미꽃을 띄운 물에 목욕을 하였으며, 아름다움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연하게 화장을 하고, 아름다운 옷과 비녀를 골랐다.
하루도 빠짐없이 치장을 부지런히 해 온 서은설을 보며 시녀가 묻자, 서은설이 미소를 지었다.
“응.”
“정말…… 그분도 너무하시지.”
서은설의 대답에 시녀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에 서은설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첫사랑.
자신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줄 영약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숙모님에게 양보했던 아이.
섭선을 휘두르던 모습이 너무나도 멋지던 아이.
자신을 향해 웃어 주던 그 미소와 눈빛이 너무나도 상큼하고 싱그러웠던 아이.
어린 서은설의 마음에 꽉 들어앉은 아이, 위극신.
첫사랑인 그와 십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은설은 위극신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점점 키워 갔다.
어린 시절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고받았던 편지에 적힌 한 줄의 글귀.
‘곧 만나러 갈게.’
그 편지 이후, 위극신으로부터는 연락이 없었다.
그 대신, 위극신의 어머니인 천소화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왔었다.
위극신이 무림으로 나갔다는 내용의 편지 말이다.
그에 서은설은 위극신이 언제 찾아올지 몰라 매일같이 치장을 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말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벌써 보름째였다.
그것을 상기한 서은설.
그녀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콰직!
그녀의 손에 들린 나무 빗은 처참하게 부서져 가루가 되어 버렸고, 시녀는 삐죽이던 입술을 집어넣고는 조용히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위극신.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만 지금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고비를 맞이하고 있었다.
* * *
“으으으!”
아씨, 뭐야?
왜 갑자기 오한이……?
나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오한에 몸서리를 치며 신음 소리를 내었다.
갑작스러운 그런 나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린 소년.
나의 의제인 왕일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갑자기 오한이…….”
“하하, 누가 형님을 욕하고 있나 봅니다!”
나의 대답에 왕일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 또한 피식 미소를 지었다.
뭐, 욕하면 욕하라고 해라.
상관없었다.
대신, 걸리면 죽일 것이다.
그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피식 미소를 짓는 나를 보며 왕일이 미소를 지웠다.
그러고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님, 기막 좀 둘러 주십시오.”
“그래.”
왕일의 부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우리가 위치한 방에 기막을 둘렀다.
이제, 그 누구도 여기서 일어나는 대화를 알아 듣지 못할 것이다.
“사황성으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응.”
왕일의 물음에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사황성에 가는 게 비밀도 아니고 말이다.
“약혼녀를 만나러 가십니까?”
“어떻게 알았냐?”
왕일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그에 왕일이 입을 열었다.
“수뇌부들만 아는 특급 정보로, 저도 스승님을 통해 겨우 들은 이야기입니다. 뭐, 형님 본인의 이야기이니 상관없겠지요. 천마신교의 소교주, 그리고 사황성주 패천황 대협이 가장 아끼는 둘째 제자가 약혼을 한다는 소문 말입니다.”
“응?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
나의 말에 왕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황성에서 정식으로 천마신교로 매파를 보내었습니다. 그에 소교주가 답신을 하기 위해 직접 움직인다고…….”
“뭔 소리야.”
본인도 모르는 혼인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고?
아 물론, 서은설과 혼인은 할 것이다.
근데 내가 매파에 대한 대답을 들고 간다고?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아니 들은 것도 없는데?
“이미 그렇게 소문이 났습니다. 그에 형님의 행방에 대해 개방은 물론 무림맹의 정보 조직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사파와 천마신교의 연합 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지요. 그에 본문은 무협공자와 소교주가 동일 인물인 것을 모르도록 흔적을 지우고 있구요.”
“…….”
“형님, 정말 모르시는 이야기입니까?”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나의 표정.
그런 나의 표정에 왕일이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물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모르는 이야기다.
“그럴 리가……. 정보가 잘못되었을 리가 없는데…….”
나의 확답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왕일.
그가 눈썹을 찌푸리며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심각해 보이는 왕일의 모습에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두 가지다.”
“예?”
앞뒤 맥락이 전혀 맞지 않는, 뜬금없는 나의 말.
그 말에 왕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인 다음 한 개를 접으며 입을 열었다.
“첫째, 헛소문.”
“…….”
“그리고 둘째.”
“예.”
나머지 손가락 한 개를 접으며 내가 말하자 왕일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망할 아버지가 나를 엿 먹이려고 일부러 안 알려 준 것. 그리고 무림으로 정보를 노출시킨 것.”
“……?”
“진짜, 너무하네. 하여튼 천마라는 위치이면서 왜 갈수록 유치해지는 거야? 에라이. 진짜 더러워서 빨리 천마가 되든가 해야지.”
“……?”
“진짜, 천마라는 작자가 그러고 싶을까? 시간이 남아돌지? 에휴, 시조 할아버지는 뭐 하나 몰라, 빨리 천마 안 잡아가고.”
“혀…… 형님……?”
나의 천마 비하 발언.
그 발언에 왕일이 당황하며 나를 불렀다.
천마라는 존재가 나의 아비이고, 대놓고 아비를 비하하고 있으니 당황스러웠나 보다.
뭐…… 천마 그 양반이 생물학적으로 나의 아비긴 하다만…… 영 정이 안 간다.
아무튼, 그런 왕일의 모습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 참, 흥분하고 말았다.
조금만 흥분을 가라앉히자.
“크흠, 못 들은 걸로 해라.”
“아…… 예.”
나의 말에 당황한 왕일.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그건 넘어가고. 어차피 이번에 가면 청혼을 할 생각이었으니 상관없어.”
“정말입니까?”
나의 말에 왕일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아주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됐고, 아무튼 그래서 왜?”
“아…… 이야기가 벗어났네요.”
나의 말에 왕일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기를 잠시.
다시 녀석이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형님.”
“아 빨리 말해.”
이 자식이.
아까부터 계속해서 분위기 잡고 있네.
이미 밖에는 사천당가와의 은원을 끝낸 축하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도 빨리 나가서 술 마시고 싶었다.
뭐 물론, 참가자는 윤문과 천풍, 그리고 민규와 남궁정 정도밖에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나의 말에 왕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연극. 한번 하지 않겠습니까?”
“응?”
연극?
뜬금없이?
왕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무인인데?
아무리 내가 잘생겼다지만, 갑자기 예능인 藝能人 을 하라고?
싫은데.
싫은 나의 감정에 표정에 드러났을까?
왕일이 황급히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무림의 정세는 아직 정마대전의 여파가 남아 있어 천마신교에 대한 인식이 아주 안 좋습니다.”
“그건 알지.”
왕일의 말에 나는 긍정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왕일이 조심스럽게 나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혹, 현재 무림공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마인 중, 천마신교의 마인이 있습니까?”
“아니? 무슨 개소리야.”
왕일의 말에 나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무림공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마인 魔人.
어린아이를 납치하여 피를 빨아 먹고 내다 버리는 흡혈마 吸血魔,
명문가의 가주나 고관대작의 여식만 노리는 미친 변태, 색마 色魔.
피에 미쳐 있지만 무공은 약하여 숨어 사는 작은 화전민들만 노리고, 마을 전부를 몰살시키는 광혈마 狂血魔 등등.
수많은 마두가 무림공적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인간 이하의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쓰레기들.
그런 쓰레기들이 천마신교의 무인이라고?
에라이.
천마신교도 급이 있다.
그런 녀석들은 쓰레기 같은 마공을 익히다가 주화입마에 빠져 본능에 패배한 머저리들.
천마신교의 마인들과는 급이 다른 쓰레기 그 자체였다.
그런 나의 강력한 부정에 왕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이 잡으시죠.”
“응?”
“천마신공을 운공하고, 대놓고 흔적을 남기면서 대마두들을 형님이 잡는 것입니다.”
“흐음…….”
왕일의 이야기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상체를 기울였다.
마도의 소주군이라 불리는 소교주가 무림공적으로 구분되는 마인을 잡는다?
묘했다.
그런 나의 반응에 왕일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진정한 마도를 따르는 무인이 아닌, 그저 미쳐 버린 마인. 그런 마인들을 진정한 마도의 소주인인 형님이 잡는 것입니다.”
“…….”
“그리고, 저는 소문을 만들고 통제할 것입니다.”
“어떻게?”
“위마참군 僞魔斬君, 거짓된 마를 베어 버리는 마의 군주. 멋지지 않습니까?”
씨익.
왕일의 제안인 연극.
처음에는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나는 무인이지, 예능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왕일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흥미가 생겼다.
게다가 천마신교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지금의 천마신교는 더 이상 예전만큼 삭막한 곳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고민을 하며 이것저것 따져 본 결과.
왕일의 제안.
한번 해볼 만한 것 같았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그에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왕일을 바라보았다.
“부탁한다.”
“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