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천마신교는 이상하다-18화 (18/275)

제18화

제18장 살기 殺氣

“…….”

드넓은 야율창가.

수많은 전각이 세워진 거대한 장원에 위치한 야율령의 거처.

그런 야율령의 거처에 만들어진 정원의 한가운데서 야율령이 두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그녀의 코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꽃향기와, 머리칼과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따뜻한 바람을 느끼며 말이다.

선천적으로 두 눈이 보이지 않는 비운의 여인 야율령.

비록, 그녀는 남들에게 당연하게 있는 시각을 잃었지만, 남들에게 없는 다른 것을 얻었다.

바로, 남들보다도 더 예민한 후각과 청각, 그리고 기감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오라비가 없을 때 이곳에 앉아 자연을 느끼고는 했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발달한 야율령이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셨나요?”

익숙한 체취와 맑은 영혼이 느껴지는 자신의 하나뿐인 편.

바로 오라버니인 야율민의 기척이었다.

“크크, 이곳에서 뭐 하느냐? 나의 야룡이가 이 꽃들을 전부 태워 버리고 싶어 하는군…….”

야율령의 말에 기척을 숨기고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야율민이 손을 들어 이마를 짚더니 이내 괴상한 웃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그에 야율령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야율령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마련된 이곳.

이 정원에 하인들을 시키지 않고 직접 꽃을 하나하나 심은 이가 야율민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말 배려심이 깊은 오라버니였다.

그렇기에 야율령은 그런 오라비가 너무 좋았다.

“오늘은 수련을 하지 않으시나요?”

지금쯤이면 한창 수련을 해야 하는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은 야율민의 행동에 야율령이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야율민은 야율령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러고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크크, 나는 수련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강하다. 왜냐? 나는 아주 강하기 때문이지. 그렇지 야룡아? 그래 녀석…… 조만간 마음껏 날뛰게 해 줄 테니 조금만 참거라.”

“…….”

가슴이 아팠다.

자신과 함께 있어 주기 위해 연기를 하는 야율민의 모습에 야율령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하루라도 빨리 소주천을 이루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수련을 포기하고 자신과 함께 있어 주려는 자신의 오라비.

사실 오늘은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다.

즉 어머니의 기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이기도 하다.

여인에게 관심이 없는 천마신교의 무가답게 야율창가에서는 죽은 어머니의 기일을 챙기지 않았다.

그저 직계가 사당에 들러 향을 피우는 것만 할 뿐이었다.

아무튼, 생일과 어머니의 기일이 같은 날인 야율령은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야율민이기에 수련을 하지 않고 이곳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런 야율민의 마음을 아는 야율령으로서는 정말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어머니에게 인사는 잘 드렸나요?”

야율민의 몸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향냄새에 야율령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에 야율민은 살짝 움찔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크크, 그래.”

“잘하셨어요.”

직계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 향을 피우고 인사드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야율령.

그녀가 야율민의 대답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분명 부드러운 미소였지만 야율령의 미소는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야율민은 그런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도 가여운 내 동생.

찢어질 듯 가슴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환한 미소를 짓는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움찔!

가만히 그런 동생을 바라보고 있던 야율민.

그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움찔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익숙한 목소리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존재의 목소리.

“대답해라.”

너무나도 소름이 돋아 그대로 굳어 버린 야율민의 귀로 다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야율민은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대륙에서는 보기 힘든 칠 척 장신에다가 탐스러운 흑색의 턱수염을 길게 기른 무서운 인상의 중년 사내가 당당하게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촉나라의 황제였던 유비와 도원결의를 맺었던 미염공 美髥公 관운장 같은 모습을 지닌 사내.

거대한 창을 귀신처럼 다루며 천마신교에 몇 없는 초절정고수이며, 신교를 지탱하고 있는 오대마가 중 한 곳, 야율창가의 주인인 창마 槍魔 야율진을 보며 야율민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크크. 가주에게 인사드리지요.”

이곳, 야율창가의 주인인 야율진에게 한 인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인사.

그런 야율민의 인사에 야율진의 부리부리한 눈이 찌푸려졌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크크.”

야율진의 싸늘한 말에 야율민은 그저 웃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는 야율진의 앞에서 괴상하게 웃는 야율민의 모습은 마치, 호랑이 앞에서 여유를 부리는 토끼의 모습과도 같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겁을 상실한 토끼 말이다.

“오라버니…….”

하지만 감각이 뛰어난 야율령은 알았다.

야율민의 심장 소리가 공포로 인해 빨라졌고 그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너는 야율창가의 소가주이다.”

“크큭, 그렇지요. 저는 소가주입니다.”

야율진의 싸늘한 말에도 불구하고 야율민은 여전히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야율민의 행동에 야율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등에 메어져 있던 창을 뽑아 들었다.

“오늘, 그놈의 망할 병을 고치어야겠구나.”

창을 뽑아 든 야율진.

그의 입에서 나온 싸늘한 말과 함께 매서운 기세가 야율민을 덮쳤다.

아직 삼류무인인 야율민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매서운 기세였다.

그에 야율민은 지금 당장이라도 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러고는 소리치고 싶었다.

제발 살려 달라고.

너무나도 무섭다고.

자신의 병은 이미 다 나았다고.

하지만 야율민은 그러지 않았다.

“크큭, 제 오른팔에 잠든 야룡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본심과는 달리, 야율민은 특유의 괴상한 소리를 내며 허리춤에 매어져 있던 두 개의 단창을 꺼내 들어 강하게 잡았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추었다.

언제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취하는 야율민의 모습에 야율진은 얼굴을 굳혔다.

가문의 후계자이기에 많이 봐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도를 넘었다.

감히 아비인 자신에게 무기를 겨누다니.

야율진은 고민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말이다.

“오라버니…….”

자세를 낮추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야율민의 뒤로 야율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야율민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뒤에 위치한 가녀린 소녀 야율령.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아직 자신은 조금 더 연기를 해야 한다.

야율민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비인 야율진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야율민은 몰랐다.

야율진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냉혹한 인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크큭, 방해되니 꺼져라!”

아무튼, 야율령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야율민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야율령에게 소리쳤다.

처음이었다.

저 아이에게 소리치는 것이 말이다.

야율민의 소리침에 화들짝 놀라 금방이라도 물러날 줄 알았던 야율민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니요, 오라버니 이제 그만하세요.”

심약한 야율령, 그녀가 정색을 하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그에 야율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위험하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녀까지 다친다.

“나의 유희를 방해하지 말고 꺼지라니까!”

“오라버니!”

물러나라는 야율민과 싫다는 야율령.

그런 둘의 모습에 야율진은 고민을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두 눈을 감고 있는 야율령을 바라보았다.

기억났다.

자신의 씨에서 태어난 미물.

아직 살아 있었나?

야율령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에 의문을 느낀 야율진.

그가 왼손을 가볍게 들었다.

그러고는 검지손가락을 둥글게 말았고 이내 야율민을 바라보는 야율령을 향해 가볍게 튕겼다.

딱!

“꺅!”

가볍게 튕긴 손가락.

하지만 그 손가락의 주인은 초절정고수인 창마 야율진이다.

그의 손에서 생성된 기운이 날아가 야율령을 때렸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야율령은 속수무책으로 그 기운에 맞아 날아가 버렸다.

콰앙!

“…….”

그대로 약 삼 장을 날아가 벽에 부딪힌 야율령.

그녀가 기절한 듯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런 야율령의 모습에 야율민은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버지.

야율진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야율민의 싸늘한 음성에 야율진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야율민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귀찮은 것을 치웠다.”

“당신의 딸입니다.”

야율진의 말에 이를 간 야율민이 억눌린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에 야율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저 미물이?”

기절해 있는 야율령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야율진의 모습에 야율민은 이를 강하게 갈았다.

자신의 씨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보기만 해도 예쁘고 소중한 아이인데 미물이라 칭하다니?

정녕 저자가 인간이란 말인가?

그에 심각한 분노를 느낀 야율민이 창을 쥔 손에 강한 힘을 주었다.

자신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은 야율진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복수하고 싶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연약한 몸.

제대로 음식도 먹지 못해 잔병치레가 많은 아이이다.

헌데 아버지라는 작자가 그런 아이를 공격했다.

기를 실어서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야율민의 두 눈에 살기가 일렁였다.

아버지 같지 않은 저 망할 작자…….

정말 죽여 버리고 싶었다.

“선을 넘었군.”

살기가 넘실거리는 야율민의 두 눈빛에 야율진이 인상을 굳혔다.

타앗!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진득한 살기에 야율민이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렸다.

우웅!

그러자 야율민의 양손에 쥐어진 단창이 가볍게 공명했다.

이류교수의 상징과도 같은 공명 共鳴.

야율민이 그토록 염원하던 이류고수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충만한 기운에 자신감이 생긴 야율민.

그가 모든 기운을 담아 야율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퍼억.

단 한 번이었다.

야율진의 한 번의 휘두름에 야율민은 그대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고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콰앙!

야율령과 똑같은 벽에 처박힌 야율민.

“크으윽…….”

하지만 야율민은 내공을 익힌 무인이다.

야율령과는 달리 기절하지 않은 야율민은 자신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 창이 휘둘러진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야율진의 창은 휘둘러졌고 자신의 몸을 때렸다.

역시 초절정고수였다.

삼류무인인 자신 따위가 감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천외천 天外天 의 고수였다.

저벅.

그때, 들려오는 발소리에 야율민이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장신의 사내.

야율민은 그런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비에게 먼저 무기를 휘두르고 살기를 보이는 자식새끼라…….”

야율민의 앞에 멈추어 선 야율진.

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창을 들어 올리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야율민을 내려다보았다.

“필요 없다.”

살기 殺氣 다.

야율진의 눈빛과 기세에 야율민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이 사내는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야율민은 황급히 옆에 쓰러져 있던 야율령을 끌어안았다.

제발…… 이 아이만이라도 살아남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말이다.

“멈춰!!”

우뚝.

“……?”

그때, 자신의 귀로 거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약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담긴 맑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야율진은 찍어 내리려던 창을 멈추었고 야율민은 조심스럽게 두 눈을 떴다.

그러자 희미하게 보였다.

놀란 표정으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대공자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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