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제75장 무림출두 武林出頭
“오랜만이구나.”
“건강하셨죠?”
“네가 건강하지 않은 것 같구나.”
지마궁 地魔宮에 위치한 마의각 魔醫閣.
오랜만에 방문하는 마의각에서 나를 반겨 주는 마의를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마의의 정색이었다.
거참,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데 말이야…….
그런 마의의 정색에 괜히 머쓱해진 나는 코를 살짝 훔치고는 입을 열었다.
“저, 괜찮죠?”
“그래, 내상을 입고 팔이 비틀어진 것 말고는 괜찮구나.”
“하하! 저는 정말 단단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니 그렇게 다치는데도 지금까지 용케 살아 있지.”
“하하, 그러니까요!”
“…….”
“…….”
마의의 칭찬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것도 잠시.
나는 가만히 나를 노려보는 마의의 모습에 미소를 지웠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조심하겠습니다.”
“하아…….”
눈치를 살피며 사과하는 나의 모습에 마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본심을 보였다.
그런 마의의 모습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거참.
나 때문에 여든 넘은 노인이 한숨을 내쉬니 괜히 미안했다.
저것도 다 나를 걱정하기 때문이기에 뭐라 하기도 그랬다.
그렇게 미안해 하던 것도 잠시.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참, 제가 다친 거는 어머니에게 말…….”
벌컥!
“극신아!”
쩝, 이미 말했구나.
어머니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려는 것도 잠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료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래, 어머니는 괜찮다.
하지만 그 녀석이 알면 귀찮아진다.
매일매일 옆에서 쫑알거릴 테니까 말이다.
어머니 말고 또 다른 존재를 깨달은 나는 다시 마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천이에게는 알리지…….”
벌컥!
“형님!”
아, 이미 알렸구나.
아이구, 빠르셔라.
여든이라는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행동이 아주 재빠른 것이 앞으로 삼십 년은 거뜬하겠다.
진료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익숙한 미소년, 위천의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마의를 노려보는 것도 잠시.
나는 예의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와 위천을 번갈아 보았다.
“하하, 이곳까지 왜?”
“괜찮은 것이냐?”
“형님, 이것 보이십니까?”
그런 나의 물음에 어머니는 나의 어깨를 잡았고 위천은 손가락 한 개를 들어 보이며 흔들어 댔다.
나의 시야가 정상인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헌데…… 천아.
가운뎃손가락은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구나.
이상했다.
분명 아무 뜻도 없는 것인데 말이다.
아무튼.
어머니와 동생의 호들갑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괜찮아요, 천아 괜찮으니 그 손가락 집어넣거라.”
당장이라도 그 손가락을 부러뜨려 버리고 싶으니 말이다.
그런 나의 말에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위천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접었다.
“그이가 그런 것이지?”
“그렇죠?”
“이이가!”
나의 어색한 대답에 어머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어머니다.
나의 편!
“정말 아버지가 그런 건가요?”
“그래, 나 아파 죽겠다.”
“아버지가 너무하셨습니다!”
나의 대답에 위천이 분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그치, 천마가 너무했지.
아…… 괜히 뿌듯했다.
어머니와 동생의 걱정에 뿌듯함을 느끼던 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마의를 바라보았다.
“어르신.”
“그래.”
나의 부름에 고개를 끄덕인 마의.
나는 그런 마의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내상약 하나 천마각으로 보내 주세요.”
“응? 천마각에?”
나의 부탁이 뜻밖이었을까?
마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천마, 내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그의 검과 나의 검이 서로 닿았을 때. 나는 똑똑히 느꼈다.
나의 마기가 천마의 몸속에 침투했던 것을 말이다.
그 뜻은?
‘천마 또한, 내상을 입었다.’
아주 작은 내상이겠지만 내상은 내상!
그에 내가 씨익 미소를 짓자 마의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지존께서……?”
“네, 방심을 하셨지요.”
마의의 물음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에 마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너의 끝을 모르겠구나.”
“후후.”
네, 저는 잘났습니다.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마의.
그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에게 내상을 입힌 나의 경지.
화경의 고수에게 한 방 먹일 정도로 성장한 나의 모습을 깨닫게 해 주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였다.
“……?”
헌데, 없다.
나의 눈앞에서 나를 칭찬해 주어야 할 어머니.
천소화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뭐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상승의 무공이라도 익힌 것인가?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린 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짓고 있는 위천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내상약을 챙기고 천마각으로 가셨습니다.”
“아…….”
설마…… 나 천마한테 밀린 거야?
이 완전무결, 천상천하 유아독존 완벽남인 내가?
그 친구도, 뭣도 없는 냉혈한 외톨이한테?
“형님.”
“…….”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태에 멍한 것도 잠시.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굳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위천.
그런 녀석의 눈빛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 동생.
너는 내 편…….
“형님이 정말 괜찮으시다면, 저도 아버지에게 다녀오겠습니다.”
“…….”
아…… 갑자기 내상이 심각해진 것만 같았다.
제길, 가을이라 그런가?
괜히 외롭다.
* * *
“아주 좋으시겠습니다?”
천마궁에 위치한 천마대전.
그곳에 들어선 나는 옥좌에 누워 있는 천마를 보며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나의 불퉁한 모습이 거슬렸을까?
천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흥.’
어쩌라고.
더 이상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니다.
천마가 눈썹을 꿈틀거리든, 인상을 찌푸리든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두렵지도, 또 걱정되지도 않았다.
내가 회귀하고 십칠 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 동안 천마는 변했고. 천마신교 또한 변했다.
이 정도 툴툴거림이야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
콰앙!
“거참.”
혼자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나는 나를 향해 매섭게 날아오던 서류를 고개를 돌려 피했다.
“피해?”
“그럼, 피해야지 맞고 있습니까?”
천마의 물음에 내가 불퉁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천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진정으로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다.
흥.
그런 표정 지어도 안 무섭다.
이 정도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권…….
콰아아앙!
“…….”
좀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기운.
살기까지 담겨 있는 기운에 나는 황급히 몸을 날렸고, 이내 나의 뒤에 있던 천마대전의 기둥 한 개가 박살이 나 버렸다.
거대한 천마대전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기둥 중 한 개.
그것을 박살 낸 천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이번 건 좀 센 것 같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참고로 절대 겁먹어서 목소리가 작아진 것은 아니다.
기둥이 부서지는 굉음에 놀라 달려올 무인들을 대신해서 내가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이다.
괜히 천마가 화나서 기운을 내뿜으면 죄 없는 무인들과 사용인들만 다칠 테니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겁을 먹어서 물러난 것이 아니다.
아무튼, 조금은 수그러든 나의 행동이 효과가 있었을까?
천마가 일그러진 얼굴을 펴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왜 왔느냐?”
“아니, 왜 저에게만 그렇게 쌀쌀합니까?”
쌀쌀한 천마의 반응에 나는 억울하다는 어조로 물었다.
천마.
저 망할 아버지는 어머니와 내 동생에게는 웃어 준다.
그리고 많이 봐주고 배려도 해 준다.
헌데, 왜 나한테만 저렇게 못되게 군단 말인가?
솔직히 나 아니었으면 계속 외톨이에 어머니의 사랑도 못 받았을 양반이 말이다.
피식.
웃어?
나의 물음에 천마가 대놓고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주 가소롭다는 그 ‘피식’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고 천마는 ‘어쭈?’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연히 그런 천마의 표정에 굴하지 않고!
“저 집 나가겠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절대, 무서워서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에 올 사용인들과 무인…….
“가라.”
“응?”
나 자신에게 하는 나의 변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들려오는 천마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뭐야, 이렇게 쉽게 허락한다고?
자고로 아들이 무림에 출두한다면 부모로서 ‘아이고, 위험하단다 아이야.’라든가 ‘너는 아직 멀었다.’라든가 ‘안 된다!’ 하면서 호통을 치고 그러면서 반대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니던가?
헌데 이렇게 한 번에 허락한다고?
뭐야? 나 내놓은 자식이야?
아까부터 괜히 서럽네.
“뭐?”
너무나도 예상외의 반응에 내가 얼빠진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고만 있자 천마가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아들이 집 나간다는데 그렇게 바로 허락합니까?”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놈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참지 말고 애들 다 패고 다녀라.”
오, 이거 좀 괜찮은데?
“그래도 됩니까?”
“그래, 아비가 천마인데 뭐 상관있냐?”
“…….”
“이왕 나가는 거 천마신교의 소교주로서 정파 애들한테 천마신교의 수준 좀 보여 줘. 애들 긴장 좀 하게. 아니다, 그냥 칠왕 七王들 다 패고 오지?”
“제가 맞으면 어쩝니까?”
천마의 어이없는 발언에 내가 실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런 나의 물음이 웃겼을까?
천마가 등받이에 기댄 채 다시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음…….”
하긴, 내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사람은 아니지.
아무리 천하 십대고수 중 삼황 三皇을 제외한 나머지 칠왕 七王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나의 모습에 천마는 다시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조용히 꺼져라.”
“아들한테 꺼지라는 발언은…….”
콰앙!
거참.
저 양반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진짜, 성격에 문제 있는 양반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무림 출두는 정해졌다.
은설아.
탕만 먹고 사황성으로 갈게.
기다려라 사천아.
형아가 탕이란 탕은 다 먹으러 간다!
* * *
“들었나?”
“들었다.”
어두운 밀실.
달빛만이 들어오는 밀실에서 한 존재가 말하자 맞은편에 있던 존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옆에 있던 또 다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
사내의 물음에 가만히 입을 다문 두 명의 존재.
그 존재의 행동에 사내가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벌컥!
“푸하하! 당연히 우리도 가야지!”
뒤늦게 들어온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말했다.
그런 사내의 의견에 밀실 안에 있던 세 명의 사내.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소교주 위극신이 무림으로 나간 바로 다음 날.
장로들의 아들들이 단체 가출을 했다.
신교에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아무런 보고도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