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_공격은 최상의 방어(2)
“시리 시온. 너에게 정말 실망이다.”
“죄송합니다. 파이몬님.”
벌벌 떨리는 몸으로 파이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가 원하는 것을 구해왔는데도, 파이몬은 만족하지 않았다.
“겨우 세 개라니, 그것도 전부 하위 서열뿐이군.”
“죄송합니다.”
거듭 사과했지만, 파이몬의 굳은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됐다. 역시 반마족 따위에게 일을 맡기면 이따위지.”
가슴 속에 울분이 차올랐지만, 말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아니 말뿐만 아니라, 표정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조심해야 했다.
감정을 내비치는 순간. 자신은 소멸하게 될 것이다.
“인간들은 지금 뭘 하고 있지?”
“여기서 하루 떨어진 거리에 있는 최후의 성벽이라는 곳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흠…시간이 부족해.”
인간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파이몬은 그들을 저지하기 보다는 다른 악마들을 소환하는데 열을 올렸다.
“좋다. 지금 당장 에드리안에게 연락해서 일만의 병력을 데리고 가서 인간들을 저지하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나는 그동안 다른 악마를 소환할 테니 최소 이주일은 인간들이 오지 못하게 막아라. 이게 이 파이몬이 반마족인 시리 시온 너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미소를 지으며 웃는 파이몬의 얼굴을 지금이라도 날려버리고 싶었다.
에드리안은 파이몬이 거느리고 있는 2군단장으로 이곳으로 1만의 마족과 함께 넘어왔으며, 절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존재였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 파이몬은 자신에게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린 거였다.
“네. 꼭 달성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에드리안과 그의 군단들이 강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 그래야지.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지구를 점령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가 널 순혈의 마족으로 만들어주지. 크하하하.”
“감사합니다.”
파이몬이 웃으며 마기가 가득한 동굴로 세 개의 제단을 가지고 들어갔다.
그렇게 그가 떠나자, 이를 바드득 갈았다.
탐 탄테오, 베드 미다스와 함께 인류를 배반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선조의 피를 따라갔을 뿐인데…”
지구를 침략했던 마왕을 없애고 난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자신들에게 옅지만, 마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옅지만 희미한 선조의 피를 각성했는데, 겨우 반마족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완벽한 마족이 되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른 거였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니야…”
단지, 우리의 선조에 가까운 존재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마족으로서 당당해지고 싶었지만, 그 어떤 순혈의 마족도 그리고 마왕도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봉인의 구슬에서 나온 정예 마족 중에서 대부분이 나보다 약한 존재였지만, 그들도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족이 될 수는 있을까?”
파이몬은 자신을 순혈의 마족으로 만들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죽어서 흩어진 혼만 존재하는 탐 탄테오와 베드 미다스를 살려준다고까지 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정예 마족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 있었다.
‘너 같은 반마족은 마계에서 노예로 살다가 우리 손에 갈기갈기 찢겨 죽는 게 운명이야.’
수십 번을 들었고, 아직 정식 마족이 된 경우는 없다고 했다.
이런 경우의 수들을 종합했을 때, 인류를 버린 게 후회됐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인류의 편에 설 수는 없었다.
인류에 다시 붙어봤자, 이미 반마족이 된 자신에게 더는 희망이 없었다.
계속 이렇게 마족들에게 붙어있어야지, 마족이 될 수 있다는 약간의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었다.
“일단 시킨 일부터 하자.”
***
마나 안정화를 시킬 수 있는 범위는 최대 백미터였다.
물론 거인들을 부르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되어야 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최대 거리를 유지했다.
“차근차근 들어가세요.”
마나 안정화가 이루어지는 가장 중심에 나 홀로 서서 그 넓은 범위를 마나 안정화 시키고 있었고, 그 옆으로 다섯 개의 게이트가 열려서 피난민들이 들어갔다.
“여기는 교황청. 지금 우리의 좌표…”
한쪽에서는 통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이곳이 마기가 있는 곳이라고 해도 평화로운 상황에서 마나 안정화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몇 시간째 계속 가만히 있는 건 곤욕이었다.
“저기 마법사님. 마나 안정화 지원은 언제 오나요?”
“네?!”
고작 말을 걸었을 뿐인데, 마법사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유신님. 마나 안정화 중에 말씀을 하시는 건…”
“왜요? 그러면 안 돼요?”
“당연한 말씀을…집중해도 힘들 텐데…말씀까지 하시면 마나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는 제가 잘 조율하고 있어요. 그런데, 몇 시간째 가만히 서 있기가 힘들어요. 교대 좀 해줘요.”
“위…위에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후다닥 마법사가 도망치듯이 달려갔다.
그때 누군가 이곳을 향해 게이트를 여는 게 느껴졌다.
“어? 이거 막아야겠지?”
상대가 적일 수도 있기에 게이트가 열리려고 하는 곳의 마나를 틀어막으려고 할 때였다.
게이트를 열려고 하는 마나가 너무나 익숙했다.
“찰스 형이네.”
게이트가 열리는 곳의 마나를 그대로 두자, 이내 다크 연합의 게이트가 열리고 정예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찰스 형! 왔으면 나랑 교대 좀 해줘요. 힘들어요.”
이제 막 게이트를 넘은 찰스 형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고선 교대하려고 할 때였다.
“미안하다 유신아. 교대는 조금만 미루자, 조금만 더하면 피난민 수송이 끝난다고 성녀님께서 범위를 더 넓히라고 하셨어.”
이 말을 끝으로 찰스 형을 비롯한 일부 다크 연합의 마법사들이 마나 안정화에 동참해서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남은 다크 연합원들은 더 많은 게이트를 생성해서 피난민들을 이송시켰다.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야.”
하루 종일 마나 안정화 작업을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와 약간의 범위가 걸쳐져 있는 다크 연합원의 마나가 불안정하게 떨려왔다.
게이트는 아직도 열려 있었고, 피난민은 이동 중이었다.
‘이대로 두면 사고 나겠는데.’
정신력을 좀 더 소모하더라도 피해가 없어야 하기에 집중해서 한쪽으로만 범위를 늘렸다.
그 사이 마법사가 비틀거렸고, 게이트가 흔들렸다.
그 마법사가 마나 안정화를 하는 곳의 마나를 손아귀로 어루만지듯 마나를 달랬고, 이내 게이트의 떨림이 멈췄다.
“조심하세요.”
내 경고에 마나에 민감한 마법사들이 놀란 듯 날 바라봤다.
오늘은 마법사들이 나한테 놀라는 날인가 보다.
“마법사 여러분. 집중하셔야죠.”
그렇게 마나 안정화를 마무리하자, 약 여섯 시간이 더 지난 뒤였다.
“지친다. 지쳐.”
피난민들이 다 사라지자,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솔직히 어떤 자세를 취하더라도 마나 안정화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피난민이 지나가는데, 명색이 교황청의 검이 누워있는 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서 있었다.
“유신아. 대체 언제 마나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알게 된 거냐?”
쉬고 있는데, 다가온 찰스 형의 물음에 미소를 지었다.
“착하다. 착하다하니까 말 잘 듣던데요?”
내 말에 찰스 형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다운 대답이라고 해야 하나?”
찰스 형은 평소와 다르게 내 옆에 벌러덩 같이 누웠다.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서 옆에 누워있는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형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알프레도 켄트님의 마법서를 연구하기보다는 너한테 훈련을 받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지금이라도 그 훈련을 하실래요?”“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전시 중이야. 나중으로 미루마. 그런데, 진짜 마법사도 하기 힘들어하는 마나 안정화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 거야?”
정말로 마나를 다독이는 게 내가 하는 마나 안정화의 전부였다.
마나를 가지고 마법을 다룰 줄도 모르고, 무식하게 마나를 모아서 에너지 탄으로도 사용할 줄 몰랐다.
세상에는 원소력, 마나, 포스, 기 등 다양한 기운이 있었고, 그저 주위에 떠도는 기운을 다독이는 게 내 전부였다.
“아니다. 내가 너무 욕심부렸어.”
찰스 형은 내가 알려주기 싫어서 이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친한 사람일수록 오해는 풀어줘야 한다.
“감추는 건 없어요. 그저 다독인다. 이게 다예요.”
한동안 날 빤히 바라보던 찰스 형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대충은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투정 한 번 부려 본 거야. 자 이제 가자.”
“네? 어디요?”
“어디긴 회의하러 가야지.”
“아…”
그냥 숙소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지만, 모든 전설이 모여있기에 인사라도 하기 위해 움직였다.
솔직히, 그곳에 제이미가 있기에 움직이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막 회의실에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위험하면서 끈적끈적한 기운이 서쪽에서 느껴졌다.
“잠시만요.”
빠르게 서쪽 성벽으로 향할 때였다.
회의실에 있던 다른 전설들도 나와 같은 기운을 느꼈는지 같이 움직였다.
그렇게 서쪽 성벽으로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다고 보이는 건 없었다. 단지, 흉포한 기운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 정도면 대체?”
“모두 전투 준비!”
아스본 레스넌의 외침에 전설들은 군말 없이 자신이 데리고 온 사람들과 성벽 위에 뭉치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불러와야겠네.”
나는 잠깐 성벽에서 벗어난 후, 마나 안정화를 했던 곳 중앙에 섰다.
마나와 다른 기운들은 멀리서 느낀 마기 때문에 날뛰려고 하는 걸 겨우 진정시켰다.
“땅의 축복. 거인들을 데리고 와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땅이 일어난 후, 가라앉자, 삼백의 거인 전사들이 나타났다.
“람을 뵙습니다!!”
거인들의 우렁찬 외침에 전투 준비를 하던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거인들의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제 동료입니다.”
내 말에 전설들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세 배 이상 큰 거인들의 모습에 겁까지 집어먹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티탄과 타이탄은 성벽 위에 올라 방어를 준비해라.”
“람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프란시스코와 타르를 따라 티탄과 타이탄 부족이 성벽으로 올랐다.
“람이시여. 우리 네피림은 뭘 할까요?”
“카마엘. 저번에 한 번 해봤지? 폭탄 투하라고?”
내 뜻을 이해한 카마엘이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람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마정석 폭탄이 든 아공간 주머니를 카마엘에게 넘겼다.
“우선 내가 한 방 먹일 테니까. 신호하면 시작해.”
“준비해 놓겠습니다.”
다시 성벽 위로 오르자, 이제 마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 최후의 성벽에 모여있는 인원은 지구 최강의 전력으로 약 이만 오천 명 정도가 모여있었다.
나는 흑색 장창을 꺼낸 후, 창대 앞부분에 있는 홈에 최상급 마정석을 끼워 넣은 후, 풍의 기운을 둘러쳤다.
그렇게 세 자루를 만든 후, 프란시스코와 타르에게 한 자루씩 건네줬다.
“네르구이님. 지금 프란시스코와 타르에게 발리스타를 사용해 주십시오.”
“지.지금 말인가?”
“네. 지금요.”
“알겠네.”
네르구이의 발리스타에 프란시스코와 타르의 흑색 장창이 기둥만 하게 거대해졌다.
“그리고 제꺼는 날린 후에 걸어주시고요.”
“걱정하지 말게.”
성벽 앞으로 나서서 마족들을 한 번 바라봤다.
마족들과 이곳의 거리가 약 1km정도 떨어져 있었다.
여기서 더 가까우면 우리도 위험할 수 있기에 일단 뒤로 물러났다.
“내가 던지면 바로 뒤따라서 던져.”
“알겠습니다.”
도움닫기를 해서 최상급 마정석이 장착된 흑색 장창을 힘껏 던졌다.
그러자, 프란시스코와 타르가 양옆에서 기둥이 된 장창을 마족들에게 날렸다.
던진 건 내가 더 빨랐지만, 힘은 역시 거인들이었다.
기둥으로 변한 장창들이 나보다 더 빠르게 날아갔다.
발리스타
내 장창이 거대화했고, 이내 세 자루의 흑색 장창이 마족들에게 내리꽂혔다.
“모두 엎드려!!”
포스를 실어서 외친 후, 몸을 바짝 엎드렸다.
그러자,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거대한 폭발이 들려왔고, 이내 후폭풍이 최후의 성벽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