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제85장 자격지심 自激之心
“멍청한 놈들.”
“…….”
사천당가 四川唐家.
가주전에 위치한 연무장에 울려 퍼지는 싸늘한 당사독의 음성에 당후는 물론 녹영대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에 혀를 다시 한번 찬 당사독이 고개를 돌렸다.
“너는 뭐 하는 놈이더냐?”
그러고는 자신의 기대주.
당가의 기대주이기도 한 소가주, 당첨을 바라보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졌다 하였느냐?”
“죄송합니다.”
당사독의 물음에 당첨이 고개를 숙였다.
그에 당사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이 상황이 짜증 났던 것이다.
저벅.
인상을 잔뜩 찌푸린 당사독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당첨의 앞에서 멈추어 섰다.
“첨아.”
“예, 가주님.”
당사독의 부름.
그 부름에 당첨이 대답했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당가의 미래라고.”
“…….”
“헌데, 그런 미래가 당가의 일원을 건드린 놈에게 패배를 하였느냐?”
“…….”
당사독의 차가운 물음.
그 물음에 당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었던 할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패배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너를 더 큰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가르침을 받고 자라 온 당첨의 입장으로서는 당사독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여기서 무슨 대답을 하든 그것은 할아버님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며, 곧 그것을 따라온 자신의 모든 세월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당첨의 의지 어린 행동에 당사독은.
짜악!
“가주님!”
그대로 당첨의 뺨을 후려쳤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당사독의 행동.
그런 당사독의 행동에 당후와 암영이 화들짝 놀라며 당사독을 불렀다.
“당첨.”
“예.”
왼쪽 입가에 흐르는 한 줄기의 피.
그 피를 느끼며 당첨이 대답했다.
“너는 사천당가의 미래다.”
“예.”
“그런 네가 패한 것은 곧 사천당가가 패한 것이다.”
“…….”
“너의 패배는 단순히 너의 패배가 아니라 가문의 패배다.”
“…….”
차가운 당사독의 말에 당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기 싫었다.
당사독의 말에 대답한다면 그 말에 긍정하는 것이 되어 버리니 말이다.
“대답하거라.”
“…….”
차가운 당사독의 말.
그 말에도 당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짜악!
그리고 또다시 찰진 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가주님…….”
반복된 당사독의 행동에 사천당가의 총관과 장로들이 나섰지만 당사독은 꿈쩍하지 않았다.
“대답.”
“…….”
똑같은 물음.
이번에도 당첨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있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하고 아버지의 기분에 맞게 대답만 잘하면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인형이 아니었으며 장차 사천당가의 가주가 될 사내이다.
그런 자신이 당장의 두려움에 신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런 당첨의 행동에 당사독이 다시 손을 들었다.
짝!
“…….”
짝! 짝! 짝!
연무장에서 연속으로 울려 퍼진 소리.
“아…….”
“…….”
그 소리에 총관은 두 눈을 감았고 장로들은 멍한 눈빛으로 가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말이 장로지 모두가 당사독의 사촌들이었고, 또 당첨의 숙부들이었다.
사천당가는 타 세가보다 더더욱 혈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죽하면 당가의 여식을 밖에 보낼 수 없다며 데릴사위라는 제도를 시행하겠는가?
그런 당가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면서, 당가의 미래이자 나아가 당가의 이름을 널리 알릴 존재.
그리고 장로들의 소중한 조카인 당첨이 무기력하게 맞고 있으니 장로들은 가슴이 메어 왔다.
짝! 짝!
그런 총관과 장로들의 마음도 모른 채 연무장에는 매서운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
입술이 다 터지고 왼쪽 볼은 바람을 넣은 공만큼 부풀어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첨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재미있구나.”
그에 당사독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너도 이 애비를 무시하는 것이냐?”
“…….”
“능력도 없는 사내가 핏줄로 가주에 앉아 우습더냐? 하찮더냐? 가소롭더냐?”
“그런 적…… 없습니다.”
당사독의 물음.
그 물음에 당첨이 드디어 대답했다.
“아니, 너는 이미 나를 무시하고 있다. 네가 사천당가의 미래라고 치켜세워 주니 눈에 뵈는 것이 없구나.”
“…….”
당첨은 대답하기를 포기했다.
이미 당사독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를 무시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 봤자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당첨은 입을 다물었다.
“하하.”
그런 당첨의 모습에 당사독이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저놈을 뒤주에 가두고, 그 뒤주를 가문의 입구 정원에 놔두거라. 그리고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주지 말거라.”
“가주님!”
“명이다.”
“…….”
총관의 놀란 목소리에 당사독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총관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당장이라도 항명하고 싶었지만 그렇다면 자신의 목은 떨어질 것이다.
끄덕.
그리고 볼품없이 얼굴이 부풀어 오른 당첨이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은 괜찮다는 듯 말이다.
그 모습에 장로들과 총관은 더욱더 가슴이 아파 왔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당첨은 사천당가 입구 정원에 놓인 뒤주에 갇히게 되었다.
* * *
“죄송합니다, 숙부님.”
남궁세가의 사천분가.
그곳으로 돌아온 남궁정이 아직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청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정아.”
“예.”
“나는 오늘의 일을 가주님에게 보고할 것이다.”
“…….”
남궁청의 말에 남궁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의 의형이라지만 남궁청의 입장에서는 까마득한 후배에게 모욕을 당했다.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던 남궁정이었기에 차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헌데, 어째서 그자를 네 의형으로 삼은 것이냐?”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차린 남궁청.
그가 몸을 돌려 남궁정을 보며 물었다.
“강했습니다.”
“…….”
“제 또래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강했습니다. 감히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하여?”
“예, 호기심이 생겨 다가갔습니다.”
“…….”
남궁정의 말에 남궁청이 깊은 생각에 빠지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푸하하!!”
남궁청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
갑작스러운 남궁청의 대소.
그 대소에 남궁정이 의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누구보다 심각해져 있던 양반이 갑자기 대소를 터뜨리니 이상했다.
그렇게 대소를 터뜨린 것도 잠시, 남궁청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젊은 나이에 막강한 신위를 보고 일부러 다가가 의형으로 삼았다는 뜻이구나!”
“아니…… 그게…….”
“잘했다! 그런 무인이라면 훗날 뛰어난 무인이 될 것이다. 그런 무인을 유명해지기 전에 미리 아군으로 만드는 것은 아주 장한 일이야.”
“아니…….”
기특하다는 듯 자신을 칭찬하는 남궁청.
그런 남궁청의 모습에 남궁정이 사실을 정정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이미 남궁청의 귀에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하하! 우리 정이! 기특하다! 어려서 치기 어린 행동을 할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 깊은 생각이 있었다니!”
“…….”
“게다가, 네 의형의 소문은 중원 전역을 강타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네 의형의 행보에 집중하고 있지. 그런 사내가 남궁세가의 귀빈이자, 소가주의 의형이니 남궁세가에게도 큰 도움이 될 터.”
“…….”
“장하구나.”
남궁정은 그냥 포기했다.
저렇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칭찬하는 숙부.
그런 숙부 앞에서 술 먹고 개가 되어서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는 말을 어찌하겠는가?
자신은 절대 못 한다.
절대로 말이다.
* * *
“어쩔 생각이야?”
다시 은하객잔으로 돌아온 나와 윤문.
우리의 전용석이 되어 버린 창가에 앉으며 윤문이 묻자 나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속 편하네.”
“그럼, 불편할 필요는 없잖아.”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나의 모습에 윤문 또한 피식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그런 윤문을 향해 나는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그에 윤문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당분간이 지나면?”
“한판 떠야지.”
“에휴.”
당당한 나의 대답에 윤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껴 줄 거지?”
재미있는 놀이에 참가하는 듯한 흥분 어린 미소.
그런 미소를 짓는 윤문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 보고.”
“아 나도 껴 주라!”
“크큭.”
미친놈도 이런 미친놈이 없었다.
사천당가와 전면전 한다는데 끼워 달라고 고집부리는 놈 말이다.
윤문의 모습에 나는 소리 내 웃었고 윤문 또한 소리 내 웃었다.
그렇게 웃기를 잠시.
우리를 향해 다가온 왕일을 발견한 윤문이 입을 열었다.
“여기 이 미친놈에게 어울리는 광도주 狂濤酒 부탁할게.”
거친 물결 속에서 희석시키는 술로 유명한 사천 특유의 명주.
광도주를 주문하는 윤문의 모습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돈 많다?”
“네가 사야지.”
“엥?”
뭔 소리야?
내가 왜?
물론 못 살 것도 없다.
천마신교는 돈이 더럽게 많은 곳이고 나는 그곳의 소교주이니 말이다.
“내가 너 도와줬는데, 한턱내는 게 도리지.”
“그게 그렇게 되나?”
“물론!”
“흐음…….”
“왕일아 빨리!”
“넵!”
내가 가만히 턱을 쓰다듬자 윤문이 호들갑을 떨며 왕일을 재촉했고 왕일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재빠르게 주방으로 달려갔다.
피식.
그래, 내가 사고 말지.
그런 둘의 모습이 웃겼던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재밌었다.
“형님.”
“응? 내가 간다니까.”
그때,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익숙한 인영.
남궁정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에 내가 놀란 음성으로 말하자 남궁정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뒤에 있던 작은 소녀를 앞으로 밀었다.
“설이가 계속 형님을 보고 싶어 해서.”
쪼르르!
와락!
남궁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설이가 쪼르르 달려와 나의 다리에 안겼다.
그런 설이의 모습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비단 같은 검은색 머리칼과 보석을 박아 놓은 듯한 맑은 두 눈빛, 새하얀 피부.
깨끗이 씻기고 좋은 옷을 입히니 인형이 따로 없었다.
너무나도 어여쁜 설이의 모습에 놀란 것도 잠시.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여자였어?”
“예……. 저도 놀랐습니다.”
놀란 나의 음성에 남궁정이 대답했다.
그에 나는 설이를 안아 들었다.
활짝!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한 미소를 짓는 설이.
그 귀여운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녀석, 진짜 예쁘다.
은설이와 이름이 닮아서가 아니라 진짜 예쁘다.
그냥 수양딸로 삼을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와락!
그렇게 고민을 하던 나의 품에 설이가 안겼다.
그에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설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설아…….”
그런 설이의 예쁜 모습 때문이었을까?
윤문이 손을 내밀었다.
마치 자신에게도 안겨 달라는 듯 말이다.
잘생긴 얼굴과 호쾌한 미소를 지으며 설이에게 손을 건넨 윤문.
그런 윤문의 모습에…….
슥.
우리의 도도한 설이는 윤문을 한번 스윽 보고는 다시 고개를 내 품에 파묻었다.
“아아…….”
그에 윤문은 절망했고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우리 설이.
어쩜 이렇게 예쁠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여기 있습니다!”
왕일이 광도주와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왔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잔이 세 개였다.
남궁정이 온 것을 확인하고는 잔 한 개를 더 준비한 것이다.
눈치 빠른 녀석.
그런 왕일의 행동에 미소를 지은 나는 다시 왕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설이가 먹을 과일이나, 달달한 것도 좀 부탁해.”
“네.”
나의 부탁에 빙긋 미소를 지은 왕일.
그가 시원하게 대답하고는 물러갔다.
그렇게 우리의 술판은 다시, 시작되었다.
“앗!”
그렇게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잔을 기울일 때.
나의 품에 안겨 있던 설아가 찻잔을 그만 치고 말았다.
“괜찮아.”
쓰러진 찻잔에서 흘러나온 찻물.
그로 인해 나와 설이의 옷은 젖었고, 나는 서둘러 설이를 달래었다.
많이 놀랐는지 두 눈을 크게 뜬 채 굳어 버린 설이.
그런 설이의 모습이 귀여웠던 나는 싱긋 웃으며 침착하게 쓰러진 찻잔을 세웠다.
그러고는 젖은 설이의 옷깃을 살짝 털어 주었다.
“머리칼에도 묻었구나.”
젖은 설이의 머리칼을 발견한 나는 살짝 웃으며 설이의 머리칼을 털어 주었다.
옆과 뒤 골고루 젖은 머리칼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찻잔을 쏟으면 이렇게 다양하게 젖는단 말인가?
참 신기했다.
아무튼, 그렇게 설이의 뒷머리칼을 털어 주는 순간.
멈칫.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
설이의 뒷목.
그 뒷목에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익숙한 점이 보였다.
북두칠성 北斗七星.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와 같은 모양의 점.
그 점의 모습에 나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여기 있습니다.”
설이가 찻잔을 쏟은 것을 눈치채고 닦을 것을 들고 온 왕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아…….’
전생에서 너를 그렇게나 힘들고 괴롭게 했던 일.
그 일이 이제 잘 풀릴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