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제50장 눈물 淚
“날이 좋군.”
“예.”
깊은 밤.
모두가 잠든 깊은 시각에 홀로 처소를 나선 천마의 물음에 일살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고개를 살짝 끄덕인 천마.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스윽.
그러고는 유유히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일살.”
“예.”
지존인 천마의 부름.
그의 부름에 일살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사황. 그자의 경지는 어떤 것 같았나?”
“강했습니다.”
천마의 물음에 일살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너무나도 솔직한 일살의 대답.
그의 대답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인정했다.
사황 邪皇 백리관.
자신의 벗인 그는 강해졌다.
자신이 긴장할 정도로 말이다.
“요새. 너무 나태해진 것인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쁨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
최근 삼 년은 천마인 위관악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신선한 시간이었다.
관심 없던 한낱 여자.
자신의 부인인 천소화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저, 자신의 뒤를 아이.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던 자신의 아들 위극신이 신경 쓰이고 챙기게 되었다.
그리고 위극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나날이 나아가는 무예 실력을 보여 줄 때마다 자신이 뿌듯했다.
천마의 위치에 올랐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그 뿌듯함 말이다.
그런 쓸데없는 감정에 허우적대다 보니 결국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천마는 그대로였다.
강해지지도 약해지지도 않았다.
“…….”
하지만, 자신의 벗이자 호적수인 사황은 강해졌다.
그리고 자신과 비등할 정도로 강했던 무림맹주 창천검황 蒼天劍皇은 더 강해졌을 것이다.
허면 자신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구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아야 할 자신이다.
천마신교의 교인들에게 있어서 신과 같은 자신이었고, 그에 맞는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
헌데 쓸데없는 감정에 빠져 그 책임감을 외면하다니?
“…….”
가만히 달을 올려다보던 천마의 두 눈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우웅.
점점 거세어져 가는 천마의 기운.
그 기운에 일살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시간이 헛되다니요. 그 귀중한 시간 동안 지존께서는 대부인을, 그리고 대공자님과 이공자님을 돌아보게 되지 않았습니까.”
대부인 천소화, 대공자 위극신, 그리고 이제 네 살이 된 이공자 위천.
자신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다.
가족 家族.
그래. 그들은 자신의 가족이었다.
‘멍청한 놈!’
‘똑바로 하란 말이다!’
‘네놈 때문에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느냐!’
표독한 눈빛으로 자신을 다그치던 어머니.
‘멍청한 놈.’
‘약한 놈.’
‘쓸데없는 쓰레기구나.’
‘저 녀석은 도태되겠군.’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며 무시하던 형들.
‘…….’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아버지까지.
그들과는 다르다.
천소화, 위극신, 위천.
이들은 자신의 진정한 가족들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들 때 늘 함께 있어 주는 존재.
어떠한 경우에도 늘 곁에 있어 주는 존재.
외롭게 하지 않는 존재.
그것이 자신의 가족이다.
이십 년 전.
자신을 끔찍이도 괴롭히던 가족들은 가족이 아니다.
욱씬!
어깨가 아파 왔다.
“…….”
과거를 회상하니 느껴지는 어깨의 고통에 천마가 조용히 웃옷을 벗었다.
그러자 하늘 위에 유유히 떠 있던 달빛으로 인해 세상에 드러났다.
끔찍한 흉터가 가득한 천마의 상체가 말이다.
“지존…….”
갑작스레 웃옷을 벗은 천마의 행동에 당황한 일살.
그는 끔찍한 흉터를 지니고 있는 천마의 모습에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일살.”
“네.”
끔찍한 흉터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낮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일살이 대답했다.
“어떠하냐?”
“…….”
마치, 물건을 보여 주고 감상을 묻는 듯한 천마의 물음에 일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만 나오시오.”
그때, 천마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쉬이익.
차착.
천마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불어온 바람.
그 바람에 높게 뻗어 있던 대나무잎이 흔들렸다.
그리고.
저벅.
“미안해요.”
대나무들 사이로 천소화가 걸어 나왔다.
“저는 이만.”
천소화가 나타나자 일살은 예를 차리며 고개를 숙인 다음 물러났다.
“…….”
천마는 자신의 부인을 바라보았다.
눈웃음이 너무나도 매력적인 아름다운 여인 천소화.
그 눈웃음이 너무나도 좋았던 천마였다.
하지만. 지금의 천소화는 매력적인 그 눈웃음을 보여 주지 않았다.
“어떡해…….”
커다란 두 눈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저벅. 저벅.
손을 들고 천마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천소화.
천마는 그런 천소화를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천소화는 천마의 앞에 도착했다.
스윽.
천마의 앞에 당도한 천소화.
그녀가 들고 있던 손으로 천마의 끔찍한 상처를 쓸어 넘겼다.
“많이 아팠겠어요.”
그동안 몰랐다.
천마와 억지로 관계를 맺었을 때 항상 불을 끄고 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설마 이러한 이유가 있을 줄이야.
예상도 하지 못했다.
“천마의 위에 앉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당연하다.”
“그래서…… 그래서…… 극신이가 그렇게 다쳐도 신경 쓰지 않았던 거군요.”
“녀석은 나의 뒤를 이을 아이니까.”
천소화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천소화가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위극신이 다쳤을 때 천소화 다음으로 분노하는 이가 마의 윤무진이 아닌 천마 위관악이라는 것을 말이다.
“언제예요?”
“…….”
천마의 상처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천소화가 묻자 천마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는 천소화의 손길이 너무 부드러웠던 것이다.
“그거 아나?”
“무엇을요?”
갑작스러운 천마의 물음에 천소화가 대답했다.
의문이 담긴 천소화의 눈빛.
천마는 그런 천소화의 눈빛이 사랑스럽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에 입을 열었다.
“내 상처를 보고 만진 존재는 그대가 처음이라는 것을.”
“……영광이네요.”
천마의 말에 잠깐 당황한 천소화.
그녀가 슬픈 표정으로 상처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그에 천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싶었다.”
“…….”
“나는…… 어머니를 죽였다.”
“…….”
천륜 天倫을 저버린 패륜 悖倫의 행동.
배 아파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를 죽였다는 천마의 말에 천소화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천마의 상처를 쓰다듬은 천소화가 입을 열었다.
“왜요?”
침착한 천소화의 물음.
그 물음에 천마가 입을 열었다.
“안 그러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
“그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
“그리고, 죽어 가던 그녀는 나를 향해 왜 그랬냐고. 이러면 너는 천마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지. 그녀는 그렇게 죽을 때까지 내가 천마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 집착했다.”
“…….”
천마의 입에서 나온 비극적인 말.
그 말에 천소화가 두 눈을 꼭 감았다.
“그에 나는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형제들을 죽였다. 나를 쓰레기라 칭하던 큰형. 제 어미를 닮아서 건방지다던 둘째 형. 경멸하던 첫째 누이.”
“그만.”
계속해서 나올 것만 같은 천마의 말을 천소화가 끊었다.
와락.
그러고는 천마를 안았다.
갑작스러운 천소화의 포옹에 당황한 천마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스윽.
“힘들었겠어요.”
자신의 등을 쓰다듬는 천소화의 부드러운 손길에 천마의 두 눈가가 떨려 왔다.
“이 상처. 당신의 어머니가 한 것인가요?”
“그렇다.”
천마의 대답에 천소화가 두 눈을 꼭 감았다.
천마의 흉터.
그 흉터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살펴본 천소화는 알 수 있었다.
이 흉터들이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뜻은 어릴 때부터 이런 학대를 받아 왔다는 뜻이다.
천마라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말이다.
“어머니와 형제를 죽인 나는 거리낌이 없었다. 가족의 목숨도 내가 처리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소중했을까?”
“…….”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강해졌고 또 강해졌으며 결국. 천마가 되었다.”
“그만…….”
“천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이 말랐다. 어머니가 그토록 원했던 천마. 그 자리에 올랐는데 나의 갈증은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만…….”
“그래서 전쟁을 일으켰다.”
“그만해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천마의 말.
그런 천마의 말에 천소화가 결국 소리쳤다.
천소화의 소리침에 입을 다문 천마.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향기로운 천소화의 냄새가 느껴졌다.
그에 머리가 차분해지는 것을 느낀 천마가 팔을 들어 천소화를 떼어 내었다.
“흑흑…….”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여인 천소화.
그녀를 바라보며 천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대가 우는 것이지?”
“당신이 너무 불쌍해서.”
불쌍하다.
처음이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내가 불쌍한 건가?”
“자신이 불쌍한 것조차 모르는 당신이 너무나도 불쌍해요.”
“…….”
동정심은 원하지 않는다.
불쌍함이라는 감정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은 위대한 천마.
천마신교의 지존이다.
“나는…….”
“이제 그만해요.”
“……?”
천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연 천소화.
그녀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만이라니?
아…… 자신과 그만하자는 뜻인 것 같았다.
그래.
그것이 맞다.
자신은 어머니와 형제를 죽이고 전쟁을 일으킨 희대의 마두였으니 말이다.
자신 때문에 수백, 아니 수천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 무거운 피의 무게.
그녀가 함께 질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현명하다.
이제 그만하는 것이 맞겠지.
“…….”
천마가 아무 말 없이 천소화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래. 그녀를 보내 주어야겠다.
그녀가 원하고 원하던 고향. 중원으로.
그렇게 천마가 생각을 정리한 찰나!
덥석.
떨어져 내려가던 자신의 손에서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
갑작스러운 온기에 천마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손을 잡은 천소화를 바라보았다.
“당신을 그만…… 불행하게 만들어요.”
“…….”
자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슬퍼해 주는 천소화.
그녀의 말에 천마의 두 눈가가 다시 떨려 왔다.
“당신은 이제 속죄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면 돼요.”
뭘까.
왜 눈이 뜨거워지는 것이지?
두 눈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천마는 당황스러웠다.
“우리 함께해요. 당신의 인생에서.”
주륵.
“아…….”
이상하다.
왜 볼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일까?
뚝.
그리고 자신의 턱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깜빡.
자신이 두 눈을 감자 눈에서 또 무엇인가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것은 무엇이지?
괴사 怪事다.
어찌 눈에서 이런 것이……?
스윽.
그때.
천소화가 손을 들었다.
스윽.
그러고는 자신의 볼을 잡고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울지 말아요.”
“아…….”
그렇다.
천마 天魔 위관악.
그는 갓난아이 이후.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