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제87장 가족상봉 家族相逢
“공자님……?”
“아…….”
나를 부르는 왕일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두 눈을 크게 뜨며 의문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왕일.
그런 녀석이 건넨 수건을 받아 든 나는 설이의 옷과 머리칼을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왕일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자.”
“……? 저랑요?”
나의 말이 뜻밖이었을까?
왕일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의문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윤문과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미안하지만 잠깐 자리 좀 비울게.”
“그래.”
“네.”
진지한 나의 어조.
그 어조에 윤문과 남궁정은 아무런 질문도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어 준 다음 설이를 윤문에게 건네었다.
“잠깐, 이 삼촌이랑 있거라.”
“나는 삼촌이 아니라 오라버니야!”
“네.”
윤문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나는 설이의 대답에 녀석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왕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따라오거라.”
“아…… 네.”
* * *
‘뭘까?’
무협공자.
그는 너무나도 잘생긴 사내였다.
비록 짧은 인생이었지만 온갖 귀공자들을 봐 왔던 왕일로서도 처음 보는 그런 미남자 말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이상하게 호감이 가던 사내였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분명 처음 보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으면서 이상하게 신경 쓰이는 것 말이다.
게다가 이 공자는 다른 집안의 공자들과는 달리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해서 자신 또한 무협공자에게 친절하게 대했거늘, 왜 자신을 이렇게 따로 부르는 것일까?
뭔가를 잘못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챙겨 주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나한테 따로 부탁할 것이 있나?
그렇다면 이렇게 멀리까지 나갈 필요는 없을 텐데?
따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제법 멀리까지 나가는 위극신의 뒷모습을 보며 왕일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시 후.
아무도 없는 뒷산에 도착한 위극신이 드디어 걸음을 멈추었다.
그에 왕일 또한 걸음을 멈추었다.
우웅!
그 순간 주변에서 기의 파동이 느껴지더니 곧 공기가 달라졌다.
하오문주의 제자로서 무공을 익히고 있던 왕일은 그 변화를 알아챘고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기막 氣膜 이다.’
이것은 분명 기막이었다.
절정의 고수부터 사용이 가능하며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는 기막.
그것을 느낀 왕일은 경계 어린 표정을 지으며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언제든지 품속에 있는 비도를 꺼낼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왕일아.”
“네.”
위극신의 입에서 나온 따뜻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왕일은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풀며 대답했다.
이상하게 저 공자의 앞에서는 약해졌다.
왜지?
하오문주의 제자로서 수많은 수련을 겪어 왔던 왕일.
그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천마신교의 소교주다.”
그리고 경악했다.
“정말이다.”
“…….”
믿기지가 않았다.
무협공자 武俠公子.
사천당가의 위세에도 굴하지 않고 어린아이를 구한 영웅.
그런 협객이 마인들의 총 본거지인 천마신교의 소교주라고?
거짓말.
왕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아니, 어쩌면 가능성이 있다.
악마의 아들.
소악마이기에 저렇게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궁세가의 소가주도 씹어 먹을 정도로 말이다.
도리도리.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왕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 것이다.
아니, 아니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앞에 있는 무협공자가 정말 그 천마신교의 소교주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일 테니 말이다.
“왕일아.”
“…….”
또다시 들려오는 위극신의 따뜻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이번에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왕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자세를 낮추었다.
어떤 공격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왕일의 행동과는 달리 마음속은…….
두려웠고 공포스러웠다.
정말 이렇게 죽는 것인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행동과 달리 너무나도 두려운 왕일.
그가 공포로 인해 떨리는 두 눈으로 위극신을 올려다보았다.
* * *
‘씁쓸하군.’
공포 어린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왕일을 보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늘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의제였다.
헌데 지금은 마치 두려운 괴물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다.
너무나도 다른 눈빛에 나는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생과 달리 지금 나는 천마신교의 소교주이니 말이다.
이 씁쓸한 감정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왕일에게 소교주라고 밝힌 이유는 간단했다.
갑자기 나는 너의 동생을 알고 있다 하면 수상하지 않은가?
타당한 이유를 들어야 했고, 또 그 이유로 왕일을 납득시켜야 했다.
그렇기에 나는 천마신교의 소교주라는 것을 밝혔고, 녀석을 납득시키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천마신교의 소교주로서 무림에 나오기 전에 주요 인물들을 파악했다.”
“…….”
“그중에, 하오문주의 제자이자 차기 문주의 가능성이 높은 왕일, 너도 있었다.”
“아…….”
나의 말에 왕일이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야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이해가 되었나 보다.
아무튼,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거기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동생을 찾고 있다지?”
“…….”
나의 물음에 왕일이 다시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다.
품속에서 작은 비도 한 개를 꺼내 들며 말이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거라. 나는 너를 도우려는 것이다.”
“그것을 제가 어찌 믿습니까.”
나의 말에 왕일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우웅!
챙그랑!
무림으로 나와 처음으로 천마신공의 기운을 일으켜 왕일의 손에 들린 비도를 저 멀리 날려 버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당장이라도 나는 너를 죽일 수 있다. 헌데 죽이지 않고 있지 않느냐?”
“아…….”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마인들은 사악하지가 않다. 마인도 사람이다.”
“…….”
나의 말에 왕일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 당황스러울 만도 할 것이다.
사파든, 정파든, 그리고 일반 백성이든. 모두가 어린 시절부터 마인은 악마라고 배워 왔다.
무림에서 마두라 불리며 활동했던 마인들은 본능에 잡아먹힌 마인들로 천마신교에서도 포기한 마인들이다.
천마신교와는 관계도 없었고, 제대로 마공을 수련한다면 본능에 충실하지만 통제하지 못하여 본능에 잡아먹히지는 않는다.
천마신교의 마인들 또한 그런 이들을 혐오한다.
본능을 통제도 하지 못하는 쓰레기들이라며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게다가 이십오 년 전에는 정마대전까지 있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사람들은 마인 모두가 악마라고 생각하고, 또 그것이 당연한 지식인 듯 자식들 또 그 자식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 보니 마인들은 곧 악마라는 생각이 당연했고, 소교주인 내가 그것을 부정하자 왕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왕일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왕일아.”
“…….”
“나는 네 동생을 찾아 주려 한다.”
“!!”
나의 부름에 계속 답이 없던 왕일.
그런 녀석이 이어진 나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놀란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파악하던 인물 중에서 가장 어렸던 너에게 흥미가 생겼었다.”
“…….”
“그리고, 솔직히 하오문주의 제자인 너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개방의 거지들은 더러워서 조금 꺼려졌으니 말이다.”
“…….”
나의 말에 왕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가 아닌 이상 사파, 그리고 마도의 마인들은 주로 하오문의 정보를 이용했다.
그것을 왕일도 알고 있고 말이다.
“아무튼, 그에 나는 너를 자세히 조사했고, 네 동생의 뒷목에 북두칠성의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네 동생을 찾고 너에게 은혜를 입힐 생각이었지.”
“…….”
“그렇게 생각을 하고 이제 막 움직일 생각이었다. 헌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쓰레기를 처리하고 구했던 설이 말이다.”
“…….”
“그런 설이의 뒷목에 북두칠성의 점이 있었다.”
“!!”
나의 말에 계속해서 경계 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 왕일.
그가 마지막 나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 정말입니까……?”
음성에서부터 느껴지는 격한 떨림.
그 감정에 나는 왕일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끄덕.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흔들림 없는 두 눈빛으로 말이다.
“아아…….”
스르르.
그런 나의 확답에 왕일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아…… 저…… 정말……?”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지 계속해서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왕일.
나는 그런 왕일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녀석에게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가자.”
“……?”
갑작스럽게 손을 내민 나의 행동에 의문이 들었을까?
초점이 돌아온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확인하러 가야지? 어서 잡거라.”
그런 녀석을 보며 미소를 지은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에.
덥석.
왕일이 나의 손을 잡았다.
* * *
‘설마…… 에이, 설마.’
위극신의 손을 잡고 일어선 왕일.
그는 위극신의 뒤를 따르며 객잔으로 돌아가는 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정말, 위극신의 말이 맞을까?
그는 천마신교의 소교주다.
악마들의 소주인!
그런 그자의 말을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아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제발…….’
믿고 싶었다.
제발, 설이가 자신의 동생이었으면 좋겠다.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왔던 아이.
얼굴도 보지 못했던 동생이다.
하오문주의 제자로서 수련을 하는 동안 의문의 무인에게 몰살을 당한 자신의 가족.
그런 가족들의 시신 중에서 자신의 동생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뜻은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
부모님과 연통을 주고받았던 왕일은 동생의 뒷목에 북두칠성의 점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그것을 중심으로 동생을 찾기 시작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말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을 해도 찾지 못했던 동생.
그런 동생을 찾았다.
소교주가 아니라 정말 악마가 찾았다 하더라도 왕일은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깊은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위극신과 왕일은 은하객잔에 도착했다.
저벅, 저벅.
은하객잔에 당도하자마자 왕일은 위극신의 앞을 가로질렀다.
그러고는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응?”
창가의 자리에 앉아 설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윤문.
그는 심상치 않은 기세로 설이에게 다가오는 왕일의 모습에 눈가를 찌푸렸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설이가 겁을 먹고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막아설 수밖에.
그렇게 왕일을 막아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잠깐! 그냥 내버려 둬.-
자신의 귀로 들려오는 익숙한 전음에 윤문이 고개를 돌렸다.
객잔의 정문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위극신.
그런 위극신의 모습에 윤문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덥석!
“히익!”
왕일이 설이를 거칠게 잡았다.
갑작스러운 왕일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설이.
왕일은 그런 설이를 신경 쓰지 않고 뒷목을 확인하였다.
“아아.”
그리고 발견했다.
북두칠성의 점을 말이다.
그에 탄식을 내뱉은 것도 잠시, 왕일은 손을 들어 설이의 뒷목을 문질렀다.
소교주인 위극신이 장난을 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에 왕일이 설이의 뒷목을 강하게 문지르자.
“으아앙! 아파요!”
설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에 당황한 왕일.
그가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아…….”
빨개진 뒷목.
그 뒷목에 선명하게 보이는 북두칠성의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붓으로 찍어낸 가짜 점이 아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몸에 자리 잡고 있던, 진짜 점이었다.
“혜정아…… 혜정아…….”
그에 왕일은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설이를 안았다.
“으아앙……?”
갑작스러운 왕일의 행동.
그 행동에 설이는 당황해하며 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내가…… 내가…… 네 오라비다.”
“!!”
이어진 왕일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가늘게 떨려 오는 왕일의 어깨.
포근한 왕일의 품.
위극신의 품보다 더 따뜻한 품에 설이, 아니 왕혜정이 다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으아아앙!!”
그렇게, 왕일은 어린 동생을 찾을 수가 있었다.
전생과는 달리, 세뇌는 물론, 겁간을 당하기 전인 어린 동생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