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제46장 따뜻하다 溫 (1)
“오셨습니까.”
어머니에게 가기 전, 잠깐 처소에 들른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마노!”
나의 처소에서 묵으며 마당을 청소하고 있는 추레한 노인.
삼 년 전, 천산에 위치한 한 마을의 촌장이었던 마복이었다.
나의 부름에 마복, 아니 스스로 마노 魔老 라고 불러 달라던 그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다른 공자들이 공자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요?”
마노의 보고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빗자루를 들고 있는 마노를 바라보았다.
“마당 청소는 하시지 말라니까요.”
“늙은이가 무전취식을 할 수 없지요.”
“마노, 마노는 저에게 귀한 손님입니다.”
마을 사람들을 구제해 주었다는 이유로 나를 은인으로 모시기 시작한 마노.
그에게 내가 정중하게 말했지만 그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마당 청소를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그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절정고수를 이렇게 대하다니요. 남들이 보면 저를 욕합니다.”
“그 누가 공자님을 욕합니까? 제가 혼내 주겠습니다.”
“에휴.”
장난스럽게 웃으며 받아치는 마노를 보며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마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마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뭐랄까.
그래, 사랑스러운 손자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으니 말이다.
“푸하하! 마노!”
“구양곰! 어르신이다! 네놈이 대공자님과 같은 줄 아느냐!”
“그래, 멍청한 놈아.”
그때,
저 멀리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고개를 돌리니 우렁차게 웃으며 마노와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구양적과 그런 구양적을 꾸짖는 야율민과 단진이 보였다.
녀석들.
정말 개성이 강한 놈들이다.
한 놈은 거대한 덩치에, 한 놈은 앞머리로 얼굴 반을 가린 신비한 미남, 그리고 한 놈은 그냥 평범한 인상의 청년.
그런 녀석들을 보며 미소를 짓던 나는 푸헤헤거리며 달려온 구양적을 바라보았다.
“녀석아, 마노에게 예를 지켜.”
“공자나 지키시오! 푸하하!”
“나랑 너랑 같냐!”
“같지요! 설마…… 공자는 달려 있지 않은 것이오?”
놀란 표정으로 나의 바지춤을 내려다보는 구양적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야율민을 바라보았다.
“야룡아.”
“알겠습니다.”
퍽.
역시 야룡이다.
나의 부름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야율민이 구양적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그에 구양적이 두 눈에 불을 켜며 야율민을 노려보았다.
“공자님에게 예의를 지켜라.”
하지만 반응은 옆에 있던 단진에게서 나왔다.
한여름에도 온몸에 오한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단진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찔끔한 구양적이 은근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마노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편하게 마노라고 부르세요.”
“알겠어요, 마노!”
에효.
마노가 괜찮다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노라 칭하는 구양적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저놈은 연구 대상감이다.
아무리 때려도, 아무리 혼내도 말을 들어먹지 않으니 말이다.
아버지인 천마가 지나가듯이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의 이장로인 권마.
즉 구양적의 아버지를 죽을 때까지 팬 적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고 천마는 포기했다고 했다.
마도의 지존인 천마마저 포기하게 만든 권마.
그와 마찬가지로 그의 핏줄인 구양적은 천마의 핏줄인 나에게 있어서 아주 큰 적이었다.
망할 놈.
“공자님, 이제 일정이 어떻게 되십니까?”
“어머니에게 가려고.”
“아…….”
단진의 물음에 내가 가볍게 대답하자 녀석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게…… 최근에 벽에 부딪혔습니다.”
“벌써?”
이 괴물 같은 자식.
열세 살의 나이에 완숙한 이류가 되려고 한다고?
괴물 같은 놈을 보며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단진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 공자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내 덕분이기도 하지 않느냐.”
“닥쳐라.”
좀 전의 쑥스러움은 온데간데없이 야율민의 말에 정색을 하는 단진.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단진. 이 녀석은 이중인격 二重人格이다.
나의 앞에서는 잘 웃는 미소년의 인격, 나머지 인물들 앞에서는 차갑기 그지없는 냉소년 冷少年 인격이 튀어나온다.
이놈도 구양적 못지않게 신기한 놈이다.
그런 단진의 차가운 정색에 야율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찼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공자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니, 제가 모시겠습니다.”
야율민의 말에 옆에 있던 단진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꺼져라, 얼음.”
“비켜라, 야룡.”
녀석들, 오늘도 사이가 좋다.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녀석들을 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푸하하! 그럼, 나를 모시거라!”
“닥쳐!”
“꺼져!”
구양적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치는 두 명.
그런 두 명의 욕설에 구양적은 기분 좋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후후.”
마노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사마 공자가 안 보입니다.”
가만히 미소를 짓고 있던 마노의 물음에 야율민이 입을 열었다.
“사마 형은 비마각에 갔습니다.”
“비마각에요?”
“네, 사황성에서 가지고 온 선물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야율민의 대답에 마노가 고개를 끄덕였고 가만히 있던 구양적이 두 눈을 반짝였다.
“혹, 중원의 물건도 있는 것이냐?”
“사황성이 감숙성에 위치해 있는데 당연히 중원의 물건이지 서역의 물건이겠느냐? 뇌에도 근육이 쪘냐?”
“푸하하! 그렇군!”
야율민의 비방 어린 대답에 구양적은 소리 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뭐.”
반짝거리는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구양적.
심히 부담스러운 녀석의 눈빛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에 구양적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공자, 비마각에 갑시다.”
“싫어.”
“아 공자!”
“아, 절로 가.”
“싫소, 일로 올 것이오.”
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구양적.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주먹을 들었다.
움찔.
“하핫, 역시 저기로 가는 것이 좋지, 공자 여기였소? 조금 더 뒤로 가오리까?”
올라오는 나의 주먹에 움찔한 구양적이 황급히 물러나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비마각에 가라, 나는 어머니의 처소에 갈 것이니.”
“같이 가겠습니다.”
나의 말에 단진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혼자 갈 것이다.”
“네…….”
나의 정색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단진을 보며 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마노를 바라보았다.
“마노.”
“네, 공자님.”
“유화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지요?”
내가 처소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나와서 나를 반겨 주는 유화.
그녀가 없는 것을 상기하며 묻자 마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함께 자리를 하나 보군요.”
“대부인이 유화를 많이 아끼시지 않습니까.”
나의 말에 마노가 웃으며 말했다.
맞다.
어머니는 유화를 아주 좋아했다.
마치 친딸처럼 말이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우리 은설이 보러 가야겠다.
“공자! 비마각에 갑시다!”
“닥쳐라 구양곰!”
“공자님을 모시고 싶다…….”
뒤에서 들려오는 녀석들의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한 나는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공자!”
“구양곰!”
“공자님…….”
아 진짜.
더럽게 질척거리네.
* * *
“어서 오세요.”
대부인 천소화의 거처.
그곳에 들어선 백리진은 자신의 귀로 들려오는 따뜻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
그리고 감탄했다.
비단결과도 같은 아름다운 긴 머리칼에 백옥 같은 피부와 경계심을 허물어트릴 정도로 귀여운 눈웃음.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백리진은 감탄하면서도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백리진이라고 합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사황성에 꽃이 있다고 하더니…… 과연 허언이 아닙니다.”
그런 백리진의 인사에 천소화는 정중하게 그리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황성의 아름다운 꽃.
그 아름다움에 반해 다가간 사내들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여 불린 적화 赤花.
바로 백리진의 별호였다.
그런 천소화의 말에 백리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매력적인 천소화의 두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무림 제일의 재녀 才女라고 불리던 대부인을 이렇게 직접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천마와 혼인하기 전.
중원의 모든 남성들의 가슴을 일렁이게 만들었던 재녀 천소화.
백리진의 칭찬에 천소화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다 과거 이야기지요.”
“지금도 충분히 매력적이십니다.”
“백리 소저도 마찬가지예요.”
사심 없이 진심으로 서로에게 감탄하며 말을 하는 두 여인.
천소화와 백리진은 그런 서로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시작이 좋았다.
어쩌면…… 좋은 관계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안녕하세요.”
백리진의 옆에 눈치를 살피며 서 있던 서은설이 천소화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서은설의 인사에 싱긋 미소를 지은 천소화.
그녀가 서은설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러고는 서은설의 두 손을 잡았다.
“예쁜 아이구나.”
푸른색의 신비한 두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소화가 말하자 서은설이 얼굴을 붉혔다.
그러고는 시선을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대부인도 아름다우세요…….”
붉어진 서은설의 얼굴과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에 천소화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매일같이 무표정한 유화를 보다가 이렇게 밝은 아이를 보니 또 좋구나.”
“송구합니다.”
그런 천소화의 말에 뒤에 시립해 있던 유화가 고개를 숙였다.
그에 천소화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삐진 거 아니지?”
“설마요?”
“삐졌네.”
“네, 그렇다고 하시지요.”
천소화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유화.
백리진은 허물없이 지내는 천소화와 유화를 보며 두 눈을 빛내었다.
정파 무림의 주인인 천진의 딸인 천소화야 그렇다 치더라도, 마교…… 아니 천마신교의 인물인 유화가 저렇게 허물없이 행동하다니.
상당히 놀라웠던 것이다.
“대부인, 일단 손님들을 앉히시는 것이…….”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위무사.
지화가 천소화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지화의 말에 천소화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고, 이내 황급히 입을 열었다.
“내 정신 좀 봐. 어서 앉으세요.”
“실례하겠습니다.”
그런 천소화의 권유에 백리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다음 천소화가 권한 의자에 앉았다.
“아가도 앉으렴.”
“서은설입니다.”
천소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서은설.
그녀가 천소화의 두 눈을 보며 말했다.
그에 천소화는 특유의 매력적인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 은설아.”
“헤헤.”
따뜻한 천소화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서은설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천마신교.
사람들은 이곳을 무서워했지만 자신은…… 이곳이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