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제23장 사실입니다 眞實
“그날은 대공자와 대부인과 함께 가족 식사를 하셨던 날이었습니다.”
“허…….”
“그날 저녁, 저를 부르시고 함께 술을 대작하였지요.”
“믿기지가 않는군.”
사마정의 말을 들으면서도 장로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평소 술을 잘 즐기지 않는 천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술을 마시기는커녕, 이때까지 수하들에게 술을 따라 준 적도 없는 존재가 지금의 천마다.
헌데 그런 존재가 사마정과 대작을 했다고?
갑자기 왜?
“정말 알 수가 없군. 도대체 대공자가 어떻게 변한 거지?”
아직 회귀 이후의 위극신과 수련을 하지 못한 환마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 말하자 그와 마찬가지였던 권마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뭐가 바뀌었는데?”
그런 둘의 물음에 검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소식이 느리군.”
“이 자식이!”
그런 검마의 도발에 울컥한 권마.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금방이라도 검마에게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앉아라.”
그런 권마의 행동에 검마 또한 싸늘한 눈빛과 목소리로 받아쳤다.
“하…… 이 자식이 진짜…….”
“둘 다 진정해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니까.”
금방이라도 붙을 것 같은 검마와 권마를 보며 혈화가 말렸다.
혈화의 만류에 인상을 찌푸린 권마가 팔짱을 끼며 신경질적으로 의자에 앉았다.
“대공자에게 감정이 생겼습니다.”
콧김을 내뿜으며 화를 가라앉히던 권마, 그리고 가만히 있던 환마가 사마정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아는 대공자는 인형이었다.
아무런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살인 인형.
헌데 그런 대공자에게 감정이 생겼다고?
사마정의 말에 권마와 환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그런 둘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들어 올린 사마정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장로들을 둘러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모두 긴장하셔야 합니다. 본교는 더 이상 예전과 다릅니다.”
“대공자 한 명 때문에?”
긴장하라는 사마정의 경고에 환마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환마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고작 한 명이다.
그것도 다섯 살의 어린아이.
그런 아이가 바뀌었다고 초절정고수인 자신들이 긴장을 하라고?
“만약 우리가 삼장로의 입장이었다면 어떡했을까요?”
환마의 물음에 살짝 미소를 지은 사마정이 물었다.
그런 사마정의 물음에 검마를 제외한 장로, 세 명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자신의 행동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공자를 상상하니 자신들의 행동 또한 삼장로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 판단되었던 것이다.
대공자가 다쳐도 자신들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요, 우리 모두가 대공자를 그저 다음 교주라고만 생각했지, 지존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끄덕.
사마정의 말에 세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사마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
“지존은 달라지셨어요. 모두 옛날 지존을 생각하고 행동하면 안 됩니다.”
“…….”
사마정의 결론에 네 명의 장로 중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지존인 천마가 변했다는 것을 말이다.
“당분간 우리 모두, 몸을 사리도록 합시다.”
“동의한다.”
사마정의 의견에 검마가 동의했다.
“나도.”
“알겠다.”
“알겠어요.”
뒤이어 권마와 환마 그리고 혈화까지 동의했다.
그에 사마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컥.
그때, 장로각의 문이 열렸다.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도 불구하고 장로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여 있었군.”
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등장한 천마.
그의 등장에 네 명의 장로와 군사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큰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지존을 뵙습니다!”
* * *
야율민과 야율령.
둘과 함께 맛있는 밥을 먹고 그들에게 방을 안내해 준 뒤 나는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왔니?”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따듯한 목소리가 나의 귀로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탁자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어쩐 일이십니까.”
“다쳤다고 들었다.”
나의 물음에 어머니가 마시던 차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의 어르신께서 전부 치료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괜찮은 것이냐?”
“네.”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대답한 다음 의자에 앉았다.
쪼르르.
내가 자리에 앉자 어머니는 빈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따뜻할 때 마시거라.”
그러고는 나의 앞에 찻잔을 놓아 주며 말했다.
그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한 모금을 마시려는 그 순간!
“삼장로와 마찰이 있었다고?”
앗 뜨!
차를 마시려는 순간 질문을 하는 어머니의 행동에 나는 순간 혀를 델 뻔했다.
대답은 해야겠고, 차는 마셔야겠고.
그러다 보니 고장이 났나 보다.
호록.
아무튼,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차를 입가에 가져갔다.
그렇게 안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신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네. 하지만 교주님께서 구해 주셨습니다.”
“정말 구해 준 것이 맞느냐?”
나의 말에 어머니가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직접 구함을 받은 나 자신도 믿기지 않는데 어머니야 오죽할까?
그에 나는 확신 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정말, 교주님께서 구해 주셨습니다.”
“…….”
나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못 미더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나의 두 손을 잡았다.
“솔직하게 말하렴, 교주가 너에게 해를 입힌 것은 아니냐?”
허허, 정말 안 믿네.
아니 안 믿기는 건가?
아무튼 어머니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어머니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어요.”
“교주가 두렵지는 않니? 너는 고작 다섯 살이란다.”
아…….
잠깐 잊고 있었다.
내 나이가 올해 다섯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웃겼다.
이제 다섯 살인 놈이 이리저리 바쁘게 빨빨 다니고, 다치니 말이다.
갑자기 어머니에게 죄송해졌다.
어린 나를 보며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하실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두 눈을 똑바로 뜨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정말입니다.”
나의 계속되는 확언에 어머니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 사람이 구해 준 것이니?”
어머니의 떨리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때문에 손에 부상도 당했습니다.”
“…….”
그런 나의 대답에 어머니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주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 또한 천마가 구해 주었을 때 어머니와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어머니가 나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에 나 또한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차를 마시려는 순간.
“야율가의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들었다.”
앗 뜨뜨!
아 진짜! 어머니, 나에게 억하심정이 있으신가?
아까와 같은 어머니의 행동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네, 이곳에 머무르게 할 생각입니다.”
“그 사람의 허락은?”
나의 대답에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나는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게…… 교주님이 먼저 저에게 말하셨습니다.”
“……?”
나의 대답에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야율민을 호위무사로 삼고, 함께 수련을 하며 다니라고…….”
“그자가?”
나의 설명에 어머니가 놀란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도 믿기지가 않는다.
제멋대로인 천마.
안하무인, 유아독존 천마 위관악.
그가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어 구해 주었고, 나의 벗에게 도움을 주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사실인 것을.
“어머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가 나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요. 교주님이 분명 저를 구했습니다.”
* * *
“앉아라.”
장로각의 가장 상석에 위치한 의자에 앉은 천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존명.”
그의 짧은 명령에 다섯 명의 인물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다음 의자에 앉았다.
“군사.”
“예, 교주님.”
천마의 왼쪽 편에 홀로 앉은 사마정.
그가 천마의 부름에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번 일에 관한 벌이 율령상으로 존재하나?”
천마의 물음에 사마정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이때까지 이러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천마신교를 유지하는 율령에 이러한 사건과 관련된 조항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역대 천마들은 자신들의 직계가 다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자식들끼리 피를 흘리며 싸워도 상관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부추겼다.
그래야 강한 자만이 살아남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교주와 소교주가 아니고 단지 천마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보호한다는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만들도록 하지.”
“교주님?”
갑작스러운 천마의 발언에 사마정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장로들과 교주, 그리고 지금은 은거를 택한 호법들까지.
모두가 모여서 신중하게 만드는 것이 법이다.
헌데 그것을 임의대로 만들겠다니?
군사이면서 천마신교의 총괄을 맡고 있는 사마정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사마정의 모습에 천마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는 사마정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문제 있나?”
천마의 물음에 사마정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없습니다.”
있을 리가 있겠는가?
있다고 하면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일 텐데 말이다.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사마정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
까불지 말고 목숨을 챙기기로 말이다.
아무튼 그런 사마정의 대답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들은?”
“뜻대로 하소서.”
천마의 물음에 네 명의 장로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들의 행동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죽여.”
“교주님!”
“지존이시여!”
나른한 천마의 한마디에 장로각이 발칵 뒤집혔다.
군사인 사마정과 장로들은 물론 흥분하지 않고 늘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한 검마마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언성을 높이자 천마가 눈가를 찌푸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앉아.”
나지막하게 울린 천마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담긴 거대한 힘에 모두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리에 앉혀졌다.
천마의 목소리에 담긴 힘이 그들을 강하게 내리눌렀기 때문이었다.
‘더 강해지셨군.’
‘끝이 없으신 건가…….’
그런 천마의 가공할 힘에 장로들과 사마정은 감탄했다.
화경의 경지에 올라서며 인간을 벗어났다고 평가가 되는 천마다.
헌데 거기서 더 강해졌다.
도대체 얼마나 강해지려는 것인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장로들과 사마정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다시 천마의 입이 열렸다.
“한 번만 더, 언성을 높이면 죽는다.”
“흐읍!”
천마의 싸늘한 경고에 권마가 숨을 삼켰다.
권마 구양문.
그는 호탕한 성격으로 천마의 앞에서도 늘 큰 목소리로 의견을 내고는 했다.
사람들은 그런 자신에게 언성이 높다며 무례하다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천마가 뭐라 하거나 불쾌해한 적이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직한 천마의 말에 권마는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언성을 높이는 것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