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제29장 천산으로 天山
“왜 이렇게 신이 난 것이냐?”
이른 아침.
본전에 출근하기 위해 방을 나선 마뇌는 콧노래를 부르며 큰 짐 가방을 들고 나서는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그런 마뇌의 물음에 사마천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합숙이야.”
“환마 장로에게 들었다. 한 달간 천산에서 한다지.”
“응!”
마뇌의 물음에 사마천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해맑은 동생의 모습에 마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산은 위험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한 달 동안 버텨야 하는데 저렇게 즐거워하다니?
“천산의 악마의 산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헌데 왜 그렇게 기뻐하는 것이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마천의 행동에 마뇌가 묻자 사마천이 해맑은 미소로 입을 열었다.
“대공자와 함께이잖아!”
“…….”
일 초도 생각지 아니하고 즉시 대답하는 동생의 모습에 마뇌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남자를 좋아하나?”
“형, 농담이지?”
동생의 정색에 마뇌는 헛기침을 하며 사마천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형의 모습에 사마천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다른 공자들과 함께하는 합숙이야. 나는 그동안 대공자에게 차기 군사로서 그에게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어야지.”
“흐음…….”
사마천의 말에 마뇌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내 눈에는 그냥 놀러 가는 놈처럼 보이는데.”
“크크, 역시 마뇌 어르신입니다.”
피식.
동생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마뇌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다치지 마라.”
“내가 다칠 리는 없지,”
사마천의 대답에 마뇌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군사는 남들의 앞에 서서 전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의 뒤에서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작전을 내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다칠 확률은 낮다.
살거나, 아니면 다 같이 죽거나.
“죽지 마라.”
“응!”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기에 마뇌가 말했고, 사마천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사마천과 마뇌는 함께 본전으로 향했다.
* * *
“가느냐.”
마검단가.
방을 나선 단진은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굳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차가운 인상의 사내, 검마의 모습에 단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단진의 행동에 검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얼굴을 가리지 않았구나.”
검마의 명령이 아닌, 자의적으로 머리를 올려 얼굴 전체를 보인 단진.
그런 단진의 모습에 검마가 말하자 단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검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보기 좋구나.”
흠칫.
검마의 입에서 나온 진심.
그 진심에 단진은 순간 흠칫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
“다녀오거라.”
뒤이어 들려오는 검마의 목소리.
단진은 그런 검마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잠시 후, 검마는 사라졌고 홀로 남게 된 단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웃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검마.
그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단진의 앞에서 웃음을 보였다.
* * *
“가느냐!”
“푸하하! 갑니다!”
“푸하하! 잘 갔다 와라!”
어느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다.
* * *
“아버지.”
천마신교의 깊은 뇌옥.
야율민은 한 달간 합숙을 하기 전, 뇌옥에 갇힌 아버지 야율진을 찾아왔다.
야율민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야율진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야율진의 행동에 야율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야율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
역시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마치 잠을 자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럼.”
그런 야율진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야율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
그렇게 야율민이 물러나고 다시 홀로 남게 된 야율진.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검마의 아들에게 지지 마라.”
자신의 아들이 그 녀석의 아들에게 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
그렇기에 야율진은 응원했다.
야율민을 말이다.
* * *
“너희들 뭐냐?”
이른 아침.
연무장으로 나선 나는 나의 눈앞에 펼쳐진 괴상한 광경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푸하하!”
“이것저것 짐이 많습니다.”
“여분의 검과 비상식량을 챙겨 왔습니다.”
나의 물음에 웃기만 하는 구양적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사마천, 그리고 가방에서 짧은 단검과 비상식량을 내보이는 단진.
그런 세 명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자식들.
야외 합숙이 무슨 소풍인 줄 아는가?
야외 합숙은 훈련이다.
실전과 같이, 목숨이 달려 있는 훈련 말이다.
헌데 저렇게나 많은 짐을 들고 오다니?
산을 올라가다가 짐에 깔려 죽겠다.
야외 합숙의 개념조차 모르는 녀석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던 나는 문득 단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평소와 달랐다.
평소에는 긴 앞머리를 밑으로 내려 한쪽 얼굴을 가리던 녀석이 오늘은 모든 앞머리를 위로 틀어 올렸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시원하겠구나.”
단진의 왼쪽 얼굴의 절반을 뒤덮고 있는 끔찍한 흉터.
괴물과도 같은 모습이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건넸다.
그에 단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나의 말에 옆에 있던 구양적이 단진에게 다가와 물었다.
“푸하하! 야, 안 아프냐?”
저 자식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야지.
나는 당당하게 상처를 언급하는 구양적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안 아프다.”
그런 구양적의 질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단진이 대답하자 구양적이 다시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푸하하! 시원해 보이니 좋다!”
흐음…… 다행이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구양적의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구양적과 달리, 사마천과 야율민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단진의 반쪽 얼굴에 흉터가 있든 없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행동.
나는 그런 행동을 취하는 두 명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직 어린 놈들이 배려심이 깊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내심 기특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유일하게 짐이 없는 야율민을 바라보았다.
짧은 단창을 양쪽 허리춤에 차고 당당하게 서 있는 야율민.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두 눈에 이채를 띠며 입을 열었다.
“짐이 단출하구나.”
“야외 합숙은 훈련입니다. 저런 멍청이들과 저는 다릅니다.”
나의 물음에 야율민이 가슴을 쫙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 녀석은 뭔가 달랐다.
야룡이, 아무래도 이 녀석이 나의 오른팔이 될 것 같았다.
단진, 실패!
킁킁.
그때, 코를 벌렁거리며 야율민에게 다가온 구양적이 갑자기 야율민의 몸에 코를 들이밀었다.
그런 구양적의 행동에 얼굴을 찌푸린 야율민.
그가 싸늘한 눈빛으로 구양적을 바라보았다.
“꺼져라, 곰탱이.”
“맛있는 냄새 난다.”
야율민의 몸 냄새를 맡으며 맛있는 냄새라고 표현하는 구양적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미친 곰탱이.
결국 사람을 보고 맛있다고 하고 말았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인가.
원래의 종족을 찾아가는 듯한 구양적의 모습에 내심 한심해하던 그때.
구양적이 야율민의 주머니에 있던 막대 한 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천에 싸인 고급스러운 당과가 말이다.
“푸하하! 역시 내 코는 못 속이지!”
“내놔라! 대공자님의 것이다!”
아니, 나는 단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당과를 두고 싸우는 야율민과 구양적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른팔은 개뿔.
다 똑같은 놈들이었다.
“모두 모였군요.”
그때, 환마가 연무장에 들어섰다.
환마의 말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는 환마를 바라보았다.
“짐이 많군요.”
사마천과 단진의 옆에 놓인 짐 가방에 환마가 말하자 둘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휘잉!
그때, 갑작스럽게 강력한 바람이 불어왔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바람에 고개를 갸웃거린 것도 잠시.
“어어!”
강력한 바람에 날아가는 가방을 보며 사마천과 단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타악.
그렇게 바람에 실려 허공을 난 가방은 환마의 옆에 가볍게 착지했고, 모두의 시선이 환마에게 모여들었다.
“모두 압수입니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환마.
그의 말에 사마천과 단진이 얼굴을 찌푸렸고,
“대공자님, 지금이라도 드십시오.”
야율민은 환마의 눈치를 살피며 나에게 당과를 들이밀었다.
야율민, 이 녀석은 뭐 하는 놈일까?
그런 야율민의 모습에 환마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휘이잉!
덥석.
결국 야율민의 손에 들린 당과마저 바람에 실려 환마의 입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우물우물, 맛있군요.”
설탕을 녹여 만든 당과를 입에 문 환마.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야율민이 싸늘한 표정으로 환마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대공자님의, 대공자님을 위한, 대공자님에 의한 당과입니다.”
얼씨구, 당과 주제에 무슨.
“그만해.”
부끄러우니까.
나의 만류에 야율민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이 자식.
가끔씩 보면 정말 미친놈은 구양적이 아니라 이 자식이 아닐까 싶었다.
쿵.
그때, 나의 옆에 있던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한 개의 작은 가방이 떨어졌다.
“!!”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가방.
믿기지가 않는 이 상황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나뿐만이 아닌 모두의 옆에서 가방에 뚝 하고 떨어진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들의 짐입니다.”
경악하는 우리들과 달리 당과를 입에 물고 미소를 짓고 있는 환마.
그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환마를 바라보았다.
이 믿기지 않는 기이한 현상.
환마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역시, 대단해.’
환마.
그는 정말 뛰어난 술법사였다.
너무나도 탐이 났다.
“가방을 살펴보면, 약간의 육포와 비상용 검, 그리고 화섭자 火攝子 가 들어 있습니다.”
오호?
환마의 설명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서 나 혼자 천산에서 한 달간 생존할 때는 이런 짐은커녕, 아무것도 주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다른 아이들이 있어서 이렇게 후하게 챙겨 주는 것인가?
이렇게 챙겨 주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나는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러한 짐이 있으면,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화섭자.
이류인 우리가 불을 피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내공으로 삼매진화 三昧眞火 를 일으켜 불을 피울 수도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집어 들었다.
“대공자.”
그런 나의 행동에 환마가 나를 불렀다.
“예?”
“대공자는 어제부터 여유로워 보이는군요.”
그런 나의 대답에 환마가 묘한 표정으로 말했고,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자신 없는 것은 없어서요.”
“굉장한 자신감입니다.”
“네.”
“부디 자만과, 오만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너무나도 당당한 나의 모습에 환마가 말했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만심과 오만함이 가득한 아이로 보이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에 행동으로 보여 주자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가벼운 가방을 들고 환마와 함께 천산으로 향했다.
이때는 몰랐다.
나의 완벽한 자신감이 산산조각 나게 될 것 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