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제91장 청룡신군 천풍 靑龍神君
“규야.”
“예, 단주.”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너도 보이지?”
“예, 아주 잘 보입니다. 단주보다 더한 괴물이 있었네요.”
사천당가의 지붕.
사천당가의 정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한 천풍과 민규는 이미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을 파악하고 모든 내공을 발휘하여 사천당가로 날아왔고, 지붕에 착지한 그들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남자.
이제 약관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독패 毒覇라 불리는 절정고수, 사천당가주 당사독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몰아붙이는 것도 놀랍거늘, 여유로워 보이는 청년의 모습에 경악한 천풍.
그런 천풍의 귀로 민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주.”
“그래.”
“저 정도면, 단주랑 맞먹겠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민규의 장난기 어린 말에 천풍은 자기도 모르게 동감했다.
천풍.
그는 삼 년 전.
마흔의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중원 무림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인 창천검황보다 더 뛰어난 무재를 선보이며 육천신군 중 한 명으로 불리게 된 천풍.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나이대 밑으로는 적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웬걸.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뽐내 보이는 사내가 등장했다.
자신의 절반도 살지 않은 것 같은 약관의 사내가 말이다!
마흔에 초절정에 올랐던 자신과 달리 스물에 초절정에 오른 듯한 무협공자, 위극신의 모습은 천풍에게 있어서 충격과 다름이 없었다.
“단주……?”
자신보다 더 뛰어난 천재.
도저히 올려다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천재의 등장에 천풍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민규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씨!”
뛰어난 무공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간지럼에 너무나도 약한 모습을 보여 주는 천풍.
그가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신경질을 내며 민규를 바라보았다.
“헤헤.”
그에 민규는 해맑게 웃어 보았다.
최대한 순수하게 말이다.
그런 민규의 모습에 천풍은 주먹을 쥐었다가 이내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가자.”
“단주.”
“왜?”
천풍의 말에 황급히 그를 막아선 민규.
그런 민규의 모습에 천풍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림맹의 행사가 아닙니다. 함부로 나서면 귀찮아집니다.”
“야, 저 붉은색 검을 들고 있는 사내의 품에 안긴 청년을 봐.”
“…….”
“심각하지?”
미라와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당첨.
그런 당첨을 가리키며 천풍이 묻자 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천풍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림맹 행사고 나발이고, 사람부터 구해야지.”
“…….”
“너는 정신 교육이 다시 필요하겠다.”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됩니까?”
천풍의 말에 민규가 얼굴을 와락 찌푸리며 물었다.
그에 천풍은.
타앗!
무시했다.
“아씨!”
자신이 무시당한 것을 깨달은 민규는 애꿎은 지붕의 기와를 발로 찼다.
그런 다음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천풍의 뒤를 따랐다.
* * *
‘심각하네.’
뇌선에 의해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는 당사독.
그런 당사독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사천당가.
무림맹의 기둥이며, 정파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오대세가 중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뛰어난 암기술과 독으로 무림 제일이라 불리는 가문이다.
헌데, 그런 가문의 수장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게다가 성격마저 못났다.
‘사천당가는 망하겠군.’
망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천당가만큼이나 역사가 깊은 가문은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무너지니 말이다.
가주 당사독의 한심함을 확실하게 깨달은 나는 다시 섭선을 강하게 쥐었다.
이제 끝내야겠다.
콰앙!
그에 나는 천마신공의 기운을 호접신공의 기운으로 변화시켜 끌어 올렸고, 이윽고 투명한 바람이 뇌선을 감쌌으며,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당사독이 뒤로 날아갔다.
콰콰쾅!
“크어억!”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히며 피를 토하는 당사독.
“아…….”
그런 가주의 모습에 당가의 무인들은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우두머리인 당사독이 패배했다.
무인들의 입장에서는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 검을 뽑아라!”
당사독의 패배에 당황한 것도 잠시.
한 장로가 정신을 차리고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채채챙!
그에 모든 무인들이 검을 뽑아 들었고,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양반들이 바빠 죽겠구만.
“당 공자의 치료가 우선이오! 모두 물러나시오!”
“…….”
윤문의 품에 안긴 당첨.
금방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환자, 당첨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천당가의 무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물러난다면 사천당가의 패배다! 모두 여기서 죽는다! 자리를 지켜라!”
다급한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것은 꽉 막힌 노인네의 외침이었다.
멍청하고, 말도 안 되는 외침.
그런 외침에도 불구하고 모든 무인들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주, 미친놈들이 따로 없었다.
병X 같은 무인들의 모습에 나는 이를 갈았다.
그러고는 섭선을 강하게 쥐었다.
지금까지는 혼혈을 짚어 제압을 했지만 이제는 조금 과한 모습을 보여야겠다.
그래야 안 까불지.
너무 착하게 굴었나 보다.
사지 중 한 곳을 못 쓰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내공을 끌어 올렸다.
천마신공의 모든 힘을 끌어내지는 못하지만 호접신공으로도 충분했다.
초절정의 고수가 없는 사천당가 따위는 말이다.
“실례합니다.”
그렇게 나와 당가 무인들의 대치 사이로.
느닷없이 지붕에서 한 사내가 나와 당가의 중심으로 내려왔다.
“청룡신군!”
푸른색의 무복을 입은 미남자.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의 등장에 당가의 장로들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청룡신군?
어? 어디서 많이 들은 이름인데.
청룡신군이라는 익숙한 별호.
그 별호에 나는 멈칫한 것도 잠시, 이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사내, 아니 나의 외숙부 천풍을 바라보았다.
‘닮았네.’
닮았다.
어머니의 매력 중 가장 최고인 눈웃음.
그 눈웃음이 너무나도 닮은 사내의 모습에 나는 내심 반가움이 들었다.
전생에서는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저자가 나의 핏줄이고, 나의 외숙부라는 것을 말이다.
“반갑소.”
그런 나의 시선을 느꼈을까?
천풍이 나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등지고 섰다.
“안녕하시오! 나는 천풍이라 하오!”
“무림맹에서는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소!”
천풍의 자기소개에 아까부터 선두에서 소리를 지르던 중년인이 앞으로 나와 천풍에게 말했다.
그에 천풍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당노 선배이시군요.”
사천당가의 이장로인 당노.
그런 당노를 알아본 천풍이 예를 취했다.
그에 당노 또한 예를 취했다.
천풍.
그는 초절정의 고수로서 무림맹주의 아들이며, 육천신군 중 한 명이다.
오대세가의 장로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
그런 존재의 등장에 사천당가의 무인들의 사기가 다시 꺾이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무림맹의 의지가 아니오.”
“허면, 무엇이오?”
천풍의 말에 당노가 경계 어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냥, 협을 행하는 무림 후배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자의로 움직인 것이오.”
“청룡신군!”
“압니다, 사천당가의 원한은 아주 무섭다는 것을.”
당노의 외침에 천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윤문을 바라보았다.
“내 수하에게 당 공자를 넘기시오. 수하가 의방으로 데리고 갈 것이오.”
윤문을 향해 천풍이 예를 지키며 말했다.
그에 윤문은 바로 넘기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자를 믿어도 될까 하는 표정이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풍.
그는 나의 외숙부인 것을 떠나서 의협심이 아주 강한 사내다.
전생에서 나와 잘 맞아 제법 친하게 지냈고 말이다.
물론, 서로가 조카, 숙부 사이인 것을 모른 채 말이다.
아무튼, 그런 나의 끄덕임에 윤문은 민규라는 사내에게 당첨을 넘겼고, 나는 민규라는 사내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남궁분가로 가 주십시오.”
아마, 모든 의원들이 그곳에 모여 있을 것이다.
그런 나의 조언에 민규라는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 자리를 박차고 지붕 위로 올라섰다.
“모두! 나에게 집중하십시오!”
그런 민규를 향해 무인들이 고개를 돌리자 천풍이 기세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우웅!
천풍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매서운 기세.
그 기세에 무인들은 물론, 장로들까지 긴장 어린 표정을 지으며 천풍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그만두자 하면 역시, 무리겠지요?”
“당연!”
천풍의 물음에 당노가 대답했다.
그에 어깨를 으쓱인 천풍이 뒷걸음질 치며 나의 옆으로 다가왔다.
“무협공자.”
“예.”
“그리고, 잘생긴 공자.”
“네.”
천풍의 부름에 나와 윤문이 대답했다.
그에 천풍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 제대로 사고 치려 하는데, 같이 치겠소?”
“어른이 아이들의 장난에 어울려야 되겠습니까?”
장난기가 다분한 천풍의 말.
그 말에 장난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윤문이 대답했다.
그런 윤문의 대답에 씨익 미소를 지은 천풍.
그가 입을 열었다.
“나도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소.”
“솔직히, 동심까지는 아니고, 청춘이라 하지요.”
천풍의 말에 윤문이 다시 받아쳤다.
그에 천풍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름이?”
“윤문입니다.”
“무협공자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후배구려.”
“저도 선배님이 마음에 듭니다.”
“술 잘하오?”
“술만 보면 미쳐 날뜁니다.”
천풍의 물음에 윤문이 조금은 천박한 말투를 사용했다.
그에 천풍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좋군, 나 또한 장난 아닌데.”
“그래 보입니다.”
“무협공자.”
조카인 나보다 더 잘 맞는 둘의 모습에 나는 당황한 것도 잠시.
천풍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술값은 공자가 내는 거지요?”
“…….”
“선배님, 극신은 양심이 있는 아이입니다. 자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당연히 살 것입니다. 그것도 최고급으로 말입니다.”
“호오! 그거 기대되는군요.”
이 양반들이.
나를 호구 잡네.
둘이 편먹고 나를 물주 잡는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청룡신군 대협! 정녕 사천당가와 척을 질 생각이오!”
“이미 적입니다만?”
당노의 노성에 천풍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에 당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맹주께서 가만히 계실 것 같소! 본가는 무림맹에 정식으로 항의할 것이외다!”
“하십시오.”
“무림맹주님의 입장이 흔들릴 것이오!”
“…….”
흐음, 아무래도 역린을 건드렸나 보다.
당노의 협박 같은 말투에 실실 웃고 있던 천풍의 얼굴이 굳어졌다.
순식간에 달라진 천풍의 모습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 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네.’
궁금했다.
전생에서 무림맹주는 왜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았는지. 괴물 같은 천마신교에 어머니를 왜 시집보냈는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아무튼, 싸늘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천풍이 입을 열었다.
“이봐, 노인네.”
“뭐라!”
천풍의 싸늘한 음성.
그 음성 속에 담긴 무례한 발언에 당노가 소리쳤다.
그에 천풍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정파를 사랑한다, 자신의 가족까지 희생하며 평화를 지키려 애를 쓰지, 하지만 말이야. 나는 솔직히 정파가 싫어.”
“!!”
“하나뿐인 나의 누이를 괴상한 곳으로 보낸 개XX들. 그런 아버지의 희생도 몰라주는 파렴치한 새X들.”
천풍의 입에서 나온 걸쭉한 욕설.
그 욕설에 당노가 두 눈을 부릅떴고.
‘멋지다~’
나는 감탄했다.
입에서 나온 욕이 쫙쫙 달라붙는 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가족을 희생했다고?
흐음…… 역시 무림의 평화 때문에 어머니를 천마신교에 넘긴 것인가?
다시, 제대로 알아봐야겠다.
천풍의 이야기에 나는 대축 속사정이 파악되었다.
뻔한, 이야기일 것 같았다.
왕일에게 물어봐야지.
아무튼,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것도 잠시.
나는 천풍에게서 뿜어져 나온 폭발적인 기세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당사독이 뿜어내던 기세와는 급이 다른 매서운 기세.
그 기세를 느끼니 시원하고 좋았다.
하지만 저 노인네는 나랑 다른가 보다.
눈에 띄게 얼굴을 굳힌 당노.
그 노인네의 모습에 천풍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드루와.”
이것 참.
분명 나와 사천당가의 싸움인데……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이다.
쳇.
질 수 없지.
쿠웅!
천풍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나는 호접신공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천풍의 옆에 섰다.
“우리가 갈까?”
그런 나의 도발에 가만히 있던 윤문.
그가 붉은색 검을 어깨에 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와 동시에 윤문의 몸에서도 매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갑시다. 빨리 술 먹고 싶습니다.”
초절정에 다다른 세 명의 기운.
그 폭발적인 기운에 당가의 무인들은 절망했고.
씨익.
우리 셋은 서로 웃었다.
이미 우리 셋의 의식은 은하객잔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