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제30장 분열 分裂
“대공자님, 목 좀 축이시겠습니까?”
“아니, 식수 아껴.”
천산의 한 중턱.
그곳에 무책임하게 우리를 버려두고 사라진 환마를 속으로 욕하던 나는 나를 향해 물통을 내미는 야율민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야율민은 짐짓 감탄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대공자님은 여유가 있으시군요. 저도 물 아끼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의 말에 혼자 감탄하며 물통을 조심스럽게 집어넣는 야율민.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환마의 무책임한 행동에 기분이 나빴던 것도 잠시, 멍청하면서도 우직한 야율민의 행동이 귀여워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꿀꺽꿀꺽.
그때.
나와 야율민의 뒤로 시원한 목 넘김 소리가 들려왔다.
그 믿기지 않는 시원한 소리에 우리 둘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크아아아! 푸하하하! 시원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원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는 곰 새끼가 말이다.
그런 구양적의 모습에 나는 서둘러 구양적에게 다가갔다.
탁!
그러고는 구양적의 손에 들린 물통을 뺏어 들었다.
“응? 대공자, 그건 나의 물이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구양적이 화들짝 놀라며 항의하듯 소리쳤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고는 가벼운 구양적의 물통을 한 번 흔들어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구양적.”
“흐음…… 푸하하! 알겠소, 사내대장부로서 대공자에게 물을 양보하겠소이다.”
나의 싸늘한 부름에도 우리의 눈치 없는 구양적은 호탕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인생 편하게 사는 듯한 녀석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나도 당당한 녀석을 보니 화를 낼 기운도 사라진 것이다.
하아…….
저 자식을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뻐억!
그때.
거대한 소리와 함께 구양적의 머리가 앞으로 숙여졌다.
뒤통수에서 작용된 강한 힘에 말이다.
“…….”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고개를 숙인 채 굳어 버린 구양적.
그런 구양적의 뒤에서 익숙한 소년이 입을 열었다.
“멍청한 녀석.”
바로, 우리의 냉미남, 단진이었다.
성격만큼이나 시원하게 구양적의 뒤통수를 후려친 단진의 행동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시원하군.”
나의 뒤에 있던 야율민 또한 나와 마찬가지였는지 속 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아아! 아파!”
그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구양적이 자신의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푸드득!
어찌나 소리가 큰지, 드높은 나무의 가지에 앉아 쉬고 있던 새들이 화들짝 놀라며 하늘을 향해 날아갈 정도였다.
일곱 살에 어울리지 않는 덩치와 말투, 그리고 이제는 목소리까지.
이 녀석은 정말 불가사의한 녀석이었다.
아무튼,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발광을 하던 구양적이 허리를 폈다.
“네놈…….”
그러고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단진을 노려보았다.
처음이었다.
늘 푸하하거리는 구양적이 저렇게 정색을 하는 것이 말이다.
“구양 공자, 단 공자. 진정하십시오.”
가만히 그런 둘의 대치를 바라보던 사마천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둘을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
스릉.
꽈악.
단진은 검을, 구양적은 권갑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둘의 모습에 사마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떻게 해야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사마천의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천마신교의 마인들에게 있어서 사소한 시비는 이렇게 대련으로 이루어진다.
비무가 아닌, 실전과도 같은 대련으로 말이다.
이것이 강자존인 천마신교에서 살아남는 방법이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물론 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직 나의 생각을 이들에게 강요를 할 수 없었기에 나는 이 둘을 말리지 않았다.
그런 나의 의중을 눈치챘을까?
사마천이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뒤로 슬그머니 물러섰다.
“아프다, 얼음아.”
“닥쳐라 곰.”
그렇게 나와 사마천이 만류를 하지 않자 본격적으로 대련 준비를 시작한 둘.
구양적의 말에 단진이 예의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구양적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난 곰이 아니라, 구양적이다.”
“그래 구양곰.”
“크아아!”
단진 저 녀석.
혓바닥을 놀리는 솜씨를 보니 장난이 아니다.
단진에게 말싸움이 밀린 구양적은 분노를 토했고 이내 자세를 낮추었다.
금방이라도 단진에게 달려들 듯한 구양적의 자세에 단진 또한 자세를 낮추었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고 이윽고.
타앗!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흠칫.
“휴우…….”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서로 간의 의견을 조율하고 굽히면서 믿음을 주고받는 협동을 중시하는 합숙 수련이라는 것을 말이다.
피웅!
아까부터 느껴지던 가벼운 살기.
그 살기에 한숨을 내쉬던 나는 들려오는 화살 소리에 황급히 몸을 날렸다.
채앵!
쾅!
구양적과 단진의 사이로 날아오는 날카로운 화살.
그 둘의 사이로 부드럽게 파고든 내가 검을 뽑아 화살을 쳐 내었다. 그러고는 그 검으로 단진의 검을 막았다.
콰앙!
그리고 비어 있는 왼손으로 구양적의 주먹을 잡았다.
왼손으로는 구양적의 주먹을, 오른손에 쥐어진 검으로 단진의 검을 막은 나.
그런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단진과 구양적의 모습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둘 다, 무기 거둔다, 실시.”
얘들아,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닌 것 같다.
나는 환마가 짠 각본대로 행동하기 싫거든.
그렇게 구양적과 단진의 대련은 일단락이 되고 잠시 후.
“똑바로 들어.”
벌로 마보 자세를 취하고 양손을 위로 들어 올리게 한 나는 은근슬쩍 팔을 내리는 구양적을 보며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푸하하!”
그런 나의 경고에 특유의 웃음으로 무마하는 구양적의 행동에 나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구양적을 노려보았다.
바짝.
그제야 웃음을 멈추고 손을 바짝 들어 올리는 구양적.
나는 그런 녀석을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단진.”
움찔.
내가 내린 벌에 잔머리를 굴리는 구양적과 달리 군말 없이 손을 들고 있던 단진이 나의 부름에 움찔했다. 그러고는 긴장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너답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구양적의 뒤통수를 때린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도발은 솔직히 흥미로웠지만 평소의 단진과는 달랐다.
늘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녀석이 감정적으로 행동을 했으니 말이다.
그 점을 지적하자 단진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네었다.
“야율민, 사마천.”
“네.”
그런 단진의 사과에 나는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두 명을 불렀고, 눈치를 살피던 두 명이 대답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
“생존입니다.”
나의 물음에 가만히 있던 야율민이 대답했다.
그에 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네 생각은?”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나의 물음에 사마천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을 했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기에 나의 질문에서 대답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나는 팔짱을 끼고는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사마천의 입이 열렸다.
“협동심입니다.”
맞았다.
사마천의 대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역시, 머리가 좋구나.”
“감사합니다.”
나의 칭찬에 싱긋 미소를 짓는 사마천.
나는 그런 녀석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은근슬쩍 다시 팔을 내리는 구양적을 바라보았다.
“구양적.”
바짝!
나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바짝 드는 구양적.
그런 녀석의 모습은 귀여웠다.
생각을 해 보아라.
거대한 덩치를 지닌 녀석이 나의 눈치를 살살 살피고 있는데 안 귀엽겠는가?
아주 그냥 깨물어 죽여 버리고 싶었다.
아무튼, 화들짝 놀란 구양적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마신 물통은 누구의 것이냐.”
“푸하하! 내 것이오!”
“정말이냐?”
“그렇소!”
구양적의 자신 있는 대답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네 물을 다 마신다고 치자. 아마 오늘 안에 다 마시겠지. 만약 그동안 계곡이나 샘물을 찾지 못한다면 어떡할 것이냐?”
“푸하하! 그럼 안 마시고 참으면 되오! 사내가 그 정도도 못 참을까!”
“내일도 못 찾는다면?”
“문제없소.”
“이틀, 삼 일 후에도?”
“…….”
계속된 나의 물음에 구양적이 얼굴을 굳혔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은 것이다.
“이곳은 천혜의 요새이면서, 악마의 산이라고 불리는 천산이다. 우리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그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네.”
나의 말에 공감을 하듯 사마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얼굴을 굳히고 있는 야율민, 단진, 그리고 구양적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가방에 있는 물이 곧 우리의 것이며, 육포 또한 우리의 것이다.”
“…….”
“만약 네가 물이 없어서 쓰러질 지경이라면?”
“…….”
“우리는 너에게 우리의 물을 양보할 것이다. 우리는 이 수련, 아니 미래에 천마신교를 함께 이끌어 나가야 할 동지 同志니까.”
“…….”
계속해서 이어진 나의 말에 구양적의 고개가 점점 내려갔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였는지 알게 된 것이다.
구양적뿐만 아니라 단진과 야율민 또한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초롱초롱.
사마천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녀석의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네 물을 먹은 것이 아닌 우리의 물을 마신 것이다.”
“대공자님.”
너무 공격적인 언사였을까?
나의 말에 사마천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나를 말렸다.
가뜩이나 죄책감으로 인해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구양적이다.
계속해서 내가 이렇게 몰아붙인다면 앞으로의 수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을 하였던 것이다.
똑똑한 사마천의 행동에 나는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구양적의 앞으로 걸어갔다.
“적아.”
다섯 살의 어린 소년에게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
그런 나의 목소리에 구양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나의 두 눈과 마주친 구양적의 흔들리는 두 눈동자에서 보였다.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부끄러움.
그런 감정을 보이는 녀석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 다음부터는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구양적은 아직 일곱 살. 이러한 감정과 경험이 구양적을 더욱더 훌륭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양분이 될 것이니 말이다.
“네 덕분에 다른 아이들에게 협동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 줄 수 있었다.”
“…….”
“고작 물 가지고 그렇게 의기소침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물은 우리에게 있어서…….”
“적아.”
죄책감 섞인 녀석의 말을 끊은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는 구양 적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물로 인해 우리가 이렇게 협동심에 관하여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괜찮은 거래가 아니더냐? 물은 우리가 함께 아껴 가며 나누어 마시면서 계곡이나 샘물을 찾으면 된다.”
“대공자…….”
“그러니 걱정 말거라.”
구양적, 이 녀석.
이렇게 보면 정말 순진한 아이 같았다.
“단진.”
“네.”
그런 구양적을 위로한 나는 단진을 불렀고, 나의 부름에 단진이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는 말거라.”
“죄송합니다.”
“그래.”
단진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화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화살 깃과 곧게 뻗은 화살대, 마지막으로 날카로운 화살촉.
그 화살촉 끝에 묻어 있는 초록색의 액체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환마가 쏜 화살.
이 화살에 마비독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빠각!
화살대를 부수어 화살을 짧게 만든 나는 품속에서 작은 천 조각을 꺼내어 화살촉을 감쌌다.
그런 다음 품속에 집어넣었다.
천산에서 갑작스럽게 어떤 존재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거대한 멧돼지, 아니면 강력한 곰, 산의 제왕 호랑이.
그 어떠한 것과 마주칠지도 모르니 마비독의 화살을 비상용으로 챙긴 것이다.
그렇게 화살을 챙긴 나는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환마가 있을 곳이라 짐작되는 방향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합숙 수련을 시작하기 전.
환마가 최소한의 생존 가방을 주다니 이상하다고 생각되긴 했다. 헌데 그것이 수련의 일부일 줄이야.
환마의 놀라운 두뇌에 나는 내심 감탄했다.
환마의 계획은 이러했다.
식량과 물을 미리 공급하여 방심을 유발한다. 그런 다음 협동심이 가장 중요한 합숙 수련에서 적은 식량과 식수로 조원들 간의 분열을 유도하고, 나아가 서로 믿지 못하는 사이가 되도록 몰아간 다음 무자비한 습격으로 육체와 정신을 피로하게 만들어 최악의 상황에 직면시키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예상한 환마의 계략이었다.
사람은 참 좋지만, 수련에는 얄짤 없는 환마.
그런 환마의 얼굴을 떠올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나와야 재미있지.”
역시, 환마를 꼭 나의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