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제71장 이별 離別
“파사국의 정보, 부탁한다.”
“귀찮은 녀석.”
천마궁의 천마대전.
그곳의 옥좌에 앉아 있던 천마는 백리관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백리관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들어줄 거면서 툴툴대기는.”
“죽고 싶나?”
“아니, 진이와 은설이의 옆에 있어 줘야 해서 오래 살아야 해.”
능글맞은 백리관의 대답에 천마는 눈가를 찌푸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정말, 네놈이 직접 안 가도 되겠나?”
내일 파사국으로 파견될 예정인 천마신교의 사신단.
그곳에 함께 가지 않아도 되냐는 천마의 물음에 백리관이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당장은 사황성으로 돌아가서 진이에게 집중해야지.”
“잘난 오빠 났군.”
“맞아.”
“…….”
백리관의 대답에 천마는 입을 다물었다.
장난스럽게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것이 꼭, 위극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다른 놈에게서 자신의 아들이 투영되다니?
기분이 나쁜 걸 떠나서 더러웠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천마가 아무 말 없이 인상만 찌푸리고 있자 백리관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작은 옥패를 꺼내더니 이내 천마를 향해 가볍게 던졌다.
턱.
“뭐냐?”
갑작스럽게 날아온 작은 옥패.
그것을 잡아 든 천마가 묻자 백리관이 입을 열었다.
“극신이에게 전해 줘. 훗날 무림에 나오면 가장 먼저 우리 사황성을 찾아와서 이것을 보이라고.”
“…….”
백리관의 말에 천마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옥패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호랑이가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그림이 조각된 흑색의 옥패.
그 촌스러운 문양에 천마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파사국의 황제에 대한 이야기도 부탁해.”
“알았다고.”
똑같은 부탁을 연거푸 말하는 백리관의 행동에 천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런 짜증 어린 천마의 대답에 백리관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다음에 보자.”
“안 보는 걸로 하지.”
“부끄러워하기는.”
콰앙!!
천마는 정말, 많이 참았다.
* * *
“진아.”
“언니…… 미안했어요.”
천마신궁의 정문.
돌아갈 채비를 모두 마친 백리진을 보며 천소화가 아쉬운 어조로 말하자 백리진이 천소화의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야, 이렇게 일찍 가다니…… 너무 아쉽다.”
“우리 또 만나요 언니. 제가 자주 올게요.”
“괜찮겠어?”
떠나기 전날인 바로 어제.
백리진은 울면서 천소화에게 모두 고백을 했고, 또 용서를 구했다.
천마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천소화는 그런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자신의 못난 모습에도 불구하고 되레 자신을 위로해 주는 천소화의 행동에 백리진은 다시 다짐했다.
천마를 포기하겠다고 말이다.
아무튼, 이곳에 찾아오겠다는 백리진의 말에 천소화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백리진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나는 언니가 더 좋은 거 같아요.”
“너?”
“호호, 그러니 제가 올게요. 아니면 언니가 와도 되구요!”
“그래, 누가 가든. 자주 만나자.”
“네.”
천소화의 말에 백리진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천소화와 인사를 마무리한 백리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공자, 위극신을 향해 입을 열엇다.
“대공자.”
“네.”
“정말 고맙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만큼 저희도 보상을 받았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백리진의 감사 인사에 위극신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예를 표하며 대답했다.
서은설과 같은 여덟 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어른스럽고 생각이 깊은 위극신.
그런 위극신을 보며 백리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천소화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운 거예요?”
“응?”
“어떻게 키워야 이렇게 똑 부러지고 잘난 아들이 되는 거예요? 알려 주세요. 우리 은설이도 그렇게 키우게…….”
“응?”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들렸기 때문일까?
백리진의 옆에서 아쉬운 표정으로 위극신을 바라보던 서은설이 고개를 돌려 백리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서은설의 표정과 시선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백리진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네.”
그에 서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순수한 서은설.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서은설의 행동에 백리진은 물론 천소화, 위극신이 미소를 지었다.
* * *
역시, 우리 은설이는 귀여웠다.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서은설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이렇게 빨리 떠나보내는 것도 아쉬웠고, 파사국의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돌려보내는 것도 아쉬웠다.
전생에서 알지 못했던 서은설의 부모님이 누구인지 아는 이 상황에서, 자세한 정보를 구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하고 알려 주고 싶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황성주인 백리관이 결정을 내렸으니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극신.”
“그래.”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이름을 부르는 서은설.
그런 은설의 부름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고마워. 이모를 살려 줘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서은설의 말에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서은설은 두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똑 부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네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아…….
심장에 무리가 온다.
너무나도 깜찍한 서은설의 행동에 나는 심장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참았다.
그러고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푸하하!”
그때.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웃음소리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와아!”
서은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의 뒤를 바라보았다.
쪼르르!
나의 손을 뿌리치고 한걸음에 달려 나가는 서은설.
그런 서은설의 행동에 나는 잠깐 얼굴을 굳혔지만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언니!”
“은설아.”
그런 나의 눈에 보이는 서은설과 야율령.
사이좋게 손을 꼭 잡고 있는 둘의 모습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소녀 둘이 손을 꼭 잡고 웃고 있으니 너무나도 보기가 좋았던 것이다.
“푸하하! 서 소저! 안녕히 가시오!”
그런 야율령의 뒤로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구양적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여기.”
가만히 있던 사마천이 다가와 서은설에게 작은 상자를 건네었다.
“뭐예요?”
갑작스럽게 건네어진 작은 상자.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인 서은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야율령의 옆에 있던 야율민, 야룡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선물……?”
생각지도 못했을까?
서은설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아이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서은설이 정말 기쁜 표정으로 환호했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짜식들.
선물을 준비하다니, 제법이었다.
점점 마인들이 아닌, 또래의 아이처럼 순수해지고 평범해지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것도 잠시.
나는 서은설의 옆에 서서 입을 열었다.
“열어 봐.”
“응? 열어 봐도 돼요?”
나의 물음에 서은설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계속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단진이 입을 열었다.
“열어 보라고 준 것입니다.”
저 자식.
분명히 아이들과 함께 기분 좋게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헌데 말은 저렇게 차갑게 한다.
기껏 준비한 선물, 조금은 따뜻한 말투로 말해 줘도 괜찮을 텐데…….
그것을 바라기에는 아무래도 나의 욕심인 것 같았다.
아무튼 단진의 차가운 말에도 불구하고 서은설은 익숙해졌는지 특유의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작은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러자 나무로 조각된 작은 조각품이 튀어나왔다.
익숙한 일곱 명의 어린아이들이 조각된 작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가장 가운데.
서은설과 똑 닮은 아이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와 서은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함께 노는 모습이 조각된 아름다운 조각품이었다.
‘응?’
예상외로 괜찮은 선물에 나는 살짝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조각품의 생김새가 살짝 투박하고 어색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강에는 뛰어난 조각사가 많았다.
서역과 교역을 하다 보니 예술품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신강이었고, 또 그로 인해 뛰어난 예술가들이 많았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분명 뛰어난 예술가에게 부탁했을 텐데, 이렇게 투박한 조각품이라니?
이것들이 사기를 당한 것인가?
그렇게 나의 의문이 깊어지는 것도 잠시.
곧이어 들려온 구양적이 특유의 웃음과 목소리가 나의 깊은 의문을 풀어주었다.
“푸하하! 우리가 직접 만들었소이다!”
“구양곰, 너는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
“푸하하! 내가 나무를 골랐다!”
“그래, 그리고 네가 부숴서 사마 형이 찾아왔지.”
“푸하하! 그게 그거지!”
구양적의 자랑에 단진과 야룡이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
서은설의 손에 들린 우리 모두의 조각품.
그 조각품은 예술이라고는 일도 모르는 이 아이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그에 나는 물론 서은설까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리와의 추억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서은설이 놀란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자 사마천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은설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푸하하! 즐거웠소이다!”
“다음에 또 보지요.”
“…….”
모든 아이들이 서은설을 향해 인사를 건네었다.
아이들의 진심이 담긴 인사.
그 인사에 나는 살짝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 자식들…….
잘 컸다.
왜 장성한 자식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이것 참.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내가 흐뭇한 기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후에엥!!”
옆에서 들려오는 서은설의 울음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들렸다.
“흐규, 고…… 흐윽! 고마…….”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의 감동과 이별의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일까?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울음에 서은설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은설.”
“흐규.”
“네가 있어서 즐거웠어.”
“훌쩍.”
나의 말에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인 서은설.
나는 그런 서은설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모두가 너의 친구야. 네가 힘들 때, 외로울 때. 우리를 떠올리고, 우리를 찾아. 우리는 기꺼이 너의 편이 되어 줄 거니까.”
“정말?”
나의 말에 애써 울음을 참으며 서은설이 되물었다.
그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응!”
“후에엥!”
나의 확신 어린 대답과 동시에 다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 서은설.
처음 들어 보는 우렁찬 서은설의 울음소리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여인을 울리다니…….”
“대공자님…….”
“푸하하! 저질이군!”
뒤에서 들려오는 비아냥거림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녀석들을 노려보았다.
움찔.
나의 눈빛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는 녀석들.
나는 그런 녀석들을 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다 죽었어.’
소리 없는 나의 말.
그 입 모양에 아이들은 사색이 되었다.
이것들이 머리 좀 컸다고 까불고 있어.
그렇게 아이들을 정리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울고 있는 서은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은설아, 진정해.”
“극신…….”
“응.”
“편지…… 해 줄 거지?”
서은설의 나지막한 부탁.
그 부탁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나 정말, 매일매일 보낼 거야.”
“응. 우리 서로 하루에 있었던 일과를 적어서 보내 주자.”
“정말?”
“응.”
솔직히 서은설이 아니었다면 귀찮았을 것이다.
매일매일 있었던 이야기를 서로 알려 주자고? 일기를 공유하자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일기를 쓰는 것도 귀찮은데 남과 공유하다니?
그런 귀찮은 짓은 절대 사양이다.
하지만 상대는 서은설이다.
우리 은설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을 못 해 줄까.
뭐, 말은 그래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조금씩 편지의 횟수가 줄어들 것이다.
해 봐야 일주일에 한 통이겠지.
그것을 예상한 나는 흔쾌히 웃으며 대답했고, 그에 서은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편지를 나누기로 약속을 했고, 나의 예상과 달리 우리의 편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지속되었다.
자그마치 십사 년 동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