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제70장 양보 讓步 (2)
“극신아.”
아…… 부담스럽다.
놀란 표정, 그리고 떨리는 두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나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 천소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어색함을 느끼며 볼을 긁적였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접객실에서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들은 천소화.
그런 그녀가 나의 선택에 대해서 물었다.
그에 나는 여유로운 미소로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후회할 행동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너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어머니.”
천소화의 말에 나는 장난스러움을 지우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천소화.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굳이 영약이 아니더라도, 시간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극신아.”
진지한 말이 제대로 이어지기도 전에 다시 튀어나온 장난스러운 나의 말.
그런 나의 말에 어머니는 낮은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하지만 아직, 나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저는 자신 있습니다. 천마신단이 없더라도 교주…… 아니, 아버지는 물론 초대 천마를 뛰어넘을 자신이.”
“…….”
“그리고.”
잠깐 말을 멈춘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맺힌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서은설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은설은 저에게 소중한 친구입니다. 친구를 위해 양보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어머니는 무림의 재녀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던 여인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와락!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아직은 어린 육체이기에 어머니의 품에 쏙 안긴 나.
어머니는 그런 나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역시, 어머니는 나의 선택이 옳았다 생각하며 지지했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해야 할 도리였습니다.”
“그래, 그렇게 자라야 한다.”
“이미 다 자랐습니다.”
“그때는 ‘네’라고 하는 것이 좋겠구나.”
“그러면 제 매력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한마디도 지지 않는 나의 대답이 웃겼을까?
어머니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품에서 떼어 내었다.
“너는 정말 잘한 행동을 한 것이야.”
“네.”
진지한 어머니의 두 눈빛.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와락!
“후엥!! 고마워 극신아!”
그동안 힘겹게 참아 왔던 울음을 터뜨린 서은설이 나의 품에 안겨 왔다.
눈물로 나의 어깨를 적시며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는 서은설.
나는 그런 서은설을 행동에 어머니가 나에게 해 준 것처럼 부드럽게 서은설의 등을 쓰다듬었다.
“아니야.”
“정말 고마워! 정말! 진짜!”
나의 대답에도 계속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서은설.
나는 그런 서은설의 행동에 미소를 지었다.
은설아 그거 알아?
나 너한테 잘 보이려고 양보한 마음도 없지는 않아.
이것 참.
천마신단 한 개로 도대체 몇 개의 이득을 보는 거야?
진짜, 개이득이다.
* * *
“…….”
약초 내음이 가득한 진료실 안.
모든 치료를 마치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백리진.
그녀가 힘겹게 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흐릿하게 보이는 낯선 천장.
그에 당황한 백리진이 연신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백리진의 초점이 돌아왔고, 이내 낯선 천장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또 코를 통해 들어오는 약초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깼느냐.”
그렇게 시각 후각, 그리고 나머지 감각을 회복하던 백리진의 귀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청각을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백리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평소와 다른, 무감정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리관이 말이다.
자신의 부모와 같은 오라비의 모습에 백리진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스윽.
하지만 백리관이 그런 백리진의 어깨를 잡아 가볍게 눌렀다.
“누워 있어라.”
“오라버니…….”
백리관의 말에 슬픈 목소리로 그를 부른 백리진.
백리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런 백리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백리관의 눈빛이 부담스러웠을까?
백리진은 두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녀의 입에서 힘겹게 나온 사과의 말.
그 말에 백리관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윽.
그러고는 떨리고 있는 백리진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힘들었느냐?”
“…….”
백리관의 물음에 백리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백리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았거늘…… 너의 목숨을 앗아 갈 만큼 그가 좋았더냐?”
“…….”
이번에도 백리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에 백리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남매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말이다.
약 일다경(15분)의 시간이 흐르고.
백리진이 침묵을 깨기 위해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그래.”
백리진의 부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백리관.
백리진은 그런 백리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분명, 저는 심마에 빠졌습니다. 헌데, 어찌 살아 있는 것입니까?”
“대공자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하거라.”
“……?”
갑작스럽게 나온 대공자라는 단어에 백리진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백리관은 그녀의 의문을 풀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대공자에게 할당될 예정이었던 천마신교의 보물, 천마신단 天魔神丹을 너에게 양보했다.”
“!!”
“대공자가 먼저 제안을 했고, 그가 직접 마의와 호법, 그리고 장로들을 설득했다.”
“그…… 그런……!”
“그래, 대공자가 너의 목숨을 살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놀란 표정의 백리진을 보며 백리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확실한 어조로 말했다.
그에 백리진의 두 눈동자가 떨려 왔다.
대공자가?
왜?
자신은 대공자와 별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데?
“운신에 지장이 없어지면 대공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도록 하거라.”
“네…….”
“그래, 쉬어라.”
아직 진정이 필요할 백리진을 위해 백리관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돌리려던 그때.
“그는…… 저를 걱정하던가요?”
꽈악.
뒤에서 들려오는 동생의 멍청한 질문에 백리관은 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올까?
그 망할 놈 때문에 죽을 뻔했으면서도 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그 녀석의 관심이다.
이 얼마나 멍청한 행동이란 말인가?
그에 분노한 백리관은 여동생을 향해 처음으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혀.”
“…….”
백리관의 차가운 대답에 백리진의 두 눈에서는 한 줄기 물이 흘렀고, 백리관은 차가운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섰다.
* * *
“왔나?”
그날 밤.
천마각에 위치한 수련장에서 은은한 달빛과 대나무 소리를 들으면서 술을 기울이던 천마는 익숙한 기운에 입을 열었다.
“…….”
“뭐냐?”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백리관.
그런 녀석의 모습에 천마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던 녀석이 저런 표정을 지으니 새로웠던 것이다.
그런 천마의 물음에 백리관은 짜증을 숨기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한 대만 때려도 되나?”
“두 대 맞을 자신 있으면.”
“망할 놈.”
끝가지 재수 없는 천마의 대답에 백리관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러고는.
저벅.
천마의 옆으로 걸어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나도 줘.”
“이거 비싼 거다.”
“오늘은 군말하지 말고 줘.”
“…….”
늘 장난을 치던 평소와 달리 짜증이 섞인 백리관의 행동과 말투.
그 모습에 천마는 이 녀석을 죽일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옜다.”
이 모습이 나름 신선하고 재밌었던 천마는 피식 웃으며 옆에 있던 새로운 술병을 백리관에게 건넸다.
뽕!
벌컥벌컥!
천마가 건넨 술을 받자마자 뚜껑을 열고 시원하게 들이켠 백리관.
천마는 그런 백리관의 옆에서 자신 또한 술병을 들었다.
그렇게 술병을 기울이려던 찰나.
“내 동생이 망할 네놈을 좋아한다.”
멈칫.
천마의 몸이 그대로 멈추었다.
너무나도 뜻밖인 백리관의 말에 천하의 천마가 당황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천마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백리관.
그가 술병을 흔들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네놈의 부인인 그녀도 그에 못지않게 좋아해서 혼자 중간에서 속앓이를 한 것 같았다.”
“…….”
“좋아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과 서로 사랑하는 좋아하는 언니. 진짜 시X, X나 복잡하네.”
평소 절대 사용하지 않는 욕설까지 걸쭉하게 사용하며 혼자 중얼거리는 백리관.
생각지 못한 백리관의 말과 행동에 천마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지웠다.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시원한 소리를 내며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술.
화끈하고 기분 좋은 고통을 주는 술의 기운에 천마의 찌푸려진 얼굴이 다시 펴졌다.
그렇게 술을 한 모금 마신 천마가 술병을 내리자 백리관이 기다렸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관악.”
“왜.”
“첩……이라도 좋다.”
“…….”
“내 동생이 너를 너무 좋아한다. 죽다 살아나서 가장 먼저 한 질문이 뭐였는지 아나?”
“…….”
백리관의 물음에 천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르겠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백리관이 속이 타는 듯 다시 술병을 기울였다.
그렇게 술 한 병을 비워 버린 백리관이 신경질적으로 술병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망할 네놈이 자신을 걱정했냐는 질문이었다.”
백리관의 분노가 가득한 말.
그 말에 천마는 가만히 술병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난 여동생의 행복을 원한다. 네 사랑을 받지 못하더라도 너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녀석은 행복할 것 같다.”
“…….”
“그러니, 첩이라도 좋다.”
잔잔하게 떨리던 백리관의 말이 모두 끝이 나고.
가만히 백리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천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야.”
“…….”
“네 동생에게 분명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네놈…….”
“아니.”
백리관의 대답을 제대로 듣지 않고 그의 말을 자른 천마.
그가 고개를 돌려 백리관의 두 눈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에게 소화가 찾아왔듯, 네 여동생에게도 새로운 인연이 찾아올 것이다.”
“!!”
“그러니, 네 여동생을 낮추지 마라. 나의 첩? 웃기는군. 너에게 있어서 네 여동생은 그 정도의 인물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도 받지 못할 그런 존재?”
“…….”
“그러니 정신 차리고, 옆에 있어 줘.”
“…….”
생각지 못한 천마의 정상적인 조언.
그 조언에 백리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의 말이 맞았다.
자신의 여동생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존재다.
충분히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
그런 소중한 존재를 순간 첩으로 보내려고 했다?
자신이 잠깐 미친 것일까?
천마의 조언에 온몸에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정신이 든 백리관.
그는 천마가 건네는 술병을 받아 들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망할 놈.”
자신에게 큰 고민거리를 만든 원흉인 놈이 고민을 해결시켜 줄 조언을 해 주었다.
진짜 여전히 짜증 나고, 또 정이 가는 놈이었다.
뽕!
그리고 그런 둘 사이로.
술병의 뚜껑이 열리는 시원하고,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