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_대도깨비 아람(2)
일주일간의 행군.
많은 사람을 구하고, 그보다 몇 배는 많은 사람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거인들도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단 일 분도 쉬지 않고, 움직이다 보니 아무리 체력적으로 좋다고 해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프란시스코, 타르, 카마엘.”
내 부름에 티탄, 타이탄, 네피림의 대표자들이 다가왔다.
출발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그들도 이제는 온몸에 마물의 피를 덕지덕지 묻히고 있었다.
“일단 재정비를 해야 할 것 같다. 24시간의 시간을 줄 테니, 그동안 거인들의 땅의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재정비를 끝내놓도록.”
“람께서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프란시스코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는 여기에 숨어 있어야지.”
“같이 안 가시고요?”
“그러고 싶은데, 너희들이 다시 돌아오려면 내가 이곳의 마나를 안정화 시켜야 하니까.”
“그럼 저희도 가지 않겠습니다.”
“아니. 가야 해. 지금까지 운이 좋아서 피해가 없었지만, 뒤를 봐봐.”
내가 가리킨 곳에는 거인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거인용으로 가지고 온 포션도 다 떨어져서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고, 붕대를 감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피해가 없게 하도록 하고 싶어. 그러니까 돌아가. 그리고 너희라도 남겠다는 소리는 하지 마. 가서 빨리 회복하는 게 날 도와주는 거야.”
거인들이 표정을 굳혔다.
충심 때문에 가지 않고 남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신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지쳐있다는걸.
“알겠습니다. 대신에 홀로 적들을 상대하러 가시지 말아주십시오.”
“걱정하지 마. 나도 힘들어. 여기서 좀 쉴 거야.”
“람이시여. 우리가 없는 동안 옥체 보존하십시오.”
“옥체 보존하십시오.”
뒤따라 크게 말하는 거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돌아올 때 창고에 있는 마나석 싹 챙겨서 돌아와.”
“알겠습니다. 람이시여.”
대답이 끝나자마자 땅의 축복이 거인들을 모두 거인들의 땅으로 돌려보냈다.
홀로 남았지만, 프란시스코의 말대로 무식하게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나 피곤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적들을 상대해도 부족할 판국에 이 상태로 마왕과 붙게 되면 많은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쯤이 괜찮겠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작은 틈이 있었고, 그 사이에 있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일정한 깊이까지 파이자, 몸을 욱여넣고는 숨구멍만 남겨놓고 땅을 덮었다.
그렇게 땅의 포근함을 느끼며 정말 오랜만에 잠이 들었다.
***
아프리카 대륙 한쪽에 부두교 마을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물론 알고 있다고 해서 이곳까지 찾아오지는 못한다.
부두교 마을은 환상 결계로 외부의 방문을 절대적으로 막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부두교 마을이 외부와 교류를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근처 도시로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서 돌아오기는 했다.
“다음부터 데리우스. 네가 갔다오겠다고?”
어렸을 적 다리우스와 데리우스는 이 부두교가 답답하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서 겨우 데리우스가 부활해서 돌아왔는데,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밖으로 나가는 게 마뜩잖았다.
“막시우스. 저는 부두교가 언제까지 폐쇄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먼저 밖으로 나가서 직접 밖의 상황을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라면 더 밖으로 보낼 수 없다.”
“막시우스!”
예전부터 우리 부두교는 탄압받고, 영화에서 악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그러다가 마왕이 강림한 후, 우리의 처지는 더욱 처참해졌다.
“우리는 어둠의 마나를 사용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기와 어둠의 마나를 동일시 여기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서 나가지 않는 거란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부두교의 족장으로서 데리우스의 의견을 묵살하겠다.”
데리우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근육으로 뭉친 두 팔을 걷었다.
“그렇다면, 제가 부두교의 족장이 되겠습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데리우스. 네가 족장이 되겠다고 하니. 내 물려줄 준비를 하겠다.”
“아뇨. 지금 당장 그 족장 자리를 빼앗겠습니다. 그리고 족장이 된 후에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갈 겁니다.”
“그건 우리 부족민들을 다 죽이는 행동이다.”
“그 또한, 족장의 능력에 따라 다르겠죠.”
분명 데리우스도 자신의 말이 무리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밖으로 나가는 걸 원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다음 물건을 사러 갈 때 갔다 와라. 단! 내일부터 부족장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아들 데리우스를 바라봤다.
그는 아직 성급하다. 아니 성급함을 넘어섰다. 그렇기에 부족장으로서 가르칠 게 많았다.
그때, 물건을 구매하고 돌아온 인원이 들어왔다.
“막시우스님 다녀왔습니다.”
“고리우스.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그런데, 막시우스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인사만 하고 돌아갈 고리우스가 데리우스를 슬쩍 쳐다보며, 눈치를 봤다.
“괜찮다. 지금부터 데리우스는 부족의 후계자다.”
“알겠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 마왕이 강림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마왕?”
순간적으로 데리우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 그래서 전 세계에 있는 실력자들이 이스라엘에 모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
마왕이 나타났으니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고리우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하유신이 누구보다 빠르게 마족들에게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홀로 이스라엘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콰앙
의자 손잡이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두교 마을이 떠나가라 악을 질렀다.
“지금 당장 우리의 형제 하유신을 구하러 이스라엘로 간다!!”
내 모습에 데리우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까는 나가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부족장으로서 부족원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 당장 부두교의 어둠의 마나가 마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줄 시기다. 빨리 출정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데리우스와 고리우스가 깊게 허리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
[빨리 일어나라.]
꿈속에서 헬리오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적 피로가 풀리지 않았기에 귀찮게 하지 말라는 말투로 말했다.
“잠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좀만 더.”
[마족이다!]
“마족?”
헬리오스가 꿈에서 일어나라는 것은 무시하고 싶은데, 마족이 나타났다는 말에 슬쩍 눈이 떠졌다.
그러자, 누워있던 공간 주변으로 무시무시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서둘러, 포스로 흙을 밀어내자, 사방에서 보라색의 파괴광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전방을 향해 미르를 불렀다.
꿀꺽
미르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파괴광선을 잡아먹고 생긴 틈으로 몸을 날렸다.
콰콰쾅
파괴광선의 거대한 폭발에 후폭풍이 일어났고, 내가 있던 공간은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기감으로 느끼기는 했지만, 하늘과 땅이 마족으로 가득했다.
“뭘 그렇게 반갑다고 이렇게 마중까지 나오시나?”
마족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날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하늘에 떠 있는 마족들이 양쪽으로 갈라졌고, 강인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마족이 나타났다.
“난 마계의 위대한 왕이신 파이몬님의 제 3군단장 게슈타인이라고 한다. 인간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바른대로 말하면, 살려줄 수도 있다.”
혼자 온갖 똥폼을 다 잡는 게슈타인을 바라봤다.
곤히 자고 있는 사람을 죽이려고 파괴광선을 발사한 주제에 살려줄 수도 있다?
역시나, 말과 행동이 다른 마족이었다.
“파이몬님의 애완동물인 마물들이 최근 많이 사라졌다. 그것에 대해서 아는 게 있다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해라.”
이 주변에 있는 마족들의 수를 세보니, 대략 천 마리 정도 됐다.
강철 인형을 부르는 시계를 확인하니, 잠든 지 고작 한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죽기 싫으면 바른대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
“네 이름이 게슈타인이라고?”
“인간 주제에 버릇이 없군.”
“넌 말이야.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하룻강아지야.”
땅을 박차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단번에 게슈타인 앞까지 도착한 후에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절단검 – 가로베기
길게 일어난 기운에 게슈타인이라는 마족이 서둘러 뒤로 물러나면서 주변에 있는 마족을 잡아서 절단검 앞으로 던졌다.
절단검은 세 마리의 마족을 베어내고, 게슈타인이라는 마족의 가슴을 옅게나마 베어냈다.
“아깝네. 단번에 죽일 수 있었는데.”
“이익!”
화가 난 게슈타인이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죽여 버려라!”
“어디서 손가락질이야.”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내가 게슈타인에게 버럭 외치며, 다가오는 마족들을 바라봤다.
일단 가장 앞에 있는 마족의 머리를 검면으로 패서 몸을 띄웠다.
내가 떨어지던 방향으로 다가오던 마족들이 직각으로 방향을 꺾으며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기간틱 블레이드
거대한 오러를 연신 휘둘러서 다가오는 마족들을 쳐냈다.
그때 한쪽에 있던 상급 마족들이 내게 파괴광선을 쐈다.
‘미르 네 차례다.’
다가오는 파괴광선을 미르가 야무지게 잡아먹는 사이 기간틱 블레이드를 압축해, 오비탈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조금 떨어진 마족을 향해 걸어갔다.
허공답보(풍)
네 번째 환골탈태를 한 후에 가능한 기술로 포스를 발바닥에 뿜어내서 공기 중에 있는 마나를 차서 움직이는 기술이다.아직 제대로 숙달되지 않았지만, 풍의 기운으로 빠르게 움직였고, 내 모습에 마족들이 당황했다.
빈틈이 생기자마자 마족의 몸을 갈랐다.
“이제 제대로 해볼까?”
쪼개진 마족의 몸을 밟고 다른 마족에게 향한 후,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쉼 없이 뛰는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마족을 밟으며 다른 마족에게 향했다.
손쉽게 마족을 해치울 수 있었지만, 이런 운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콰앙
동료는 신경 쓰지 않고 마족들이 파괴광선을 내게 집중했다.
미르와 호신강기로 겨우 막았지만, 속이 진탕됐다.
지금이야 버텼지만, 두 번 세 번은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당해줄 생각도 없었다.
일단, 하늘을 박차서 땅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콰앙
땅에 있던 마족을 짓이기며 내려선 후, 주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물러서는 마족들을 무시하고, 흘끔 공중에 있는 마족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더 다가오지 않고, 파괴광선을 발사하려고 했다.
이곳에 모여있는 마족들의 대부분이 상급 마족이라는 증거였다.
블레이드 샷(풍, 화) – 오러감옥
하늘과 내 주변이 불의 힘을 품은 오러로 가득 찼다.
아주 잠깐. 시간을 벌었지만, 그게 다였다.
이대로 전투를 이어가면 당할 게 분명했다.
‘생각해라. 하유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천 마리가 넘는 상급 마족에게 포위된 상황이었다.
한 개체만 있어도 웬만한 소규모 도시의 생명체는 한나절도 걸리지 않고 멸살시킬 수 있는 게 상급 마족이다.
‘거인들을 불러?’
거인들을 부르기를 위해 대지의 마나를 안정화 시키는 것보다 홀로 도망치는 게 더욱 쉬운데, 저 마족들이 그럴 시간을 줄 일이 없었다.
헬리오스를 강림시킬까 고민했다.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된 내 목숨과 같은 비장의 수였다.
“어쩔 수 없네.”
마음을 굳히자,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고민도 좋지만,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저 상급 마족들을 상대하다가 도망치기로. 차후에 도망치지 못한다면, 그때 최후의 수단을 쓰면 됐다.
사방에 뿌려둔 오러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칠성검을 더욱 꽉 쥐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절단검 – 가로베기
순식간에 두 개체의 마족을 베어냈다.
그런 다음에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마족들의 목, 심장만을 집중적으로 노리며 검을 움직였다.
그동안, 공중에 떠 있는 마족들의 파괴광선이 내 등을 노리고 날아왔다.
꿀꺽
어느새 등으로 이동한 미르가 다가오는 파괴광선을 삼켰다.
아무리 미르에게 등 뒤를 맡겼지만, 사방천지가 마족이었고, 그들의 공격은 동료가 옆에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유성 찌르기(풍)
한 개체의 상급 마족을 찔러서 지나치고, 다음 마족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었다.
그때, 그 뒤에 있는 마족이 동료의 가슴을 가르며 내게 손톱을 찔렀다.
서둘러 몸을 옆으로 틀었지만, 다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검에 절단검의 기운을 담아서 심장을 파괴한 마족에게서 검을 회수하며 뒤에 있던 마족의 손을 베어냈다.
유성 찌르기 변형(화, 수) – 유성 던지기
하늘을 점령한 채 파괴광선을 발사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마족들에게 오러를 날렸다.
그렇게 파괴광선을 저지하면서 불과 물의 힘이 서로 부딪혀서 수증기를 만들게 해서 마족들의 시야를 방해했다.
그렇게 하늘을 막았지만, 이번에는 땅에 있는 마족들이 내게 다가왔다.
칠성검을 거꾸로 들고는 그대로 땅에 찔러 넣었다.
유성 찌르기 변형(화) – 유성 폭발
콰콰쾅
흙이 비산하며 내 주변이 터져나갔고, 마족들이 물러섰다.
‘땅의 축복.’
준비하고 있던 땅의 축복이 내게 버프를 쏟아부었다.
그 순간 온몸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블레이드 샷(뇌전, 물)
재빠르게 총 세 번의 블레이드 샷을 하늘 위로 날려 보냈다.
유성 찌르기(풍, 화) - 불의 폭풍
온몸에 불의 폭풍을 거느린 채 앞으로 쏘아졌고, 미르에게 최대한 버티라고 외치며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블레이드 샷(뇌전, 물)
블레이드 샷(뇌전, 물)
콰르르릉
하늘이 검게 물들었고,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래. 너희들 죽고 나 살자!”
뇌전강림 – 아류
하늘에서 뇌전이 적아를 구별하지 않고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