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제27장 이류 二流
소교주전에 위치한 아름다운 정원.
대부인 천소화가 위극신을 만나러 왔다가 가꾸기 시작한 정원의 한가운데에 야율령이 앉아 있었다.
부웅!
시각을 지닌 일반인들과 달리 다른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 야율령은 멍하니 바람을 맞고 있다가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람을 싣고 날아온 바람 소리.
그 소리는 너무나도 슬펐고, 또 무서웠다.
그에 야율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픔과 공포의 사이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절실한 마음이 말이다.
비록 앞은 보이지 않지만 들려오는 소리의 방향으로 야율령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똑바로 걸었다.
부웅!
잠시 후.
야율령은 정원 옆에 위치한 수련장에 도착했다.
부웅!
계속해서 들려오는 힘찬 바람 소리.
그 바람 소리에 야율령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저기요.”
스윽.
야율령의 부름과 동시에 목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감촉.
야율령은 자신의 목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날카로운 검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냐.”
갑작스러운 검의 감각에 놀란 야율령의 귀로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
놀란 야율령의 정신을 깨울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 차가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야율령이 양손을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수련을 방해해서.”
무림에서는 다른 사람이 수련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금기다.
상대방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 또 그에 대한 약점은 무엇인지 파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야율령이 소년에게 사과를 건네었다.
그런 야율령의 사과에 차가운 소년, 단진은 가만히 야율령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두 눈을 감고 있는 소녀.
그 소녀를 가만히 바라본 단진은 곧, 소녀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야율민의 동생인가.”
“네, 오라버니의 벗인가요?”
스윽.
“말조심해라.”
그딴 녀석과 벗이라니.
당치도 않았다.
야율령의 질문에 단진은 더욱더 깊이 검을 겨누었다.
그런 단진의 격한 반응에 야율령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
야율령의 사과에 잠깐 그녀를 바라본 단진.
이내 그가 검을 거두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야율령이 자신의 무공을 의도적으로 훔쳐볼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지만, 다른 사람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금기.
아무리 눈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서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거기까지 생각한 단진이 경고를 했고 야율령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오라비인 야율민과 닮은 듯한 단진의 모습에 친근감이 들었던 것이다.
“조언 감사해요.”
“가라, 나는 더 수련해야 하니까.”
웃으며 자신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야율령을 보며 단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연무장 가운데로 걸어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다시 검을 휘두르기 위해서였다.
“저기, 공자.”
그때, 뒤에서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단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무서운 표정으로 야율령을 바라보았다.
“나의 말이 우스운가?”
“살기가 가득해요.”
“……?”
단진의 무서운 기세에도 불구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말한 야율령.
단진은 갑작스러운 야율령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기가 가득하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검에 살기가 가득해요, 마치 내가 곧 너를 죽일 것이다 하는 것 처럼요.”
시각을 잃었지만 그로 인해 여타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 야율령.
그녀의 감각에 느껴졌던 기운을 단진에게 알려 주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살기가 가득한 검을 휘두르는 것인가요?”
“…….”
옥구슬이 굴러가듯 아름다운 야율령의 목소리.
그녀의 물음에 단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남들이 듣는다면 듣기 좋은 목소리라 생각하겠지만 단진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했기에 거북스러웠던 것이다.
“꺼져라.”
그런 거북한 감각에 기분이 나빠진 단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살기를 일으키며 말이다.
그에 야율령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공자.”
“…….”
“많이 힘들어 보여요.”
“꺼지라고 했다.”
정말 마지막이다.
야율민의 동생이든, 시각을 잃은 불쌍한 아이이든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검을 쥔 단진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올라오는 화를 애써 참으며 마지막으로 경고한 단진.
그런 단진의 경고에 야율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수련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야율령의 담백한 사과에 단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야율령은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그렇게 그녀가 사라지고 홀로 남게 된 단진.
그가 다시 검을 들었다.
수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부웅!
“제길!”
복잡했다.
살기가 가득하다고?
짜증났다.
저 여인은 왜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 마음을 심란하게 한단 말인가?
검을 휘두름에도 불구하고 계속 떠오르는 야율령.
그녀의 생각에 단진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도저히 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제길!”
그렇게 집중을 하지 못하고 검을 휘두르던 것도 잠시.
계속해서 떠오르는 잡생각에 단진은 결국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검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신경질적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야율령.
짜증나는 아이였다.
‘살기가 가득해요.’
그렇게 짜증을 내는 것도 잠시.
야율령이 처음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살기가 가득하다.
그것은 무슨 뜻일까?
고개를 갸웃거린 단진이 가만히 자신의 검을 들어 바라보았다.
마검단가의 소가주에게 내려오는 백색의 보검.
초대 검마가 창안한 마검단가의 독문무공, 환천마검 幻天魔劍 에 특화된 검이었다.
“!!”
그때.
가만히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환천마검을 떠올리던 단진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검은 환검 幻劍 이다.
하늘마저 홀릴 정도로 아름다워야 하며, 그 어떠한 인간이더라도 완벽하게 속여야 하는 변칙적인 환검 말이다.
상대방에게 현실과 다른 환상을 보여 주어 그것을 믿게 하는 것이 자신의 검이다.
헌데 환상을 보여 주는 검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살기를 받은 상대방이 자신이 만든 환상에 속을까?
자신이 만든 환상에 빠져 홀려 버릴까?
대답은 아니요, 이다.
어느 누가 살기를 흘리는 것에게 매력을 느끼고 홀려 버린단 말인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
그것을 깨달은 단진이 쉬는 것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단진, 그는 자신의 검을 들었다.
그러고는 단전 속에 잠들어 있던 내공을 끌어 올렸다.
환천마검 幻天魔劍
제 弟 일식 一式.
마영천검 魔影天劍.
마의 그림자가 검이 되어 하늘을 가득 메운다.
휘둘러지는 단진의 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곧 단진의 검이 두 개가 되었고 다시 네 개가 되었다.
네 자루가 되어 버린 단진의 검.
그 검이 단진의 의지에 따라 상대방을 덮쳤다.
콰콰쾅!
너무나도 강력한 힘에 그대로 연무장의 바닥을 폭파시켜 버린 단진.
거대한 폭발음에 정신을 차린 단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우웅!
자신의 손에서 울고 있는 검이 말이다.
* * *
“정말 해내다니…….”
연무장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에 한달음에 이곳으로 달려온 나는 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단진의 손에 들린 검.
우웅!
마치 자신을 봐 달라는 듯 당당하게 공명을 하는 검을 보며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열 살이다.
고작 열 살이라는 나이에 이류의 경지에 올랐다.
저 아이의 미래는 어떨까?
기대가 되었다.
어쩌면, 신교에 화경의 고수가 두 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와 단진.
이렇게 둘이 말이다.
“대공자님!”
그때, 연무장으로 나온 나를 발견한 단진이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녀석은 웃고 있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환한 웃음으로 말이다.
그에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이는 웃어야 예뻤다.
“축하한다.”
나의 앞으로 달려온 단진을 보며 나는 축하 인사를 건네었다.
그러고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단진.”
“예, 대공자님.”
“약속은 지키겠다.”
“감사합니다!”
나의 말에 단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아…….
벌써부터 걱정이다.
천마에게 무엇이라고 말할지 말이다.
“대공자님.”
“그래.”
천마와 대화를 나눌 것을 상상하며 한숨을 쉬던 나는 단진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단진이 말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기에 저런 표정을 지을까?
단진의 표정을 보고 의문이 들었던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뭔데?”
그런 나의 말에 단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대공자님과 함께 화식을 하고 싶습니다.”
녀석.
단진의 말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아닌 척하면서 화식을 정말 하고 싶었나 보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냐?”
“오늘 같은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나의 물음에 당당하게 대답하는 단진.
나는 그런 단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가자, 오늘 형이 맛있는 거 쏠게.”
“네!”
아 근데 이 자식 키 크네.
부럽다.
까치발을 하고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두른 나.
그런 나의 말에 단진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귀여웠다.
나는 그런 녀석의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섯 살인 내가 열 살인 단진의 뒷머리를 말이다.
* * *
“그렇게 하도록.”
깊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각에 매일 천마와 수련을 하기로 한 나는 뜻밖의 허락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쉽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까?”
“검마의 아들이라면 너의 검이 될 아이다. 지금부터 같이 지내는 것도 좋겠지.”
천마.
그는 생각보다 깨어 있는 사람이었다.
“교주님.”
“그래.”
나의 부름에 낮게 대답한 천마.
나는 그런 천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요새 저에게 너무 후하신 것 같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바뀌면 빨리 죽는다는데 말이다.
“혹,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까?”
“…….”
나의 물음에 천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스윽.
“아…… 잠깐만요.”
그저 검을 집어 들 뿐이다.
무서운 천마의 모습에 당황한 나는 뒷걸음쳤지만 이미 늦었다.
부웅!
천마의 검이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주님.”
부웅!
나를 향해 휘둘러지는 검을 황급히 피한 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천마를 불렀지만 천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꼭 삐진 아이 같은 천마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천마와 이렇게 단둘이 수련한 지도 벌써 삼 일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천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현재 천마는 이십 대 중반이다.
전생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
그러다 보니 어른의 시야를 가지고 있는 나의 눈에 보였다.
천마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서툴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천마에게 많이 까불기 시작했다.
마의한테 까불듯 말이다.
물론 눈치를 보며 까분다.
어느 정도의 선은 넘지 않도록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천마에게 까불었고, 오늘도 천마는 흥분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이런 상황은 삼 일 동안 일상과도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즐겁네.’
즐거웠다.
냉혹하고 잔인한 천마.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고, 또 증오했던 천마였다.
전생에서 나를 괴물로 키운 이가 그였으며, 또 괴물이라며 나를 비난했던 이가 그였다.
원수와도 같은 이였지만 최근 나는 조금…… 심경에 변화가 있었다.
천마가 마치 진짜 나의 아버지가 된 듯한 그런…… 복잡한 심경 말이다.
꽈악!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검을 강하게 쥐었다.
채챙!
그러고는 천마를 향해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잠깐 나태해졌다.
잊지 말자.
천마, 그는 괴물이며, 아버지의 자격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