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제84장 소문 所聞
“그만!”
“아…….”
“쩝.”
나와 윤문이 녹영대의 무인들을 제압하려던 그 순간!
광장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나와 윤문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제 막 재미를 보려 했는데 불청객이 끼어들며 흐름을 깨트려 버렸기에 상당히 아쉬웠던 것이다.
그에 기분이 상한 나와 윤문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타다닥!
채챙!
순식간에 우리를 둘러싸고 검을 겨눈 십여 명의 사내들.
익숙한 푸른색의 무복을 입은 사내들의 등장에 나는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짜고짜 칼을 빼 드니 기분이 더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런 사내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돌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정아.”
“형님…… 그게…….”
나의 부름에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는 남궁정.
나는 그런 남궁정의 모습에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청색 무인들의 선두.
뒷짐을 지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처음 뵙겠소, 사천분가주 남궁청이라 하오.”
오대세가의 수좌라고 불리는 남궁세가에는 수많은 분가가 있었다.
천마신교로 따지면 지부와도 같고, 거지들의 소굴인 개방으로 치면 분타와 같은 개념이다.
아무튼, 그런 남궁세가의 사천분가주의 등장에 당후가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검을 거두지 않은 채 남궁청을 바라보았다.
“남궁세가에서 어찌 본가의 행사에 방해를 하시는 것이오?”
“하하, 방해라니. 그 무슨 섭한 말씀을.”
당후의 말에 남궁청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당후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남궁세가의 청검대가 우리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거늘, 이것이 방해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이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소?”
“남궁가가 무슨 상관이오?”
당첨의 날카로운 물음에 남궁청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반갑소.”
“…….”
남궁청의 인사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끼어든 불청객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꿈틀!
그런 나의 반응이 무례했을까?
남궁청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정이의 의형이라 들었소.”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나를 향해 묻는 남궁청.
그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었다.
그에 남궁청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저 새X.
짜증 났다.
나의 무례한 행동이 어린놈의 치기로 여겨졌는지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짓는 남궁청의 모습이 상당히 거슬렸다.
이것 참 기분…… 나쁘다.
아무튼.
그런 나에게 대충 말한 남궁청이 다시 고개를 돌려 당후를 바라보았다.
“사천당가에서는 어찌, 본가의 귀빈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것이오?”
“귀빈? 저자는 사천당가의 직계인 이공자를 상처 입힌 죄인이오!”
“죄인? 감히, 본가의 귀빈을 죄인 취급하는 것이오?”
“뭐라? 지금, 남궁세가의 위세로 본가를 압박하는 것이냐?”
“훗, 못 할 것도 없지.”
“지X하네.”
진짜 지X도 이런 지X이 없다.
당사자의 앞에서 당사자를 두고 지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상당히 고까웠던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욕설을 내뱉었다.
“!!”
“……?”
그런 나의 욕설에 두 눈을 크게 뜬 당후와 남궁청.
나는 그런 둘을 보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이보시오 남궁분가주.”
“……?”
“꺼지시오.”
“뭐…… 뭣?”
나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뜨며 분노한 남궁청.
그런 남궁청의 모습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남궁세가의 귀빈 따위 할 생각 없으니 꺼지라고, 내 일에 간섭하지 말고.”
“이보시오 공자! 우리는 본가의 소가주의 의형인 그대를 위해서…….”
“아 꺼지라고!”
우웅!!
“크으윽!”
하아…….
진짜 성질나게 하네.
순수한 호의로 나를 돕는 것이라면 나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함을 표할 것이다.
하지만. 남궁청의 도움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고압적인 자세로 마치 선심 쓰듯 말하며 도움을 주려고 한다.
남궁세가의 위세를 들먹이면서 말이다.
그래, 그래도 좋을 것이다.
일반적인 무인들이라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감사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한때, 사파의 지존이었으며 지금은 마도의 이인자이다.
그런 나의 앞에서 고작 분가주가 저따위 자세와 저따위 생각으로 날 대해?
전생은 물론 현생에서도 겪어 보지 못한 취급에 황당함을 넘어 짜증이 났다.
그런 나의 짜증은 나의 기세로 인해 분출되었고, 나를 향해 큰소리를 치려 했던 남궁청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 남궁청을 당장이라도 한 대 패 버리고 싶었지만 남궁정을 생각해 한번 참기로 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길게 말 안 하오, 꺼지시오.”
“…….”
“숙부님, 물러나시지요.”
나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것일까?
남궁정이 남궁청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잡아당겼다.
“어…… 어. 그래.”
그에 정신을 차린 남궁청이 대답을 하고는 푸른색의 무복을 입은 무인들에게 눈짓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난 무인들.
나는 그런 무인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두려움에 질린 남궁청을 넘어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분가로 가 있어라, 정리하고 내 찾아갈 테니.”
“네, 형님.”
나의 말에 남궁정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고는 여전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청과 무인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그렇게 다시 광장에는 당후와 초록 무인들 그리고 나와 윤문만이 남게 되었다.
광장의 인파들은 도망간 지 오래였으며 설이는 남궁연화가 알아서 챙겨 물러났다.
“윤문.”
“응?”
나의 부름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윤문.
나의 기세에도 변함없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냥, 다 죽일까?”
“아니, 정의의 협객, 무협공자가 사람을 죽이면 좀 그렇지 않아?”
나의 물음에 윤문이 장난스레 대답했다.
그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너 무협공자라는 별호 마음에 들어 했잖아?”
이제는 어린 시절부터 지내 온 절친한 벗처럼 말을 하는 윤문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맞았다.
무와 협을 중시하고 따른다는 무협공자.
나는 이 별호가 마음에 들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인 내 본 신분과 너무나도 상반되는 별호가 아닌가?
그에 나는 입을 열었다.
“너희 운 좋은 줄 알아라.”
씨익 미소를 지은 나의 말.
그 말에 당후와 무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탁탁!
스르륵.
그리고 모두가 쓰러졌다.
나의 섭선 휘두름 한 번에 말이다.
나 참.
위극신 성격 많이 좋아졌다.
아니 더 나빠진 건가?
모르겠다.
그냥 나는 늘 그렇듯이 내가 꼴리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말이다.
* * *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단 하룻밤.
그 하룻밤 사이에 한 편의 시가 드넓은 중원 전역을 강타했다.
爭後 平和時代 慣武俠從時消時
쟁후 평화시대 관무협종시소시
전쟁 후 찾아온 평화 시대에 익숙해져 무와 협을 따르던 시대가 사라졌을 때.
新郞世現 時虎時蝶舞 大家從惡倒
신랑세현 시호시접무 대가종악도
새로운 사내가 세상에 나타나 때로는 호랑이처럼, 때로는 나비처럼 춤을 추니, 거대한 가문은 물론 악을 따르던 존재가 쓰러지니.
旣成世代慕感湧 靑春世代興樂生
기성세대모감용 청춘 세대흥락생
기존의 사람들은 그리움의 감정이 솟아나고, 새로운 청춘 세대는 흥과 즐거움이 생기니.
靜時代新武人樂 人武俠公子讚
정시대신무인락 인무협공자찬
고요하던 시대, 새로운 무인으로 인해 즐거워지니, 사람들은 무협공자를 찬양한다.
사천의 지배자인 사천당가의 위세에도 굴하지 않고 무를 따르고 협을 중시하며 실천한 공자를 찬양하는 시.
시에 적힌 내용 그대로 기성세대는 오랜만에 찾아온 협객의 이야기에 가슴 설레 하였고, 새로운 청춘 세대는 처음 듣는 협객의 이야기에 자신이 협객이 된 듯 마냥 흥분하였다.
그렇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순식간에 중원 전역으로 울려 퍼진 한 개의 시.
그리고 무협공자 武俠公子라는 별호.
무림 세상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무협공자라는 별호를 알게 되었고, 수많은 무인들과 세력들이 사천으로 시선을 집중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젊은 협객.
무협공자의 협행이 과연 사천당가의 위세를 꺾을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맹주님.”
호북성 무한에 위치한 정파 무림의 연맹 무림맹 武林盟.
그곳의 수좌이자 정파 무림의 대표고수인 창천검황의 집무실에 한 사내가 들어섰다.
“왔는가?”
창가에 앉아 곧게 뻗은 난을 닦고 있던 백발의 노인.
무림맹주 창천검황 蒼天劍皇 천진의 반김에 무림맹 군사, 제갈명이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허허, 예는 되었으니 어서 앉게.”
그런 제갈명의 인사에 천진이 소리 내 웃으며 말한 다음 빈 의자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자신 또한 창가에서 일어나 제갈명에게 가리킨 의자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인가?”
자리에 앉은 천진이 제갈명에게 묻자 제갈명이 입을 열었다.
“사천에서 온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협공자의 이야기 말인가?”
“예.”
“들었지, 협객이라. 역시 젊음이 좋지 아니한가?”
천진의 말에 제갈명이 미소를 지었다.
젊음이 좋다고?
제갈명이 생각할 때는 아니었다.
왜냐고?
“그자는 곧 죽을 것입니다.”
그 젊은 혈기로 인해 일어난 의협심.
그로 인해 그 사내는 목숨을 잃을 테니 말이다.
“어찌 그리 생각하는가?”
제갈명의 말에 천진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에 제갈명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상대는 사천당가입니다. 살수보다 더 독한 집단으로 솔직히 무림맹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사파의 가문이 되었을 사천당가.”
“헌데?”
“그런 사천당가의 분노를 샀습니다. 사천당가주는 격노하여 무협공자를 사천당가의 공적으로 지목했고, 외부에 나가 있던 모든 무인들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아마 곧 무협공자 한 명을 잡아들이기 위해 움직이겠지요.”
“허허.”
제갈명의 말에 천진이 미소를 지었다.
“무협공자라는 자가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약관의 나이입니다. 절대 사천당가를 이길 수 없습니다.”
확신에 찬 제갈명의 결론에 천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해서, 군사는 사천당가의 행동을 내버려 둘 생각인가?”
“이미 장로회에서 이야기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겁 없는 어린 무인. 그 무인은 세상을 모르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젊은 세대들이 겁 없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
제갈명의 말에 늘 미소를 짓고 있던 천진이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눈빛으로 제갈명을 바라보았다.
“하여, 사람들이 열광하고 협을 행하는 기특한 어린 무인을 이렇게 죽이자는 뜻인가?”
“장로들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허헛!”
제갈명의 똑같은 대답에 천친이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제갈명을 바라보았다.
“물러가게.”
“맹주님, 혹여나…….”
“물러가라고 했네.”
제갈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서릿발 같은 천진의 축객령에 제갈명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진을 향해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뚜벅.
쿵.
그렇게 인사와 함께 물러간 제갈명.
곧 문이 닫혔고 넓은 맹주실에는 천진 홀로 남게 되었다.
“…….”
홀로 남게 된 천진.
그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것도 잠시.
천진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예 맹주님.”
천진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그 한마디에 아무도 없던 맹주실에 한 명의 사내가 등장했다.
맹주의 그림자라고 알려진 암영.
그의 등장에 천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협공자, 그자에게 천풍을 보내게.”
“공자님을 말입니까?”
무림맹의 무력대 중 한 곳인 청룡단의 단주이자 천진의 아들 천풍.
중년의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선 고수.
차기 십대고수라 불리는 육천신군 六天神君 중 한 명인 청룡신군 靑龍神君 천풍의 언급에 암영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에 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다 싶으면 나서서 중재를 하고 무협공자를 구하라 일러 주게.”
“…….”
“명령일세.”
“알겠습니다.”
천진의 단호한 명령에 암영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수욱.
그러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다시 홀로 남게 된 천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
창가 너머로 비쳐 보이는 밝은 태양.
그 태양을 가만히 바라보며 천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음껏 날뛰거라.”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자신의 손자.
젊은 시절 자신이 사용하던 애병, 뇌선을 들고 자신이 못 한 기특한 행동을 이어 나가는 자신의 손자를 응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