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제55장 부자의 대화 對話
“흐어억!”
“정신이 드니?”
“…….”
몽롱했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꾸었던 꿈.
너무나도 현실같이 생생했던 꿈 때문에 도저히 정신이 차려지지가 않았다.
“극신아…….”
그런 나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목소리에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어머니……?”
“그래……. 자, 찬물 한 잔 마시거라.”
나의 말에 어머니가 나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차가운 물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꿀꺽꿀꺽.
때마침 목이 말랐던 나는 본능적으로 시원한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하아…….”
시원한 물이 속에 들어가자 그제야 머리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
조금은 개운해진 기분에 나는 숨을 깊게 한번 내쉬고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모르겠다. 노란색의 빛이 일어나더니 네가 기절했단다.”
나의 물음에 어머니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눈가를 찌푸렸다.
그 노란색 빛은 무엇일까?
또, 내가 꾸었던 꿈은……?
좀 전에 꾸었던 꿈을 상기한 나는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억났다.
마지막, 색목인의 사내가 아이에게 걸어 준 목걸이 말이다.
“은설. 은설은 어디 있습니까?”
“거처에서 쉬고 있단다.”
나의 다급한 어조에 어머니가 진정하라는 듯 나의 등을 다독이며 대답했다.
“은설은 기절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너만 기절했단다.”
“허어…….”
어머니의 대답에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뭘까?
왜 나만 기절한 것이지?
그럼 그 꿈은 나에게만 보인 것인가?
머리가 복잡했다.
“은설에게 가 봐야겠습니다.”
안 되겠다.
직접 확인을 해 봐야지.
지금 당장 은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던 나는 어깨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힘에 다시 침상에 앉았다.
“……?”
나의 어깨를 누른 어머니의 손.
무공을 익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강한 힘에 나도 모르게 그만 자세가 풀려 버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이 순간.
멍한 표정을 지은 나를 보며 어머니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늦었단다.”
“아…….”
어머니의 말에 그제야 나는 주변이 어둡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얼마나……?”
“세 시진(6시간) 정도.”
나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가 짧게 대답했다.
어휴 칼이셔라.
그나저나 세 시진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긴 시간이었다.
세 시진이면 은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애들 수련을 한 번 더 봐줄 수 있는 시간인데…….
아 시간 아깝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은설이를 만나 보거라.”
그런 나의 표정을 읽었을까?
어머니가 나의 머리를 침상에 누르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그래.”
나의 부름에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한 어머니.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에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매일 밤.
나는 천마에게 수련을 받고 있다.
다섯 살, 아버지라 부른 이후부터 여덟 살인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말이다.
* * *
“왔구나.”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천마의 개인 연무장.
대나무가 가득한 연무장에 들어서자 가만히 서서 달을 올려다보던 천마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닌 척해도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나를 걱정한 듯했다.
그것을 눈치챈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코를 살짝 훔치며 입을 열었다.
“역시, 기다리고 계셨군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오더라도 천마는 이 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무리해서 나왔더니 역시나.
천마는 늘 그렇듯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셨지만 보내 주셨습니다.”
천마의 물음에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허리춤에 걸린 검을 뽑아 들었다.
“바로 검부터 뽑아 드는구나.”
“새삼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천마의 말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천마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근처 바닥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던 검을 뽑았다.
“그래.”
우웅!
검을 뽑음과 동시에 무거워진 공기.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강한 기운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저, 많이 컸습니다.”
“안다.”
“조만간 아버지 잡습니다.”
“삼십 년은 멀었다.”
나의 말장난에 천마가 가볍게 응수했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삼 년간.
나는 천마와 정이 들었다.
이것 참.
인정하기 싫지만 말이다.
역시 서로가 남자이기 때문일까?
매일같이 검을 맞대다 보니 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진자 말 그대로 나와 천마는…….
싸우면서 친해지고 성장하고 또 성숙해지고 있었다.
“안 오나?”
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그 순간.
천마가 붉어진 두 눈으로 나를 도발했다.
그에 나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가야지요.”
어느덧 내 눈 또한 천마와 같이 붉어져 있었다.
타앗!
콰앙!
* * *
“하아.”
젠장.
오늘도 나는 천마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바닥에 드러누워 거친 호흡을 내뱉은 나는 속으로 무능한 나 자신을 탓했다.
천마.
그는 진정한 괴물이었다.
전생에서 사파의 지존이었던 패왕 覇王 시절.
나는 지금의 천마와 비슷한 또래였다.
하지만 천마의 강함은 그때의 나를 아득히 넘어서 있다.
왜 이런 존재가 천이에게 살해를 당한 것일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몸에 문제는?”
드러누워 호흡을 고르며 딴생각을 하는 동안, 나는 귀로 들려오는 천마의 목소리에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여전히 변함없는 자세로 꼿꼿이 서 있는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아픕니다.”
꿈틀.
나의 말에 천마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에게 맞아서 멍든 것 같습니다.”
좀 전, 천마에게 맞은 팔뚝을 보여 주며 말이다.
헹 속았지?
메롱이다.
그런 나의 말에 천마가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움찔.
젠장.
저 눈빛은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문제없습니다.”
“그 빛은 무엇이었지?”
“모르겠습니다. 목걸이가 혼자 지…… 발광 發光을 하더군요.”
후우.
상대는 천마다, 입조심하자.
잠시 멈칫한 나의 말에 천마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기물이군.”
“그렇죠.”
“헌데, 그 반쪽을 네가 왜 지니고 있지? 패천황 그 녀석의 말로는 어느 날 갑자기 반쪽이 사라졌다던데.”
“제가 도둑질에 소질이……. 죄송합니다.”
어우 살짝 지릴 뻔했다.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시간을 끌려던 나는 천마의 살기 어린 눈빛에 급히 꼬리를 말았다.
그러고는 다시, 황급히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뭐라?”
나의 다급한 어조에 천마가 다시 눈가를 찌푸렸다.
“어느 날 눈떠 보니 이것이 제 손안에 있었습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냐?”
“사실인 걸 어떡합니까.”
진짜다.
회귀하고 났더니 내 목에 이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 말을 빼먹었을 뿐.
조금도 흔들림 없는 나의 모습에 천마가 언제 찡그렸냐는 듯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구나.”
“기물입니다.”
“그래, 기물이다.”
오랜만에 마음이 맞네.
나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 목걸이, 파사국의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나?”
나의 목에 걸린 노란색의 목걸이.
천마가 그것을 검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씨. 무섭게.
왜 사람을 향해 검을 겨누고 그래?
아니 아들한테 검을 겨누는 아버지는 천마밖에 없을 것이다.
에라이, 망할 천마신교.
“대답.”
움찔.
너무 오랫동안 딴생각을 했나 보다.
서늘한 천마의 목소리에 움찔한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호오?”
나의 대답이 뜻밖이었을까?
천마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네가 파사국의 글을 알았나?”
“저 똑똑합니다.”
“…….”
“죄송합니다.”
아 왜 이렇게 까불거리고 싶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천마를 보며 나는 사과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최근에 파사국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신강은 서역과 명나라를 연결시켜 주는 중요 통로이다.
그 뜻은 곧 신강의 지배자인 천마신교는 서역과 명나라를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매개체라는 뜻이다.
명나라의 땅이면서 자치권을 지니고 있는 독립적인 세력 천마신교 天魔神敎.
그곳의 후계자인 나는 필수적으로 서역의 대국인 파사국의 언어를 배워야 했다.
그것을 언급하며 내가 말하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에게 알리지 않았지?”
“…….”
이 양반아.
우리가 언제 그런 이야기 하는 사이였니?
매일 밤 만나더라도 주야장천 검만 겨누던 사이다.
솔직히 오늘이 역대급이다.
이렇게 대화를 길게 하는 것이 말이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나를 보며 천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가를 찡그렸다.
“아버지.”
“…….”
삐져서 대답 안 하는 것 봐라.
나의 부름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천마를 보며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찬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파사국의 상인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래.”
어라?
이렇게 쉽게 허락한다고?
예상외로 시원한 천마의 대답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곧 파사국의 사신이 이곳에 들르기로 했다. 패천황 그 녀석도 함께 보기로 했으니 너도 그때 함께하거라.”
“아…….”
위험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
그 장면이 사실이라면 서은설은 파사국의 공주다.
산파로 보이던 여인이 적발의 여인을 향해 마마라고 불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서은설은 버려진 공주라는 뜻이다.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서역에 위치한 파사국에서는 쌍둥이를 악마 취급한다고 말이다.
바로 그 악마 취급을 받은 존재가 서은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서은설은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
심지어 사신이라면 현재 파사국의 공주로 있는 은설의 언니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언니는 은설과 쌍둥이니 외모가 닮은 것은 당연지사.
만약 사신이 이곳에 와서 은설을 보게 된다면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그것을 상기한 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
다급한 나의 어조에 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를 휴가 보내 주시지요!”
“…….”
“백리진 이모님과도 사이가 좋아 보였습니다. 은설과 함께 여행을 보내심이 어떠하신지요?”
“기각.”
“아 왜요!”
이런,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단칼에 거절하는 천마의 모습에 내가 언성을 높이자 천마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길, 무섭다.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쫄아 버린 내가 꼬리를 말고 정중히 묻자 천마가 입을 열었다.
“소화와 산책을 해야 한다.”
예……?
내가 잘못 들었나?
고작 산책 하나 때문에?
내가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천마를 바라보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개뿔.
웃으면서 사람 모가지 그냥 자르는 양반이 어린아이처럼 약속을 지키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진짜 내 아버지지만 천마는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지닌 아버지였다.
에라이, 잘 먹고 잘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