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제48장 비마각 備魔閣 (1)
“가거라.”
“아 형! 이것만 보자니까!”
“가라고 인석아! 나 바빠!”
비마각의 최상층에 위치한 집무실.
오늘도 평화롭게 업무를 보던 마뇌는 인상을 찌푸리며 불청객에게 말했고, 불청객인 사마천은 집무실 탁자 위에 위치한 도자기를 만지며 소리쳤다.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는 자신의 동생을 보며 마뇌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사마천을 노려보았다.
“나 바쁘다고 했다.”
“아이 참, 당연히 알지, 총군사라는 위치에 앉은 우리 형님. 얼마나 바쁘겠어?”
“잘 알면 가라고.”
“바쁜 형님이 동생의 얼굴도 못 보니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런 형이 걱정된 동생이 직접 보여 주러 온 거야. 얼마나 고마워? 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돼. 쑥스러우니까.”
“하아…….”
자신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는 동생의 모습에 마뇌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군사님!”
그때.
문밖에서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마뇌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벌컥!
“군사님! 제가 왔습니다! 푸하하!”
마뇌는 절망했다.
총군사인 자신의 집무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쩌렁쩌렁하게 웃는 덩치의 사내.
바로 나이답지 않은 거구를 지닌 구양적의 등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군사 어르신.”
“실례하겠습니다.”
“…….”
예를 차리는 야율 남매, 자기 아비를 닮아 싸가지가 없는 단진까지.
그들의 등장에 마뇌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허리에 손을 얹고 있는 구양적을 바라보았다.
“바쁜 것 안 보이나?”
“푸하하! 보입니다! 오늘도 우리 군사님은 멋집니다!”
자신의 물음에 눈치 없이 대답하는 구양적을 보며 마뇌는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구양적.
그는 더럽게 눈치 없고 쓸데없이 맷집만 강한 짐승. 권마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마 형, 그것은 무엇입니까.”
집무실에 들어서서 조용히 주위를 살피던 야율민은 새하얀 도자기를 들고 있는 사마천에게 다가갔다.
“아 이거? 중원에서 온 백자. 감숙성에서 유명한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생김새가 다르군요.”
사마천의 말에 야율민이 흥미로운 어조로 말했다.
그에 사마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따뜻한 중원에서는 이런 도자기가 많이 쓰이기 때문이지. 지역마다 도자기의 생김새가 미세하지만 조금씩 달라. 각자의 지역에 맞게 개량이 되었기 때문이지.”
“그렇군요.”
사마천의 설명에 야율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동생 야율령을 바라보았다.
“궁금하지?”
“네.”
야율민의 물음에 야율령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야율민은 고개를 돌려 마뇌를 바라보았다.
“하아…….”
그런 야율민의 눈빛에 한숨을 내쉰 마뇌.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만져 봐라.”
“감사합니다!”
마뇌의 허락에 야율민은 고개를 넙죽 숙여 보였다.
그러고는 사마천에게서 백자를 받아 야율령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자. 천천히 만져 보거라.”
야율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야율령.
그녀가 천천히 백자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백자의 생김새를 확인하기 위해 손끝으로 백자의 모든 것을 확인해 보는 야율령.
그녀의 모습은 자못 신비롭게 보여 구양적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구양적이 고개를 돌려 단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야율 누나는 참 예쁜……?”
단진을 향해 야율령은 참 예쁘다는 말을 하려는 찰나.
구양적은 얼굴을 붉히며 야율령을 바라보고 있는 단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스윽.
“열도 있네.”
손을 들어 솥뚜껑만 한 손을 단진의 이마에 얹었다.
“치워라.”
그런 구양적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린 단진.
그가 살기 어린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에 구양적은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단진을 바라보았다.
“어디 아프냐?”
“아니다.”
“아니기는, 얼굴이 붉고, 열이 나는 것이 꼭 고뿔의 증상이 아니냐?”
“아니라고.”
구양적의 말에 단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부정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 부정에 머쓱해하며 모른 척 입을 다물었겠지만 우리의 구양적은 달랐다.
“마의 할배에게 가자.”
와락.
그대로 단진을 공주님 안듯 안아 든 것이다.
퍼억!
그런 구양적의 행동에 결국 폭발하고 만 단진은 구양적에게 냅다 주먹을 휘둘렀고, 단진에게 일격을 허용한 구양적은 분노 어린 표정으로 단진을 노려보았다.
“걱정해 줘도 지랄이냐!”
“네가 하는 행동이 지랄인 것이다.”
“이 망할 놈이!”
차가운 단진의 말에 너무나도 억울한 구양적.
그가 단진에게 달려들었고, 단진 또한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다 나가!”
마뇌는 너무나도 소란스러운 아이들에게 결국 소리치고 말았다.
“…….”
갑작스러운 마뇌의 호통에 구양적과 단진은 행동을 멈추었고, 야율민은 눈치를 살피며 야율령의 손에 있는 백자를 잡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다…… 나가라.”
분노가 가득한 마뇌의 음성.
그 음성이 집무실에 울리자 모두 움찔했다.
“저도요?”
그때.
그들의 뒤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벽안의 소녀 옆에 서서 자신을 가리키며 미소를 짓고 있는 미소년.
바로 천마신교의 대공자, 위극신이었다.
* * *
군사가 화내는 것은 처음 보네.
녀석들, 도대체 얼마나 속을 썩인 거야?
집무실을 넘어 복도를 울리는 마뇌의 목소리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
그때.
나의 뒤를 따르던 서은설이 불안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화난 거 같은데…….”
“정말 괜찮아.”
“응…….”
서은설을 안심시키기 위해 환한 미소를 지은 나.
그런 나의 말에 서은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의 소매를 잡았다.
아무래도 조금은 두려운가 보다.
그런 서은설의 모습이 귀여웠던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갈까?”
“응.”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서은설.
그에 나는 걸음을 옮겼다.
“다…… 나가라.”
마뇌의 집무실 앞에 멈추어 서자마자 또다시 마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담긴 분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나도?”
“…….”
나의 그 한마디에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진 마뇌의 집무실.
그런 무거운 분위기에 혼자 미소를 지은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뇌, 나도 나갑니까?”
“들어오십시오, 대공자.”
거듭된 나의 물음에 마뇌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어……?”
그런 나의 뒤를 따라오는 서은설.
그녀를 발견한 구양적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이 아이는…….”
“반갑다! 나는 구양적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저 망할 구양적.
저 녀석은 영웅은 호색한이라 칭하며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다.
서은설을 소개시키려던 찰나 먼저 앞으로 나서서 서은설에게 인사를 건넨 구양적.
그런 구양적의 행동에 서은설은 움찔하며 나의 뒤로 숨었다.
“헤…….”
그런 서은설의 모습이 귀여웠을까?
구양적이 변태 새끼처럼 헤벌쭉 웃었다.
이거 참.
퍼억!
기분이 더러웠다.
괴상하게 웃는 구양적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친 나는 아파하는 구양적을 내려다보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이다.”
“…….”
싸늘한 나의 말에 움찔한 구양적.
녀석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어서 오세요.”
구양적이 뒤로 물러서고.
방금까지 싸늘한 기세를 내뿜던 마뇌가 미소를 지으며 서은설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런 마뇌의 인사에 눈치를 살피던 서은설.
꾸벅.
그녀가 나의 뒤에서 나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서은설입니다.”
쏘옥.
그러고는 다시 나의 뒤로 숨어 버렸다.
아…….
너무 귀엽다.
“후후. 대공자와 함께 놀러 나오신 것입니까?”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마뇌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
그에 서은설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주 기어 들어갈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그에 미소를 지은 마뇌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동생인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사황성주님의 막내 제자시다. 예를 갖추도록 해.”
“응.”
“네.”
자신의 동생 사마천, 그리고 이곳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주의를 주는 마뇌의 말에 사마천과 다른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를 잠시.
한숨을 내쉰 마뇌가 다시 입을 열었다.
“먼저 비마각을 둘러보고 오시지요. 그동안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마뇌의 말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에 마뇌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안 괜찮다고 하여도 그러실 것 아닙니까?”
“역시, 본교의 두뇌다우십니다.”
“하하.”
나의 농담에 마뇌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안내해 드려라.”
“알겠어.”
마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마천.
녀석이 앞장서며 입을 열었다.
“제가 소개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대공자님?”
“나야 좋지.”
이 중에서 가장 정상인 사마천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의 뒤에 있는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응…….”
나의 물음에 서은설이 주변을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야율민의 옆에 위치해 있던 야율령을 바라보았다.
“령아.”
“네.”
나보다 세 살 누나이지만 나는 천마신교의 대공자이다.
그렇기에 야율령을 편하게 불렀다.
마치 동생 다루듯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정신적인 나이로는 동생…… 아니 조카가 맞고 말이다.
아무튼, 나의 부름에 야율령이 대답했다.
“이리로 와서 은설이와 함께해 줘.”
이곳에서 유일하게 여자인 야율령.
서은설과 비슷한 나이대이기도 하기에 내가 부탁했고 야율령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서은설에게 다가왔다.
“와…….”
두 눈을 감고 흐트러지지 않은 채 자신에게 다가온 야율령이 신기했을까?
서은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서은설의 앞에 도착한 야율령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손잡아 줄래요?”
야율령의 물음에 당황한 서은설.
그녀가 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령이가 앞이 안 보이거든……. 그래서 은설이가 도와주면 좋겠는데…….”
그런 나의 말에 서은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야율령의 손을 잡으며 당차게 입을 열었다.
“저만 믿어요!”
귀여웠다.
당차게 말하는 서은설의 행동에 야율령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아니에요!”
느낌이 온다.
야율령과 서은설이 아주 친해질 것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말이다.
“저…… 은설 소저, 나도 손을…….”
움찔.
그때, 서은설의 옆으로 구양적이 다가왔다.
두 눈을 감고 손을 내밀며 말이다.
그런 구양적의 행동에 서은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고.
퍼억!
“이런 미친!”
꽈악!
“나가 죽어!”
“꾸에엑!”
나와 야율민, 그리고 단진과 사마천의 주먹까지 구양적에게 꽂혀 들어갔다.
이 곰탱이 자식은 언제쯤 사람이 되려는 걸까…….
너무나도 걱정이 되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