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제61장 궁을 벗어나다 脫宮 (1)
“물러가라.”
천마궁에 위치한 천마대전.
그곳의 한편에 마련된 응접 평상에 앉은 천마가 일살의 보고에 간단히 대답했다.
“명.”
천마의 축객령에 짧게 대답을 하고 순식간에 사라진 일살.
일살이 사라지자 천마가 한쪽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
자신의 아들.
그 녀석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고, 늘 웃게 해 준다.
기특한 녀석.
스윽.
속으로 위극신의 얼굴을 떠올린 천마는 자신의 앞에 위치한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기특했다.
“기특하네.”
그런 천마의 앞.
일살이 보고하기도 전부터 천마를 찬찬히 살피던 백리관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별로.”
그런 백리관의 말에 천마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천마의 갑작스러운 정색에 무안할 법도 하지만 백리관은 아무렇지 않은 듯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정말 솔직하지 못한 친구였다.
기특하지 않다고?
개뿔.
저렇게 웃고 있는데 말이다.
계속해서 한쪽 입 꼬리를 올리고 있는 천마.
그런 자신의 벗을 보며 백리관은 생각했다.
자신의 조카이자 천마신교의 대공자 위극신.
그 기특하고 또 신기한 놈을 말이다.
어떻게 이런 삭막한 천마신교에서 그런 놈이 나왔을까?
아마 직접 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쿵쿵!
그때.
천마대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백리관은 생각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찻잔을 들었다.
“손님이 많네.”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소리.
그 소리에 백리관이 말했다.
그에 천마는…….
“들라.”
가볍게 무시했다.
백리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천마의 허락에 천마대전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그 열린 문 사이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온 청년.
“지존에게 인사드립니다.”
바로, 비마각의 주인이자 천마신교의 두뇌라고 불리는 총군사 마뇌였다.
너무나도 정중한 마뇌의 인사에 천마의 옆에 있던 백리관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거참, 너무 삭막하잖아? 둘이 친하지 않나?”
“너보다 친하다.”
“…….”
단 두마디.
그 두마디로 백리관의 입을 다물게 한 천마가 예를 차리고 있는 마뇌를 내려다보았다.
“보고인가?”
“네, 파사국의 사신이 신강에 들어섰다 합니다.”
“그렇군.”
마뇌의 보고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금일 저녁에는 본교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바로 궁으로 들입니까?”
“아니, 내일 들이도록.”
“…….”
천마의 명에 마뇌가 잠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표정을 지우고는 입을 열었다.
“본교와의 중요한 거래를 맡고 있는 사신입니다. 밖에서 재워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한다면?”
마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천마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뇌의 말을 따라 했다.
흥미가 가득한 천마의 말.
그 말에 마뇌는 등줄기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제깟 것이 어쩌겠습니까.”
“푸하하!”
눈치 빠른 마뇌의 판단.
평소 말투와는 다른 마뇌의 말에 천마의 옆에 있던 백리관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고는 마뇌를 보며 입을 열었다.
“대공자를 닮아 가는군.”
“…….”
백리관의 말에 마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마의 눈치를 살펴볼 뿐이었다.
솔직히 백리관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대공자 위극신을 닮아 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래.”
바로 천마에게 통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못을 깨닫고 말을 고쳤다 하더라도 이전이었다면 최소한 매서운 기세에 무릎 한번 꿇었다.
그리고 내상을 입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물러가라.”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축객령을 내리고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모를 것이다.
천마가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안다.
최소 십사 년 이상 그를 모셔 온 군사였으니 말이다.
그런 천마의 축객령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마뇌가 다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백리관에게 정중히 눈인사를 취하였다.
“잘 가.”
그런 마뇌를 향해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 백리관.
마뇌는 그런 백리관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다음 물러났다.
쿵!
그렇게 마뇌가 물러나고 다시 거대한 문이 닫혔다.
“내일.”
“응?”
마뇌가 나가고 어색한 분위기에 차를 마시던 백리관.
그는 천마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내일, 아이들을 궁 밖에 구경을 보낼 것이다.”
“대공자와 장로의 아이들을?”
아이들이라 하면 그들뿐이다.
대공자와 그런 대공자를 목숨 걸고 따르는 장로의 아이들.
그 아이들을 언급하며 백리관이 묻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네놈 제자도 함께 보내지.”
“하지만…… 내일 파사국의 사신이…….”
“우리끼리 만나면 된다.”
백리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걱정 말라는 듯 천마가 말했다.
그에 백리관은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이놈이 무슨 생각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사신이 오는 내일 아이들을 밖으로 내돌린다고?
왜지?
백리관이 그렇게 고민에 빠지기도 전에.
천마의 입이 다시 열렸다.
“싫으면 꺼져라.”
“응?”
“나가라고, 신강에서.”
이 얼마나 당당한가!
자신의 말을 따르기 싫다면 자신의 집에서 나가라는 망할 집주인!
망할 벗, 천마를 보며 백리관은 벙 찐 표정을 짓다가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솔직히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이곳에 와서 자신의 제자 서은설은 너무나도 행복해했다.
여기에 더해서 좋은 추억을 만들 기회니, 스승으로서 솔직히 좋았다.
그리고 내심 고마웠다.
자리를 만들어 주는 천마…… 저놈은 넘어가고.
서은설을 즐겁게 해 주는 대공자 위극신이 말이다.
그렇게 다음 날.
파사국의 사신은 천마신교에 들어서기로 했고, 서은설과 아이들은 신강 구경에 나서기로 했다.
백리관은 몰랐다.
천마 위관악과 대공자 위극신과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 * *
다음 날.
“안녕!”
“안녕.”
나는 눈앞에서 상큼한 미소를 뽐내는 서은설을 보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잘 잤어?”
“응.”
“무슨 꿈 꿨어?”
나를 향해 다가와 친근하게 묻는 서은설.
나는 그런 서은설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
“히익! 무서워!”
재밌었다.
나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두려운 표정을 짓는 서은설을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다 키 크려고 그러는 거야.”
“그런 꿈을 꾸면 키가 커?”
“응.”
“…….”
나의 확신 어린 대답에 서은설이 잠깐 얼굴을 굳혔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늘 생글생글 웃는 상큼이가 얼굴을 굳히니 걱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걱정도 잠시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서은설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 꿔야지!”
귀여운 사상을 마음껏 뽐내었다.
그런 서은설의 순수한 모습에 나는 물론, 나의 뒤에 있던 유화 또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 유화! 웃었다.”
“언니 웃었어!”
“안 웃었습니다.”
유화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친 나와 서은설.
유화는 그런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괜히 빙마공을 익히게 했다.
가뜩이나 차갑던 유화가 더 차가워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 것처럼 빠른 속도로 익혀 이제는 이류의 경지에 이른 유화를 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웃었는데?”
“안 웃었습니다.”
“거짓말하네.”
“안 합니다.”
“에계?”
“에계 아닙니다.”
“오계?”
“…….”
“이계?”
“…….”
여기까지 해야겠다.
유화의 눈에 담긴 짜증에 나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물론 유화가 무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화가 화나면 귀찮아진다.
왜냐고?
“푸하하! 유화 누이! 오랜만…….”
퍼억!
나 말고 다른 아이들에게 괴팍해지기 때문이다.
유화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온 구양적.
그런 녀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화가 구양적의 복부를 후려쳤다.
꽤 큰 소리가 날 정도로 말이다.
일개 하녀가 장로의 아들을 때린다라…….
남들이 보면 심각하겠지만 당사자들은…….
“푸하하! 시원하오! 더 때리시오!”
“변태 곰.”
“푸하하!”
즐기니 됐다.
유화의 주먹질에 시원하다며 배를 더 내미는 구양적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면 되었다.
신경 쓰지 말자.
“껄껄!”
“할아버지……?”
그때.
나는 저 멀리서 여유로운 웃음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윤무천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대공자. 나들이 간다지?”
“예,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러 나갑니다.”
“허허! 추억이라!”
나의 말에 윤무천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 솔직히 윤무천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마도의 정점인 천마신교.
이곳의 마인이 아이들과 추억을 만든다?
수련할 시간도 부족할 텐데 그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겠는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그러겠다는데.
윤무천의 웃음에 내심 찔끔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허허, 너를 만나고 겸사겸사 아는 얼굴도 만나러 왔다.”
“아는 얼굴요?”
이곳에?
누가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은설과 언제 왔는지 고개를 숙여 보이는 야율령과 야룡이가 보였다.
그리고 유화와 구양적, 그들의 옆으로 사마천과 단진이 보였다.
올 사람은 다 왔다.
헌데, 아는 얼굴이라고?
이 아이들을 말하는 것인가?
아이들이라 하면 되지 왜 아는 얼굴이라고 칭하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을 계속해서 내가 짓자 윤무천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보게, 언제까지 모른 척할 것인가?”
“아…….”
맞다.
마노가 있었다.
늘 자신을 모른 척해 달라 말하고 기척을 숨기다 보니 한 번씩 잊고 있었다.
늘 우리의 근처에서, 또는 나의 처소에서 비질을 하는 마복, 아니 마노를 말이다.
윤무천의 인사에 마노가 비질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윤무천을 바라보았다.
“망할 노친네가 오래도 살아 있습니다.”
“껄껄!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그 무슨 섭섭한 소리인가.”
처음이다.
마노가 저렇게 험한 말을 하는 것이 말이다.
마노의 예상 밖인 험한 말에 당황한 것도 잠시, 웃으며 받아치는 윤무천을 바라보며 나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저 무례한 말을 웃어넘긴다고?
나뿐만이 아닌 듯 다른 아이들 또한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런 우리들 앞.
윤무천이 다시 마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천하의 철협 鐵俠이 본교에 투신하다니. 세상 참 재미있지 않은가?”
“천마신교가 아닌 대공자에게 투신한 것입니다.”
“그게 그것 아닌가?”
“다릅니다, 망할 노인네.”
윤무천의 말에 마노가 싸늘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에 윤무천이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 웃었다.
아니…… 왜?
왜 둘이 친한 것처럼 보이는 거지?
“오십 년 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 나를 향해 마노가 말했다.
그에 나는 더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철협이라 불린 마노 또한 전대에서 이름을 떨친 고수이다.
아무리 중원이 넓더라도 고수와 고수의 마찰은 잦았고, 그러다 보니 한두 번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같은 세력의 무인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윤무천과 마노는 다르지 않은가?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정파 인물인 마노가 어째서 할아버지를 만나셨습니까?”
“껄껄! 그건 내가 알려 주마.”
나의 물음에 윤무천이 소리 내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놈이 첫사랑을 나에게 빼앗겼거든.”
“……?”
예?
첫사랑이요?
윤무천의 말에 마노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부정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윤무천의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마도의 인물과 정파의 인물.
전혀 다른 두 명이 동시에 사랑한 한 여자.
딱 보니.
흥미진진한 애정 愛情 소설 한 편 나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