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제42장 아버지 父
콰앙!
“뭐냐! 무슨 일이냐!”
드넓은 방 안.
그곳에 위치한 거대한 침대 위에서 세 명의 여인들과 환락 歡樂을 즐기던 노인이 밖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달라이 라마! 웬 괴인들이 습격을!”
그런 노인, 아니 라마승들의 지도자이자 활불 活佛의 환생 還生이라 불리는 달라이 라마는 제자의 보고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성지인 이곳을 감히 누가!”
분노 어린 달라이 라마의 고성에 보고를 하러 온 제자는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서 대피하십시오!”
“활불인 내가 이곳에서 대피하라니! 그 무슨 소리이냐!”
말도 안 되는 제자의 말에 달라이 라마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그에 제자가 다급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습격자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미 외성이 뚫렸습니다!”
“뭐라!”
산 위.
고산지대 高山地帶에 위치한 포달랍궁
새하얀 높은 벽으로 세워진 포달랍궁은 그 누구의 습격에도 방비할 수 있도록 지어진 성지이다.
헌데 그곳이 뚫렸다고?
“어서 피하십시오!”
“그…… 그래!”
멍한 표정을 짓던 달라이 라마는 이어 들려오는 제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다음 황급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옷을 입었다.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라마교의 교리답게 색욕 色慾에 충실하던 달라이 라마.
그가 황급히 옷을 입고 몸을 돌렸다.
콰앙!
“헉!”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저벅저벅.
거대한 굉음이 들리며 자신의 방문이 폭발했고, 뒤이어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에 달라이 라마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옆 벽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자신의 지팡이를 집어 들고는 이곳을 침입한 불청객을 노려보았다.
“누구냐!”
달라이 라마의 소리침에 여인의 머릿결처럼 고운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미남자.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달라이 라마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고혹적인 사내의 자태에 달라이 라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처음이었다.
사내를 보고 음심이 동한 것이 말이다.
“너냐?”
그때, 사내의 입이 열렸다.
사내의 탐스러운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듣기 좋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달라이 라마가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무엇이 말이냐.”
너무나도 매혹적인 사내의 자태에 그만 경계심이 풀어지고 만 달라이라마.
그의 부드러운 물음에 사내가 입꼬리를 내렸다.
“!!”
사내가 입꼬리를 내리자마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일변했다.
고혹적인 사내는 온데간데없고 바라보기만 해도 한기가 돋는 냉막한 사내가 서 있었던 것이다.
그에 달라이 라마는 경악했고, 냉막해져 버린 사내는 그런 달라이 라마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아들 건드린 라마승들의 대장이 너냐고.”
“뭐라……?”
사내, 아니 천마신교의 지존인 천마의 물음에 달라이 라마가 벙 찐 표정을 지었다.
그때, 천마의 옆에 서 있던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달라이 라마의 바지춤을 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기를 잠시, 이내 그가 큰 목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푸하하!! 지존! 저 자식 지존 보고 밑에가 섰…….”
퍼억!
다행히도 그의 말은 끝맺어 지지 못했다.
눈치 빠른 환마가 그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친 것이다.
“환마!”
“닥쳐, 내가 너 살렸어.”
그런 환마의 행동에 권마가 소리쳤지만 환마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권마를 노려보았다.
그에 권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싸늘한 천마의 눈빛에 움찔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
“너는 일주일간 금주禁酒 이다.”
“…….”
술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권마.
그는 천마의 명령에 군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또각, 또각.
그때, 그들의 뒤로 한 여인이 들어섰다.
붉은색 머리칼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
그녀의 등장에 달라이 라마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저렇게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인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지존, 모두 제압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달라이 라마가 침을 꿀꺽 삼킨 아름다운 여인.
천마신교의 오장로 혈화가 천마에게 묻자 천마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해야겠나?”
천마의 물음.
그의 물음에 혈화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군사는 이들을 거두자고 하셨습니다.”
차크라라는 신비한 힘을 사용하며 신기로운 술법을 사용하는 집단, 포달랍궁.
이곳을 거두어들이자고 목소리를 내던 마뇌를 떠올린 혈화가 말하자 천마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다 죽여.”
“네!”
군사인 마뇌의 의견과는 너무나도 다른 천마의 명령에 권마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푸하하! 내가 간다!”
콰앙!
그의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고, 그 폭발음에 달라이 라마가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권마라 불린 거대한 덩치의 사내.
그 사내의 주먹질 한 번에 포달랍궁의 일부가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믿기지 않는 이 상황에 달라이 라마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천마는 그런 달라이 라마를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너는 쉽게 죽지 못할 것이다.”
“끄아아아아!!”
그날 밤.
오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변명으로 죄 없는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던 서역의 포달랍궁은 멸망했다.
단 네 명의 침입자에 의해서 말이다.
* * *
“네가 먼저 만남을 청한 것은 처음이구나.”
천마의 거처인 천마각.
그곳에 들어선 위극신은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천마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걱정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어머니에게 들었다.
아버지인 천마.
그가 매번 다쳐서 돌아온 자신을 걱정했다고 말이다.
물론 자신은 그런 어머니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의상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이 되었고 그렇기에 사과를 건넨 것이다.
그런 위극신의 사과에 천마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대나무로 이루어진 숲 사이의 드넓은 연무장.
달빛 아래 홀로 고고하게 서 있는 천마가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그래, 다른 아이들은?”
“모두 괜찮습니다.”
“구양가의 아이도?”
세 명의 아이들 중 복부가 뚫릴 정도로 큰 중상을 입었던 구양적.
그 아이를 떠올리며 천마가 묻자 위극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간을 초월한 치유력으로 인해 이미 살도 거의 다 붙었습니다.”
라마승들의 습격이 있고 열흘.
단 열흘 만에 거의 다 나았다는 위극신의 보고에 천마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 집안 사람들은 원래 다 그랬다. 정상인 놈들이 없었지. 아무리 패고 고문을 해도 정상으로 돌아가지는 않더구나.”
지금의 권마도, 또 그 전대의 권마도 똑같았다.
괴물 같은 체력과 인간 같지 않은 치유력, 그리고 심각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는 눈치.
그것을 상기하며 천마가 말하자 위극신 또한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의 말이 너무나도 공감되었던 것이다.
“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위극신은 이내 천마의 앞에서 웃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황급히 표정을 지웠다.
그에 천마 또한 웃음을 지웠다.
“…….”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천마가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무엇이냐?”
웃음기가 사라진 천마의 물음에 위극신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너는 충분히 강하다.”
위극신의 말에 천마가 짧게 대답했다.
그에 위극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안다.
자신은 고작 다섯 살이다.
어리디어린 다섯 살.
그 어린 나이에 일류라는 경지에 오른 것은 아마 자신이 고금 古今을 통틀어 처음일 것이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루빨리 천마신교를 바꾸어 나가고 싶은데 자신은 너무나도 약했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인 아이들이 다쳤다.
만약 자신이 조금 더 강했다면?
라마승들을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지녔다면?
아이들은 다칠 필요가 없었다.
전생에서 화경의 경지에 이미 올라섰기 때문일까?
위극신은 초조함을 느꼈다.
지금보다 더, 더, 더, 더 빨리 강해져야 한다는 초조함을 말이다.
그런 위극신의 모습에 천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초조하구나.”
“…….”
정곡을 찌른 천마의 말에 위극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천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너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다.”
매일 밤.
천마의 부름에 이곳으로 와 수련을 하는 위극신.
그 사실을 상기시키며 천마가 말하자 위극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똑바로 들어 천마를 바라보았다.
“천마신공의 정수를 가르쳐 주십시오.”
“…….”
천마신공을 배우다 보니 알게 되었다.
자신이 배우는 천마신공은 그저 기본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그 수련을 탄탄하게 받쳐 줄 기둥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언급하자 천마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위극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찌 알았느냐.”
의문이 가득한 천마의 물음에 위극신이 입을 열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벌써, 전부 이해했다는 뜻이냐?”
“네.”
천마의 놀란 물음에 위극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천마가 가만히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매혹적인 흑안 黑眼.
위극신은 그 흑안을 피하지 않았다.
그에 천마가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늘 그랬다.
자신의 아들인 위극신.
그 녀석은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하며 자신에게 흥미를 주었다.
이러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늘 괜히 눈길이 가는 자신의 아들을 보며 미소를 짓던 천마가 다시 미소를 지웠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불허 不許.”
“교주님!”
천마의 불허에 위극신이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그에 천마가 몸을 돌리고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언성을 높이는 것이냐.”
우웅!
천마의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기운들이 위극신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 기운에 위극신은 신음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호오?”
그러면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괴로워하면서도 억지로 고개를 들어 천마의 적안 赤眼 을 똑바로 바라보는 위극신.
그에 천마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네놈이 미쳤구나.”
우웅!
그와 동시에 위극신을 짓누르던 기운이 강해졌으며 천마의 적안이 진해졌다.
“크으으!!”
그에 위극신은 괴로운 신음을 흘렸지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우웅!
하지만 그것도 결국 끝이었다.
천마가 기운을 더 끌어 올리자 결국 위극신의 고개가 아래로 숙여졌다.
그에 천마는 피식 미소를 지은 다음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그러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꺼져라.”
“…….”
천마의 싸늘한 축객령 逐客令.
그에 위극신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이내.
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움찔.
위극신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라는 단어.
그 단어에 굳건한 바위처럼 흔들릴 것 같지 않았던 천마가 흔들렸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위극신은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있는 천마…… 아니 아버지, 위관악을 올려다보았다.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