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제24장 쫄았다 怯
다음 날.
“정말 괜찮아?”
나는 이른 아침부터 세숫물을 가지고 방에 들어선 유화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아직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그녀가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의각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그녀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네,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묻는 나의 행동에 유화는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고집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유화가 건넨 세숫물을 받아들여 간단한 세안을 시작했다.
“삼장로의 벌이 정해졌습니다.”
세안을 하는 동안 유화가 무료했는지 내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에 나는 세수를 마친 다음 유화가 건넨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
“야율창가의 십 년간 봉문, 재산의 절반을 압수, 삼장로는 내공을 금제하고 뇌옥에서 삼 년간 독방.”
“……?”
뭐지?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다시 설명해 드릴까요?”
두 귀를 의심하는 나의 모습에 유화가 말했다.
그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이야?”
“네.”
너무 심했다.
너무나도 가혹한 벌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공자인 나의 팔을 꺾은 것으로 그런 큰 벌을 준다고?
애초에 내가 알기로는 소교주가 아닌 이상, 교주의 자손에게 어떠한 해를 입히더라도 법적으로는 상관없었다.
천마신교는 강자존의 사상으로 뭉쳐진 집단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삼장로는 본교에 몇 없는 초절정의 고수이며, 장로라는 높은 위치에 존재하고 있다.
강자 중의 강자인 삼장로에게 그렇게 가혹한 벌이 떨어지다니?
천마신교의 생리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나였기에 이러한 처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에 나는 유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상하지 않아?”
“이상합니다.”
나의 물음에 유화가 즉시 대답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유화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원래라면 당장이라도 죽였어야 합니다. 그자는 공자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음…….
너는 나와 생각이 달랐구나.
두 눈을 반짝이며 무서운 말을 내뱉는 유화를 보며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 한 번씩 보면 무섭다.
그에 화제를 바꾸기 위해 나는 유화에게 수건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야룡이는?”
“이미 일어나서 문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유화의 즉각적인 대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야룡이 이 녀석, 아주 부지런하다.
“나가면서 야룡이한테 수련장에 먼저 가서 수련 시작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세수를 마친 내가 말하자 유화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유화가 밖으로 나가고.
나는 동경 앞에 앉았다.
평소에는 유화가 나의 머리를 빗어 주고 옷을 입혀 준다.
하지만 이제는 필요 없었다.
“음, 내 머릿결 좋다.”
내가 내 머리를 빗을 수 있고, 옷을 입을 수 있으니 말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나의 비단결과 같은 머리칼을 빗은 나는, 유화가 꺼내 놓은 옷을 집어 들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이면서 옷깃에 붉은색의 구름을 새겨 놓은 무복.
아주 깔끔하고 예뻤다.
옷을 보며 만족한 나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옷을 다 입은 나는 고개를 들어 동경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피부와 똥똥한 볼살이 너무나도 매력적인 어린 공자가 보였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동경에 있는 공자가 미소를 지었다.
다시 봐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동경 속에 비친 황홀한 나의 모습에 심취한 나는 손을 천천히 들어 부드럽게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거울 속에 있던 미공자 또한 나와 같은 행동을 취하였다.
“너무 잘생겼어.”
완벽했다.
오늘도 나는 역시 잘생겼다.
“대공자님.”
흠칫.
그때,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러자 보였다.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일살이 말이다.
용서를 구하는 일살의 모습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봤어……?”
“음, 내 머릿결 좋다부터…….”
아…… 쥐구멍이 어디 있지?
* * *
수신호위 일살.
초절정고수인 그는 천마신교를 지탱하는 다섯 기둥인 오 장로들과 같은 무위를 지닌 숨겨진 고수였다.
오로지 지존인 천마를 위해 존재하는 수신호위 일살.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지존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최근 자주 발걸음을 한 익숙한 전각에 들어섰다.
소교주는 아니지만 그곳에 기거하고 있는 대공자를 만나고 천마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조용히 불러오라는 천마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대공자의 방에 잠입한 일살.
그는 익숙한 뒷모습을 보이는 어린 공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음, 내 머릿결 좋다.”
멈칫.
상대의 입에서 나온 감탄성에 일살은 그대로 몸을 굳혔다.
순간적으로 입을 열 적기를 놓쳐 버리고 만 일살.
상대는 그런 일살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여전히 동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경 속 비친 자신의 모습이 감탄스러운지 연신 감탄하며 콧노래를 부르는 소년.
세심한 손길로 자신의 머리를 빗는 소년을 보며 일살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저자가…… 자신이 아는 대공자가 맞단 말인가?
자신이 아는 대공자는 감정이 전혀 없는 살인 인형이었다.
헌데 자신의 앞에 위치한 소년은 감정이 풍부한 천진난만한 아이로 보였다.
그리고.
“잘생겼어.”
동경을 보며 괴상한 몸짓을 하더니 이내 자신의 턱을 만지며 감탄하는 대공자의 모습에 일살은 경악했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감탄하다니.
물론 대공자가 미공자이기는 했다.
하지만 저렇게 동경을 보며 감탄한다고?
천마신교의 교인들이 알게 된다면 대공자를 비웃을 것이다.
그에 일살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 모습은 대공자의 사생활.
천마의 수신호위인 자신이 알면 안 된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사생활을 보면 안 된다고 생각된 일살이 입을 열었다.
“대공자님.”
움찔.
역시 놀라셨나 보다.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시는 대공자의 모습에 일살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림자와 같은 자신이 주군과도 같은 대공자의 사생활을 보았다는 것을 알리다니.
그냥 잠깐 숨었다가 다시 들어왔으면 되었을 것을…….
자신의 성급함을 탓한 일살은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놀라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래서 일살은 공손히 용서를 구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수신호위로서 보이지 못한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어디서부터 봤어?”
당장이라도 자신을 혼낼 것이라 생각했던 대공자.
그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물었다.
그에 일살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내 머릿결 좋다, 부터…….”
“아…….”
그리고 자신의 대답에 대공자가 무너졌다.
* * *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계속해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일살을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왜 온 거야?”
아까의 부끄러움은 말끔히 털어 내고.
내가 힘 있는 음성으로 묻자 일살이 입을 열었다.
“지존께서 찾으십니다.”
“나를?”
“네.”
왜?
나를 왜 찾는 것이지?
아니 그것보다.
“왜 네가 직접 온 거야?”
“조용히 모셔 오라는 명령이셨습니다.”
뭘까.
일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마가 나를 부른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 모르게 조용히.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가 보면 알겠지.
솔직히 이제 천마를 만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천마가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확신이 왜 생겼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 확신이 들었다.
아무튼 일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양팔을 들었다.
“가자.”
“…….”
그런 나의 행동에 일살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용히 가야 한다며?”
“네…….”
“그럼 나 안고 가. 나 아직 어린아이라서 한 품에 쏙 들어가.”
“…….”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지?
이 미공자를 안을 수 있는 기회인데 말이다.
아무튼, 나의 말에 일살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만지지는 말고.”
“……절대 안 만집니다.”
뭘 절대까지야.
나의 말에 정색하는 일살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초절정고수 일살.
그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인물 같았다.
* * *
잠시 후.
나는 일살의 품에 안겨 순식간에 천마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천마각……?”
천마대전이 아닌 교주의 거처, 천마각 天魔閣.
그곳에 도착한 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천마가 먹고 자고 하는 사적인 공간이다.
천마 본인과 사용인들 이외에는 누구도 들이지 않는 곳이 이곳이다.
헌데 그런 사적인 공간에 나를 불렀다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저를 따라오시지요.”
천마각에 도착하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일살.
그가 나를 내려 주고는 공손히 말했다.
“응.”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앞장서는 일살의 뒤를 따르며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생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천마만을 위한 전각, 천마각에 들어선 것이 말이다.
천마각이라 적힌 현판이 있는 대문을 지나친 나는 의외의 광경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마각 바로 앞에 위치한 높은 대나무들.
마치, 하늘을 뚫을 듯 솟아올라 있는 수많은 대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멋들어진 전각.
우중충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천마각은 아주 멋들어진 장소였다.
마치, 신선이 기거하고 있는 무릉도원 같았으며, 푸른 대나무가 청량한 공기를 선물해 주어 몸이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죽림 竹林에 감탄한 것도 잠시.
나는 나를 내려놓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일살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일살의 뒤를 따른 나는, 곧 나를 맞이하는 거대한 수련장을 만날 수 있었다.
죽림 속에 위치한 드넓은 공터.
그곳에 도착한 일살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명을 완수하였습니다.”
“아…….”
거대한 덩치를 지닌 일살이 무릎을 꿇자 그제야 나의 눈에 보였다.
한 손에 흑색의 검을 쥐고 있는 천마가 말이다.
갑작스러운 천마의 등장에 나는 놀란 눈동자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이곳은 천마의 개인 수련장인 것 같았다.
헌데 이곳에 나를 데려오다니?
설마…… 무공을 가르쳐 주기 위함인가?
천하제일인과 가장 가깝다고 평가되는 그가 직접?
나는 몰려오는 기대감에 긴장 어린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아버지.”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마의 입에서 뜻밖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지금…… 천마가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명을 한 것인가?
이런 적은 처음이다.
내가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든 전혀 관심이 없던 천마였다.
헌데 갑자기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너는, 나를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더구나.”
굳어 버린 내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자 천마가 예의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담겨 있는 무서움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일살은 이미 사라져 있는 상태.
드넓은 공터에는 천마와 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정면에 당당하게 서 있는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부를까요?”
솔직히, 그를 아버지라 부르든 어쩌든 나는 상관없다.
호칭은 말 그대로 호칭일 뿐이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나의 물음에 천마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네가 편한 대로 해라.”
“네, 교주님.”
천마가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천마의 개인적인 장소에 들어와서 친근감이 느껴져서일까?
나는 평소 천마의 앞에서 할 수 없는 당당한 어조로 대답했다.
“푸하하!”
그런 나의 모습에 천마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기를 잠시.
“받아라.”
천마가 손에 들려 있던 검을 나에게 던졌다.
그리고 나는.
수욱.
피했다.
“…….”
이런, 그런 나의 행동에 천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아직 제 실력이 부족하여 잡지를 못했습니다.”
“너는 완숙한 이류가 아니더냐?”
맞다.
실전 경험? 더럽게 풍부하다.
매일같이 장로들과 실전과 같은 대련을 했으니 말이다.
내공?
양은 작지만 아주 정순하다.
아마 웬만한 이류보다는 좋을 것이다.
그렇게 따져 보면 나는 완숙한 이류다.
아니, 천마도 짐작하고 있겠지.
나의 진정한 경지는 더 위라는 것을.
아무튼, 그런 천마의 말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절대 말할 수 없다.
사실은 쫄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