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제13장 친하다 親舊
“응? 이 분위기 뭐죠?”
천마신교의 오장로이자, 여자로만 이루어진 음마유가의 가주, 혈화 血花 유소란.
오늘부터 대공자를 포함해, 나머지 오대마가의 후계들을 가르치기 위해 연무장에 들어선 유소란은 묘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하얀 피부에 유난히도 붉은 입술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미녀 혈화.
그녀의 의문 섞인 물음에 사마천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저희끼리 서열 정리 중이였습니다. 오 장로님.”
“흐음…….”
사마천의 대답에 턱을 쓰다듬은 혈화.
그녀가 고개를 돌려 한 소년을 바라보았다.
“파하핫!”
자신이 아는 존재, 이장로 권마와 같은 웃음소리를 내는 덩치의 소년을 보며 혈화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년, 구양적의 오른쪽 눈에는 검은색의 멍이 들어 있었으며 양쪽 콧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입술 또한 터져 있었다.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맞은 듯한 모습이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양적은 웃었다.
마치 즐거운 듯 말이다.
그에 혈화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권마 장로의 아들, 구양적 맞나요?”
“파하핫! 맞소이다!”
말투까지 똑같다.
혈화는 자신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하는 구양적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역시, 부전자전 父傳子傳 이다.
아빠가 미친놈이니 아들도 미친놈이다.
그에 미소를 짓던 혈화가 구양적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묘하게 아이들의 중심에 있는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호오…….”
다섯 살의 나이답게 작은 체구를 지닌 대공자 위극신.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내공의 기운에 혈화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위극신의 신체를 자연스럽게 순환하고 있는 정순한 마기에 그가 소주천을 이룬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섯 살의 나이에 소주천.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든 위극신을 혈화가 가만히 바라보자 위극신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음마유가의 후계는 어디 있습니까?”
세간에 알려진 대로 차갑고, 고저가 없는 대공자의 목소리.
그의 물음에 혈화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장난합니까?”
혈화의 대답에 이번에는 위극신의 옆에 있던 단진이 앞으로 나섰다.
그런 단진의 행동에 혈화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마검단가의 소가주다웠다.
벌써, 대공자인 위극신의 검을 자처하고 있으니 말이다.
“단 공자, 조금 진정하게, 오 장로님. 음마유가의 후계는 함께 수련을 받지 않는 것입니까?”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듯한 기세를 내뿜는 단진을 사마천이 만류하고는 혈화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그런 사마천의 물음에 혈화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이들은 오늘 처음 만났다.
헌데, 벌써 한 소년의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 소년.
대공자 위극신의 중심으로 말이다.
“크크크.”
“파하핫!”
괴상한 소리를 내며 위극신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위극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위극신의 눈치를 보는 두 명.
그리고 대놓고 위극신의 옆에 자리하고 있는 단진과 사마천.
그런 네 명의 행동에 혈화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대공자 위극신.
그는 어떤 성격을 지녔고, 또 어떤 매력을 지닌 사내였는지 궁금해졌다.
* * *
기분 나쁘다.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혈화의 모습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내가 알기로 혈화 유소란의 나이는 오십이다.
즉, 나에게 있어서 할머니뻘이라는 뜻.
헌데 그런 할머니가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니 기분이 당연히 나쁘지 않겠는가?
물론, 겉으로는 이십 대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기분이 나빠진 내가 사마천의 앞으로 나서며 다시 입을 열었다.
“수련 시작하시지요.”
음마유가의 후계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
음마유가의 후계는 장차, 천마신교의 모든 여인들의 모범이 될 여인이다.
학문은 물론, 각종 악기와 예절 그리고 무공까지.
배울 것이 아주 많다.
그러다 보니 우리와는 수련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수련을 시작하자고 이야기했고 혈화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모두, 각자의 무기를 드세요.”
스릉.
차락!
꽈악!
혈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를 제외한 네 명이 순식간에 자신들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어린아이들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빠른 속도였다.
“크크크, 야룡아, 오늘도 즐겁게 한바탕 춤을 추자.”
짧은 단창을 양쪽 허리춤에서 뽑아 각각 한 손에 쥐며 괴상하게 웃는 야율민.
“파하핫!”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두 주먹을 강하게 쥐는 구양적.
“…….”
“아…… 내 체질 아닌데.”
그리고 검을 뽑은 단진과 사마천.
나는 그런 네 명을 보며 살짝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인격으로는 몰라도 무인으로서는 충분한 자질을 지닌 아이들이었다.
이런 아이들이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에 동무가 될 것이다.
너무 든든했다.
“대공자.”
턱!
“네.”
그렇게 네 명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나는 혈화가 던진 물건을 잡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나의 손에 잡힌 익숙한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나의 손에 쥐어진 두 개의 부채.
철로 이루어진 부채를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섭선 摺扇이군요.”
“네, 자신 있으시지요?”
나의 물음에 매혹적인 미소를 지은 혈화.
촤르륵!
그녀가 새하얀 섭선을 펼쳐 보이며 나를 향해 물었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천마신공 天魔神功.
천마의 무공인 천마신공은 말 그대로 신공이다.
검법도, 도법도, 그렇다고 권법도 아닌 신공.
초식이 없으며, 무기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무기로 펼칠 수 있는 신공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오 장로들에게 자연히 다양한 무기술을 배운다.
정확히는 각자,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있는 오 장로들과 대련을 하는 것이다.
그런 장로들에게 각자의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과 대련으로 인해 그 무기에 익숙해지는 수련을 받는다는 뜻이다.
아무튼, 전생에서 나는 제법 오랫동안 사용했던 섭선의 등장에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꽈악.
그러고는 섭선을 강하게 쥐었다.
검마와 수련했을 때처럼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검보다 섭선이라는 무기에 더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갑니다!”
타앗!
나의 말을 시발점으로, 나의 뒤에 있던 네 명의 소년이 순식간에 혈화에게 달려들었다.
“호호!”
그런 우리들을 보며 소리 내 웃은 혈화.
그녀의 새하얀 부채가 하늘 위로 들어 올려졌다.
그러고는 지면으로 떨어졌으며, 그와 동시에 엄청난 돌풍이 우리를 덮쳤다.
아아…….
날아간다…….
몸이 붕 뜬 상태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뒤로 날아갔다.
날아가다 보면 나무에 박겠지.
그러면 아플 것이다.
젠장.
허공을 누비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은 나는 그날부터 다짐했다.
나의 주 무기는 섭선이 아닌, 검으로 하겠다고 말이다.
* * *
“아야야…….”
“파하핫!”
“크크크!”
하아…….
저 자식들은 괴로워하면서도 웃네.
저 웃음소리는 어떻게 안 되나 보다.
꽈득!
“아야!”
그때, 나는 어깨에서 느껴지는 강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나의 어깨를 강하게 누른 존재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누구였느냐?”
그러자 보이는 노인.
바로 오장로에게 다친 우리가 있는 곳의 주인인 마의였다.
마의의 물음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오장로였습니다.”
“오장로가?”
나의 대답이 의외였을까?
나의 대답을 들은 마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나의 상처 부위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장로가 이렇게 손속이 매섭지는 않은데?”
여자라서 그럴까.
유일하게 대공자인 나에게 큰 상처를 입히지 않았던 오장로 혈화.
그녀의 손속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살펴본 마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도발 좀 했습니다.”
“도발을 왜 했느냐?”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마의가 물었고, 그에 나는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이 다루듯, 봐주면서 하길래…….”
“너는 아이다.”
“무늬만 아이지요.”
마의의 말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나의 모습에 혀를 찬 마의.
그가 침통을 꺼내며 입을 열었다.
“말이나 못 하면.”
“말이라도 잘해서 다행이지요.”
“에잉!”
“아얏!”
나의 말대답이 짜증났을까?
마의가 침통으로 나의 어깨를 쳤고 나는 과장되게 아파하면서 마의를 바라보았다.
“헤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에잉…… 이리로 오거라!”
그런 나의 모습에 다시 혀를 찬 마의.
그가 나를 향해 손짓했고 나는 웃으며 마의에게 상처를 보여 주었다.
“아야야…….”
아씨, 아프다.
옛날에는 이 정도 고통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는데, 회귀를 해서 그런가?
괜히 엄살을 부리게 된다.
“녀석, 가만히 있거라!”
내가 엄살을 부리며 몸을 움직이자 마의가 호통을 치며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호통을 치는 마의의 모습은 남들이 눈에는 무서워 보였지만 나의 눈에는 전혀 아니다.
나를 바라보는 마의의 눈 속에 비치는 따뜻한 감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에 나는 헤헤 웃으며 마의의 말대로 자세를 바로 했다.
“파하핫! 공자! 고작 그 정도로 아픈가!”
그런 나의 모습이 웃겼을까?
가만히 다른 의원에게 침을 맞던 구양적이 특유의 웃음소리로 웃으며 나를 저격했다.
“크크, 하찮은 인간에게 이 정도 고통은 참기 힘들겠지. 하지만 나는 선택받은 몸. 야룡이와 함께라면 아프지 않다.”
어휴, 저놈은 아주 길게도 지랄한다.
침을 맞으면서도 괴상하게 웃는 야율민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구양적이랑 야율민 저 두 놈은 너무 이상하다.
사람 만들기는 그른 것 같았다.
“공자님, 참으십시오. 원래 저런 이들 아닙니까.”
“파하핫! 그래 나는 원래 이렇다!”
“크크, 나는 원래 위대하지.”
사마천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뒤이어 들려오는 두 녀석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웃고 있는 두 놈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이곳은 의원이다, 다 입 닥쳐.”
“크크.”
“파하핫…….”
날카로운 나의 눈빛과 낮은 목소리에 두려움을 느꼈을까?
녀석들은 특유의 웃음소리를 작게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세 친해졌구나.”
그런 우리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을까?
마의가 나의 어깨에 침을 놓으면서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친해져야지요.”
앞으로 나와 함께 새로운 천마신교를 만들어 나갈 동지들이다.
이들은 나의 가족과 마찬가지인 존재들.
나는 이들과 친해지고, 또 이들을 끌고 갈 것이다.
새로운 천마신교를 위해서 말이다.
움찔.
“뭐냐?”
그때, 나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단진이 친하다는 나의 말에 움찔했다.
그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단진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얼굴만큼이나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는 단진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싱거운 놈.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오전에 혈화와의 수련을 끝내고 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면 그다음은?
“밥 먹으러 가자!”
밥이다.
인생사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고 즐거운 식도락.
그 길을 즐기러 가야 하는 시간이다.
잠시 후.
나 포함 우리 다섯 명은 식당으로 들어섰고…….
“크아아!”
“쩝…….”
벽곡단을 먹는 녀석들 사이에서 나는 얼큰한 탕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크크, 녀석들.
꼬우면 어서 소주천을 이루거라.
그렇다면 이 형이 새로운 세계를 알려 줄 테니 말이다.
이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벽곡단을 먹고 수련하는 것보다, 녀석들의 앞에서 맛있는 음식을 얄밉게 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녀석들의 수련, 즉 소주천을 이루게 하는 것에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