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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290화 (290/300)

290화_출정 준비(2)

흙벽이 솟구치고 가라앉자, 거인들의 땅에 도착했다.

“람을 뵙습니다.”

땅의 축복이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거인들을 모았나 보다.

그들의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제대로 갑옷을 걸치고 있었고, 무기들의 상태는 최상이었다.

프란시스코가 거인들의 대장장이는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모두 알 것이다. 마계의 더러운 해충이 지구에 들어왔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거인들은 부족에 상관없이 모두 일관되게 한목소리로 외쳤다.

“박멸해야 합니다.”

우렁찬 외침에 가슴이 뿌듯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는 이제 곧 전장으로 향할 것이다.”

거인들을 둘러보자, 그들의 각오가 나에게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 중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리더로서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진실을 외면하고 감출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가 거인들은 고작 이 말에 겁을 먹을 종족도 아니었다.

“나는 죽는 게 두렵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건 아니다. 가만히 죽음을 기다릴 바에는 전사로서 멋지게 싸우다가 죽을 자리를 선택하겠다. 나는 너희들의 람이고, 전사이다. 너희는 전사이냐? 겁쟁이냐?”

“전사입니다.”

“나의 전사들아. 나와 함께 지옥 같은 이 길을 따르겠느냐?!”

“네. 람을 따르겠습니다. 그 길이 지옥이라고 해도.”

단결되고, 흉흉한 기운까지 뿜어내는 거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자! 해충을 박멸하러!”

“와아아아아~!!”

땅의 축복이 삼백의 거인 전사들과 자신을 이스라엘의 외각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흉측한 외모의 거대 지렁이 데스웜이 보이자마자 칠성검을 뽑았다.

“이 전장의 선두는 언제나 내가 될 것이다.”

최대 크기의 기간틱 블레이드가 데스웜의 몸을 세로로 쪼갰다.

조용히 죽을 것이지, 몸길이가 웬만한 고층 빌딩보다 큰 데스웜이 잘린 상태에서 몸부림을 쳤다.

뒤에 있는 거인들을 믿지만, 이 정도는 거뜬하다는 것을 거인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검을 휘둘러 데스웜을 조각냈다.

“이제 시작이다. 설마 벌써 겁먹은 자 없겠지?”

“없습니다.”

“그럼 진격하겠다.”

거인들의 거대한 발구령에 맞춰 이스라엘로 들어갔다.

***

이틀.

전설들의 긴급회의가 끝나고, 최대한 빨리 최상위 길드에 연락하고, 자신의 친위대를 이끌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도착한 시간이었다.

그 어떤 전설들보다 빨리 움직였다고 자부했는데, 수도의 광장에는 이스라엘에서 온 수많은 난민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스본 레스넌님 알아 왔습니다.”

“그래. 이들이 어떻게 대피한 거지?”

“그게… 말이 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어제부터 시작해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천 명이 광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게이트로 이동했다고?”

“게이트가 아니라고 합니다.”

게이트도 아니고, 갑자기 나타났다고 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난민들의 증언으로는 거인이 나타나서 마물을 죽이고는 자신들을 모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였다고 합니다.”

난민들을 바라보다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냐?”

하유신이 홀로 이스라엘로 들어간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혼자였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광장에 있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흙이 솟구치고 가라앉더니, 수백 명의 피난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 하유신 이 미친놈. 대체 마나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거야?”

순간이동을 하게 만드는 이 능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 수의 인원을 이동시키려면 천문학적인 금액의 마나석이 필요한 걸로 알고 있다.

이걸 대범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경제적 관념이 없다고 해야 하나 생각할 때였다.

챙그랑

교황청 특유의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광장 위에 게이트가 열렸다.

게이트에서는 성녀를 시작으로 빛의 날개를 단 교황청 인원들이 바닥에 내려섰다.

성녀는 다른 곳은 쳐다도 보지 않고, 곧장 내게 다가왔다.

“아스본 레스넌. 민간인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성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이 모든 작품을 하유신이 일궈낸 것 같은데?”

“그렇군.”

가타부타 성녀는 더 말이 없었다.

그저 표정을 굳히며, 뒤에서 성기사단과 검은 로브를 입은 사제들을 돌아봤다.

“아스본. 우리 먼저 출발할 테니, 알아서 쫓아오도록.”

“다른 놈들을 기다리지 않고?”

“선배가 돼서 후배한테 너무 많은 걸 맡길 생각이 없어서 말이야.”

그렇게 교황청은 등장과 동시에 암만을 떠났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제이미와 소피가 자신의 곁에 섰다.

“아버지.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어떻게 하긴. 지구 최강의 무력 단체인 우리가 교황청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닐 순 없지. 준비해라. 30분 뒤에 우리도 출발한다.”

“네. 전달하겠습니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지구의 몬스터를 자발적으로 없애는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헌터들이었다.

그런데, 하유신도 하유신인데, 교황청이 선수를 치는 것까지는 참지 못하겠다.

“모두 모였나?”

“네. 다 모였습니다.”

헌터들이 모여서 자신을 바라봤다.

이제 목숨을 건 전쟁의 시작을 알릴 때였다. 그래서 헌터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우리 헌터들은 언제나 가장 앞선 곳에서 몬스터를 상대하고, 인류를 지켜왔다. 남들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인 자부심이 있는 곳이 바로 세계헌터들이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헌터들을 둘러봤다.

“지금 우리 앞에 헌터들이 아닌 다른 녀석들이 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불쾌합니다!”

“그렇다. 나도 불쾌하다. 이제 전력을 다해 우리가 다시 선두에 서야 할 차례다! 가자! 선봉은 나 아스본 레스넌이 서겠다.”

다른 누구보다 앞서서 선두 차량에 탑승했다.

그 뒤로 수백 대의 오프로드 차량에 헌터들이 탑승하고 출발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국경까지 최대한 빠르게 도착했고, 그동안 몬스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협회장님 왜 그러십니까?”

“교황청 인원들은 뛰어가지 않았나?”

“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뛰어간 걸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차량을 탑승했는데, 그들보다 늦다고?”

전부터 교황청에서 이것저것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대체 어떤 수를 사용하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내 궁금증을 파악했는지 앞에 선 비서가 입을 열었다.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됐다.”

충심은 알겠지만, 교황청의 기술력을 알려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된다고 해서 그 기술을 바로 가져올 수 있지도 않을 거다.

“전방에 데스웜이 발견됐습니다.”

“데스웜이라… 내가 나서겠다.”

“하지만…”

“내가 헌터들에게 맨 앞에 서야 한다고 말했는데, 뒤에서 가만히 지켜볼 수 없지. 리더는 말이다.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달리는 차량에서 뛰어내린 후, 앞으로 쏘아졌다.

그렇게 데스웜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함을 감지했고,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데스웜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죽어 있다고?”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확인하니, 더욱 어이가 없었다.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가죽이 강철의 강도 이상을 지닌 데스웜이 가로도 아니고, 세로로 한 번에 쪼개져 있었다.

“이게 가능해?”

물론 자신도 여건만 맞으면 가능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런 컨트롤을 보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외에 데스웜의 조각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가죽을 들어서 보니 황당하기까지 했다.

“다른 공격은 없고, 단칼에 잘랐다고?”

잘린 단면이 너무나 매끄러웠다.

두 번 세 번 베어서 생긴 상처가 아니라, 단 일검에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였다.

“대체 누구 이걸…”

그때, 뒤쫓아오던 헌터들이 도착했다.

“협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미 죽어 있었다.”

내 말에 헌터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도 시체를 확인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체만 봐도 전투가 일방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 소피가 앞으로 다가와서는 땅에 손을 짚었다.

땅의 기억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소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누가 이걸 했다고 하지?”

“죄송합니다. 대지가 기억을 읽는 걸 거부합니다.”

“거부해?”

“네.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절대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궁금증이 솟구쳤지만, 일단은 데스웜이 문제가 아니었다.

“계속 이동한다.”

빠르게 차에 올라탄 후, 모든 차량과 연결된 무전기를 들었다.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달린다. 달리다가 차량이 고장 나면 버리고 뛰어라.”

대답은 바라지 않았고, 운전수는 풀악셀을 밟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몬스터의 사체만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저 앞에서 교황청이 몬스터와 교전 중인 걸 발견하게 됐다.

“성녀!!”

크게 외친 목소리에 뒤에 서 있던 마리가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바라봤다.

“하나 묻겠다.”

“바쁘니 짧게 해라.”

“오다가 봤다. 데스웜을 어떻게 그렇게 만들 수 있었지? 그리고 누가 했지?”

“몰라.”

처음에는 가르쳐 주기 싫어서 저렇게 대답한 줄 알았다.

그런데, 마리의 표정을 보니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네가 한 게 아니라고? 그런 혼자 여기 왔던 하유신이 했다는 거냐?”

“그럴 수도 있지.”

하유신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하지만, 데스웜을 홀로 손쉽게 처리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럼 우리 먼저 가도록 하지.”

짧게 대화하는 동안 교황청은 벌써 몬스터 정리를 끝냈다.

“그러지 말고, 차에 타라. 힘들게 이동하지 말고, 편안하게 가야지 몬스터를 상대할 때 힘을 쓸 수 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체력만 뺏긴다.”

“누가 달린데?”

“응?”

마리가 몸을 돌리자, 등 뒤에서 빛의 날개가 솟구쳤다.

그러자, 교황청의 모든 이들의 등에서 빛의 날개가 생성되더니,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때야 깨달았다. 처음에는 모두 실력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저건 마도구였다.

“우리 헌터 협회는 왜 저런 거 하나 개발하지 못한 거야!”

내 울분의 찬 외침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이스라엘의 도시는 몬스터와 마물과의 전투로 인해 많이 붕괴됐다.

다행히, 몇 명의 능력자 때문에 몬스터와 마물과의 전투에서 버틴 도시는 요르단의 암만으로 보낼 수 있었다.

“이곳은 폐허가 됐군. 땅의 축복. 생존자는?”

[람이시여. 안전 쉘터까지 확인했지만, 살아있는 인간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군. 이동한다.”

내 말에 뒤에 서 있던 거인들이 몸을 일으켜서는 나를 따랐다.

거인들은 이틀간 꾸준하게 일어난 전투 때문에 힘들 텐데도, 단 한 마디의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다.

“프란시스코.”

“네. 람이시여.”

“거인들의 상태는 어떻지?”

“다들 열정적입니다.”

“그래?”

물론 거인의 체력은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을 날 새도 멀쩡했다.

그렇지만, 전투로 인해, 거인들의 갑옷에는 여러 생채기가 나 있었다.

“다친 거인은?”

“대부분 경상이고, 카마엘의 포션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다행이군.”

그때, 정찰을 나갔던 네피림 족의 거인이 돌아왔다.

“람을 뵙습니다.”

“겉치레는 치우고 말해라.”

“네. 북서쪽에 마물 군단이 모여서, 도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속도를 높인다.”

말과 동시에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갔고, 거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물 군단의 모습이 보였다.

“카마엘.”

“네. 람이시여. 일단 한 방 먹여줘라.”

“알겠습니다.”

카마엘과 같은 네피림 족 열 명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마물 군단의 머리에서 빙 한 바퀴 돌더니, 내가 나눠줬던 마정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콰콰콰콰콰쾅

각성 된 마정석이 떨어지면서 몬스터들을 삭제했다.

네피림 족들이 아무리 날고 있다고 해도, 연속으로 일어나는 폭발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그때, 폭발을 뚫고 처음으로 마족들이 나타났다.

마족들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괴성을 내지르며 날아왔다.

“왔으면 선물을 줘야겠지?”

흑색 단창을 꺼낸 후, 그대로 마족들을 향해 던졌다.

마족은 분명 흑색 단창을 피할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날아오는 단창을 비웃듯이 후려쳤고 흑색 단창에 들어 있는 하급 마정석이 폭발을 일으켰다.

“마족인데, 이걸로 끝나지 않았겠지.”

칠성검을 꺼내 들고는 그대로 마족들을 향해 쏘아졌다.

그렇게 폭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마족들을 일검에 처리하고는 뒤를 돌아보며 거인들에게 외쳤다.

“박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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