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제59장 달라진 천마 變化
콰앙!
팔락!
“아…….”
이 장면…… 익숙하다.
나의 눈앞.
나의 목숨을 앗아 가기 위한 거대한 도를 막아선 넓은 등.
그 익숙한 등의 모습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생에서 그 누구보다 든든하고 단단했던 넓은 등.
바로…….
“괜찮으냐?”
전생에서는 스승. 이번에는 숙부인 패천황 覇天皇 백리관이었다.
전생과 다름없는 따뜻한 백리관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
전생에서 늘 나를 위하고 지켜 주던 스승.
아낌없이 나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훌륭했던 스승.
그 스승의 넓은 등을 보니 전생의 추억이 떠올랐다.
“호오?”
그런 백리관의 앞.
자신을 막아선 백리관을 보며 윤무천은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대가 어찌 이곳에?”
사파의 지존 패천황 백리관.
그의 인사에 윤무천이 물었다.
그에 백리관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 보니 놀러 왔는데…… 사랑스러운 조카를 죽이려 하면 되겠습니까?”
“조카라…….”
백리관의 말에 윤무천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두 눈을 반짝이며 백리관을 바라보았다.
“한창 흥이 올랐는데…… 그대가 망쳤군.”
“죄송합니다.”
“자네가 마저 이어야지?”
“하하.”
광마도 狂魔刀라는 별호답게 달아오른 전투에 미친 사람처럼 두 눈을 반짝이는 윤무천의 말에 백리관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다른 이가 이어야겠습니다.”
“응?”
백리관의 영문 모를 말.
그 말에 윤무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윤무천이 얼굴을 굳히며 거대한 도를 옆으로 세웠다.
콰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아이들에게 했었던 것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혀 버린 윤무천.
그런 윤무천의 모습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저벅저벅.
칠흑 같은 마기를 넘실거리며 엄청난 위엄을 내뿜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사내.
천마를 바라보았다.
우뚝.
“아버지…….”
나의 앞에 멈추어 선 천마.
나는 그런 천마를 올려다보며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동안 늘 함께했기에 잠깐 잊고 있었다.
나의 눈앞.
미치도록 매서운 살기를 내뿜으며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
그가 나의 아버지라는 것을 말이다.
“다친 곳은?”
놀란 표정을 짓는 나의 앞.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천마가 물었다.
너무나도 싸늘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담긴 분노에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서웠다.
미치도록 무서웠고 두렵고 또 공포스러웠다.
그에 질려 버린 나는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전신이 다 아픕니다.”
저 망할 노인네, 혼내 주세요 아빠.
* * *
콰콰쾅!
쾅!
“크악!”
그저…… 압도적이었다.
초절정의 끝자락에 도달한 고수 중의 고수 윤무천.
그가 괴로워하며 괴성을 내질렀다.
콰득!
그런 윤무천의 손목을 무심한 표정으로 짓밟아 버리는 천마.
“크윽!”
천마의 무심한 발길질 한 번에 강철보다도 단단한 윤무천의 손목이 부러졌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윤무천을 천마는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본좌는 그대를 허락한 적이 없거늘.”
천마의 허락 없이 천마궁에 들어선 윤무천.
그런 윤무천을 내려다보며 천마가 싸늘한 어조로 말하자 윤무천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내 맘 아니오?”
꿈틀.
너무나도 무례한 윤무천의 대답.
그 대답에 천마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에 윤무천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힘이 빠진 듯 벽에 몸을 기대며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는 나를 죽일 것이오?”
“…….”
“죽일 거면 그때 죽이지 그러셨소?”
“십삼 년이 지났음에도 그대는 아직 그대로군.”
“십삼 년?”
천마의 싸늘한 말.
그 말에 윤무천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백 년이 지나도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나의 눈앞에서 괴로워하며 죽어 가던 그 아이, 그리고 그런 그 아이를 살릴 기회를 없애 버린 망할 지존을.”
콰앙!
윤무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다시 엄청난 굉음이 수련장을 울렸다.
“크큭…….”
천마의 강한 발길질에 피를 흘리면서도 윤무천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커헉!”
웃음을 흘리던 윤무천의 입에서 튀어나온 붉은 피.
윤무천, 그는 각혈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진정으로 재미있다는 듯 말이다.
너무나도 기괴한 윤무천의 모습에 위극신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피를 흘리고 또 토하며 웃는 미친 노인네.
윤무천은 정말 별호 그대로 미친 마인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웃기나?”
그런 윤무천을 내려다본 천마.
그의 싸늘한 물음에 윤무천이 미소를 지으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어찌 웃기지 않소? 십삼 년 전 나를 죽여 달라는 청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교주가 이제는 나를 죽이려 하니 말이오.”
십삼 년 전.
자신의 전부와도 같았던 아이를 잃은 윤무천은 자신의 하늘과도 같은 지존에게 검을 겨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윤무천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그 아이와 함께하기 위해 지존인 천마에게 목숨을 거두어 달라 간곡히 청했다.
하지만 망할 지존은 그러지 않았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말하는 윤무천을 보며 천마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이미, 그 아이는 죽은 목숨이었다.”
정파의 무인에게 잡혀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독에 중독된 상태였던 아이.
그 아이를 구하러 가겠다는 윤무천을 기절시켜 말린 것이 곧 천마였다.
그 아이는 아무리 치료를 하더라도 가망이 없는 상태인 것을 뻔히 아는데, 초절정급의 수하를 어찌 보내겠는가?
“지금…… 변명하는 것이오?”
십삼 년 전에 했어야 할 변명.
그 변명을 이제야 하는 천마를 보며 윤무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십삼 년 전 그리 말하지 그랬소?”
자신을 죽여 달라는 청을 무시하던 천마.
괴로운 자신의 감정 따위에는 신경 쓰지도 않던 천마.
그런 천마가 이제 와서야 자신의 앞에서 변명을 하고 있었다.
십삼 년 동안 천마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웠던 자신의 앞에서 말이다.
온갖 원망이 가득한 윤무천의 말.
그 말에 천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
천마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
만인지상 천상천하 유아독존.
마도의 종주인 천마의 사과에 윤무천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대의 슬픔에 나는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랬다.”
“…….”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대가 느꼈을 슬픔을, 괴로움을.”
“닥치시오!”
콰콰쾅!
천마의 진심 어린 사과.
그 사과에 윤무천은 언성을 높였다.
윤무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기파.
그 기파에 땅이 갈라졌고 나무가 흔들렸으며 부서진 잔해들이 날아갔다.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파라고는 믿지 못할 강력한 기파.
그 기파에 천마가 두 눈을 반짝였다.
“제길…… 제길!”
십삼 년 동안 천마 하나만을 증오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 증오심을 매일매일 겪으며 수련에 또 수련을 해 왔던 자신이거늘, 그런 자신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고?
괘씸했다.
십삼 년 전 자신이 겪었던 괴로움을 안다는 듯 사과를 하는 그의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그리고 짜증났다.
차라리 그때, 사과를 했다면…… 자신이 십삼 년 동안 이렇게 괴로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십삼 년 전. 그때 자신의 괴로움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었다면……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윤무천 또한 알고 있었다.
천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윤무천에게는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고, 그것이 곧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무신경했던 천마를 원망하게 되었다.
복잡했다.
너무나도 괴로웠다.
괴로움에 가슴이 옥죄어 오는 윤무천.
그가 고개를 들었다.
“우호법!”
고개를 든 윤무천의 두 눈.
자신을 올려다보는 두 눈이 붉어진 것을 확인한 천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높아진 천마의 언성에도 불구하고 윤무천의 두 눈은 더욱 붉어졌다.
마치 붉은 핏빛처럼.
콰쾅!
그리고 그런 윤무천의 몸에서 매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좀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 어떠한 절제도 느껴지지 않는 강력한 기세.
그 기세에 천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호법!”
심마 心魔.
마공을 익히는 마인들에게 있어 가장 조심해야 할 적이었다.
마공을 깊게 익히다 보면 본능에 인성을 빼앗겨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심마에 빠져 본능대로 수많은 백성들을 학살했고, 그로 인해 마도의 무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이 되었다.
그것을 마도의 종주로서 누구보다 잘 아는 천마였기에 천마신공을 운용하며 소리쳤지만…….
콰콰쾅!
윤무천은 초절정 끝자락에 다다른 고수 중의 고수였다.
아무리 화경의 고수인 천마의 기운이더라도 그를 진정시키기에는 부족했기에 윤무천의 기세는 점점 더 매서워져만 갔다.
“…….”
그에 천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모든 마공의 어버이와 같은 천마신공임에도 불구하고 심마에 빠져 버린 윤무천을 진정을 시키지 못했다.
그렇다면?
“제길.”
죽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심마에 빠진 초절정고수를 살려 두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했으니 말이다.
위극신이 달라지고, 그와 시간을 보내던 천마는 최근 들어서 윤무천이 떠올랐었다.
어린 시절.
무능했던 자신에게 꼬박 공자라 칭하며 자신을 믿어 주고 유일하게 밀어주었던 존재.
자신의 무공을 보며 천재라고 치켜세워 주던 존재.
처음 화식을 할 때 환한 미소로 온갖 고기를 다 들고 온 존재.
감정이 없었을 때는 그런 윤무천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고마운 줄 몰랐다.
그리고, 윤무천이 자신에게 왜 이러한 행동을 하는지도 몰랐다.
아니,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천마는 알게 되었다.
늘 자신의 힘이 되어 주었던 윤무천은 고마운 줄도 모르는 자신을 아들처럼 생각했다는 것을 말이다.
콰콰캉!
“모두 물러가라!”
점점 더 강해지는 윤무천의 기세에 뒤에 있던 백리관이 위극신과 아이들을 물렸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천마의 옆에 섰다.
“내가 할까?”
백리관 또한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윤무천을 죽여야 했으며, 그런 윤무천을 죽이는 것에 천마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백리관이 묻자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돌려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나서라.”
“관악……?”
이 위험한 상황에 위극신을 향해 앞으로 나오라니?
천마의 괴상한 행동에 백리관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천마는 그런 백리관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위극신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와서 예를 갖추어라.”
“네.”
천마의 말.
그 말속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읽은 위극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앞으로 나섰다.
* * *
“극신아!”
스승님,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앞으로 나서자마자 놀란 표정으로 나를 말리는 백리관.
나는 그런 백리관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 준 다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크윽.”
제길. 겁나 강했다.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엄청난 기운.
그 기운에 나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번의 걸음을 옮기자 나는 천마의 옆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신의 옆에 선 나를 바라본 천마.
그가 입을 열었다.
“예를 갖추어라.”
“…….”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같은 분이다.”
“!!”
감정 하나 없던 천마.
그의 입에서 나온 놀라운 말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물론 알고 있었다.
감정이 전혀 없던 아버지가 조금씩 감정을 배워 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속도는 워낙 더뎠기에 보통의 사람과도 같이 감정을 제대로 알게 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 또한 전생에서 그랬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설마 천마가 벌써 부정을 깨달았단 말인가?
놀라웠다.
그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전생에서의 나는 스승인 백리관과 사승 師承의 감정을 느꼈기에 부정이라는 감정이 어려웠고, 현생에서의 천마는 나에게 부정 父情을 느꼈기에 부정이라는 감정을 깨달았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그것을 모르고 있던 나는 경악한 것도 잠시.
이내 모든 예를 갖추어 윤무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소손, 위극신. 할아버님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감정 없는 인형.
천마에게서 받아 보지 못했던 따뜻한 감정과 호감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그렇게 나의 인사에 천마는 허리춤에서 천마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검이 뽑히는 부드러운 소리.
그 소리에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마지막 인사와 예를 갖추었다.
그렇다면 이제, 심마에 빠진 윤무천을 죽이는 것만이 남았다.
그것을 행하려는 천마의 행동을 짐작한 나였기에 두 눈을 감은 채 속으로 빌었다.
‘다음 생에서는 오해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천마와 어떤 오해가 있었고, 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부디, 이번 생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음 생에서는 홀가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말이다.
그렇게 나의 기도와 함께 하늘 높이 오른 천마의 검.
그 천마의 검이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털썩!
매서운 기세를 내뿜던 윤무천이 그대로 쓰러졌다.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
그 소리에 나는 조용히 두 눈을 떴다.
이제 보일 것이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피와, 몸과 분리된 목이 말이다.
“…….”
그렇게 윤무천의 마지막을 눈에 담기 위해 두 눈을 뜬 나는 예상외의 광경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검을 하늘 높이 올린 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마.
그런 천마의 표정에 나는 속으로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멍청한 표정을 지을 줄도 아네.’
우호법 광마도 윤무천.
그는 죽지 않고 심마를 벗어났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설마 나의 인사 때문에?
에이,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