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제10장 충성 말고 우정 友情
“오늘인가.”
이른 아침.
창밖에서부터 들어와 나의 얼굴을 비추는 햇빛에 두 눈을 뜬 나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기침하셨습니까.”
그 때,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입을 열었다.
“어, 들어와.”
끼익.
나의 허락과 동시에 열린 문.
그 사이로 유화가 세숫물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좋은 아침.”
그런 유화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은 나는 손을 흔들었고, 유화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공자님.”
어휴, 딱딱해라.
나의 살가운 인사에 딱딱하게 받아치는 유화를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 이렇게 살가운 인사를 건넨다면 언젠가 살가운 인사가 되돌아올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여기 놔둬.”
“네.”
나의 방에 위치한 탁자.
그 위를 손으로 가리키며 내가 말하자 유화가 짧게 대답하며 들고 온 세숫물을 탁자에 놓아두었다.
유화가 놓아준 세숫물로 간단하게 세안을 마친 나는 유화의 안내로 동경 앞에 위치한 의자에 앉았다.
스윽.
그러자 유화가 빗을 들어 나의 긴 머리칼을 빗기 시작했다.
잠시 후, 유화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의 머리칼을 위로 묶은 다음 이마에 영웅건을 둘러 정리했다.
평소, 아무렇게나 머리를 묶고 앞머리를 내린 나의 모습과 달리 깔끔한 귀공자의 모습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잘생겼네.”
이런 깔끔한 모습도 잘생겼다.
“…….”
나의 감탄에 유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유화의 무표정한 얼굴 속에,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을 말이다!
이것 참, 좋아해야 할지 기분 나빠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동경 속에 비친 나의 깔끔한 모습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멋을 내는 거야?”
솔직히,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나의 일과라고 해 봤자 수련뿐이다.
옷가지가 찢어지는 것은 기본인 격한 수련.
헌데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비싸 보이는 수련복을 입으니 나는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런 나의 물음에 유화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대답했다.
“마님께서 주신 영웅건과, 수련복입니다.”
유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옆에 걸려 있는 검은색의 수련복을 발견한 나.
나는 가만히 그 수련복을 바라보았다.
검은색의 천과, 은색으로 용을 장식한 수실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마에 둘러져 있는 영웅건과 같은 색상과, 형태였다.
아마 이 영웅건과 저 수련복은 처음부터 하나라고 생각하고 제작한 듯했다.
“어머니가?”
생각지 못한 어머니의 선물에 내가 살짝 놀란 음성으로 되묻자 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대공자님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직접 만드셨다고 합니다.”
“호오…….”
이거 좀 감동이다.
나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는 유화의 말에 나는 살짝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수련복의 앞에 섰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 내가 입을게.”
걸려 있는 수련복을 집어 들자 나에게 다가온 유화.
그런 유화의 말을 거절한 나는 옷을 들고 다시 동경 앞에 섰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수련복을 입었다.
잠시 후.
“딱 맞군.”
동경 속에 비친 멋들어진 나의 모습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 어울렸다.
품과 어깨, 그리고 길이가 보기 좋게 딱 맞았다.
직접 신체의 길이를 재고 맞춤형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어머니의 솜씨가 뛰어나군.”
동경을 보며 감탄하며 내가 중얼거리자 뒤에 있던 유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뛰어난 재녀로 무림에서 유명한 분이셨으니, 당연합니다.”
응?
우리 어머니가 재녀로 무림에서 유명했다고?
생각지 못한 유화의 말에 나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유화를 바라보았다.
“우리 어머니가 유명해?”
“……?”
그런 나의 물음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유화.
그런 유화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보았다.
무표정이 아닌, 감정이 담긴 유화의 얼굴을 말이다.
아무튼, 이것은 넘어가고.
나는 궁금했다.
우리 어머니의 정체가.
그래, 화경의 고수이자, 악마라고 불리는 천마의 앞에서도 기죽지 않았던 여인이다.
그런 여인이 평범할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유화를 보며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유화는 정말 모르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빨리.”
그러니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정체가 뭐길레 유화가 이런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다급한 어조로 내가 다시 채근하자 유화가 입을 열었다.
“무림맹의 맹주이자, 삼황 중 한 명인, 창천검황 蒼天劍皇 천진의 외동딸이 아닙니까.”
어라……?
이거 생각지도 못한 큰 충격이었다.
천마신교의 교주인 천마의 부인이, 무림맹주의 외동딸이라고?
그럼 내 할아버지는 무림맹주……?
이런 X.
아버지는 천마에, 전생에서 스승은 사황이었으며, 할아버지는 무림맹주이다.
나는 완벽한 짬뽕이었다.
* * *
“하아…….”
이게 말이 되는가?
생각지 못한 출생의 비밀에 심란해진 나는 조금 일찍 연무장에 나와 잔디에 드러누웠다.
그런 다음 멍한 표정으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생에서 나를 보며 절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우리 어머니.
그 어머니가 무림맹주 천진의 외동딸이라고?
헌데 이상하다.
전생에서의 나는 사황성을 대표로 무림맹주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를 보는 무림 맹주의 눈길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손자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은 아니었다.
솔직히 분류하자면…… 원수를 보는 듯한 눈빛이랄까?
아무튼 그랬었다.
헌데, 그랬던 양반이 내 할아버지라고?
복잡했다.
나는, 마인인 것일까, 사파인인 것일까, 정파인인 것일까.
에라이, 고민을 계속하다 보니 짜증 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가만히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나는 갑작스럽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바라보며 인상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소년이 보였다.
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듯한 그 소년의 인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누구지?”
천마신교의 얼음 대공자 위극신.
아직까지 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본모습을 보여 줄 마음이 없었던 나는 특유의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능글맞은 표정으로 입을 연 소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마천이라고 합니다.”
아, 마뇌의 동생이군.
내 동생 위천이 천마가 되었을 때, 녀석의 옆에서 머리가 되어 주었던 사마천.
뛰어난 잔머리로 사황성을 골탕 먹이기까지 했던 놈이라서 기억이 난다.
“반갑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
회귀 이후 전생에서의 앙금은 물론 모든 인연을 털어 버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
그런 나의 행동이 당황스러웠을까?
방금까지 짓던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우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마천.
나는 그런 사마천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뭐 해? 내가 반갑다고 인사하잖아.”
녀석을 향해 친절하게 말해 준 다음 내가 손을 들어 올려 보이자 그제야 사마천이 정신을 차렸다.
“아…… 잘 부탁드립니다, 대공자님.”
그러고는 나의 손을 잡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 자식, 나를 간보려고 왔을 것이 분명하다.
대공자인 나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세간에 알려진 나의 소문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설을 세우며 나의 모든 행동을 예측해 왔던 사마천은 처음부터 자신의 예측을 벗어나는 나의 행동에 당황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천재라고 불리며 거침없이 성장해 온 괴물.
하지만 전생에서 사파지존이라는 위치까지 오른 나의 눈에는 아직 귀여운 어린 소년이었다.
“그래, 잘 부탁해.”
내 손을 잡고 있는 사마천을 보며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나의 두뇌가 되어 줄 것이며, 또 나아가 나의 친구가 될 사마천.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 아주 잘생겼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마천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나는 또다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단진이군.”
“…….”
앞머리를 길게 길러 왼쪽 얼굴을 가린 차가운 인상의 미소년.
나는 그 미소년을 보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천마였던 위천보다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천의 검이 되었던 검마, 단진.
현재는 마검단가의 소가주인 단진이었다.
나의 말에 놀랐을까?
단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잘생겼네.”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는 단진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은 나.
나는 멀쩡한 녀석의 오른쪽 얼굴을 보며 녀석을 칭찬했다.
정말, 잘생겼다.
솔직히 나는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나보다 잘생긴 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단진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이 녀석은 나와 비슷할 정도로 잘생겼다.
그리고 왼쪽 앞머리를 길러 얼굴을 가린 모습은 솔직히, 조금은 신비스러웠다.
그런 나의 칭찬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단진이 잠깐 움찔하더니 이내 굳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녀석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단진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차기 검마로서, 대공자님의 검이 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음…….
아직 어린아이인 단진에게 받는 충성의 맹세.
그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몇 살이냐?”
“올해 생일이 지나 열이 되었습니다.”
나의 물음에 단진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열 살밖에 되지 않은 놈이 뭐 벌써 충성을 바친단 말인가?
“너의 충성은 필요 없다.”
“!!”
“!!”
응? 나의 말이 그렇게 의외였을까?
나의 거절에 단진은 물론이고 옆에서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사마천 또한 두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두 눈으로 말이다.
“대공자님, 단진 공자는 초대 검마 선배님의 재림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검술 천재입니다.”
나를 보며 서둘러 입을 연 사마천.
혹시나 단진에 대해서 내가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알아, 교주님도 기대하는 놈이야.”
무공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천마.
그가 관심을 보일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자랑하는 단진이었기에 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헌데, 왜…….”
“저의 얼굴 때문입니까?”
나의 대답에 사마천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하다가, 옆에서 들려오는 단진의 차가운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저, 치사한 놈.
단진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한기와 분노에 은근슬쩍 빠지는 것 봐라.
제 목숨 소중 한 줄 아는 놈인 것 같았다.
아무튼, 단진의 차가운 물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시리도록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단진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차가워 보였지만, 전생에서부터, 온갖 사람들을 만나 온 나의 눈에는 보였다.
수많은 상처를 받아 와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외부로부터 단단한 벽을 친 어린 소년이 말이다.
녀석, 아마도 어린 시절의 나 못지않게 힘든 시간을 보냈나 보다.
불쌍하고, 괜히 친근감이 들었다.
그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짓고는 단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내가 내민 손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단진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지금은, 충성을 바치지 말고, 나와 함께 우정을 나누자.”
나는 아직 나에게 충성을 바치는 수하는 필요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성장하며, 주변 사람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천마신교를 바꿀 동료, 친구가 필요할 뿐이었다.
“잘 부탁해, 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