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제45장 친구 親友
“왔나.”
천마신교의 본전에 위치한 천마대전.
그곳에 위치한 태사의에 앉아 있던 천마는 대전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백리관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벗임에도 불구하고 귀찮다는 듯한 천마의 인사에 백리관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렸다.
“오랜만이다! 내 친구!”
“꺼져라.”
“쩝.”
그런 백리관의 행동에 정색을 하며 욕설을 내뱉은 천마.
그런 천마의 행동에 백리관은 입맛을 다시며 팔을 내렸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그때, 백리관과 함께 대전에 들어선 위극신을 보며 천마가 노고를 치하했고, 위극신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천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일행들은?”
“먼저, 지마궁에 위치한 영빈각 迎賓閣에 모셨습니다.”
“잘했다.”
“아닙니다.”
천마의 말에 위극신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호오…….”
그런 부자지간을 바라보던 백리관.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태사의에 앉아 있는 천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정말 아들을 좋아하는구나?”
“…….”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묻는 백리관의 모습에 천마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그에 위극신은 천마에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소자는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눈치껏 빠지겠다는 뜻이었다.
그에 천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백리관은 그런 위극신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따가 보자.”
“네, 숙부님.”
그런 백리관의 인사에 위극신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위극신이 물러가고 둘만 남게 된 천마와 백리관.
백리관은 아직도 태사의에 눕다시피 앉아 있는 천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려오지? 목 아프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올려다보는 것은 당연하다, 참아라.”
백리관의 말에 천마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그런 천마의 대답에 백리관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내려 줄까?”
“내릴 수는 있고?”
도발적인 백리관의 언사에 가볍게 응수한 천마.
그런 천마의 말에 백리관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거기, 검 집어넣어라.”
일렁.
백리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마의 뒤에 위치한 빈 공간이 일렁였다.
천마의 수신호위인 일살.
백리관의 경고에 그만 은신에 집중하던 그의 내기가 흔들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일살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천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멍청한 놈.”
초절정 경지답지 않게 실수한 일살을 탓한 것이다.
그런 천마의 말에 일살은 은신을 풀고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송구합니다.”
“모두 물러나.”
“하지만…….”
“물러나.”
천마의 강압적인 명령에 일살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동생들에게 눈치를 주고는 함께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나고.
천마는 백리관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온 거냐?”
“너, 색목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지.”
“당연하지.”
천하의 중심인 명나라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신강.
서역과 명나라의 사이인 신강에 위치한 천마신교는 중원보다는 오히려 서역의 나라와 교역을 많이 했고, 또 그러한 교역으로 인해 깊은 이윤을 남겨 재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단일 세력인 천마신교가 중원 전복이라는 거대한 꿈을 꾸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뛰어난 무력과, 명나라 황실에 버금가는 금력, 그리고 종교라는 매개체로 인한 단합력이 있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의 진정한 힘은 중원 정파와 사파는 물론 하늘의 아들이라는 황제 또한 긴장할 정도로 강성했다.
아무튼, 백리관의 물음에 천마는 가볍게 대답했고 그에 백리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막내 제자가 색목인이다.”
“들었다. 푸른 눈을 지닌 아이라지?”
백리관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백리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천마신교는 서역의 대국 大國인 파사국 波斯國 과도 거래를 한다지?”
“가장 귀한 손님들이지.”
서역과의 거래 중 가장 큰손을 맡고 있는 파사국이었기에 백리관의 물음에 천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백리관은 고개를 들어 천마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 제자가 그쪽 사람인 것 같아.”
“근거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에 파사국의 문양이 있더군.”
“그렇군.”
백리관의 설명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걸이라…… 혹시 가지고 있나?”
“제자가 지니고 있지.”
“그렇군.”
“헌데, 삼 년 전, 그 목걸이가 갑자기 혼자서 발광 發光 하더니 이내 반쪽으로 갈라졌어.”
“……?”
갑작스러운 백리관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낱 물건이 저절로 빛이 나고 부서졌다고?
“그리고, 그 반쪽은 사라졌지.”
“진심인가?”
믿기지 않는 기사 奇思에 천마가 묻자 백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어.”
“기이한 일이군.”
진지한 백리관의 말에 천마 또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기이했다.
갑자기 부러진 것도 놀라운데 그 반쪽이 사라졌다.
그것도 스스로?
물건에 발이 달려 있지 않은 이상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너도 보고 싶기도 해서 겸사겸사 온 거야.”
와락.
이어진 백리관의 말에 천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에 백리관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 보고 싶었지, 내 친구?”
“꺼져라.”
“부끄러워하기는.”
콰앙!
“아이코.”
느껴지는 강력한 기세에 백리관이 짐짓 앓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피했다.
그러고는 좀 전에 자기가 서 있던 자리, 박살 난 바닥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바닥 비싸 보이던데.”
천마의 기운으로 인해 깊게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박살 난 천마대전의 바닥.
그 바닥을 내려다보며 백리관이 능글맞은 미소를 짓자 천마는 일그러진 얼굴 그대로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참아, 그러면 전쟁이야.”
싸늘한 천마의 물음에 백리관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에 천마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백리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본교가 두려워할 것 같나?”
“내가 두려워서 그래.”
천마의 말에 백리관이 짐짓 무섭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천마를 너무나도 여유롭게 상대를 하는 백리관의 모습은 상당히 신선했지만 아쉽게도 대전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자신을 능숙하게 상대하는 백리관을 보며 천마는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재미없는 놈.”
“에이…… 네가 할 말은 아니다.”
“진짜 죽는다.”
“어이고 무서워라.”
콰앙!
그날,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되어 천마대전의 바닥을 통째로 갈았다고 한다.
* * *
“저를 따라오시지요.”
자신을 대공자의 전속 시녀인 유화라고 소개한 아름다운 소녀.
백리진은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유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으로 자신을 대하는 소녀를 보니 이곳이 천마신교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던 것이다.
“언니.”
그때, 가만히 백리진의 옆에 서 있던 서은설이 유화에게 다가갔다.
너무나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서은설의 행동에 백리진이 그녀를 말리려 했으나.
유화가 고개를 돌려 서은설을 바라보며 입을 여는 것이 빨랐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씨.”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말투만큼은 정중하기 이를 데가 없는 괴상한 모습을 보여 주는 유화.
그런 유화의 모습에 백리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무표정한 것이 무서워 보이지만 말투가 너무나도 정중했기에 서은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 판단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유화의 정중한 대답에 서은설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유화의 손을 잡았다.
“언니 예뻐.”
올해 열여섯 살이 된 유화.
그녀는 어느덧 아름다운 소녀가 되어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이 하나의 매력이 될 만큼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던 유화는 서은설의 칭찬에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가씨도 귀여우십니다.”
그리고 서은설의 외모를 칭찬했다.
그런 유화의 칭찬에 서은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유화의 손을 꽉 잡았다.
“정말?”
“네.”
“내 눈이 푸른색이라 이상하지 않아요?”
좀 전에 위극신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들어서일까?
평소에는 낯을 가려 그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던 서은설이었지만 위극신의 칭찬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아니면 이곳 천마신교가 마음에 들었던지 그녀는 계속해서 들뜬 음성으로 물었다.
백리진은 그런 서은설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이다.
“응……?”
서은설의 물음에 유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고, 서은설은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놀란 듯 토끼처럼 동그래진 두 눈.
유화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서은설의 두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두 눈이 제일 예쁩니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말투와 목소리에 담긴 진실한 감정.
그 감정에 서은설은 환한 미소를 지었고 한발 물러서 그 모습을 보던 백리진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유화.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마음은 따뜻한 소녀였다.
그에 마음에 들었다.
“유화 소저라고 했나요?”
“편하게 유화라고 불러 주십시오.”
백리진의 부름에 유화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백리진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유화. 대부인에게 안내해 주시겠어요?”
“네, 대부인에게 모시겠습니다.”
백리진의 말에 유화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런 다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유화 언니.”
“네.”
그런 유화의 옆에.
서은설이 따라 걸으며 아기 참새처럼 계속 쫑알거렸고 유화는 싫은 내색 없이 모두 받아 주었다.
그런 유화를 보며 백리진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참 신기했다.
분명 이곳은 마도 魔道 의 총본부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자신이 보았던 대공자도, 또 장로라던 환마와 그의 직속부대도 마인답지 않게 사람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있는 유화.
그녀도 감정 표현이 서툴고 무표정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심성이 고운 소녀였다.
정말 이들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잔혹한 마인일까?
어린 시절, 그리고 십 년 전 잠깐 이곳에 왔을 때는 삭막한 곳이라고,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헌데 지금 와서 보니 천마신교는…….
따뜻했다.
사람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 자신의 기분마저 좋아지는 것 같았다.
저 앞을 보라.
사황성에서 매일같이 죽을상을 하고 그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던 서은설이 저렇게 환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은가.
백리진은 환한 미소를 짓는 서은설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자신의 첫사랑 천마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 * *
“오라버니.”
“그래.”
지마궁에 위치한 천소화의 거처.
방 안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천소화의 부름에 무림맹 武林盟 에서부터 함께한 호위무사, 지화가 대답했다.
“백리진이라는 소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사황의 소문은 아느냐?”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지화의 물음에 천소화가 대답하자 지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패천황 覇天皇 백리관.
그는 사파의 지존이지만 유쾌한 성격과 사파인답지 않은 협객으로 정파의 원로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사내였다.
물론, 젊은 무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호쾌한데다가 사람이 좋고 협을 따르니 사중협 邪中協 이라 하며 그를 존경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패천황의 여동생이라면 분명 나쁘지 않은 성격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에 지화가 입을 열었다.
“나쁜 여인은 아니겠지.”
“그건 그렇겠지요.”
지화의 대답에 천소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
천소화의 물음에 지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리이겠군요.”
“많이 외로우냐.”
대답 없는 지화의 행동에 천소화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자 지화가 물었다.
그런 지화의 물음에 천소화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허면…….”
“그냥…… 이곳에 와서 친구라는 존재는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천소화를 보며 지화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에 밝은 모습을 보여 주어 걱정을 덜었는데 이렇게 외로움을 느낄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라버니도 외로우시죠?”
“아니, 나는 괜찮다.”
천소화의 물음에 지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짓말.”
“진심이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천소화의 사과에 지화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에 천소화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그런 천소화의 사과에 지화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짓고 있는 천소화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천소화는 알까.
그녀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