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천마신교는 이상하다-74화 (74/275)

제74화

제74장 위사모 衛思募

“…….”

천마각에 몰려들었던 모든 장로들과 무사들을 물리고 홀로 남게 된 천마.

그가 자신의 수련장을 둘러보았다.

“…….”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대나무와 잎, 그리고 산산조각 나 있는 수련장의 바닥과 돌가루의 잔해들까지.

천마는 엉망이 된 수련장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수련장.

이렇게 처참하게 어지럽게 된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새로운 경험에 신선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잠시.

“쿨럭!”

천마가 피를 토했다.

“…….”

올라오는 각혈을 참지 못하고 그만 뱉어 버린 천마.

그가 복잡한 표정으로 바닥을 적신 자신의 피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피를 토했다.

누군가와의 대련으로 인해서 말이다.

약 이십오 년 전 일어났던 마정대전.

그때도 자신이 이렇게 피를 토한 적이 있었나?

“아니.”

피를 토하기는커녕, 작은 생채기가 난 적도 없었다.

단 일합 一合 이었지만 무림맹주였던 창천검황 蒼天劍皇, 그 노인네와 붙었을 때도 말이다.

헌데, 오늘 내상을 입고, 피를 토했다.

물론 심각한 내상은 아니었지만 천마의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내상이라 솔직히 신기했다.

그리고.

“망할 놈.”

처음으로 자신에게 내상을 입힌 놈이 아들이라는 것이 짜증 난 천마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웬걸?

욕지거리를 내뱉는 입과 달리, 천마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진정으로 기쁘다는 듯이 말이다.

* * *

띠리링!

둥!

지마궁 地魔宮에 위치한 소마각 小魔閣.

천마의 직계 혈족이 거주하는 소마각에서 아름다우면서도 웅후한 비파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마각에 위치한 정자.

그곳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두 눈을 감고 아름다운 손놀림으로 비파를 연주하고 있었으며, 그런 여인의 맞은편.

스윽.

여인보다 더 곱게 생긴 미공자가 거침없이 붓을 움직이고 있었다.

띠리링!

둥두둥!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인의 손짓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음을 느끼듯 한 개 한 개 튕기며 여운을 주던 여인의 손짓은 시간이 지날수록 빨라졌고, 그로 인해 비파 소리 또한 뒤에 누가 쫓아오듯 긴박해지면서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휘릭!

미공자의 붓놀림 또한 점점 거침없어지고, 또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청춘의 남녀 男女 는 서로의 것에 깊이 빠져들면서 손을 놀렸으며 더 이상 빨라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그 순간!

둥.

“휴…….”

여인의 손놀림이 멈추었고, 미공자가 붓을 놓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미공자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은 아름다운 여인.

그녀가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미공자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소란 소저가 더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아름다운 소리였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미공자의 칭찬에 여인, 아니 음마유가의 소가주인 유소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음마유가 陰魔柳家.

천마신교의 수많은 가문 중 가장 뛰어난 오대마가 중 한 곳이며, 오장로 혈화 血花가 가주로 있는 가문이었다.

여인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음마유가는 모두가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는 재녀 才女 로서, 어린 시절부터 학문, 음악, 춤, 어느 것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교육을 받아 온 뛰어난 여인들이다.

그리고 그런 여인들을 천마신교의 곳곳, 또는 중원에서 유명한 기루로 파견하여 천마신교에 수많은 정보를 공급하는 기관이기도 했다.

그런 음마유가의 소가주이자, 혈화의 직전제자인 유소란은 품에 있던 비파를 들어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아름다운 미공자, 천마신교의 이공자인 위천을 바라보았다.

“그림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부족한 그림이라 부끄럽습니다.”

유소란의 부탁에 위천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대답했다.

천마의 아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위천의 모습에 유소란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삭막한 천마신교와는 달리 너무나도 순수한 위천.

그의 옆에 있으면 상쾌한 바람이 부는 것만 같았으며, 또 어린 시절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자신이 순수해지는 것만 같아 유소란은 위천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잘생겼어…….’

여인인 자신보다 더 고운 위천의 외모.

그 외모가 너무나도 훌륭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외모를 지닌 여인들과 사내들을 보고 자란 유소란의 마음을 한 번에 훔쳐 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공자 위천.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강인한 성정으로 늠름한 소교주와는 달리 타고난 매력으로 여인들의 방심 放心을 흔들며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위천의 모습에 유소란의 심장은 너무나도 빨리 뛰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어찌 이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

또, 어찌 저렇게 순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위천의 순수한 미소.

유소란은 그 미소를 보며 다짐했다.

위천의 저 순수한 미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목숨 또한 바치겠다고 말이다.

“이공자님의 그림 솜씨를 제가 아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매혹적인 유소란의 목소리와, 은은한 눈빛.

그런 유소란의 매혹에도 위천은 그저 좋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림을 건네었다.

어떠한 사내라도 유소란의 미소와 목소리, 손짓에 마음이 넘어가 버리겠지만 위천은 달랐다.

그것을 잘 아는 유소란이었기에 위천의 행동에 개의치 않고, 위천이 건넨 그림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그림을 바라보았고 이내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새하얀 종이.

그 안에는 자신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비파를 연주하고 있었다.

비파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눈길, 그리고 비파를 쓰다듬는 듯한 부드러운 손길과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입꼬리까지.

아주 작은 것도 세세하고 완벽하게 표현한 아름다운 그림에 유소란은 이공자 앞인 것도 잊은 채 입을 벌리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괜찮을는지요…….”

그런 유소란의 모습에 괜히 걱정이 든 위천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위천이 질문을 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유소란.

그녀가 자신의 추태를 알아채고는 황급히 벌어졌던 입을 다물었다.

“스읍.”

“…….”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황급히 입을 다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에서는 침이 한 방울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그에 위천은 애써 모른 척하며 눈길을 돌렸다.

유소란이 머쓱해할까 봐 나름대로 배려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소란은 눈치가 빠른 여인이었다.

‘아…….’

어색하게 눈길을 돌리는 위천의 모습에 유소란은 그가 봤다는 것을 눈치챘고, 이내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좋아하는 사내 앞에서 이런 못난 모습을 보이다니.

이 무슨 창피란 말인가?

쥐구멍이 있다면 그곳에라도 숨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자책하는 것도 잠시.

유소란은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아 온 재녀답게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 아름다워요.”

“정말인가요?”

유소란의 칭찬에 위천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위천의 모습에 다시 미소를 짓고 만 유소란.

무장해제가 되어 버린 그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위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그림…… 제가 가져도 될까요? 방에다가 걸어 두고 싶어요.”

“이미 많이 가져가지 않으셨습니까?”

열흘에 한번.

소마각에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유소란이었기에 이미 위천이 그려 준 그림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올 때마다 매번 그림을 가져가려는 유소란의 행동에 위천이 의문 어린 표정으로 묻자 유소란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다, 잘 보관하고 있답니다.”

위천은 모를 것이다.

음마유가에는 가주도 모르는 숨겨진 방이 하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방에는 위천이 그린 수많은 그림이 걸려 있었고, 위천이 사용하다가 버린 붓과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인형까지.

그 모든 것이 보관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음마유가의 여인들은 물론, 타 가문의 여식들까지도 은밀히 찾아와 방을 구경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모르는 순진한 위천은 유소란의 반응에 아무래도 좋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네, 가져가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런 위천의 시원한 허락에 유소란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유소란의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도 누릴 수 없는 귀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이공자님!”

황금 같은 시간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등장했다.

“아, 마노!”

약 십 년 전부터 이공자인 위천의 거처에 머무르며 그를 보필하는 노인.

바로 마노였다.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음에도 늘 비질이나 하는 노인의 부름에 위천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극신에게 할아버지 같은 존재가 우호법, 윤무천이라면 위천에게 있어서 할아버지 같은 존재는 바로 마노였다.

어린 시절부터 늘 위천의 곁에서 놀아 주고, 위천이 좋아하는 그림과 학문을 가르쳐 주었으며, 천소화의 부탁으로 모든 예절과 교육까지 책임지고 있는 이가 바로 마노였다.

그런 마노였기에 위천은 그를 잘 따랐고, 마노 또한 그런 위천을 친 손자처럼 대하였다.

그런 위천의 반가운 음성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마노.

그가 입을 열었다.

“마의각으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마의각은 왜?”

갑작스러운 마노의 말에 위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그에 마노가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이, 마의각에 실려 가셨답니다.”

“!!”

“하하, 큰 문제…….”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위천의 모습에 서둘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안심시키려 했지만 마노는 이미 사라진 위천의 모습에 열었던 입을 다물었다.

아직 나이가 어려 이류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위천.

분명 이류의 경지임에도 불구하고 절정의 고수와도 같은 신법을 보여 주는 위천의 모습이 놀라웠다.

‘역시…… 소교주님에 관한 일이라면…….’

어릴 때부터 소교주 위극신을 잘 따랐던 위천.

그는 자신의 형에 관한 일이라면 아주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고는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 마노는 아까부터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혼자 앉아 있는 유소란을 바라보았다.

“유 소저.”

“네, 마노.”

음마유가의 소가주임에도 불구하고 마노에게 예를 갖춘 유소란.

소교주인 위극신이 아끼며, 이공자인 위천이 그를 잘 따른다.

심지어 우호법인 광마도 윤무천은 그를 괴롭히면서 남들이 그를 무시하면 대노하며 무시한 사람을 반 죽여 버렸다.

그렇기에 마노의 위치는 애매했다.

비질이나 하는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장로들과 같은 존재랄까?

묘한 존재였다.

아무튼, 그런 그녀의 대답에 마노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잔. 내려놓으십시오.”

“아…….”

마노와 위천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위천이 입을 댄 찻잔을 챙긴 유소란은 마노의 경고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스윽.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챙겨 놓았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귀신같은 노친네.

그것을 언제 봤지?

조금 더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았다.

속으로 구시렁거리던 것도 잠시.

“공자님의 물품이 음마유가로 향하고 있다는 묘한 소문이 들립니다.”

뒤이어 들려오는 마노의 목소리에 유소란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분명 자신과 위천을 사모하는 모임원들밖에 모르는 이야기인데?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

만약 자신의 취미가 걸린다면 가벼운 벌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음마유가의 소가주 자리를 반납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에 유소란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마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묘한 소문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호호, 저는 이만 가 봐야겠어요.”

마노의 대답에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유소란.

그녀가 걸음을 옮겨 정자에서 내려왔고, 마노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끄덕.

유소란의 예의 바른 인사에 마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에 유소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소마각의 문을 막 나서려던 순간!

“유 소저.”

“!!”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마노의 목소리에 유소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고?

긴장되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에 유소란이 애써 침착해하며 몸을 돌렸다.

“소교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

마노의 말에 유소란은 진정으로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천마신교의 인물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존재가 소교주이다.

마인답지 않은 성정으로 마인들의 마음은 물론, 일반 교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존재가 바로 소교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는 달리, 진정으로 화를 낼 때는 천마보다도 더 두려운 존재라고 알려진 것이 바로 현 소교주이다.

헌데 그런 소교주가 알고 있다고?

그 사실에 너무 놀란 것도 잠시.

“이공자를 좋아해 주시는 것은 좋지만, 선은 지키십시오.”

뒤이어 들려오는 마노의 말에 유소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뜻은 선만 잘 지킨다면 자신들은 안전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에 안도한 유소란이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마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공자님의 행복이 곧 우리의 행복이니…….”

“…….”

유소란은 이공자 위천에게 아주 진심이었다.

음마유가의 소가주.

아니, 위천을 사랑하는 모임의 수장 유소란의 확신 어린 대답에 마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정말 별의별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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