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_마지막 전투(2)
시리 시온의 말대로라면 지금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 옆에 있던 마리 선배가 입을 열었다.
“믿어도 좋아. 이미 모든 자백을 받았고, 그녀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도 있거든.”
“원하는 거요?”
“그래. 탐 탄테오와 베드 미다스의 영혼 해방을 원하거든.”
“영혼 해방?”
“그래. 지금 시리 시온이 그들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계약상 마족들에게 묶인 상황이거든. 그 영혼들을 해방하려면, 숙주를 죽여야 하는데, 지금 그 숙주가 파이몬이야.”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의심이 꺼지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전진할 때였다.
도착하자마자 최대한 빠르게 출정 준비를 했다.
보통 마왕 강림에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마왕이 동료를 부르는 것이기에 시간은 단축될 게 뻔했다.
“이 속도로 가면, 오늘은 도착하지 못하겠는데요?”
“어쩔 수 없어. 아무리 시리 시온의 말을 믿더라도 함정을 확인하기는 해야 하니까.”
틀린 말이 아니기에 고개를 주억였다.
“마리 선배. 이 전쟁이 끝나면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 주례 서달라고? 지금 결혼 못한 사람에게 할 말이야?”
나는 거세게 손사래를 치며, 저 멀리 뒤에서 오고 있는 제이미를 슬쩍 바라봤다.
“그게 아니라요.”
“장난이야. 장난.”
전쟁 중에 농담으로 긴장감을 풀어주려는 마리 선배의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아니고 거인들을 잘 봐주세요. 그냥 지금처럼 거인들과 꾸준히 계약만 해주시면 됩니다.”
“곧 죽을 사람처럼 유언이야?”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넌 안 죽어. 내가 준 구슬 꼭 그…능력을 쓰기 전에 사용해야 한다. 그게 널 지켜 줄 거야.”
품에서 예전 마리 선배가 준 하얀 구슬을 꺼냈다.
이 안에 마리 선배도 짐작하지 못할 만큼의 강대한 신성력이 쌓여 있다고 했다.
“네. 꼭 그럴게요.”
“그래. 그리고 도착하면, 작전대로 해.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꼬박 하루를 움직이고 나서야 시리 시온이 말했던 곳에 도착했다.
마족들도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 선배. 1분만요.”
전방에서 이탈해 잠시 뒤로 갔다.
아주 잠시지만 내 개인적인 욕심을 부려 볼까 한다.
서둘러 제이미 레스넌에게 다가갔고,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어? 유신아.”
그렇게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많은 사람이 우리를 바라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우리 둘만 있다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게 짧은 입맞춤을 끝내고 제이미를 바라봤다.
“사랑해. 그러니까 절대 죽지 마.”
“…응. 유신이 너도.”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전투를 벌일 때다.
“시리 시온. 마지막으로 묻겠어. 파이몬은 어디 있지?”
“파이몬은 저 절벽에 있는 동굴에 있습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파이몬이 거대한 바위로 길목을 틀어막고 강림 의식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지. 늦었지만, 예전에 지구를 구해줘서 고마워. 그러니 한 번 믿어 볼게.”
전장의 선두에 섰다.
그때 데리우스와 전설들이 내 옆에 나란히 도열했다.
“지금까지 감사했고, 죄송합니다.”
이 미친 작전을 펼칠 줄은 몰랐다.
세계의 유명한 학자들이 이 작전에 대한 보안점과 더 좋은 전략 전술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은 하나였다.
시간이 없고, 상대가 우리보다 전력이 더 강하다는 거였다.
“준비!”
거인들은 최상급 마정석이 장착된 흑색 장창을 꺼내 들었다.
“발사!”
지구에 있는 모든 최상급 마정석을 가지고 와서 흑색 장창에 장착한 후, 마족들에게 던졌다.
그렇지만, 저들도 방심하지 않았는지 파괴광선으로 장창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날 중심으로 반경 2키로야. 그게 내가 마족들이 파괴광선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범위야.”
마리 선배의 말과 함께 대부분의 장창이 요격됐다.
그렇지만, 몇 개의 장창이 마족들에게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흙먼지를 일으키며 후폭풍이 닥쳐왔다.
그때, 벨라가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서 어마어마한 물을 뿜어내고는 양손에 한 무더기의 구슬을 쥐었다.
아쿠아 실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를 자랑하는 실드가 후폭풍을 모두 흡수했다.
그뿐만 아니라, 벨라가 아쿠아 실드를 밀쳐내자 아쿠아 실드가 앞으로 날아가며 파괴광선을 막았다.
“길은 수호기사단이 뚫는다.”
이자벨 로메가 방패를 앞세우자, 뒤에 있던 수호기사단원들이 대형을 만들었다.
실드 차지!
벨라의 아쿠아 실드 뒤로 수호기사단의 실드 차지가 그 뒤를 따랐다.
“모두 수호 기사단을 따라라!”
아스본 레스넌의 외침에 뒤에 있던 인원들이 모두 앞으로 달렸다.
그렇게 마족들 사이로 끼어든 후, 난전이 펼쳐졌다.
끼이이잉
교황청의 인원들이 손목에 찬 시계를 돌리자, 마족과 우리 사이에 강철 인형들이 나타났다.
강철 인형들은 마족들의 파괴광선에 가슴이 꿰뚫리고, 팔이 부서져도, 악착같이 앞으로 나아가 마족들을 붙잡았다.
콰아아앙
강철 인형들의 폭발에 마족들이 상처 입고 물러나려고 하자, 뒤에 있던 헌터와 용병이 마족들을 공격했다.
그 사이 수호기사단이 마족의 중심부까지 뚫고는 실드 차지가 멈췄다.
공격보다는 앞으로 달려가는 것에 신경 쓰던 마리 선배가 자리를 잡고는 기도를 올리자, 신성력이 넓게 퍼지며, 근방에 있던 마족들이 파괴광선을 사용하지 못했다.
“수호기사단. 방어하라!”
이자벨 로메의 말에 수호기사단이 뿔뿔이 흩어지더니 저 멀리서 날아오는 파괴광선을 방패로 막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파괴광선의 수는 많았고, 돌진하느라 진형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아쿠아 미러
전장 한가운데에 물이 넓게 퍼지더니 파괴광선을 모두 튕겨내서 마족들에게 돌아가게 했다.
파괴광선이 막히자, 마족들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들은 이내 각자의 장기를 꺼내 들고는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태극천하
노사가 하늘 위로 한눈에 모두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태극을 만들더니, 그걸 그대로 전장 한복판에 내리꽂았다.
쿠우우웅
거대한 진동음과 함께 태극이 땅에 새겨졌다.
태극의 범위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오직 마족의 움직임만 느려졌다.
“크하하하핫. 이게 바로 주먹질이지.”
크리스가 압축된 육체를 가지고 좌익에 있는 마족들에게 근육 주먹을 날렸다.
주먹과 발에 맞은 마족들은 철퇴에 맞은 것처럼 가슴이 움푹 들어가며 피를 토하면서 뒤로 날아갔다.
화르르륵
백염으로 불타오르는 리암이 우익으로 날아오르며, 마족들을 불태웠다.
지이이잉
아람이 때마침 사신수를 불러냈다.
사신수들은 나오자마자 마족들을 향해 각자의 장기를 뿜어냈다.
초반 전장은 확실히 우리가 우세했지만, 이게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몰랐다.
거기다가 우리의 목표는 마족들을 잡는 게 아니었다.
저 동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파이몬의 목숨을 끊어내는 거였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내가 도와주겠네.”
로저 시거가 거검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동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오러 웨이브
거대한 오러 파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마족들을 뒤덮었다.
순간 비틀대는 마족들을 노려보며 검을 중단세로 세웠다.
유성 찌르기(풍, 뇌)
공격도 공격이지만,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공격이었다.
그렇게 절벽에 뚫려 있는 동굴을 향해 움직였지만, 아직 절벽까지는 한참 남았다.
눈앞에 보이는 마족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은 후, 오비탈 블레이드를 일으켜서 몸을 가른 후, 자세를 낮췄다.
머리 위로 마족의 공격이 스쳐 지나갔고, 마족의 하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절단검 – 가로베기
단번에 앞에 있는 다섯 개체의 마족의 발목을 자른 후, 넘어지는 마족의 어깨를 밟고 뛰어올랐다.
이런 전투에서 무방비 상태로 공중에 뛰어오르는 게 정말 무모한 짓이었지만, 주변 마족들의 시선은 확실하게 끌었다.
다크 블레이드
시선을 끈 사이 데리우스가 기간틱 블레이드보다 수배는 더 커다란 오러를 휘둘렀다.
거대 다크 블레이드가 움직일 때마다 마족들이 이리저리 휩쓸렸다.
아무리 공중에 떠 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다연발 찌르기
오른팔이 뻐근할 정도로 검을 난사했다.
밑에 있던 세 개체의 마족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고, 땅에 내려설 수 있었다.
“하유신 피해라!”
일도양단으로 뻗어오는 데리우스의 다크 블레이드를 오른쪽으로 꺾어서 피하자, 내 앞에 있던 마족들이 좌우로 양분되어 죽었다.
그렇게 데리우스와 호흡을 맞춰서 마족들을 학살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였다.
“인간들 주제에 대단하군.”
다섯 개체의 최상급 마족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시리 시온의 정보대로라면 이곳에 있는 모든 최상급 마족이 모인 거였다.
“이거 쉽지 않겠군.”
어느새 옆으로 데리우스가 다가와서는 최상급 마족들을 바라봤다.
“일단 내가 최대한 막아 보겠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리가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해야지.”
검을 세운 데리우스 옆에서 나 또한 칠성검을 중단세로 들어 올릴 때였다.
“이런이런. 덩치 큰 해충들이 여기 있었네?”
아람의 온몸이 청염으로 불타오르더니, 두 개체의 최상급 마족들을 붙잡고는 저 멀리 사라졌다.
“지금이네!”
데리우스가 최상급 마족 셋과 맞붙기 시작했다.
그 틈에 나는 앞으로 쏘아졌다.
아무리 동굴과 가까워졌다고 하지만, 마족 숫자가 너무나 많았다.
그렇다고 물러날 생각도 멈출 생각도 없었다.
그때, 등 뒤에서 빠르게 무언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몸을 틀어서 다가오는 것을 베어내기 위해 검을 휘둘렀는데, 그것이 미꾸라지 빠지듯이 움직여서 검을 피하고는 마족들에게 쏘아졌다.
“어?”
배신자 시리 시온이 나를 지나치면서 앞에 있는 마족들을 압살하기 시작했다.
“빨리 가세요. 길은 제가 뚫겠습니다.”
일단, 그녀의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그렇게 동굴에 들어서자, 시리 시온이 동굴 앞에 멈춰 섰다.
“제가 막고 있을 테니, 파이몬을 없애세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모든 게 저와 동료들의 잘못인데요. 동굴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파이몬은 누군가 자신과 같은 공간에 오래 있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동굴을 내달렸다.
그렇게 동굴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자, 커다란 공동이 있었고, 그 공동 한쪽에는 한쪽 벽면을 채울 정도의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유성 찌르기 변형 – 유성 폭발
폭발과 함께 바위들이 조각나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눈앞에 괴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크크크. 인간들을 대표하는 자인가?”
얼핏 보면 앤드류와 닮은 마족 밑에는 말라비틀어진 두 마족의 시신이 있었고, 그의 손에는 반쯤 마른 마족이 잡혀 있었다.
“당신이 파이몬인가?”
“맞네. 그러니 잠시만 기다리게 모두 끝났네.”
파이몬이 마족을 잡고 길게 호흡을 들이켜자 반쯤 마른 마족이 미라가 되었다.
“으흠~ 역시 순수한 마기는 기분을 좋게 하는군.”
무슨 짓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싸워야 할 때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나?”
무슨 의미로 이름을 물어본지 모르겠지만, 대답해줄 생각은 없었고, 그저 칠성검을 중단세로 세웠다.
그러자, 파이몬이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자네가 하유신이군. 이 몸의 주인이 죽여달라고 했던 자야. 아주 좋군. 계약도 달성하고 지구의 희망인 자네도 죽일 수 있으니 말이야.”
파이몬이 이런저런 말을 떠들고 있을 때, 왼손으로 마리 선배가 준 신성력이 가득한 구슬을 쥐고는 깨뜨렸다.
“짜증 나는 기운을 퍼뜨리는군.”
온몸으로 퍼지는 신성력의 고양감을 느끼며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가 된 미르에게 외쳤다.
“능력 [포스]를 거래한다.”
가슴에서 솟구친 미르가 거대한 입을 벌려서 그대로 날 잡아먹었다.
전과는 다르게 헬리오스의 등장은 없었다.
그저 온몸이 황금빛 태양으로 빛나면서 신들만 닿는다는 초월자의 영역에 들어섰다.
“이게 바로 널 죽일 힘이지.”
칠성검을 들어서 휘두르자, 강렬한 태양의 기운이 파이몬을 가격해서는 벽에 박히게 했다.
인간이나 마족이라면,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위력이었지만, 상대는 서열 9위의 악마 파이몬이었다.
헬리오스의 기운을 가득 담은 칠성검을 벽에 박힌 파이몬에게 찔러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