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제34장 부탁 請
“장로님!”
“그래, 보았다.”
수하들과 함께 계속해서 동굴을 주시하고 있던 환마.
그는 수하의 부름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홀로 동굴에서 걸어 나오는 익숙한 소년을 바라보았다.
“단진.”
검마의 아들 단진.
열 살이라는 나이에 소주천을 이룬 천재, 바로 그 녀석이었다.
겁 없이 홀로 나온 녀석을 보며 환마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기대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하들이 말이다.
“녀석들.”
그런 수하들의 모습에 환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환마의 직속부대인 환영대.
모두가 일류의 고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대주와 대주는 절정의 고수이다.
천마신교에서도 정예로 평가되는 부대이지만 어린 공자들에게 위협을 주지 못해 많이 위축된 상태였다.
헌데 이런 기회가 찾아오다니?
“장로님,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무엇이 말이냐?”
그런 수하들을 보며 미소를 짓던 환마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답했다.
그런 환마의 대답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내, 환영대주가 입을 열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치 우리들을 유인하는 것 같습니다.”
“흐음…….”
환영대주의 말에 환마가 턱을 쓰다듬었다.
환영대주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자신이 이때까지 지켜본 결과, 대공자는 절대로 가볍게 행동을 할 사내가 아니다.
헌데 위험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단진을 홀로 내보낸다?
확실히 수상하기는 했다.
“환영대주.”
“예.”
환마의 부름에 환영대주가 깊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환마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
함정이든 유인이든 필요 없다.
그저 빈틈을 보였고, 그 빈틈에 습격을 하면 되는 일.
환마의 물음에 환영대주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환마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스무 명의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최선을 다해 습격해라. 목숨만 살려 놓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환마의 싸늘한 음성.
그 명령에 수하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무인으로서 어린 공자들에게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
그것을 드디어 떨쳐 버릴 기회가 왔으니 수하들 입장에서는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둘러 자신들의 무기와 암기를 정비하던 수하들.
희희낙락하며 정비하던 수하들은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누구 마음대로?”
스무 명의 일류고수인 수하들은 물론, 절정의 고수인 부대주와 대주마저 굳어 버리게 한 강력한 기운.
그리고 그 기세에 따라 들려오는 묵직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환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이곳을 찾은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이러면 곤란한데.”
파앗!
내공이 가득 담긴 환마의 말에 환영대가 정신을 차렸다.
탓!
그러고는 서둘러 자신의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물러나라.”
하지만, 환마의 이어진 명령에 그들은 행동을 멈추었다.
저벅저벅.
그러고는 점점 다가오는 사내를 바라보며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다.
“……?!”
환마의 옆에서 검을 뽑고 긴장을 하던 환영대주.
그는 곧 가까워진 인영이 누구인치 알아채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냉막한 인상의 미남자.
바로, 천마신교의 이인자라고도 불리는 일장로, 검마였다.
그의 등장에 환영대주는 물론 다른 수하들까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환마의 지휘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수련장이다.
이곳에 다른 장로가 등장하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검마, 다른 장로들의 수련 방식에 간섭하지 않기로 한 것을 잊었나?”
대공자를 가르치게 된 이후로 장로들이 모여 함께 정한 규율.
그중 하나인 간섭을 언급하며 환마가 말하자 검마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미소를 말이다.
그런 검마의 미소에 환영대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고, 환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검마의 앞에서 자신의 수하들이 약한 모습을 보이니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모두 물러가라.”
그에 환마가 명령을 내렸고 환영대는 고개를 숙인 다음 물러났다.
그렇게 단둘만이 남게 된 검마와 환마.
환마는 다시 삐딱한 자세로 이곳을 찾은 불청객 검마를 바라보았다.
“뭐라 말해 보시지?”
환마는 지금 상당히 짜증 난 상태였다.
이번 한 달간의 합숙.
환마는 정말 많은 준비를 한 상태였다.
헌데 처음부터 대공자가 믿기지 않는 행동을 보여 주며 일사천리로 사건을 해결하였고, 불곰까지 잡아 천산에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짜증이 났었는데, 이번에는 검마가 나서서 자신의 훈련을 방해하다니?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그것이 너무나도 짜증 났던 환마가 살기 어린 음성으로 묻자 검마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환마를 바라보았다.
그런 검마의 시선에 환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한번 해보자는 건가?”
품속에 잠들어 있는 자신의 애병, 흑목 黑木으로 만들어진 지팡이.
그것을 꺼내 들며 환마가 말하자 검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
생각지 못한 검마의 사과.
갑작스러운 그의 사과에 환마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검마가 사과를 했다고? 나에게?’
뛰어난 무공 실력만큼 자존심도 강한 검마.
그는 천마신교의 지존인 천마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인물로 유명했다.
헌데 그런 존재가 자신에게 사과를 건네다니?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환마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지팡이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무슨 일인데?”
그 자존심 강한 검마가 사과까지 하며 굽히고 들어온다.
그렇다면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 환마가 묻자 검마가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이제는 멀어져 흐릿하게 보이는 단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아들이 아프다.”
“…….”
검마의 말에 환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진이 아프다는 것은 안다.
그 잘생긴 얼굴에 끔찍한 흉터가 있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마음이 아프다.”
“…….”
이건 몰랐다.
마음이 아프다니?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한 환마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검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음이 아픈 것만으로도 벅찬 아이에게 무자비한 습격을 하는 것은, 아비로서 원하지 않는다.”
검마의 절절한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환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이건 수련이야, 검마.”
“안다.”
환마의 말에 검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환마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이렇게 부탁한다. 오늘. 보름달이 뜨는 오늘만은 수련을 멈추어 주었으면 한다.”
꾸벅.
“미치겠군.”
검마가 고개를 숙였다.
아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 검마의 행동에 환마는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원칙대로라면 검마의 청을 거절하고 계속해서 수련을 이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검마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심지어 아들을 생각하는 아비의 입장으로서 말이다.
인간적인 일면을 보이는 검마의 모습과 부탁하는 행동이 싫지 않았던 환마였기에 복잡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마를 짚으며 고민을 하던 것도 잠시.
환마는 손을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겠다.”
그러고는 대답했다.
검마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그런 환마의 대답에 검마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환마를 바라보았다.
“고맙다.”
진심이 가득 담긴 검마의 감사 인사.
그 인사에 환마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네 아들은 너를 싫어하는 것 같던데.”
환마의 물음에 잠깐 멈칫한 검마.
그가 고개를 돌려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야 저 녀석이 더 단단해지고 강해질 테니까.”
“미치겠군.”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검마를 보며 환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크으윽!!”
나무가 우거진 깊은 숲속.
비틀거리며 그곳으로 들어선 단진은 주변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얼굴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크아아악!”
왼쪽 얼굴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
얼굴이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한 고통에 단진은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퍼석.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집어 얼굴에 비벼 보기도 하고, 얼굴을 땅에 박아 보기도 하고, 나무에 이마를 부딪혀 보아도 얼굴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이었다.
‘너 때문이야!’
그리고 들려왔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단진을 원망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냐…… 아냐…….”
‘너 때문이야!’
‘공자님이 불을…….’
‘제길! 나는 살고 싶다고!’
“아니야!!”
퍼억!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자신의 귀로 들려오는 끔찍한 절규 소리.
그 두 가지의 끔찍한 고통에 단진은 절규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나 때문이 아니야…….”
‘살인자!’
‘네가 다 죽였어!’
“끄아악!”
계속 부정하여도 들려왔다.
자신을 원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에 단진은 머리카락을 강하게 부여잡으며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콰앙!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단진은 전혀 아프지가 않았다.
“크아아아!”
그의 왼쪽 얼굴에서 더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단진.
그의 두 눈이 뒤집어졌다.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에 그만 정신 줄을 놓아 버린 것이다.
“커억! 커억!”
그렇게 정신 줄을 놓아 버리고는 게거품을 물어 버린 단진.
숲속 한가운데서 의식을 잃은 단진은 너무나도 안쓰러워 보였다.
움찔, 움찔!
정신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에서는 고통이 계속되는지 단진의 몸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이 더 괴로울 정도로 힘들어 보이는 단진의 모습이었다.
그런 단진의 모습에 멀리서 지켜보던 검마는 신음을 흘렸고, 환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저벅.
그리고 그런 단진의 앞으로 네 명의 소년이 다가왔다.
“…….”
아무 말 없이 단진을 내려다보는 대공자 위극신.
“얼음탱이…….”
“…….”
“괴로워 보이는군.”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단진을 내려다보는 구양적과 사마천, 그리고 야율민.
그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단진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업겠습니다.”
쓰러진 단진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들어 올리려는 위극신.
그의 행동에 야율민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니.”
하지만 위극신은 거절했다.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 위극신의 행동에 야율민은 뒤로 물러섰다.
그에 위극신은 다시 단진을 등에 업었다.
움찔, 움찔.
느껴졌다.
자신의 등 뒤에서 계속해서 끔찍한 고통과 마주하고 있는 어린 소년의 몸부림이 말이다.
그 몸부림에 위극신은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괴롭게 한다는 것이냐…….”
자신이 이 불쌍한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속으로 단진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위극신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