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제51장 선무 扇舞
“그래서, 제가 구양 공자를 때리니까 모두가 큰 소리 내서 웃었어요.”
“하하. 정말 네가 때렸느냐?”
“네! 구양 공자는 맞는 것을 좋아해요! 신기하죠?”
“하하!”
사황 백리관.
그는 자신의 앞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은설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재미있었느냐?”
“네! 내일은 령이 언니가 직접 가꾼 화원을 보여 주기로 했어요!”
“호오? 앞이 보이지 않는데 화원을 가꾸었다고?”
서은설의 얘기에 백리관이 흥미로운 어조로 물었다.
그에 서은설은 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령이 언니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대단해요!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예쁘고 착하고, 못하는 것이 없어요! 너무 좋아요!”
“하하! 다행이구나.”
사람을 향해 좋다고 표현하는 것이 얼마 만인가.
늘 사람을 두려워하고 위축이 되어 있던 서은설이다.
헌데 그런 서은설이 이렇게나 밝게 행동하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어느 정도는 기대했다.
대부인 천소화의 서신에는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라고 적혀 있었으니 말이다.
헌데 이렇게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데리고 올 걸 그랬었다며 후회가 되는 백리관이었다.
“극신이와는 친해졌느냐?”
“극신이는 좋은 아이예요!”
“좋은 아이라고?”
서은설의 긍정적인 평가에 백리관이 서은설에게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그에 서은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저를 배려해 주고,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를 시켜 줘요. 그리고 제가 무서워하면 늘 앞에 나서서 지켜 줘요.”
“호오.”
“멋있어요.”
배시시.
“…….”
얼굴을 붉히며 배시시 웃는 서은설을 보며 백리관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좋은 남자가 되어 주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백리관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딸과 같은 제자를 유혹(?)하다니.
대공자 위극신.
좋게 봤는데 아무래도 영 별로인 조카 같았다.
“오라버니. 설마 질투하는 거 아니죠?”
그런 백리관의 표정을 보고 눈치를 챈 것일까?
백리진이 웃으며 물었다.
그에 백리관이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설마. 하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말투와 웃음이었다.
“헤헤.”
아직 어린 서은설은 몰랐지만 백리진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위극신을 극도로 질투하고 있는 백리관의 모습이 말이다.
“너도 즐거워 보인다?”
자신을 바라보는 백리진의 눈이 거슬렸던 백리관.
그가 삐딱한 눈빛으로 백리진을 보며 물었다.
그런 백리관의 물음에 싱긋 미소를 지은 백리진이 입을 열었다.
“좋은 언니였어요.”
“얼씨구?”
벌써부터 천마신교 대부인인 천소화를 언니라 칭하는 백리진을 보며 백리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식.
백리관이 웃었다.
그러고는 백리진을 바라보았다.
“연적 戀敵을 언니라고 부르다니 말이야.”
“무슨 소리예요! 언제 적 이야기인데!”
백리관의 장난스러운 말에 백리진이 두 눈에 불을 켜며 소리쳤다.
그런 백리진의 반응에 가만히 있던 서은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적?”
“아무것도 아니란다.”
“연적, 연적!”
“은설아.”
계속해서 연적을 말하는 서은설을 진정시킨 백리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리관을 노려보았다.
“흐흠.”
그런 동생의 따가운 시선에 백리관은 짐짓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고 말이다.
* * *
“좋은 아침입니다.”
이른 아침.
잠에서 일어난 나는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안녕?”
“네.”
세숫물을 들고 대기하고 있는 유화.
그녀가 나의 인사에 짧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유화.”
“네.”
그런 유화의 반응에 나는 그녀를 불렀고 역시 그녀는 특유의 무감정한 말투로 대답했다.
“웃어 봐.”
“…….”
“미안.”
나의 한마디에 나를 바라보는 유화.
그녀의 두 눈에서 짜증을 읽은 나는 즉시 사과했다.
그러고는 유화가 건넨 세수 물에 세수를 했다.
“후우.”
세수를 마치고 유화가 건넨 수건을 받아 들어 얼굴을 닦은 나.
“후후.”
동경 속에 비친 멋들어진 나의 외모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나란 녀석.
아침부터 이렇게 잘생기다니.
참, 당황스럽구만그래.
“…….”
동경을 바라보며 잘난 외모를 살피던 그때.
나는 옆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뭐지 그 불손한 눈빛은?”
무감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유화.
그녀의 눈빛에서 불손함을 읽은 내가 묻자 유화가 고개를 숙였다.
“그냥 바라본 것입니다.”
“되게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 것 같은데.”
“착각이십니다.”
“내가 착각할 리가 없잖아.”
“…….”
또다.
“봐 봐!”
나의 말에 다시 빤히 바라보는 유화의 두 눈.
그 눈에서 또 다시 불손함을 읽은 내가 소리쳤다.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그런 나의 말에 공손히 고개를 숙인 유화가 세숫물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졸지에 홀로 방에 남게 된 나.
나는 가만히 유화가 나선 방문을 바라보았다.
우리 유화.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소녀가 되었지만 귀여운 맛은 사라져 버렸다.
“아쉽네.”
아쉬웠다.
그에 혀를 가볍게 찬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란 녀석.”
그러고는 동경을 바라보며 멋진 표정을 지었다.
훗.
잘생겼다. 위극신!
* * *
“나오셨습니까.”
“그래.”
단정한 수련복을 입은 내가 연무장으로 나서자 미리 나와 몸을 풀고 있던 아이들이 인사를 건네었다.
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이 중 가장 키가 큰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굳이 안 나와도 되는데 말이야.”
“완숙한 경지에 오르고 싶습니다.”
군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일류라는 고수의 경지에 한 걸음 올라선 사마천.
그가 두 눈에 불을 켜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정파 무림에서 오룡 五龍 삼봉 三鳳 이라 불리는 후기지수들이 있다.
약관의 나이에 완숙한 일류의 경지에 올라 중원 정파의 미래라고 불리는 후기지수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늘 노력하는 사마천의 모습은 너무나도 보기 좋았다.
군사라는 직위를 목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예를 갈고닦는 사마천의 모습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했기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그런 나의 말에 사마천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 저는 열여섯에 일류의 경지에 오르겠습니다.”
그런 나와 사마천의 모습에 질투를 느꼈을까?
단진이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올해 열세 살인 단진.
열세 살임에도 불구하고 완숙한 이류의 경지를 앞두고 있는 녀석이라면 가능하다.
열여섯에 일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말이다.
“그래.”
“저도 열여섯인 지금…….”
그런 나의 말에 이번에는 야율민이 다가와 말했다.
완숙한 이류의 경지에 오른 열다섯의 야율민.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열여덟은 되어야 일류의 경지에 오르겠지.
단진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매일 노력을 하는 야율민이 안쓰러웠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긍정하지 않았다.
그런 나의 행동에 야율민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피식.
단진이 그런 야율민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더라도 비웃는 듯한 모습에 야율민은 두 눈에 불을 켰다.
“죽고 싶지?”
“죽일 수는 있고?”
야율민의 말에 단진이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그에 야율민이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
“환영한다.”
그런 야율민의 행동에 단진이 자세를 낮추었다.
그런 둘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은 내가 몸을 돌렸다.
조용한 데 가서 부채나 휘둘러야겠다.
삼 년 전.
아버지인 천마에게 진정한 천마신공 天魔神功을 전수받기 시작한 나는 검을 들었다.
매일 밤마다 이루어지는 그 수련은 너무나도 힘들었고 나는 매일같이 사선 死線을 오가고는 했다.
그리고 오전에 이루어지는 장로들과의 수련에서 나는 다양한 무기술을 배웠으며, 자유 시간에는 부채인 섭선 摺扇을 휘두르고는 했다.
왜 섭선을 수련하냐고?
전생에서 내가 즐겨 사용했던 무기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멋있지.”
그렇다.
아주 멋있었다.
절세의 미남인 내가 섭선을 들고 다니는 모습.
그리고 위험한 상황에 그 섭선을 휘두르며 무뢰배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상상한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멋있었다.
어서 섭선을 수련하고 싶어진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청옥색의 섭선을 꺼내 들었다.
뇌선 雷扇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섭선은 어머니가 주신 물건이다.
외할아버지인 창천검황이 사용했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뇌선을 집어 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멋지고 빠르게.
그 누구라도 반할 수 있도록 섭선을 펼쳐 들었다.
챠락!
우웅!
그와 동시에 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순한 마기.
그 마기에 힘입어 나의 뇌선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락!
느리면서도 빠른 섭선.
나비같이 너울거리면서도 벌처럼 강맹한 한 수를 놓는다.
휘익.
나의 손과 발. 그로 인해 만들어진 부채의 춤은 바로 선무 扇舞.
그 선무에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의 선무에 자연이 반응한 것이다.
파락!
그리고 나비가 다가왔다.
천마신교에서는 보기 힘든 자연과 어울리는 부드러운 유공 流功.
“와아.”
들려온다.
아이들의 감탄 소리가.
그래 녀석들아.
나의 모습은 멋질 것이다.
휘릭!
“와아!”
후후.
느껴졌다.
아이들의 선망 어린 시선.
그에 흥취 興趣가 오른 내가 계속해서 선무를 이어 나갔다.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그러면서 빠를 때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팔락!
팔이 움직이고.
휙!
부채가 움직인다.
부채가 나이고 내가 곧 부채였으니.
신선합일 身扇合一.
몸과 부채가 하나가 되었다.
팔락!
휘이익!
찌르르!
나비는 물론 이제는 새까지 나에게 다가왔다.
나의 기운과 자연이 만나 만들어진 푸르른 바람.
정순한 마기로 인해 일어난 바람은 자연의 벗인 이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었다.
그렇게 잠시 후.
나의 선무 扇舞는 끝이 났다.
“하아.”
선무가 끝이 나자 엄청난 허무감이 나를 덮쳤다.
그 허무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추고 싶었다.
하지만 무리다.
“…….”
나의 전신에서 비가 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나의 단전에는 더 이상 정순한 내공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제법 무리하고 말았다.
제대로 된 수련을 하기 전 몸을 푸는 지금 이 시간에 왜 내공을 전부 사용해 가며 무리를 했냐고?
그 이유는 바로…….
“와아!”
서은설 때문이었다.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서은설의 밝은 목소리에 힘든 것을 숨기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착!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그러고는 멋들어지게 부채를 접은 다음 절도 있게 또 정중하게 서은설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 너무 멋있는 거 같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나의 과장된 인사.
존대가 섞인 나의 인사에 서은설이 맑게 웃으며 존대로 인사를 받아 주었다.
서은설.
나의 인생의 반려자. 나의 영혼의 짝은 어릴 때부터 이렇게나 맑고 순수했다.
아.
우리 은설이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