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제39장 악령강림 惡令降臨
“어우, 징그럽다.”
비대한 몸과 달리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는 뚱승의 모습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생각을 해 봐라.
비대한 몸을 지니고 있는 중년 사내의 몸에서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 심지어 정신 나간 광녀 狂女 의 목소리가 튀어나오는데 어찌 소름이 안 돋겠는가?
“끼히히! 맛있는 어린아이구나!”
“어우.”
더 무섭다.
비대한 뚱승의 몸에서 나온 여인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몸서리쳤다.
그러고는 일그러진 얼굴로 뚱승을 바라보았다.
“악령이냐?”
라마승의 술법은 아주 다양하다.
차크라라고 하는 명칭을 사용하며 내공과는 다른 힘이었다.
그 힘을 이용해 펼치는 술법 중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악령강림이라는 술법이다.
전생의 사황이었던 시절. 라마승 한 명이 건너와 사파의 본거지였던 감숙성을 어지럽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때마침 근처에서 은설과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수하의 보고에 바로 라마승의 행적을 뒤쫓았고 이내 죄 없는 백성들을 죽이려던 라마승을 발견하여 그를 제압하기 위해 싸웠다.
생전 처음 보는 술법을 사용하며 맞서는 라마승은 상당히 까다로웠고, 또 술법을 사용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하였기에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되었다.
뚱승이 펼친 것은 천계의 눈을 피해 순수한 영혼을 먹으며 힘을 키운 악령을 몸에 강림하는 기술.
바로, 악령강림 惡令降臨 이라는 것을 말이다.
“끼히히! 어린데다가 똑똑해!”
악령이라 묻는 나의 질문에 뚱승, 아니 악령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아씨, 진짜 소름 돋네.
몸 안에서부터 느껴지는 역겨움에 나는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진짜 보기 싫었다.
“꺄하하! 같이 먹자!”
콰콰쾅!
“크윽…….”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와 뚱승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완숙한 절정의 경지, 마복을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는 변승이 말이다.
그런 변승의 말에 뚱승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안 돼! 내 거야!”
그러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거절했다.
그런 뚱승의 거절에 변승이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뚱승을 노려보았다.
“치사해!”
“끼히히!”
변승의 말에 그저 웃기만 하는 뚱승.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전생에서도 보았지만, 정말 해괴한 술법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때, 뚱승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끼히히! 아이야! 저 녀석이 오기 전에 어서 나랑 놀자!”
흥분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뚱승.
그런 뚱승을 보며 나는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때.
스르르.
뚱승이 마치 발이 없는 귀신처럼 발을 움직이지 않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런 뚱승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들었다.
“꺼져!”
그러고는 강하게 휘둘렀다.
콰앙!
“끼히히!!”
휘둘러진 나의 검을 길어진 손톱으로 가볍게 막은 뚱승.
그런 뚱승이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리며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츄릅.”
그러고는 입맛을 다셨다.
“이런 X!”
나의 두 눈 바로 앞에서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화들짝 놀란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끼히히!”
황급히 뒤로 물러나는 나의 모습이 재미있었을까?
뚱승이 입가를 가리며 소리 내 웃었다.
“촌장님!”
그때, 마을 사람들을 무사히 대피시킨 일류고수 열 명이 마복을 부르며 이곳으로 다가왔다.
그에 마복은 자신의 급소를 노리고 들어오는 변승의 손톱을 막으면서 소리쳤다.
“세 명은 나와 함께 이자를 제압하고, 나머지는 저 아이를 도와라!”
“하지만!”
마복의 말에 일류고수들은 망설이며 소리쳤다.
그럴 만도 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마복은 존경하는 무인이었으며 촌장이었고, 나는 혐오하는 마인 심지어 천마의 아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에 일류고수들이 망설이자 마복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러고는 뱃심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어서!”
“……알겠습니다.”
마복의 소리침에 망설인 것도 잠시.
열 명 중 일곱 명의 일류고수가 나의 맞은편에 위치한 뚱승에게로 달려들었다.
콰앙!
“뭐야! 뭐야! 방해하지 마!”
갑작스러운 일류고수들의 등장에 당황한 뚱승.
그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일곱 개의 검을 막아선 다음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에 한숨을 돌린 나는 다시 검을 들었다.
부들부들.
검을 든 오른손이 떨려 왔지만 나는 이를 악물며 애써 오른손을 진정시켰다.
타앗!
그러고는 다른 일류고수들이 만들어 준 빈틈으로 검을 휘둘렀다.
* * *
“야율민, 집중해라!”
합숙을 시작하고 대공자 위극신에게 특별 지도를 받으며 경험을 쌓았던 네 명의 아이들.
그중 가장 선두에서 검을 휘두르던 단진이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야율민에게 소리쳤다.
그런 단진의 경고에 화들짝 놀란 야율민이 단창을 휘두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알아서 한다!”
야율민의 삐뚤어진 대답에 단진은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이내 굵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대공자님은 걱정하지 말고, 지금의 상황에 집중해!”
자신의 시비에 반응하지 않는 단진의 말에 야율민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단진의 명령을 따르는 것만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단진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가소롭다!”
그런 단진 일행들의 모습이 가소로웠을까?
세 명의 라마승이 매서운 기세를 일으키며 단진에게 공격을 집중했다.
갑작스러운 라마승들의 집중 공격에 일행들은 잠시 당황했다.
그 잠시의 짧은 시간.
그 시간에 단진은 홀로 세 개의 공격을 막아 내어야 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세 개의 주먹을 보며 단진은 이를 꽉 물었다.
그러고는 아껴 두었던 모든 내공을 검에 흘려 보내었다.
콰앙!
갑작스러운 라마승들의 행동에 당황했던 일행들은 들려오는 굉음에 정신을 차리고 라마승들의 빈틈을 형해 병장기를 찔러 넣었다.
“크윽!”
“크억!”
“제길!”
그런 셋의 공격에 일격을 허용하고 만 라마승들.
그들은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
“단진!”
그런 라마승들을 보며 안도하던 것도 잠시.
세 명은 뒤에서 피를 흘리는 단진을 향해 다가갔다.
“엄호하십시오!”
“알겠다.”
“알겠소.”
허리춤을 부여잡은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단진에게 다가간 사마천.
그가 황급히 단진의 복부를 지혈하며 말하자 야율민과 구양적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앞에 섰다.
꽈악.
“망할 놈들!”
두 주먹을 강하게 쥐며 라마승들을 금방이라도 찢어 죽여 버릴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구양적과.
“…….”
철컥!
싸늘한 표정으로 단창을 겹쳐 장창으로 만드는 야율민.
그런 둘의 모습에 라마승들은 피가 흘러나오는 복부를 지혈하며 다시 무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어린 소년, 야율민과 구양적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군.”
복부에 상처를 입었지만, 가장 성가셨던 상대 한 명이 전투 불능이 되었다.
라마승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거래였고, 그런 라마승의 말에 단진을 지혈하던 사마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쉬십시오.”
“크윽…….”
지혈을 마친 사마천이 단진을 조심스레 내려놓은 다음 몸을 일으켰다.
“…….”
그러고는 검을 들어 구양적의 옆에 섰다.
“단 공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알겠소.”
“그냥 싸우는 것과, 보호하며 싸우는 것은 다릅니다. 긴장하십시오.”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마천의 경고에 야율민과 구양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를 잠시.
타앗!
다시 라마승들이 세 명에게 달려들었다.
콰쾅!
채챙!
“크윽!”
매서운 라마승들의 공격.
그들의 공격에 세 명은 신음을 흘리며 겨우겨우 막아섰다.
세 명의 라마승들은 이류의 경지.
그리고 구양적은 삼류의 경지다.
이류와 삼류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소주천을 이루었느냐, 아직 이루지 못했느냐의 차이였기 때문에 내공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였기에 구양적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그런 구양적의 모습에 야율민은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어딜.”
수욱!
고개를 돌린 자신을 향해 라마승이 무서운 기세로 검을 찔러 왔기 때문이다.
“제길!”
채앵!
그런 라마승의 검을 신경질적으로 쳐 낸 야율민.
그가 라마승에게 달려들며 속으로 빌었다.
‘무사해라…… 구양곰.’
자신이 이 라마승을 죽이는 동안 구양적이 부디 죽지 말고 버티기를 말이다.
* * *
“대주…….”
멀리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환영대주.
그는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대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서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 기다린다.”
예상하지 못한 돌발의 상황이지만 이 또한 수련의 일환.
서역에 위치하여 보기 힘든 라마승들과 싸우는 것 또한, 공자들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에 환영대주가 단호하게 말하자 나머지 수하들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위대한 천마의 아들과, 오대마가의 후계자들이다.
혹여나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친다면?
더군다나 지금은 최악의 상황을 단번에 막을 수 있는 고수 환마마저 없다.
만약 공자들이 위험에 빠진다면 자신들이 나서도 구해 낼 수 있을까?
그런 수하들의 동요를 느낀 환영대주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는 두 명의 라마승을 노려보았다.
“저 잡것들은 왜 갑자기 튀어나와 가지고…….”
솔직히, 환영대주도 수하들과 마음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나섰다가는 환마에게 문책을 당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아닌 이상 나서지 않는 것이 이번 수련의 가장 큰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완숙한 절정의 고수로 보이는 노인과 열 명의 일류고수가 있기에 안심은 되었지만 그래도 인간인 이상 불안한 것은 당연지사.
환영대주는 초조한 표정으로 비대한 라마승과 싸우고 있는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움찔!
그때, 라마승의 손톱을 미처 막지 못한 위극신의 왼쪽 어깨에서 피가 튀었고 그와 동시에 환영대주와 수하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다행히 깊은 상처는 아니었는지 위극신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대주,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아슬아슬한 모습에 수하 중 가장 최고참인 수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런 수하의 말에 환영대주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하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위험하다.
만약 문책을 당하더라도 상관없다.
대공자가 큰 상처를 입는 것보다는 자신이 문책을 받는 것이 나으니 말이다.
결심을 한 환영대주는 두 눈에 힘을 주며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을 잡았다.
“모두 라마승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다가간다.”
“네.”
“그리고, 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너희들은 나서지 말도록.”
최대한 거리를 좁힌 다음 위극신이 위험할 때 자신이 직접 나설 것이다.
“대주님.”
그런 환영대주의 말에 예의 수하가 말렸지만 환영대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듣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 대주의 모습에 수하는 입을 다물었고, 대주는 다시 수하들을 둘러본 다음 입을 열었다.
“움직인다.”
사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