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제43장 사황의 방문 訪問
“스승님! 저것 보세요!”
네 마리의 말이 끌고 있는 화려한 사륜마차.
고급스러운 외부답게 내부 또한 고급스러운 마차 안에서 한 소녀가 창밖을 가리키며 흥분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런 소녀의 소리침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미남자.
그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기하더냐?”
중원에서는 보기 힘든 서역의 비단을 입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신기한 물건들.
그리고 틈틈이 보이는 색목인들까지.
자신이 사는 중원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광경에 신기해하는 소녀를 향해 미남자가 웃으며 묻자 소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호호, 좋아하는 은설이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구나.”
그런 소녀의 모습에 가만히 앉아 있던 아름다운 여인이 소리 내 웃었다.
그에 은설이라 불린 소녀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이곳에서 제 부모님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소녀의 기대감 어린 물음에 여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소녀의 옆에 서서 창밖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보거라.”
“…….”
여인의 가리킴에 가만히 고개를 돌린 소녀.
소녀는 여인의 손끝에 위치한 수많은 색목인들을 바라보았다.
갈색의 머리칼, 또는 금색의 머리칼.
새하얀 피부색도 있었으며 중원인들과 달리 검은색의 피부를 지닌 자도 있었다.
그런 색목인들을 바라보며 소녀는 흥분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 소녀의 모습에 여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곳에서의 너는 평범한 아이란다.”
“…….”
소녀, 아니 중원인들과 달리 푸른색의 눈 碧眼을 지닌 색목인 서은설 徐恩設은 자신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하는 여인, 백리진의 말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색목인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힘들었던가.
자신이 지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수군거렸고,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꺼려 했다.
단지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리고 뒤에서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았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자신이 괴물이라니?
자신은 그들과 다름없는 인간인데 말이다.
아직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인 서은설에게는 그런 언행 하나하나가 상처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위축되어 있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스승 백리관과 그의 누이 백리진이었기에 눈물을 흘리는 서은설을 아무 말 없이 안아 주었다.
그동안의 서러움에 힘들었을 서은설이 진정이 될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잠시 후.
눈물을 멈춘 서은설이 다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보기 좋은 순수한 미소.
그 미소에 서은설의 스승이자 무림에서 사황 邪皇, 또는 패천황 覇天皇이라 불리는 사파의 지존 백리관 또한 미소를 지었다.
“천마의 아들이 너와 나이가 같다 하더구나.”
“저랑요?”
미소를 짓고 있던 서은설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스승님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런 서은설의 되물음에 백리관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와. 그럼 친구예요?”
“그래. 듣자 하니 친화력이 아주 좋은 친구라더구나.”
“정말요?”
“그래.”
“와아!!”
백리관의 확신 어린 대답에 서은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녀석, 그렇게 좋으냐?”
그런 서은설의 모습에 푸근한 미소를 지은 백리관.
그의 물음에 서은설이 환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미있겠다!”
“헌데 오라버니.”
“그래.”
그런 서은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백리진.
그녀가 문득 백리관을 불렀고 백리관은 인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백리진이 희희낙락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서은설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정말…… 천마신교의 대공자가 친화력이 좋나요?”
“그렇다는구나.”
“…….”
“믿기지 않나 보구나.”
자신의 대답에 어색한 표정을 짓는 백리진을 보며 백리관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백리관의 말에 백리진은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는 관악 오라버니는 재미가 없는 사내인데…….”
“그 친구도 성격이 많이 변했겠지.”
어린 시절.
전대 천마와 전대 사황은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오죽했으면 사파의 본거지인 사황성 邪皇城 을 신강의 옆인 감숙에 지었겠는가?
그 정도로 둘은 절친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의 아들딸 또한 교류가 잦았고, 수많은 천마의 자녀들 중 백리관은 현 천마인 위관악과 가장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백리관은 위관악이 좋았다.
무서운 어머니로 인해 주변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매일같이 수련만 하는 독종이었지만 실상은 순수했고, 또 착했기에 백리관은 매일같이 위관악을 찾아갔었다.
그런 백리관의 정성이 통했을까?
위관악 또한 서서히 백리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고, 그러다 보니 지금도 한 번씩 서찰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백리진 또한 어린 시절부터 위관악과 친하게 지냈고, 그의 성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당장 백리진 자신의 첫사랑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백리관은 보지 못했지만 백리진은 구 년 전 천마의 위에 오른 위관악과 만난 적이 있었다.
잊히지 않는 자신의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가출했던 그 시절.
그때 보았던 천마는 더 이상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사내가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을 벌레의 목숨만큼이나 가볍게 여기며, 자신의 뜻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는 폭군, 냉혹한 살인마.
중원에서 표현되는 마도 魔道의 종주 宗主 천마 天魔 그 자체였다.
그에 얼마나 큰 실망을 했었던가.
“걱정 말거라.”
구 년 전 천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복잡한 표정을 짓던 백리진은 귀에 들려오는 백리관의 목소리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뭐, 일단 가 보면 알겠지요.”
* * *
천마신교의 본전 本殿, 천마궁에 위치한 소교주전.
소교주전 내부에 위치한 네 개의 전각 중 식당으로 사용되는 전각에 위치한 식탁에 다섯 명의 사내가 둘러앉아 있었다.
“푸하하!”
“천천히 처먹어라.”
그중 가장 덩치가 큰 사내가 돼지고기를 손으로 집어 먹으며 괴상한 소리를 내자 옆에 있던 청년이 인상을 찌푸리며 주의를 주었다.
차가운 표정으로 인해 냉막해 보이는 청년.
그의 말에 덩치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푸헤헤!”
그리고 웃었다.
“아이씨!”
덩치의 사내가 웃자 그의 입에 있던 음식물이 튀어나왔고 그에 청년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챙!
그러고는 자신의 등메 메여 있던 두 개의 단창을 뽑아 들었다.
“푸하하! 들어와, 들어와!”
그런 청년의 행동에 사내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주먹을 쥐어 보이며 소리쳤다.
너무나도 소란스러운 둘의 모습에 가만히 앉아 식사를 하던 미청년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찌푸려진 얼굴로 사내와 청년을 바라보았다.
“둘 다 앉아.”
“못생긴 놈은 빠져.”
빠직.
미청년의 말을 빠르게 받아친 청년.
그런 청년의 말에 미청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청년을 바라보았다.
“죽고 싶나?”
“죽여 보든지.”
미청년의 물음에 청년은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헌데 이상했다.
청년은 미청년더러 분명 못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미청년은 절세미남이라고 알려진 반악 또한 미청년에게는 견주지 못할 정도로 미남자이다.
새하얀 피부에 사내답게 시원하게 뻗은 눈썹과 보기만 해도 황홀한 눈동자, 날카로운 턱선과 탐스러운 붉은 입술에다가 왼쪽 앞머리를 길게 길러 왼쪽 얼굴을 가려 신비스러운 분위기까지 연출하고 있었다.
미청년은 절대 못생긴 얼굴이라고 불릴 말한 얼굴이 아니었다.
헌데 왜 청년은 미청년에게 못생겼다고 표현을 하는 것일까?
“야룡아.”
“죄송합니다.”
그때.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 소년의 부름에 움찔한 청년, 야율창가의 후계자인 야율민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그에 소년은 고개를 돌려 덩치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푸하하! 앉으려고 했소이다!”
올해 열 살이 된 구양적.
웬만한 성인보다 큰 덩치를 지닌 구양적은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에 소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미청년을 바라보았다.
“너 안 못생겼다.”
“……감사합니다.”
소년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힌 미청년.
마검단가의 소가주이자 검마의 아들인 단진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소년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두 눈을 감고 차를 음미하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너는 차가 넘어가냐?”
“차는 언제나 옳습니다.”
“내 주먹보다?”
“설마요.”
소년의 웃음기 섞인 물음에 청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에 소년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사황성의 인물들은 어디쯤이라고 했지?”
“아마 오늘 오후에 천산 입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소년, 아니 천마신교의 대공자인 위극신의 물음에 그의 두뇌를 자처하고 있는 사마천이 대답했다.
그에 위극신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천산 입구에는 분명 본교에서 마중을 나갈 것이다.
과연 누가 나갈 것인가?
상대가 사파의 지존이니 장로들 중 한 명이 나가겠지?
“사황의 막내 제자까지 온다고 하더군요.”
멈칫.
그때.
사마천의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딴생각을 하던 위극신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런 위극신의 행동에 사마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공자님……?”
“지금 뭐라 했지?”
“사황의 제자도 온다고…….”
콰앙!
벌떡!
사마천의 대답에 위극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에 사마천을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은 위극신이 다시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제자는 왜? 사황과 그의 누이만 온다고 알고 있는데.”
“대부인께서 서찰을 보낼 때 막내 제자가 대공자와 같은 나이라고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허어…….”
사마천의 보고에 위극신은 탄식을 내뱉었다.
‘미래가 바뀌었다.’
그렇다, 미래가 바뀌었다.
전생에서의 위극신은 열 살이라는 나이에 서은설을 처음 만났다.
헌데 지금 자신의 나이는 여덟 살.
원래라면 지금 이 시기에는 백리진이 스승님과 함께 신교에 찾아오고 그러다 천마와 눈이 맞아 혼례를 올린다.
그러고 이 년 후. 자신의 손에 두 눈을 잃은 위설 때문에 이곳에 찾은 스승님과 그를 따라나선 서은설이 위극신을 만났고 말이다.
헌데 이번 생에서는 지금 서은설이 이곳에 오고 있었다.
전생보다 이 년이나 빠른 지금 이 시점에 말이다.
그에 위극신은 혼란스러웠다.
‘내가 과거를 너무 바꾸었나?’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과거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미래도 바뀌어 버린 것.
“대공자님…….”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이 상황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위극신은 자신을 부르는 사마천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둘째 제자면 벽안의 소녀인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위극신의 물음에 사마천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 사실은 자신 또한 마뇌인 자신의 친형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벽안인 것을 두려워한 막내 제자가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여 사황성 내부에서도 쉬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대공자는 어찌 그것을 알았을까?
그에 위극신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다 모르겠고, 자신의 연인인 서은설이 이곳에 온다.
물론 지금은 어린 여덟 살의 소녀일 것이고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서 인생의 반려자.
회귀를 하였더라도 자신의 짝은 서은설 그녀 한 명뿐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위극신이 몸을 돌렸다.
“대공자님?”
“공자님!”
갑작스레 식당을 나서는 위극신을 보며 나머지 일행 모두가 그를 불렀지만 위극신은 무시했다.
콰앙!
빠른 속도로 식당을 벗어나 문을 닫을 뿐이다.
“…….”
위극신이 나가고 네 명만이 남게 된 식당.
그곳에 위치한 모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걱우걱!
“푸헤헤!”
아, 구양적 한 명 빼고 말이다.
참고로.
구양적이 우걱우걱 먹는 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아직 소주천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화식을 하지 못하는 구양적.
그렇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구양적은 하루에 한 개만 먹어도 충분하다는 벽곡단을 우걱우걱 먹고 있는 것이었다!
* * *
“어쩜!”
오대마가 五大魔家 중 한 곳이자, 유일하게 여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뇌의 비마각 飛魔閣을 도와 신교의 정보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은 음마유가 陰魔柳家.
유려현에 위치한 그곳에서 수많은 여수련생들이 모여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윽.
연못 위 붉은색의 나무로 만들어진 정자.
그곳의 정중앙에 앉아 붓을 놀리고 있는 한 아이.
새하얀 피부에 포동한 볼살.
앙증맞은 영웅건과 백색의 비단옷을 입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에 훗날 기녀, 또는 무인, 시인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여수련생들이 입을 막으며 그 모습을 감상했다.
“너무 귀여워!”
“저 볼살 봐!”
“꺄악!”
천마신교의 이공자이자, 뛰어난 미적 감각과 학문으로 신동 神童이라 불리는 위천.
너무나도 깜찍한 그의 모습에 수련생들은 오늘도 힘든 하루를 이겨 내고 있었다.
천마와 천소화의 부탁으로 음마유가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위천.
처음에는 음마유가의 가솔들이 반대했으며 수련생들 또한 탐탁지 않아 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의 위천은 음마유가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다 됐다!”
그런 수련생들의 시선도 모른 채 그림에 열중하고 있던 위천.
그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붓을 내려놓았다.
“아…….”
위천의 미소.
그 미소 한 방에 멍한 표정을 지으며 방심하고 있던 모든 수련생들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새하얀 백지와 같은 순수하고 맑은 미소.
그 미소를 도저히 이겨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수련생들을 한 방에 보내어 버린 위천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었다.
“헤헤.”
그러고는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림 속에는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한 미소년이 그려져 있었다.
이제 네 살인 아이가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하나의 작품.
중원에서 이름을 떨치는 화공 畵工 들이 보았다면 두 눈에 불을 켜며 위천을 제자로 들이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었다.
너무나도 뛰어난 그림 실력을 보여 준 위천.
그가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형아, 보고 싶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매일같이 수련이 끝나고 들러 놀아 주었으며, 이곳에 오게 되자 매일 연통을 보내 주는 자신의 형.
뛰어난 무공 실력과, 활발한 성격으로 모든 마인들의 사랑을 받는 자신의 형을 떠올리며 위천은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 아이.
위천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