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제28장 야외 합숙 野外合宿
“주군.”
팔랑.
천마신교의 주인인 교주만이 기거할 수 있는 거처 천마각.
마뇌가 올린 서류를 읽고 있던 천마를 일살이 공손히 불렀다.
일살의 부름에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서류를 넘기는 데 집중하는 천마.
그것이 곧 대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일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부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멈칫.
계속해서 서류를 넘기던 천마의 손이 일살의 보고와 동시에 멈추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천마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대부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깊은 시각.
천마대전도 아닌 자신의 거처에 찾아온 천소화의 행동에 천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나의 거처에 찾아온 이는 처음이군.”
팔 년 전.
형들과 어머니를 제 손으로 직접 죽이고 얻은 자리가 지금의 자리이다.
그 피의 무게로 인해 사람들은 천마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천마가 거처에 있는 시간 동안은 찾아오지 않았다.
업무 외의 시간.
그 시간에 천마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천마의 충실한 수하인 일장로 검마마저 말이다.
아무튼, 그런 천마의 말에 일살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렇습니다.”
천마의 말대로 천소화가 처음이었다.
그에 천마는 서류를 한쪽 구석으로 치웠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들여보내라.”
“알겠습니다, 차를 준비할까요?”
“아니.”
일살의 물음에 천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일살은 한번 읍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방문으로 걸어갔다.
일살이 방문을 열자 천소화가 보였고 일살은 눈을 내리깔며 천소화에게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
일살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천소화.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쿠웅.
천소화가 방 안으로 들어서고, 일살은 밖으로 나가 방문을 닫았다.
천마와 천소화가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말이다.
“앉지.”
“네.”
처음으로 지아비의 방에 들어선 천소화.
그녀가 어색해하자 천마가 자리를 권했고 천소화는 짧게 대답하며 의자에 앉았다.
천소화가 자리에 앉고.
천마는 무심한 눈으로 천소화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위극신이 다쳐서 말다툼을 했던 것이 불과 삼 일 전이다.
그때 겪었던 가슴 통증의 원인을 찾지 못했던 천마였기에 일부러 그녀를 찾지 않고 있었는데 그녀가 찾아왔다.
그것이 궁금했던 천마가 묻자 천소화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기를 잠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극신이를 구해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
천소화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천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천소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때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것, 죄송합니다.”
“죄송하다?”
천소화의 사과에 천마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음이다.
자신의 부인인 천소화에게 사과를 받는 것이 말이다.
그런 천마의 반응에 천소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극신이에게 이야기를 듣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찾아와서 사과를 해야 할지 말지.”
“…….”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어 늦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화는 천소화의 모습에 천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용서를 구했었다.
‘죽여 주시옵소서!’라든가, ‘용서해 주시옵소서!’라든가 말이다.
하지만 천소화의 사과는 무언가 달랐다.
수하들의 사과를 받더라도 무덤덤했던 천마.
하지만 천소화 그녀의 사과에는…….
욱신.
이상하게 가슴이 불편했다.
무엇인가 꽉 막힌 듯 말이다.
“되었다.”
그에 천마는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용서를 해 준다기보다는 불편한 가슴 통증이 사라졌으면 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천마의 용서에 천소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심, 천마의 분노가 대단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천소화를 보며 천마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과를 하려고 이 시간에 찾아온 것인가?”
피곤함이 가득한 천마의 물음에 천소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감사하다는 말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
“극신이를 구해 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의 아이를 구해 준 은인에게 감사를 표하는 천소화의 모습에 천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네놈 때문이다!’
멈칫.
그때,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20년 전 자신의 친모였던 여인.
지아비에게 사랑받지 못한 것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되돌린 최악의 여인에 관한 기억이 말이다.
그런 여인을 위해 자신은 죽을 듯이 수련했고, 뛰어난 무재로 소교주에 오르자 친모는 교주의 정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모는 전대 천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
너무나도 욕심이 많은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원인을 자신으로 돌리며 절규하던 여인.
자신이 아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였다.
자식을 살려 주어서 고맙다.
이런 약한 말을 하지 않는단 말이다.
“교주님?”
갑작스러운 기억과 그동안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른 사실에 혼란스러웠던 것도 잠시.
천마는 귀에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갑작스럽게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천소화.
그녀의 목소리에 두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천소화.
그녀와 있으면 가슴이 욱신거렸다.
또,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서 병 病 인 것인가, 약 藥 인 것인가.
천마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천소화는 더 이상 남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도 그 아이의 아버지다.”
순간 천소화와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천마는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 자신이 이때까지 살아온 가치관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 천마의 말실수에 천소화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내심 입에서 갑작스럽게 튀어 나간 말실수에 아차 했던 천마는 천소화의 재미있는 반응에 그만 웃고 말았다.
그러고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
처음이다.
천마의 따뜻한, 아니 인간적인 미소가.
천소화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듣기 좋은 나긋한 목소리로 묻는 천마의 모습은 낯설었다.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다.
“부인.”
흠칫.
그때, 천마의 부름에 천소화는 흠칫했다.
부인이라는 소리.
오늘따라 너무나도 낯설었다.
“같이 산책하겠나?”
처음으로 자신에게 산책을 하자고 권하는 천마를 보며 천소화는 계속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네.”
천소화는 수락했다.
그와의 산책을 말이다.
* * *
“반갑습니다, 대공자.”
아침을 먹고 연무장에 나선 나는 낯선 사내의 인사에 흠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에게 인사를 건넨 사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사내의 두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사장로.”
사장로이자 정파에서 사술이라 불리는 술법을 사용하는 술법사 환마 幻魔.
신교의 사장로이자 초절정고수인 그를 향해 내가 인사를 건네자 환마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변하셨군요.”
“더 잘생겨졌지요?”
환마는 좋은 사람이다.
비록 수련할 때는 얄짤 없었지만 늘 나를 인간적으로 대우 해 주던 이가 바로 환마였다.
그런 환마를 향해 내가 여유 있게 농을 던지자 환마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능글맞은 농담을 던지니 놀랄 만도 했다.
“하하! 그렇습니다. 아주 멋있습니다.”
그런 나의 농에 당황한 것도 잠시, 환마는 소리 내어 웃으며 나의 농을 받아 주었다.
그런 환마의 모습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환마.
전생에서 그는 내가 여섯 살 때 죽는다.
사인은 자살 自殺.
천산에 나타난 라마승들을 생포하고 신교로 돌아오던 중, 그만 라마승들의 술법에 당하고 말아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
환마의 손에서 벗어난 라마승들은 평범한 교인들이 사는 마을로 도망가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켜 버린다.
그렇게 환마의 작은 실수로 죄 없는 교인 삼백 명이 순식간에 죽어 버렸고, 그것에 큰 죄책감을 느낀 환마는 천마의 용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거나 포로가 되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천마신교의 마인들과 달리 죄책감에 힘들어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환마였다.
전생에서 사황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술법사들을 보아 왔지만 환마보다 강한 술법사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한 번씩 생각했다.
환마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말이다.
하지만 이십오 년 전으로 회귀한 지금.
환마는 내 눈앞에 멀쩡히 살아 있었다.
모든 술법사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되는 술법사를 살릴 기회였다.
그 강한 술법사는 마인답지 않게 인간적인 심성까지 지니고 있다.
천마신교를 바꾸려는 나에게 있어서 환마는 거두고 싶은 인물 일 순위와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를 기필코 살릴 것이다.
그리고 함께 바꾸어 나갈 것이다.
삭막한 천마신교를 말이다.
“모두 모였습니까?”
잠시 후.
나를 포함한 총 다섯 명이 환마의 앞에 서자 환마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
그에 내가 대표로 대답했다.
그런 나의 모습에 눈을 반짝인 환마.
그거 다른 아이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대공자의 중심으로 모여 있군요.”
“아이들과 친하니까요.”
환마의 말에 나는 싱긋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그에 환마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나와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수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를 공지하겠습니다.”
오늘은 어떤 수련을 할까 궁금해하고 있던 나는 이어진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련의 내용이 아닌 공지라니?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환마를 바라보았다.
“제 수련은 내일부터 시작되며, 한 달 동안 진행합니다.”
“……?”
갑작스러운 환마의 말에 나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다른 장로들은 길면 오 일, 짧으면 하루를 번갈아 가면서 우리의 수련을 돌봐 주었다.
헌데, 갑자기 한 달이라니?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환마의 말에 내가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런 나의 질문에 환마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한 달 동안 대공자와 나머지 공자들은 합숙을 해야 할 것입니다.”
“푸하하! 재미있겠군.”
“천산에서 말입니다.”
“…….”
환마의 말에 구양적이 크게 웃은 것도 잠시, 뒤이어진 환마의 말에 모두가 얼굴을 굳혔다.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천산.
신강과 중원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너무나도 험한 산세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중원의 인물들이 신강에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천혜의 요새다.
그리고 마인들에게 또 다른 이름으로 악마의 산이라고도 불린다.
일류의 고수도 그곳을 오르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죽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악명이 높은 천산에서 한 달간 합숙이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이미 전생에서 이 훈련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숙식은 알아서, 맞습니까?”
“네.”
나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환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아이들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그리고, 저와 제 수하들이 틈틈이 습격을 할 것이랍니다. 잘 때, 용변을 볼 때, 등등의 방심한 순간에요.”
“그것은!”
“장로님!”
환마의 말에 야율민과 사마천이 화들짝 놀라며 앞으로 나섰다.
너무나도 높은 강도의 훈련에 불만이었던 것이다.
스윽.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조용히 손을 들자 야율민과 사마천은 언제 그랬냐는 듯 뒤로 물러섰다.
“호오?”
그런 우리들의 모습에 환마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넘어가고.
나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환마를 바라보았다.
“내일 몇 시부터입니까.”
이번 합숙.
아주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