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제41장 귀환 歸還
“죽이는군.”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검마를 보며 나는 전율을 느꼈다.
미쳐 날뛰던 라마승들을 단지 기세만으로 제압한 검마.
그의 가공한 내력에 소름이 안 돋으려야 안 돋을 수가 없었다.
푸욱!
“크아악!”
사마천과 야율민의 앞에 위치해 있던 라마승들을 순식간에 죽여 버린 검마.
그가 피가 묻은 검을 밑으로 늘어뜨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변승과 뚱승을 바라보았다.
“히익!”
“끼힉!”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검마의 두 눈동자와 마주한 뚱승과 변승.
그 둘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저벅.
그런 두 명의 행동에 검마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천천히 조금씩 검마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야 살겠군…….’
너무나도 든든한 아군의 등장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
나는 안도와 동시에 풀려 버린 다리를 느끼며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히이익!”
그러고는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겁에 질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변승과 뚱승이 말이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검마의 등장은 나에게 있어서 천군만마와도 같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명부를 부르기 위해 찾아온 저승사자와도 같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겁에 질린 그 둘을 보며 나는 실실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니들 X 됐다.”
고소하다는 듯 내가 말하자 뚱승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끼야아아!”
그러고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변승과 부둥켜안고 있던 그가 나의 앞에 위치한 것이 말이다.
갑작스러운 뚱승의 기습에 나는 당황한 눈빛으로 멍하니 뚱승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늦었다.
이 거리에서 내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뚱승의 날카로운 손톱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에 인상을 찌푸리던 그때!
푸욱!
촤악!
나의 얼굴 위로 붉은색의 피가 튀었다.
그리고.
“끄아아…….”
나의 앞에서 손을 들고 있던 뚱승.
그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허물어졌다.
“괜찮으십니까.”
그런 뚱승의 뒤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뚱승의 복부에서 검을 뽑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검마.
그의 물음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옷소매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더러운 피가 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의 농담 어린 말에 검마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여튼, 재미없는 양반이다.
나의 농담을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말이다.
검마의 진심 어린 사과에 혀를 가볍게 찬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몰려오는 피곤함에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나는 억지로 힘을 주며 몸을 일으켰고, 이내 당당하게 일어설 수가 있었다.
“일장로님.”
“네.”
“저자는 생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검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끼야아아!”
퍼억!
스윽.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던 변승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완숙한 절정의 고수 만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리하게 흘러가던 상황은 초절정고수인 검마의 등장에 순식간에 끝이 났다.
역시, 절정과 초절정의 격차는 엄청났다.
그리고 초절정고수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았다.
전생에서 화경의 경지에 올랐을 때 부족하다고 느껴졌던 초절정.
일류인 지금에서 보니 아주 대단한 경지였다.
“헉!”
그때.
뒤에서 기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두 눈을 크게 뜨며 주위를 살피는 사십 대 초반의 사내가 말이다.
“이…… 이게…….”
그리고 그 사내의 뒤로 보이는 삼백여 명의 사내들.
검은색의 무복에 왼쪽 가슴에 보라색의 구름과 바람 문장이 인상적인 사내들의 모습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의 무력단 武力團 중 한 곳인 흑풍단 黑風團.
그들의 늦은 등장에 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빨리도 오시는군.”
“일장로님을 뵙습니다!”
쿠웅!
그때, 검마를 발견한 흑풍단의 단주.
흑풍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예를 갖추었고, 뒤이어 따라온 단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대공자인 나는 아직 공식 석상에 나선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흑풍단주가 나를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검마는 나의 생각과 다른가 보다.
퍼억!
예를 갖춘 흑풍의 얼굴을 그대로 걷어차 버렸으니 말이다.
사삭!
검마의 발길질에 옆으로 날아간 흑풍.
그가 빠른 속도로 일어나 원위치하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빠릿빠릿한 흑풍의 모습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엄청 아플 텐데도 그 고통을 참고 바로 행동하는 흑풍의 모습이 신기했던 것이다.
“네놈은 뭐 하는 놈이지?”
“죄송합니다.”
싸늘한 검마의 물음.
그 물음에 흑풍은 고개를 숙인 채 그저 용서를 구했다.
퍼억!
그런 흑풍의 행동에 검마는 다시 흑풍의 얼굴을 걷어찼다.
사삭!
그리고, 흑풍은 빠른 속도로 원래대로 돌아와 이전과 같은 자세를 취했다.
터져 버린 입과 삐뚤어진 코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무시하며 말이다.
그런 검마와 흑풍을 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이 마인들이 모인 천마신교라는 것을 말이다.
“대공자가 다칠 뻔했다.”
“!!”
피를 흘리던 흑풍.
그가 검마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대공자님이 말입니까……?”
이곳에 내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흑풍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검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비틀었다.
검마가 몸을 비틀자 그 빈틈 사이로 보이는 나.
흑풍이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순수하고도 순수한 나의 인사.
그런 나의 인사에 흑풍의 두 눈동자가 더 커지기 시작했다.
거참, 저러다가 눈알 튀어나오겠다.
아무튼, 나의 인사에 놀란 것도 잠시 흑풍이 황급히 나의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흑풍단의 단주 흑풍! 대공자님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흐음…….
천마신교 내에서 아무리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대공자라 하더라도 역시 간부급인 흑풍에게 나는 아무래도 대단한 존재인가 보다.
그러니 이렇게 과하게 용서를 구하지.
“괜찮습니다.”
아무튼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흑풍에게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흑풍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피, 그리고 찢어진 옷가지.
그에 흑풍이 경악했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이 정도 상처야 뭐…….”
깊은 상처도 없는 얕은 자상이었다.
어쩌다 보니 많이 다쳐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괜찮다는 듯 말했지만 흑풍의 눈에는 아니었나 보다.
콰앙!
“죽여 주시옵소서!”
이마를 바닥에 강하게 내려찍으며 용서를 구하니 말이다.
“괜찮다니까…….”
“죽여 주시옵소서!!”
괜찮다는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용서를 구하는 흑풍.
그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죽여 버릴까…….
“푸하하!”
그때, 옆에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나는 흑풍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고개를 돌렸다.
“!!”
그러자 보였다.
복부에 검이 틀어박힌 채 앉아 있는 구양적이 말이다.
나의 시선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구양적.
그가 입을 열었다.
“다 떠나서 나부터 치료해 주면 안 되오……?”
저 곰 새끼.
몸에 검이 박혔는데도 멀쩡하다.
정말 연구 대상이었다.
마의 어른과 상의를 해 보고 저 녀석을 필히 연구해 보겠다고 다짐한 나는 구양적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야율민을 바라보았다.
“들어.”
“…….”
“어서.”
나의 말에 거북한 듯 인상을 찌푸리는 야율민.
그가 이어진 나의 말에 싫다는 표정으로 구양적을 안아 들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안듯 앞으로 말이다.
어쩔 수가 없었다.
뒤로 업는다면 구양적의 몸에 박힌 검이 야율민의 등을 찌를 테니 말이다.
“푸하하!”
아무튼, 야율민이 자신을 안아 들자 재미있는지 구양적이 소리 내어 웃었다.
“닥쳐라 구양곰.”
“푸하하!”
야율민의 욕설에도 굴하지 않고 말이다.
* * *
“대공자는?”
“큰 상처가 없으시기에 치료는 금방 끝이났고, 따뜻한 탕약을 한 잔 먹고 잠이 드셨습니다.”
모든 마인들이 치료를 받는 마의각.
지마궁에 위치한 마의각을 찾은 천마의 물음에 마의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천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침상에 누워 있는 위극신에게 다가갔다.
“…….”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잠에 빠져 있는 위극신.
아직은 어리디어린 위극신이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에 천마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얕은 자상일 뿐입니다.”
불편한 천마의 기색을 느낀 마의가 황급히 천마에게 알려 주었고, 그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복부에 붕대를 감고 잠을 자고 있는 두 명의 어린 소년, 그리고 기절해 있는 두 명의 소년.
천마는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검마의 아들과 권마의 아들. 그리고 창마의 아들과 군사의 동생이다.
자신이 아는 얼굴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아이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천마.
그가 다시 자신의 아들, 위극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잠들어 있는 위극신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또…… 다쳤구나.”
늘 밖에 나가서 다치고만 돌아오는 자신의 아들 위극신.
그런 위극신을 내려다보며 천마는 무감정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절정의 경지와 같은 힘을 내던 라마승과 당당하게 겨루며 버틴 자신의 아들 위극신.
이번에도 자신을 놀라게 하는 위극신을 내려다보며 천마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때.
벌컥!
마의각의 문을 강하게 열어젖히고 한 여인이 들어섰다.
푸른 비단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
“대부인을 뵙습니다.”
바로, 천마의 부인인 천소화였다.
그녀의 등장에 마의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고, 천소화 또한 그런 마의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자신의 아들을 매일 치료해 주는 마의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의에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걸음을 옮긴 천소화.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천마의 옆에 섰다.
“!!”
그런 천소화의 행동에 마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만인지상 萬人之上의 존재인 천마의 옆에 나란히 서다니?
아무리 천마의 여인인 대부인이더라 하더라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극신이는요?”
“괜찮다는군.”
그리고 마의는 또다시 경악했다.
천마의 옆에 서서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묻는 천소화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대답하는 천마의 모습에 말이다.
자신이 아는 천마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물들을 무자비하게 죽여 버리는 냉혹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옆에 선 천소화의 행동을 탓하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는 천소화의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다니?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마의였다.
“또…… 다쳐서 돌아왔군요…….”
잠이든 위극신의 손을 잡은 천소화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하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소화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었다.
“걱정 마라. 내가 다 해결할 테니.”
“어떻게요?”
“모두 다 죽…….”
“죽이지는 마세요.”
“……생각해 보지.”
“!!”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믿기지 않는 광경.
천마가 여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재고하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천마가 말이다!
그 광경에 마의는 게거품을 물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이렇게 헛것이 보이니 말이다.
-윤무진…… 윤무진…….-
아아…… 차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에 마의 윤무진은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