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제82장 무협공자 武俠公子 (1)
은하객잔 銀河客棧.
사천에 위치한 객잔 중 가장 큰 객잔으로 삼 층으로 이루어진 은하 객잔 앞에 멈추어 선 당첨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가기 싫었다.
가문을 더럽히는 쓰레기 한 놈 때문에 자신이 명예를 저버리고 한 사내를 죽여야 했다.
도대체 내가 왜?
“짜증 나는군.”
아버지고, 동생이고, 가문이고.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원한을 열 배로 갚는다는 가훈이 웃겼으며, 명예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가품이 무인으로서 부끄러웠다.
사천당가가 강하기에 오대세가라 사람들이 치켜세워 주지만 실제로는 마도의 가문이라고 사천당가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찝찝하다, 불안하다, 음침하다.
등, 수많은 불편한 감정이 사천당가의 뒤에 붙었다.
그것이 싫었기에 당첨은 독보다는 암기를 주로 수련을 해 왔고, 후기지수 중 최고라는 오룡에 속하게 되었다.
아직 젊은 당첨.
그는 의협심을 가슴에 품고 있는 뜨거운 청춘.
명예를 얻은 당첨은 이제 가슴에 품은 뜻을 펼칠 생각에 기대를 품었지만 개뿔.
최고 명예인 오룡 五龍 에 속하자 불편함은 배가되어 버렸다.
역대 가주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는 아버지.
암기의 황제라 불렸던 전 가주, 할아버님과 비교당하며 쓸데없는 열등감만 생겨 버린 아버지 때문에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아…….”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한심한 당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은하객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가주가 되면 꼭 가문을 바꾸자고, 그러니 지금은 참자고 자신을 다독이면서 말이다.
끼익.
“어서 오십……!”
객잔의 문을 열자마자 당첨을 반기는 점소이 왕일.
하오문주의 제자로서 수많은 인사들의 용모를 파악하고 있던 그는 당첨의 등장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습관적으로 위극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차!’
시선을 돌리자 자신의 실수를 파악한 왕일이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저놈이군.’
당첨이 위극신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굳어 버린 왕일을 지나 구석 창가로 걸음을 옮긴 당첨.
그는 술을 퍼마시고 있는 미남자의 앞에 멈추어 섰다.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내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당첨은 그가 무협공자라 생각했고 확신을 가지기 위해 입을 열었다.
“무협공자시오?”
“응? 아니오.”
사내, 위극신의 부정에 당첨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무협공자는 잘생긴 미공자라 하였다.
헌데 아니라고?
그렇다면?
위극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윤문.
당첨은 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생겼군.’
위극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윤문 또한 선이 굵은 미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당첨이 윤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무협공자시오?”
“아니오.”
당첨의 물음에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윤문.
그런 윤문의 미소가 거슬렸지만 괜한 시비는 피하고 싶었던 당첨은 고개를 돌렸다.
이제 일행 중 사내는 한 명뿐.
그가 무협공자일 것이다.
그렇기에 당첨은 품속에서 언제든 암기를 꺼낼 준비를 하며 마지막 사내를 바라보았다.
“응?”
그러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익숙한 미청년.
“남궁정……?”
바로 남궁세가의 소가주이자 자신과 같은 오룡, 창궁검룡 남궁정이었다.
생각지 못한 남궁정의 모습에 당첨이 놀란 음성으로 말하자 남궁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라, 다친다.”
“뭐?”
차가운 남궁정의 말.
그 말에 당첨이 인상을 찌푸렸다.
남궁정과 당첨.
그 둘은 동갑에다가 어린 시절부터 교류가 잦았지만 이렇게 무례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에 기분이 나빠진 당첨이 무서운 표정을 지었지만,
“가라고.”
남궁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특유의 차가운 음성으로 다시 말…… 아니, 경고했다.
그에 당첨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무협공자를 잡으러 왔는데 남궁가의 얼음을 깨야겠군.”
“독사 같은 놈이 직접 행할 용기가 없으니 혓바닥만 날름거리는군.”
“허, 이 자식이?”
“뭐? 치게?”
시리도록 차가운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살벌한 대화를 나누는 당첨과 남궁정.
그런 둘의 모습에 가만히 있던 남궁연화가 입을 열었다.
“그만하세요. 그리고 당 소협.”
“말하시오.”
남궁연화의 만류에 한숨을 내쉰 당첨.
그가 대답하자 남궁연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저분이 무협공자세요.”
“응? 나?”
남궁연화가 위극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위극신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에 남궁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생긴 외모와 사천당가의 위세에도 굴하지 않고 협을 행한 공자. 무와 협을 추구하는 귀공자라고 하여 사람들이 무협공자라는 별호를 붙여 주었어요.”
“호오?”
남궁연화의 설명에 위극신과 윤문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아직 사천성도에서만 알려진 정도지만요.”
* * *
‘무협공자라…….’
어감이 나쁘지 않았다.
무림의 근간을 이루는 무 武 와 협 俠 이 별호 안에 들어가 있으니 오히려 좋았다.
‘깔끔하군.’
깔끔하고 담백해서 나의 맘에 딱 들었다.
“왜 거짓을 말하였소?”
아무튼, 별호에 미소를 짓고 있던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내.
그런 사내를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오, 내 별호를 이제야 알게 되었소. 헌데…… 누구시오?”
남궁정과 아는 사이 같으며 이곳으로 찾아와 나를 찾는 사내다.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가지만 내가 예의상 묻자 당첨이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첨이오.”
“당첨? 뭐 어디 내기에서 당첨되었소?”
“푸훕!”
당첨이라 소개한 사내의 모습에 내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짓자 윤문과 남궁연화, 그리고 남궁정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
당첨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서 합시다. 이곳에 피해를 끼치기는 싫소.”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섭선을 챙기며 말하자 당첨이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무인으로서 주변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뭐, 그 쓰레기보다는 훨 낫네.
“문, 설이를 부탁하네.”
“알겠네.”
나의 부탁에 윤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설이를 안아 들고는 앞장서는 나의 뒤를 따랐다.
“오라버니…….”
그런 우리들의 모습에 남궁연화가 남궁정을 불렀다.
“왜?”
“안 말리세요? 의형이잖아요?”
남궁정의 대답에 남궁연화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묻자 남궁정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싫어.”
“극 공자가 다쳐도 상관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응? 내가?’
뒤에서 들려오는 남궁연화의 목소리.
이것 참, 나 무시당하고 있는 건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형님이 무조건 이겨. 당첨 저 자식, 세상 넓은 줄 알아야지.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뒤이어 들려오는 남궁정의 목소리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객잔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 * *
“하아…….”
떠돌이 시인으로서 요동에서 사천까지 흘러 들어오고 말아 버린 고계.
그는 약 오 년간,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 영감 靈感에 괴로워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구나…….”
이민족 국가 원이 망하고 한족의 왕조 명이 새로 생긴 황금세대.
시인으로서 수많은 일이 벌어지는 이 시대에 태어나 역사서에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재능이 정말 부족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어린 시절.
시에 관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다는 칭찬을 받고 자란 그였기에 지금의 무력함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하아…….”
그렇게 고계가 다시 한번 더 한숨을 내쉴 때!
“암룡 暗龍이 무협공자 武俠公子 에게 복수하러 왔다!”
“어서 가자!”
“와아!”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고계가 고개를 들었다.
“무협공자……?”
처음 들어 보는 별호이다.
무와 협이라는 글자가 별호에 들어 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별호가 아닌가?
게다가 오룡 중 일인으로서 사천당가의 소가주인 암룡이 붙는다고?
호기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보게!”
그에 고계는 급하게 달려 나가던 한 사내를 붙잡았다.
“뭐요?”
흥미로운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달려가던 사내.
그가 뜻하지 않게 행동을 저지당하자 인상을 찌푸리며 고계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다름이 아니라 무협공자가 누구인가?”
“타지에서 오셨소?”
고계의 물음에 사내가 고계의 위아래를 살피며 물었다.
“그렇네.”
“흐흠. 잘 들으시오.”
고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은전 한 전을 쥐여 주자 사내가 헛기침을 하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고는 멋들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협공자님은 사천당가의 망나니에게 괴롭힘을 받던 어린아이를 협으로써 구해 낸 아주 잘생긴 미공자요.”
“호오?”
“지금 그 공자에게 사천당가가 원한을 갚기 위해 암룡 당첨이 직접 나섰고. 그 대련을 성도 중앙에 위치한 광장에서 펼치니 어찌 사람들이 흥분하지 않겠소?”
번쩍!
‘이거다!’
사내의 설명에 고계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머릿속을 번쩍하고 스쳐 지나가는 생각.
평화로움에 찌든 시대, 무와 협이 나타나 기존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고,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아아…….”
떠오르는 영감에 고계는 서둘러 품속에서 서책과 붓을 꺼내어 떠오른 영감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같이 가세.”
“따라오시오.”
사내와 함께 중앙 광장으로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와아아!!”
수많은 인파가 몰린 중앙 광장.
그곳에 도착한 고계는 엄청난 사람들의 환호 소리에 환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무와 협을 찬양하는 수많은 사람들 소리…….
영감이 더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죄송합니다. 미안하오.”
그렇게 환희 어린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고계는 사람들의 품을 억지로 헤치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가장 앞자리에 도착한 고계.
그가 고개를 들어 서로 대치하고 있는 두 명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
여인보다도 아름다운 외모.
반악과 송옥이 울고 갈 정도로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 고계는 감탄을 하고 말았다.
큰 키에 새하얀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와 섭선을 살짝 흔드는 손짓에 어린 기품까지.
그 모든 것이 완벽한 사내의 모습에 고계가 서둘러 서책을 꺼내 들었다.
‘잘생긴 게 최고군.’
처음 알았다.
잘생긴 것 하나로 자신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앗!”
그때, 사내의 맞은편에 있던 암룡, 당첨이 움직였다.
그의 품에서 뿜어져 나온 수십 개의 암기.
그 암기에 맞은편의 사내가 섭선을 들었다.
그리고.
살랑.
세상에 바람이 불었다.
갑작스럽게 사람들에게 찾아온 부드러운 바람과 동시에 천천히 움직여지는 사내의 신형.
부드럽게 하늘을 노니는 나비처럼 아름다운 사내의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고 있는 사내.
부드러운 바람과 교감을 하듯, 그의 손짓 발짓 등, 모든 행동에 바람이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채채챙!
사내의 부드러운 춤사위에 영향을 받아 바닥으로 떨어지는 암기의 모습에 고계는 두 눈을 반짝였다.
“치잇!”
그런 사내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당첨.
그가 뒤로 물러나며 다시 암기를 빼 들었다.
사악!
착착!
바닥에 박히면서 사내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당첨의 수많은 비수들.
비수들에 의해 경로가 막혔지만 사내의 춤은 멈추지 않았다.
스윽.
타악!
부드럽게 뛰어 작은 비수의 위에 부드럽게 착지한 사내.
마치 나비가 꽃에 내려앉듯 부드러운 사내의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을 내뱉었다.
스르릉!
그에 암룡이 검을 빼 들며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우웅!
암룡의 검에서 들려오는 맑은 검명.
그 맑은 소리를 낸 검이 사내를 향해 휘둘러졌고, 그와 동시에 사내의 춤이 변했다.
쿵!
쾅!
사냥감을 낚아채는 호랑이의 발톱처럼 날카로워진 사내의 춤.
콰콰쾅!
그 사내의 춤이 당첨을 덮쳤다.
“크윽!”
거대한 호랑이 앞, 나약한 토끼가 되어 버리고 만 당첨.
그가 이를 악물며 청녹색의 가벼운 섭선을 막았지만.
탱!
“크아악!”
역부족이었다.
사내의 날카로운 섭선.
호랑이의 춤과 같은 공격에 당첨의 검은 날아가 버렸고, 사내의 섭선에 어깨를 허용하고 말았다.
“아…….”
순식간에 끝나 버린 비무.
그 비무에 사람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정파 최고의 후기지수라고 일컬어지는 오룡삼봉 五龍三鳳.
그중 암룡 暗龍 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당첨이 새로 나타난 신진고수, 무협공자 武俠公子 에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것도 채 열 합 十合 도 나누지 못하고 말이다!
스윽.
그리고.
“!!”
사천당가의 고수, 암룡을 쓰러트린 무협공자가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거다!’
패자에게 손을 내미는 승자.
마치 대련이 즐거웠다는 듯, 그리고 상대를 인정한다는 듯한 광경에 고계가 두 눈을 반짝이며 서책에 글을 써 내려갔다.
덥석.
그리고 당첨이 내밀어진 사내의 손을 잡았다.
훗날 후세에 최고의 시인이자 가창가 歌唱家 라고 일컬어지며, 후대의 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준 위인 고계.
그의 전설이 사천의 성도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