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제88장 움직이는 사천당가 行動
‘다행이다.’
설이…… 아니, 왕혜정을 품에 안은 채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왕일의 모습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전생과 달리 이번 생의 왕일의 끝은 비참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동생과 행복한 삶을 보낼 것이다.
잃어버린 동생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말이다.
그 사실이 나는 너무나도 좋았다.
“어떻게 된 거야?”
그런 나의 옆.
어느새 다가온 윤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기는? 설이가 왕일의 동생이었던 거지.”
“정말입니까?”
나의 대답에 남궁정이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
“어찌 그런 우연이…….”
나의 확답에 윤문은 탄성을 내뱉었고, 남궁정은 믿을 수 없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다, 운명인 거지.”
“그 운명에 네가 한몫한 거고?”
“그렇지.”
“잘났네?”
“잘났지.”
“크큭.”
윤문과 시답잖은 대화를 마친 나는 계속해서 울고 있는 왕일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녀석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여 주었다.
“우선, 진정하거라. 객잔의 모든 손님이 너를 바라보고 있지 않느냐?”
“아…….”
나의 말에 왕일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객잔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달은 왕일이 혜정이를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씩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늘! 무협공자 덕분에 잃어버린 동생을 찾았습니다! 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술 한 병씩 돌리겠습니다!”
“오오!”
생각지 못한 왕일의 말.
사람들은 갑자기 찾아온 행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되었다.”
“점소이 일급이 얼마나 된다고!”
“동생 옷이나 사 주거라!”
일개 점소이에 불과한 왕일.
그런 왕일을 위해 사람들은 공짜 술 받기를 거부하고는 오히려 동생에게 그 돈을 쓰라며 조언까지 해 주었다.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 미소를 지은 왕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노!”
“예.”
그가 주방을 보며 소리치자 숙수였던 노인, 수노가 주방에서 나왔다.
“여기 모두에게 술 한 병씩 돌려 주세요!”
“예, 사장님!”
“!!”
수노의 대답.
그 대답에 사람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점소이인 줄 알았던 어린 소년.
그가 사실은 은하객잔의 사장이었던 것이다.
그에 사람들은 놀란 것도 잠시.
“와아아!”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공짜 술에 환호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후후, 좋으냐?”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왕일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방금까지 울어 두 눈이 퉁퉁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왕일의 모습.
그 웃긴 모습에 내가 묻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혜정이를 옆에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
“공자님의 정체가 무엇이든. 저는 평생을 공자님의 편에 서겠습니다.”
“일아.”
“예, 공자님.”
왕일의 각오 어린 말.
그 말에 나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내 동생 하지 않겠느냐?”
“……?”
나의 물음.
그 물음에 왕일이 고개를 들어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의, 의제 義弟 하지 않겠느냐?”
“!!”
“나도 네가 점소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냥 내 동생 하지 않겠느냐?”
“…….”
나의 말이 뜻밖이었을까?
왕일이 계속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윤문을 바라보았다.
“내 동생 어때?”
“이야, 은하객잔의 주인이 동생이라니. 겁나 부럽네. 일아, 내 동생도 해라!”
윤문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가만히 있던 남궁정이 입을 열었다.
“저에게도 동생이 생기는군요. 왕일, 뭐 하나? 어서 인사 안 올리고.”
“아아…….”
차가운 표정과 달리 따뜻함이 느껴지는 남궁정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왕일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들!”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그날.
나는 또다시 하오문주의 제자, 왕일을 동생으로 거두었다.
* * *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깊은 밤.
혜정이를 재우고 나온 왕일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소리치는 수노의 모습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수노.”
“예, 도련님.”
왕일의 부름에 고개를 더욱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하는 수노.
그런 수노를 바라보며 왕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천마신교에 관한 정보를 모두 모으세요.”
“……?”
“사소한 것 하나 빠짐없이 모두.”
“하지만…….”
왕일의 명령에 수노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천마신교.
그들은 무서운 집단이다.
하나의 단일 세력으로 천마를 신으로 모시는 광신도들.
그런 자들을 건드리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절대, 그들을 자극하지 말고 정보를 모으세요. 오늘부터 나는 천마신교를 우군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
생각지 못한 왕일의 말에 수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기를 잠시, 왕일의 말뜻을 이해한 수노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왕일을 바라보았다.
“안 됩니다!”
절절한 수노의 음성.
그 음성에 왕일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수노.”
“…….”
왕일의 진지한 어조에 수노는 입을 다물었다.
그에 왕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노, 부탁입니다. 나의 뜻을 따라 주세요.”
“…….”
“부탁할게요.”
“하아…….”
왕일이 갓난아기 때부터 돌봐 온 수노.
그는 자신을 향해 진심으로 부탁하는 왕일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말씀 따르겠습니다.”
“고마워요, 수노!”
와락!
수노의 말과 동시에 왕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노의 품에 안겼다.
그런 왕일의 행동에 수노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잠시 후.
수노의 품에서 벗어난 왕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기총회. 내일이었나요.”
“예.”
왕일의 물음에 수노가 대답했다.
그에 왕일이 고개를 돌려 창가 너머로 보이는 은은한 달을 올려다보았다.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
왕일의 말.
그 말에 수노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하오문의 후계자로서 한 번도 정기총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왕일.
문주와 장로들의 설득과 협박에도 절대 참여하지 않았던 그가 스스로 정기총회에 참여한다?
그 뜻은 하나다.
그가 드디어 마음을 정했다는 뜻!
“나는…… 하오문주가 되어야겠습니다.”
“명을 받듭니다!”
잔잔한 왕일의 말.
그 말에 수노가 고개를 깊게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수노가 물러가고.
홀로 남게 된 왕일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형님…….”
자신의 의형이 된 무협공자, 아니 소교주 위극신.
그를 떠올리며 왕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형님의 대업을 돕겠습니다.”
미래의 하오문주이자, 무림 영웅 중 한 명이라 불릴 왕일.
그가 처음으로 마음을 정한 날이었다.
* * *
“모두 모였느냐?”
사천당가.
그곳의 가주전에 약 십여 명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예.”
당가의 주인이자 독패 毒覇라 불리는 당사독.
그의 물음에 총관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자리에 앉아 있던 당사독이 일어났다.
“우선, 가주인 나의 부탁에 따라 이곳에 모두 모여 주어 고맙소.”
중원 각지에 흩어져 있던 사천당가의 최고수들.
그리고 장로들과, 무력대의 대주들.
그 모두가 모인 가주전에서 당사독이 입을 열자 모두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에 미소를 지은 당사독.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알고 있을 거라 믿소.”
“그 망할 무협공자라는 놈! 어서 잡아 죽이시지요!”
당사독의 말에 그의 오른팔이자 독영대의 대주인 당악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호응했고 당사독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자세였다.
그에 당사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본가는 무협공자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오.”
“가주.”
당사독의 선언에 조용히 손을 든 한 노인.
당사독의 숙부이자 사천당가의 규율을 책임지고 있는 집법원의 원주인 당율의 말에 당사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이 행하는 행동에 사사건건 간섭을 해 오던 당율.
그가 또 간섭을 하기 위해 손을 들자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런 당사독의 마음도 모른 채 당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사람들의 마음은 무협공자에게 기울어져 있소, 우리가 무협공자를 잡더라도 사람들의 원망을 감당해야 하오. 그것을 어찌 감당하겠소? 가뜩이나 본가는 사파의 가문이니 뭐라니 욕을 먹는 입장이오. 이번 사건은 본가의 명예를 더욱 실추시키는 일. 그를 용서하고 포용함으로써 명문정파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오.”
“…….”
당율의 지극히 옳은 말.
그 말에 사람들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당율의 말이 옳았다.
약관의 나이에 협객으로 유명해져 버린 무협공자.
그런 청년 하나 잡자고 사천당가 모두가 나서는 것은 보기 흉한 일이다.
명예 회복을 위해 무협공자를 잡아들인다면 그것은 회복이 아닌,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을 애써 부인해 오던 장로들과 고수들은 침음을 흘렸고,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인지한 당사독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당율을 바라보았다.
“집법원주는, 가훈을 잊었소?”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겠소.”
당사독의 물음에 당율이 짧게 대답했다.
그에 당사독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당가의 가훈을 따르고 중심을 지켜야 할 집법원주가 그런 말을 하다니……. 혹 외부 세력과의 만남이 있었소?”
“당가주!”
선을 넘는 당사독의 말.
집법원주이자 사천당가의 어른인 당율을 간자로 취급하는 당사독의 말에 당율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그에 당사독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찌 분노하시오? 정말 간자인 것처럼…….”
“네 이놈!”
당사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당율이 분노하며 큰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는 무서운 눈빛으로 당사독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앞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네놈을 가주로 앉힌 내 잘못이다! 형님의 말씀대로 능력이 있던 사율을 가주로 앉혔어야…….”
스윽.
분노한 당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의 목에 두 개의 검이 겨누어졌다.
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에 입을 다문 당율.
당사독은 그런 당율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가주 모독, 그 벌이 얼마나 무서운지 집법원주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요?”
“…….”
당사독의 말에 당율이 다시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의 목에 겨누어진 검 때문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무서운 눈빛으로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는 가주의 수신호위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친형이자 전대고수인 당독의 수하들이었던 자들.
그들이 이제는 당사독의 검이 되어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에 입을 다문 당율을 보며 다시 당사독이 입을 열었다.
“끌고 가게.”
“예.”
당사독의 낮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집법원의 부원주이자 당사독의 사촌인 당마가 나서서 당율의 팔을 잡았다.
“네……놈…….”
자신의 제자이자 조카인 당마.
그를 보며 당율은 무서운 표정을 지었지만 당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당율을 끌고 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귀찮은 당율을 제거한 당사독.
그가 다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회의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겠소.”
“…….”
당사독의 말.
그 말에 사천당가의 장로들과 고수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