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제26장 한 입만 蟲
천마와의 수련을 마치고.
나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마의각에 들렀다.
또 상처를 입은 나를 보며 마의는 한숨을 내쉬며 폭풍과 같은 잔소리를 해 대었다.
물론, 나는 그런 잔소리를 가볍게 흘려들었다.
그러면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검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린 채 가만히 서 있는 천마.
그의 검은 정말 무서웠다.
그와 긴 시간 동안 대련을 마치고, 마지막 천마는 나에게 보여 주었다.
진정한 천마신공을 말이다.
그것을 직접 겪은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이렇게 다쳤다.
이류 수준의 내공임에도 불구하고, 칠성의 경지에 오른 천마의 신공은 나의 천마신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전생에서 사황이라 불리며 화경의 경지에 올랐던 나.
지금의 천마가 그때의 나보다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났다.
기필코 저 무공을 대성하고 싶다는 욕심 말이다.
아무튼, 천마의 검을 직접 몸으로 견식한 나는 상처를 입어야 했다.
다행히 깊게 베이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찌푸려질 정도로 쓰라렸기에 나는 마의각을 찾아왔고, 양팔에 붕대를 감게 되었다.
그렇게 치료를 마치고 처소로 돌아온 나는, 식당에 모여 있는 인물들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벽곡단을 앞에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난 단진과 구양적과 반대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자리에서 일어난 야율민과 사마천이 보였다.
그런 네 명을 바라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가장 상석에 위치한 의자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나머지 네 명이 자리에 앉았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나와 함께 천마신교를 이끌어 갈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다행히도 나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괜찮으십니까?”
그때,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양팔에 붕대를 감은 것이 뻔히 보이는데 괜찮냐니?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인가?
“괜찮아 보이냐?”
양쪽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예민해진 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한 나의 반응에도 야율민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대공자님, 아침부터 도대체 어디를 다녀온 것입니까?”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마천이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 거 없다.”
“저는 장차 대공자님의 머리가 될 이입니다.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 자식이.
“누구 맘대로?”
자기 멋대로 나의 머리가 되려는 사마천을 보며 나는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십 년은 멀었다.
내 눈에 사마천은 고작 열다섯 살인 소년이다.
아직, 경험이 전혀 없는, 자기가 잘난 것만 아는 미성숙한 소년.
그런 나의 말에 사마천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저를 군사로 쓰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하는 것 봐서.”
충격받은 녀석의 모습이 재미있었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 사마천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오리고기를 나의 앞으로 내밀었다.
“대공자님, 오리고기가 참 맛있습니다.”
“오리 기름을 먹으면 피가 더 나지 않을까?”
“마의 어르신의 솜씨인데 설마 그러겠습니까?”
나의 말에 사마천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역시 미워할 수 없는 놈이었다.
능글맞은 사마천의 행동이 귀여웠던 나는 젓가락을 들어 앞에 위치한 오리고기로 가져갔다.
“윽!”
젓가락으로 오리고기를 집으려는 찰나!
나는 붕대가 감긴 팔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대공자!”
“대공자님!”
그런 나의 신음에 옆에 있던 야율민과 사마천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들갑 떨지 마.”
“제가 먹여 드리겠습니다.”
“꺼져.”
이 자식이.
너무 과하다.
나의 호위무사라는 신분으로 계속 나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야율민.
녀석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거절했다.
그에 야율민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
열세 살이나 먹은 놈이 주인한테 외면받은 강아지처럼 시무룩해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왜 나에게 먹여 주려고 하는 것인데?
싫다.
격렬하게 싫다.
“대공자님.”
그렇게 신음을 흘리며 오리고기를 집은 나는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작은 벽곡단을 순식간에 삼키고 우리 셋이 음식을 먹는 것을 지켜보던 어린 미소년.
바로 검마의 아들 단진이었다.
녀석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왜?”
“저도, 야율민처럼 대공자님의 호위무사가 될 수는 없습니까?”
“…….”
이 자식들.
나를 너무 좋아하는데?
인기인의 삶이란 역시 피곤했다.
단진의 물음에 나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 돼.”
“제가 삼류이기 때문입니까?”
녀석의 자격지심 섞인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진은 천마조차 인정한 재능을 지닌 아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거절할 리가 없지 않은가?
“너는 아버지가 집에 있잖아.”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얘는, 집에 있으면 불편할 거 아니야.”
단진의 말에 내가 야율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에 단진은 잠깐 야율민을 바라보았다.
파지직!
둘 사이의 시선에서 전기가 파지직한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아무튼, 서로 잠깐 마주 본 단진과 야율민.
단진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집이 불편합니다.”
오우야.
너무 훅 들어온다.
당당하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단진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다니?
확실히, 천마신교의 아이라서 그런지 정상은 아니었다.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다시 단진을 바라보았다.
“왜, 야룡이처럼 나와 함께 있고 싶은 건데?”
“제가 대공자의 검이 될 것이니까요.”
“그러면 너는 검, 야룡이는 창. 하면 되겠네.”
단진의 말에 나는 어깨를 살짝 으쓱이며 대답했다.
“저는 머리 하겠습니다.”
저 자식이.
잠시 빈틈이 보이자 훅 들어오네.
은근슬쩍 손을 들며 말을 하는 사마천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귀여우니까 봐준다.
“푸하하! 그러면 나는 주먹!”
사마천을 허락하자 이번에는 구양적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안 돼.”
“푸하하! 쑥스러워하기는!”
“혐오하는 거다.”
“푸하하!”
저 자식은 말이 통하지가 않는다.
나의 대답에도 웃는 녀석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단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에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빠안.
음…… 시선이 따가웠다.
“맛있군.”
“많이 드십시오.”
녀석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내가 고기를 씹으며 말하자 야율민이 나의 앞으로 고기를 내밀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칫.
뭐야.
그때, 나는 앞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운에 흠칫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매서운 눈빛으로 야율민을 노려보는 단진이 말이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단진아.”
“예, 대공자님.”
나의 부름에 언제 그랬냐는 듯 매서운 눈빛을 지운 단진이 대답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 있어?”
“저는 대공자님의 옆에 항상 있고 싶습니다.”
“거절한다.”
나는 여자를 좋아해.
왜 저렇게 나랑 같이 있으려고 하는 거야?
나의 단호한 거절에 단진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늘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이 저렇게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아니, 내 거절이 저렇게나 충격받을 일인가?
내가 잘못한 것인가…….
단진은 아직 열 살의 어린 나이이다.
그리고 가족의 사랑과 정을 모르는 불쌍한 아이다.
그런 아이에게 이렇게 모질게 굴다니.
아아…… 나는 너무나도 나쁜 놈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결국, 마음이 약해져 입을 열었다.
“삼 일.”
“……?”
나의 입에서 나온 삼 일이라는 말.
그 말에 단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삼 일 안으로 소주천을 이룬다면, 너도 이곳에 머물 수 있도록 교주님에게 청을 올리겠다.”
“정말이십니까?”
나의 말에 단진이 언제 충격 받았냐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절대 불가능해.
삼 일 안에 소주천을 이룬다고?
예끼! 어림도 없다.
단진은 이제 열 살, 무공을 제대로 수련한지는 아마 한 육 년 되었을 것이다.
육 년 만에 소주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와 같은 회귀자가 아닌 이상 말이다.
벌떡.
“저는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오, 의욕 넘치네.
나의 확답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단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에 나는 한 손을 들어 올려 보이고는 가볍게 흔들었다.
“힘내.”
“응원 감사합니다.”
비꼰 건데.
진지하게 감사해하는 단진을 보며 나는 다시 죄책감을 느꼈다.
* * *
부웅!
‘삼 일 만에 무조건 이류에 오른다.’
홀로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단진.
그가 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매서운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기초를 다지기 위해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사선 베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단진.
곧, 그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몸이 풀렸다고 생각한 단진이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스윽.
그러고는 자세를 낮추었다.
금방이라도 검을 출수할 듯 발검의 자세를 취한 단진.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짧은 두 개의 단창을 양손에 쥐고 얄밉게 웃고 있는 야율민이 말이다.
“너에게 질 수는 없다.”
이류의 경지에 올라 대공자의 옆자리를 차지한 야율민.
감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야율민을 떠올린 단진이 검을 강하게 쥐었다.
챙!
부웅!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 완벽한 발검.
삼류의 수준인 단진이 행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발검이었다.
부웅!
하지만 단진은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의 적, 야율민이 검을 가볍게 피했기 때문이다.
가상으로 만들어진 야율민.
단진은 이를 갈며 그런 야율민을 노려보았다.
“대공자님의 옆자리는 나의 것이다…….”
타앗!
* * *
흠칫!
“뭐야!”
맛있게 고기와 얼큰한 탕을 먹고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오한에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런 나의 놀람에 주변에 있던 야율민과 사마천, 그리고 구양적까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음…… 아무것도 아니다, 밥 먹어.”
그런 녀석들의 모습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나의 말에 야율민과 사마천은 다시 식사를 시작했고.
이미 벽곡단을 전부 먹은 구양적은…….
“한 입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탕을 떠먹고 있는 사마천의 옆에 딱 붙어서 한 입을 구걸하고 있는 구양적을 보며 나는 이마를 짚었다.
저 자식은 뭐 하는 놈일까?
“야, 너 먹으면 지금까지 선식을 한 이유가 없어지는데?”
“푸하하! 그런 것은 상관없다!”
상관없기는 개뿔이.
당당하게 말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이 장로가 알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걸?”
“푸하하! 나의 아버지는 그런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야, 작은 것이 아니야.
앞으로의 너의 미래.
무인의 길이 걸려 있는 중요한 것이야.
이 자식은 아직 어려서 그런가.
무엇이 중요한지 구분을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한 입만.”
“하하, 대공자의 허락을 맡으면 드리겠습니다.”
“치사하군.”
사마천의 거절에 구양적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한 입만.”
이번에는 야율민에게 한 입을 구걸하는 구양적이었다.
곰 같은 덩치를 지닌 놈이 강아지처럼 아양을 떨며 한 입을 구걸했고, 그것을 본 야율민은.
“죽여 버린다.”
“푸하하!”
진심으로 정색하며 화를 내었다.
그런 야율민의 반응에 구양적은 소리 내 웃었고 말이다.
저 자식은 정말 특이한 놈이다.
연구 대상감이다.
“대공자.”
그때, 신기한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작스럽게 웃음을 멈춘 구양적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이다.
녀석의 진지한 눈빛이 말이다.
그런 녀석의 눈빛에 나는 미소를 지웠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왜?”
“한 입만.”
에라이.
퍼억!
역시, 저 자식은 주먹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