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천마신교는 이상하다-5화 (5/275)

제5화

제5장 마의 魔醫

아버지, 소자 지평이옵니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손자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도 이제 나이도 있으시니 그만 쉬시는 것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말년은 저의 아들, 아버지의 손자인 선후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지요.

“흐음…….”

마의 윤무진.

그는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마교제일의 의원이라 불리며 육십 년간 삼대의 교주를 보필하고 있는 의원이다.

오십이라는 늦은 나이에 혼인을 하여 얻은 윤지평이라는 아들.

그런 아들에게서 태어난 그의 아들, 자신의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과 함께 아비인 마의를 걱정하는 서신이 오자 마의는 가만히 신음을 흘렸다.

탁.

그러고는 아들이 보낸 서류를 접어 탁자 위에 얹어 놓았다.

“고민이구나.”

육십 년간 항상 이곳에서 마인들과 교주를 치료해 온 마의.

하지만, 그로 인해 가족들과 즐거운 추억 하나 만들지 못한 마의.

그는 문득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그것도 잠시.

그가 문득 고개를 밑으로 숙였다.

그러자 보였다.

육십 년 전, 혈기왕성했을 때의 시절과 너무나도 다른 쭈글쭈글한 자신의 손.

미세하지만 조금씩 흔들리는 자신의 손이 말이다.

물론 아직 침을 놓거나 치료를 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쉬고 싶었다.

자그마치 육십 년.

그동안 천마신교에 모든 능력을 바쳤으니 이제 쉬어도 될 것이다.

그에 결심을 한 마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교주에게 보고를 하고 그다음 날 바로 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짐을 정리해야 할 테니 말이다.

“마의 어른!”

그때, 마의는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 묻은 피와 반대로 돌아가 있는 어깨.

그러고는 신음 소리 하나 흘리지 않고 직접 걸어서 이곳을 찾아온 다섯 살의 어린 소년.

바로, 마의가 가장 안쓰럽게 생각하는 대공자였다.

그의 등장에 마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누구였느냐.”

“검마 장로였습니다.”

마의의 물음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대공자.

그에 마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망할 놈이, 애를 잡는구나.”

“그렇지요? 완전 나쁜 놈입니다.”

마의의 중얼거림을 들은 대공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의의 말에 동의했다.

능글맞게 동의하는 대공자의 행동에 살짝 미소를 지은 마의.

그가 대공자에게 다가갔다.

“많이 아프겠구나.”

“죽겠습니다.”

마의의 물음에 그제야 엄살을 부리는 다섯 살의 대공자.

그에 마의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에 있던 침통을 빼 들었다.

“부탁드립니다.”

그런 마의의 행동에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부탁한 대공자.

그에 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침통에서 침을 꺼내 들었다.

“이리 옷을 벗게.”

“아픈데, 자르면 안 됩니까?”

마의의 물음에 대공자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 마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 팔이 돌아갔는데 옷을 벗으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했다.

이곳이 워낙, 괴물 같은 놈들이 우글거리는 천마신교 이다 보니 자신도 잠시 망각했다.

멈칫.

그에 가위를 집어 들던 마의.

그가 돌연 행동을 멈추었다.

자신이 알기로 천마신교에서 가장 괴물은 교주, 그리고 다음 괴물은 교주의 아들.

즉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대공자였다.

“어르신……?”

갑작스러운 마의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린 대공자.

그가 의문 어린 목소리로 마의를 불렀다.

“…….”

그에 마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마치 인형처럼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던 어린 괴물.

그가 인간이 지을 법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까?

이자는 분명 대공자다.

천마신교의 주인, 천마의 장자.

헌데, 하루 만에 너무나도 사람이 바뀌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과 대화를 하던 대공자의 행동에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던 마의.

그가 대공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평소와 너무나도 다른 대공자의 행동을 눈치채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그런 마의의 재미있는 모습에 대공자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공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어르신, 일단 아픈데 치료해 주시면 안 됩니까?”

“아…… 그래, 미안하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엄살을 부리는 대공자.

그런 능글맞은 모습에 정신을 차린 마의가 서둘러 침을 놓고, 대공자의 팔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렸다.

그러고는 붓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발라 주었다.

* * *

마의 윤무진.

나의 기억으로 그는 천마신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꽤 괜찮은 인물이었다.

어린 나를 보며 감정이 없는 인형이라며 안타까워하던 노인.

인형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늘 다쳐오기만 하는 나 에게 남 몰래 좋은 약을 먹이고,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무공 스승, 오 장로들을 욕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리고 내가 과도한 훈련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나의 친할아버지처럼 오 장로들에게 찾아가 방을 뒤집어 놓은적까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던 나에게 있어서 마의는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의 윤무진은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

이곳, 천마신교에 있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인성이 바른 사람.

그에 나는 처음부터 능글맞게 마의와 대화를 이어 갔다.

늙어서 그런 것일까?

아무렇지 않게 나와 대화를 이어 가던 마의.

그가 돌연 멈칫하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느꼈나 보다.

나의 이상한 점을.

일단 내 상처부터 치료하고.

아까부터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장난기가 조금은 섞인 나의 엄살에 화들짝 놀란 마의가 서둘러 침을 놓고 뼈를 되돌려주었으며, 마지막으로 연고를 발라 주었다.

그에 나는 웃으며 마의를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마의 어르신.”

“흐음…….”

그런 나의 대답에 턱을 쓰다듬은 마의.

그가 갑자기 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열은 없는데……?”

하하.

역시 재미있는 노인이다.

하루 만에 너무나도 달라진 나의 모습에 혹시라도 아픈 것은 아닐까, 열부터 잰 마의.

누가 의원 아니랄까 봐 의학적으로 접근하는 그를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허면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웃음기 섞인 나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린 마의.

그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이 말입니까?”

“보통 아이처럼 굴지 않느냐?”

그런 나의 물음에 마의가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보통 아이입니다만?”

“보통 아이가 다섯 살의 나이에 진검을 휘두르고, 매일같이 상처를 입으며 팔이 꺾여도 울지 않고 제 발로 이곳을 찾아오지는 않는다.”

“흐음…… 저는 아주 특별한 아이군요.”

마의의 대답에 턱을 쓰다듬은 나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자.”

그런 나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마의.

그가 낮은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이런, 장난을 더 치다가는 혼나겠다.

정색을 하는 마의의 모습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랄까요?”

어색하게 대답하는 나의 모습에 마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기왕 한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마의를 보며 나는 다시 웃으며 대답했다.

“어르신……?”

그런 나의 대답에 멍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마의.

그런 마의를 보며 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흐음.”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의.

그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냐?”

흐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사실 서른 살까지 살다가 회귀했습니다, 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

마의의 물음에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의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혹, 깨달음을 얻은 것이냐?”

어라?

나를 향해 놀란 음성으로 묻는 마의.

그런 마의를 보며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그래, 깨달음 얻은 상황으로 몰아가야겠다.

우웅!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나는 가만히 잠들어 있던 나의 내공을 깨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의 두 눈이 조금 붉어지기 시작했다.

천마신공의 상징과도 같은 사혈안 死血眼.

그것을 내가 보이자 마의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대공자의 나이가 지금 다섯인가?”

“네, 한창 클 나이이지요.”

마의의 물음에 나는 내공을 다시 거두어들이며 대답했다.

우웅.

그와 동시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나의 두 눈.

그에 마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탈마의 깨달음을 얻은 건가…….”

“예?”

탈마?

그게 뭐지?

마를 벗어난다는 뜻인가?

마의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기에 혹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가 해서였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흐음…….”

하지만 마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에 나는 수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아무렴 어떤가?

하루 만에 변한 자신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겼으면 된 거지.

“그래, 치료는 다 되었으니 이제 물러가거라.”

연고를 바른 나의 어깨를 한 번 더 살펴보고는 마의가 말했다.

그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의 어르신.”

자리에서 일어나 마의에게 고개를 숙이려던 찰나.

나는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생각에 마의를 불렀다.

그런 나의 부름에 침통을 정리하던 마의가 고개를 들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화식을 먹고 싶습니다.”

얼큰한 탕이 먹고 싶다.

나 지금, 세상 진지하다.

너무나도 진지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내가 말하자 마의가 얼굴을 굳혔다.

그런 마의의 모습에 나는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마의가 허락을 하지 않는 이상, 교주에게 이야기도 못 한다.

내가 화식하기 위해서의 제 일 관문은 바로 나의 주치의인 마의의 허락이다.

아니 애초에, 쑥쑥 클 나이인 다섯 살이 화식을 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탕도 먹고 싶고, 고기도 먹고 싶다.

너무너무 먹고 싶다.

꼬르륵.

아, 배고파.

“대공자.”

“예, 어르신.”

낮은 마의의 목소리.

그에 속으로 투덜거리던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천마신교에서 장려하는 화식 금지, 그것은 최대한 어린 나이에 소주천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미 대공자는 그것을 이루었지.”

“맞습니다.”

그렇다.

나는 이미 소주천을 이룬 상태.

화식을 하더라도 나의 혈이 막힐 리는 없다.

마의의 말에 나는 공감한다는 듯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의 나이에, 대공자는 소주천을 이루고, 절세신공, 천마신공을 일성만큼 익혔지.”

“맞습니다.”

사실은 서른 살까지 살았던 기억으로 이룬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마의의 말에 나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십 년 정도만 화식을 하지 않는다면 대공자는 고금 역사상 최초로 십 대의 나이에 대주천을 이룰 수 있을 것이야. 헌데 화식을 하려는 건가?”

“…….”

진지한 얼굴의 마의.

그의 말에 나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마의의 말이 맞았다.

대주천은 소주천보다 더 지나가야 하는 혈이 많았다.

지금 화식을 한다면 그만큼 혈을 뚫기 힘들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나는 포기 못 한다.

“저는, 인생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즐거운 식도락 食道樂.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을 포기한다는 뜻과 마찬가지다.

마의의 두 눈을 바라보며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마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역시, 대공자는 천마신공은 일성이지만, 정신은 이미 탈마의 경지이구나.”

탈마가 도대체 뭔데?

마를 탈한다고?

개과천선한다는 뜻인가?

마의의 말에 나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뒤이어 들려오는 마의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교주님에게 대공자가 화식을 하여도 상관없다는 서류를 올리겠네!”

“고맙습니다, 어르신!”

마의 어른 최고다!

기다려라, 고기야! 얼큰한 탕아!

내가 다 먹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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