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제35장 화마 火魔
“아들, 재밌어??”
거대한 장원. 그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정원의 한가운데에서 한 여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응!”
그런 여인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환한 미소를 짓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기에 여인은 그대로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꽉 끌어안았다.
“우리 아들,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뻐?”
“엄마!”
“어쩜!”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에 여인은 활짝 웃으며 아이의 부드러운 볼에 뽀뽀를 마구 해 대었다.
“부인, 진이의 얼굴이 닳겠소이다.”
그때, 냉막한 인상의 미남자가 여인에게 다가오며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여인은 샐쭉한 표정으로 미남자를 바라보았다.
“질투하는 거예요?”
“허어, 내가 왜 질투를 한단 말이오?”
“왜 질투 안 해요?”
움찔.
미남자의 대답에 여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고 그에 미남자는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호호, 농담이에요. 당신도 참.”
그런 미남자의 행동에 소리 내어 웃은 여인이 미남자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고 미남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냉막한 인상을 지닌 미남자, 단악선.
그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았다.
행동 하나, 표정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아 준 고마운 여인이기까지 했다.
자신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과분한 여인을 바라보며 단악선은 자신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부인.”
미소를 지은 단악선은 손을 뻗어 아이를 안고 있던 여인의 허리춤을 감싸 안았다.
자신의 아이, 단진과 놀던 여인은 뒤에서 자신을 안는 단악선의 행동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진이가 보고 있어요.”
그런 여인의 말에 단진이 두 손을 들며 두 눈을 가렸다.
“나 안 봐요!”
그러고는 깜찍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던 나머지 여인과 단악선은 멈칫했고, 이내.
“호호!”
“하하!”
소리 내 웃었다.
자신의 부모가 웃자 슬그머니 두 손을 내린 단진은 웃고 있는 엄마 아빠를 보며 자신 또한 웃기 시작했다.
“헤헤.”
그렇게 행복한 일상이 흘러가고.
밤이 되자 단진은 잠에 들기 위해 침실에 들어섰다.
“으챠!”
자신의 나이 다섯 살.
혼자 자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무릇 다섯 살이라면 사내로서 가슴에 뜻을 품는 나이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단진은 호기롭게 침대에 누웠고 이내 이불을 덮은 다음 두 눈을 감았다.
휘이잉!
그때였다.
밖에서 무서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단진은 움찔했지만 이내 애써 침착하면서 잠에 집중했다.
휘이잉!
휘이잉!
하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매서운 바람 소리.
그 바람 소리에 단진은 결국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침실을 나섰다.
“공자님, 어찌 안 주무시구요.”
침실을 나온 단진을 발견한 시녀가 다가와 단진에게 묻자 단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엄마랑 잘 거야!”
“도련님!”
다다다!
시녀의 만류를 가볍게 무시하고 어머니의 방 안으로 달려간 단진.
그가 어머니의 방 앞에서 멈추어 섰다.
“엄마는?”
“안에 계십니다.”
단진의 물음에 여인의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시녀가 대답했다.
그에 단진은 웃으며 끄덕인 다음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엄마!”
“우리 아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호기롭게 침실에 들어서며 여인을 부른 단진.
그런 단진의 행동에 머리를 빗고 있던 여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쪼르르!
와락!
그런 여인의 대답에 단진은 짧은 다리를 움직여 여인에게 달려가 그대로 품에 안겼다.
그러고는 얼굴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엄마랑 잘래!”
“호호, 그래. 바람 소리가 무서웠지?”
단진의 행동에 여인이 웃으며 말하자 단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엄마가 무서울까 봐 지켜 주러 온 거야!”
“우와 정말? 우리 아들 최고다!”
그런 단진의 말에 여인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박수 쳤다.
“헤헴.”
그런 여인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단진은 콧잔등을 훔치며 으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엄마의 침대로 올라갔다.
탕탕!
“자자!”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퉁퉁 치며 말을 하는 단진의 모습에 여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 자자.”
“헤헤.”
그렇게 여인과 함께 잠이 든 단진.
오랜만에 느껴 보는 엄마의 품에 단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잠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위이잉!
다시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 버리고 말았다.
사용인들마저 잠든 깊은 시각.
그 시각에 눈을 뜬 단진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목말라.”
새벽에 뜻하지 않게 잠에서 깬 단진은 갈증을 느꼈다.
그에 단진은 물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물은 보이지 않았다.
물이 보이지 않자 단진은 습관적으로 여인을 깨우려 했다.
하지만 이내 멈칫했다.
너무나도 곤히 자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깨우기가 미안했던 것이다.
“그래, 혼자 먹고 오자.”
자신의 나이 어느덧 다섯 살이다.
혼자 물을 마시러 가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단진은 웃으며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탓!
어머니가 깨시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은 단진.
그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다다다!
그러고는 대장원에 위치한 우물가를 향해 뛰어갔다.
식당에 가더라도 늦은 시간이라 사람은 없을 테니 우물에 바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잠시 후.
위잉!
턱.
화륵!
거대한 바람에 의해 세워져 있던 횃불이 쓰러졌다.
그리고 건조한 날씨와 더불어 말라 있던 전각의 나무들에 달라붙었고, 불씨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마님! 불입니다!”
행복하게 잠을 청하고 있던 여인은 자신의 방으로 헐레벌떡 달려온 시녀의 말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불이라니?”
“어서 피하시지요!”
여인의 물음에 시녀는 시간이 없다는 듯 여인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그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여인은 멈칫했다.
“진이! 내 아들은!”
그리고 소리쳤다.
사라진 자신의 아들의 행방을 말이다.
그런 여인의 물음에 시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공자님께서는…….”
“놓거라!”
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녀의 모습에 여인은 시녀의 팔을 뿌리쳤다.
“진아!”
그런 다음 자신의 방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침대 밑, 책상 아래, 옷장 안에.
숨겨진 방까지.
모든 곳을 뒤져 보아도 자신의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님! 아마 피신하셨나 봅니다!”
그런 여인을 보며 시녀가 소리쳤지만 여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그랬는데 아이가 안에 있었다면?
자신은 절대 살 수가 없었다.
그 아이 없이는 말이다.
“마님 제발!”
“닥치거라!”
계속해서 거칠게 타오르는 불길에 겁먹은 시녀는 울먹이며 소리쳤지만 여인은 거부했다.
그러고는 침실을 나왔다.
화르륵!
침실을 나오자마자 보였다.
거대한 화마가 자신을 덮치는 것을 말이다.
그에 여인은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인은 얼굴을 굳혔다.
“진아!”
그런 다음 불길을 뚫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인의 옷깃이 타올랐지만 여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아들만을 애타게 찾을 뿐이다.
“진아!”
“마님을 구해야 한다!”
“어서 물 가져와!”
깊은 새벽.
거대한 불길에 뒤덮인 전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났고, 불길 속에 있는 여인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여인을 구하기 위해 행동했다.
“진아!”
“마님 제발!”
거대한 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단진을 찾는 여인의 모습에 사용인들은 절망했다.
이곳의 주인인 여인이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사용인인 자신들 또한 불길을 피해 대피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여인의 모습에 사용인들은 처음으로 단진을 원망했다.
가문의 자랑인 사랑스러운 어린 공자 단진을 말이다.
그렇게 사용인들이 단진을 원망하던 그때.
“엄마……?”
단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하게 타오르는 불길 사이로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여인은 위대한 엄마였다.
그녀는 확신했다. 분명 자신의 아들, 단진의 목소리라고 말이다.
그에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마당에 모인 수많은 사람 중 한 명.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이 말이다.
“아아…….”
그에 여인은 안도했다.
자신의 아들은 다행히 이곳에 있지 않았다.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히 서 있는 모습에 여인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엄마!”
그때, 단진이 자신을 부르며 달려왔다.
그에 여인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도망가!”
화르륵!
여인이 소리침과 동시에 전각이 다시 크게 타올랐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의 손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
그 누구도 저 거대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갈 생각도,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엄마…… 엄마!”
여인을 애타게 부르며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전각으로 걸음을 옮기는 단진.
그런 단진의 행동에 옆에 있던 무사들이 단진을 잡았다.
“공자님, 안 됩니다.”
“놔! 놓으란 말이야!”
무사들의 만류에 단진은 무사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하지만 단진은 어린 다섯 살.
내공마저 익힌 성인 남성의 힘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엄마! 제발…… 제발 나를 놓아 달란 말이야!”
“공자님…… 제발…….”
자신들의 손길에서 벗어나려는 단진을 강하게 부여잡은 무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무사들 또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일한 후계자인 단진마저 죽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단진은 그런 무사들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어머니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때.
화르륵!
다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허업!”
그에 화들짝 놀란 무사가 그만 손을 놓아 버리고 말았고, 그 짧은 틈에 단진은 거대한 불길에 뒤덮인 전각으로 달려갔다.
“엄마! 엄마!”
“아들…….”
불길이 가득한 전각의 입구로 들어선 단진.
단진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반색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거대한 불길 속, 다 타 버린 옷을 입고 자신을 힘들게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말이다.
“엄마!”
“오지 마!”
멈칫.
그런 여인에게 달려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단진.
그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날카로운 목소리에 멈칫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
“엄마…….”
“아들…… 엄마가 너무 사랑해.”
거대한 불길 속.
불길 너머로 일렁이게 보이는 여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에 단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
화르륵!
콰앙!
그때, 여인의 머리 위에서 간신히 모양을 유지하고 있던 전각이 무너졌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불기둥이 단진을 덮쳤다.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불기둥을 보며 단진의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퍼억!
“아아…….”
그리고 불기둥에서 단진을 구한 사내.
천마궁에 위치한 장로전에서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단악선은 수하들의 보고에 모든 내공을 다 끌어 올려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덮친 거대한 불기둥은 자신의 아들, 단진의 왼쪽 얼굴에 큰 상처를 남겨 주었고, 이 거대한 화마 火魔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앗아 갔다.
“아아…….”
믿기지가 않았다.
거짓말 같았다.
한순간에 이렇게 되다니?
화르륵!
거칠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아아아!!”
단악선은 절규했다.
슬픔이 가득 담긴 절규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