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_출정 준비(1)
새벽 늦게까지 훈련하고 잠이 들었는데,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이제 잠은 하루에 한두 시간만 자도 모든 피로가 다 풀렸다.
“좋은 아침이네. 제이미는 뭐 하고 있을까?”
아직 며칠 되지 않아서 더 애틋한 제이미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자,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긴급문자]
현재 이 시간부로 이스라엘에 마족 및 마물이 등장. 시민들은 외출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짧은 내용이었다.
서둘러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니 거실에서 최실장과 가족들이 뉴스를 보고 있었다.
“이 시간부로 세계정부에서는 긴급 비상 상황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나타난 마족과 마물은 대체 무엇일까요? 지금 세계정부와 단체들이 그것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마왕의 재강림이라는 말도…….”
앵커의 말은 끊임없었지만, 대부분이 추론에 가까웠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내려온 걸 확인하고 떨리는 음색으로 날 불렀다.
“아들…”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저도 잘 모르겠어요. 교황청에서도 연락이 없고요.”
어느새 엄마가 조심히 다가와 날 꼭 안아줬다.
“저 위험한 곳에는 안 갈 거지?”
선의의 거짓말로 아니라고 하면 됐지만,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들. 유신아.”
어머니의 울 것 같은 표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더는 입이 열리지 않았다.
가이아는 내가 마왕의 강림을 한 번 늦췄다고 말해서, 다음 강림은 몇 년이 걸릴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을 벗어나듯 이렇게 빨리 마왕의 강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집안은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눈가를 훔친 어머니의 큰 목소리였다.
“좋아. 가야 한다는 거지?”
“…네.”
“가는 것에 대해서 더는 뭐라고 하지 않을게. 이런 잘난 아들을 뒀으면, 그 정도 각오했으니까. 대신에 이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은 먹고 가.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각오라는 건 내가 스스로 다지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어느 순간부터 각오를 다지고 있었나 보다.
“네. 가능해요.”
“그럼 잠깐만 쉬고 있으렴.”
“네.”
부엌으로 향한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 잠깐 방에 좀 갈게요.”
그 말만 내뱉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것저것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가 얼추 끝났을 때, 최실장이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하유신님.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최실장님. 잠시만 들어와 주세요.”
“네.”
최실장을 빤히 바라보다가 아공간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뭔가요?”
“혹시라도 제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걸 가족들에게 전달해주세요.”
“네?”
“부탁할게요. 이걸 맡길 사람으로 최실장님만 떠올랐어요.”
아공간 주머니를 바라보던 최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 주머니를 받았다.
“알겠습니다. 하유신님이 몸 성히 돌아오실 때까지 잠시 보관해 놓겠습니다.”
“…네. 그리고 제가 없더라도 지금처럼 우리 가족을 잘 부탁해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다 같이 아침 먹으러 가요.”
최실장을 포함해 식구들이 오랜만에 다 같이 모여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게 조용한 아침 식사였고, 식사가 끝난 뒤, 작별을 준비했다.
“엄마. 다녀올게요.”
“응. 빨리 와야 한다.”
“네.”
어머니와의 포옹을 끝내자, 아버지가 평소와 다르게 나를 꽉 안아줬다.
“아빠…”
아버지의 품에서 잠시 듬직함을 느끼고 있을 때,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놓아줬다.
“조심해야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형 우리는 안지 말자. 그냥 악수로 끝내.”
“그래. 서로 닭살 돋는 짓은 하지 말자.”
“몸조심하고, 후다닥 없애고 빨리 돌아와서 나 용돈이나 좀 줘.”
“월급이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형. 덕이나 좀 더 보려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끝으로 최실장을 바라봤다.
“부탁드립니다.”
“네. 하유신님이 떠나시면 최상위 경계 단계로 변경하겠습니다.”
“네. 그럼.”
가족들을 돌아보며 해맑게 웃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땅이 솟구치더니, 가라앉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뉴욕에 위치한 제이미의 아파트 문 앞이었다.
벨을 누르려고 하다가 이내 전화를 꺼내 들었다.
[유신아~ 일어났어?]
“응. 일어났어.”
[한국은 아침이지? 여기는 저녁인데.]
“그래도 뉴욕의 밤은 화려하잖아.”
[그런가? 나중에 유신이랑 여기에서 멋진 야경을 보고 싶어.]
“나도 그래. 그래서 그러는데 문 열어주겠어?”
[응?]
벨을 누른 후에 인터폰을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제이미양. 잠깐 열어주시겠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고, 제이미가 내게 안겼다.
한동안 행복한 표정을 짓던 제이미가 고개를 들어서 날 바라봤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벌써 나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응.”
품 안으로 더욱 파고들던 제이미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살짝 떨어졌다.
“갈 거야?”
“가야지.”
“이스라엘은 위험한 곳이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빨리 움직여야 한 명의 사람이라도 더 구하지.”
말없이 날 바라보던 제이미가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이 가.”
“아냐. 이번에는 데이트가 안 될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스스로 내 목숨을 챙길 정도의 능력은 돼.”
“제이미. 내가 정말 많이 좋아해.”
갑작스러운 고백에 그녀는 멈칫했고, 나는 손을 들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마에 입을 맞췄다.
“모든 일이 끝나고, 정말 제대로 된 멋진 데이트를 하자.”
“하유신!”
화를 내려는 제이미를 바라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땅의 축복이 흙을 일으키더니 나를 이동시켰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교황청이었다.
“마리 선배.”
“안돼.”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할 말은 뻔하지. 혼자 이스라엘에 간다는 거잖아.”
마리 선배는 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았다.
물론 내가 마리 선배의 말을 안 들을 것도 알고 있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신아. 며칠, 단 며칠만 기다려 주면 안 될까?”
“그 며칠 사이에 수천수만 명의 사람이 죽을 수도 있잖아요.”
“정말 기다릴 수 없겠어?”
“네.”
내 확고한 말투에 마리 선배가 연신 한숨을 내쉬더니, 검지와 중지를 펴서는 내게 보이며 말했다.
“두 가지만 약속해.”
“뭔데요?”
“약속부터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여기서 널 패버릴 수도 있으니까.”
순간 예전에 마리 선배가 다리우스 선배를 주먹으로 두들겨 패던 게 생각나면서,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네. 약속할게요.”
겁이 나서 한 약속이 아니다.
단지, 홀로 가게 되면 못 지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대신에 이것 하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지킬 수 있다면, 지키겠다고.
“첫 번째 홀로 절대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는 거야.”
“그건 당연하죠. 제가 아무리 강해도 혼자 저 많은 해충을 감당할 수는 없으니까요.”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리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좋아. 두 번째로 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거야.”
“그건 저도…”
“잘 들어. 그건 마왕을 죽일 신살의 힘이야.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아껴두는 게 맞아. 최후의 일격을 위해서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지 않아?”
“그 말은 마왕을 만나면 사용해도 된다는 거네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마리 선배는 인상을 찡그리다가 품에서 새하얀 구슬을 내게 건넸다.
“혹시라도 마왕을 만나게 되고, 신살의 힘을 사용하기 전에 꼭 이 구슬을 사용해.”
“이게 뭔데요?”
“가이아가 너에게 준 선물이야.”
구슬을 살펴보다가 조용히 품에 챙겨 넣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마리 선배. 다음에는 이스라엘에서 만나요.”
“가기 전에 교황에게 들렀다가 가.”
“교황이요?”
“그래.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나는 교황청 소속이다.
그렇기에 교황을 만나는 게 당연하지만, 표면적으로 교황을 만난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교황을 만나더라도 사적인 애기를 해본 적도 없고 말이다.
그렇다고, 교황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는 않았다.
“교황을 뵙습니다.”
“교황청의 검께서는 고개를 드세요.”
숙였던 고개를 들자, 교황이 인자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교황청의 검이자, 가이아의 선택을 받은 자시여.”
“교황님. 그런 호칭은 제게 부담이 될 뿐입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불릴 자격이 차고 넘치십니다. 그럼 지금부터 공식적인 행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리 와서 한쪽 무릎을 꿇어주세요.”
앞으로 다가간 후, 한쪽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을 때, 교황이 내 앞으로 와서는 꿇어앉더니, 양손을 잡았다.
[가이아시여, 당신의 어린양을 굽어살피소서.]
교황의 몸에서 나온 신성력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하늘에서 밝은 빛이 쏟아지더니, 나를 비췄다.
거대한 신성력이 몸 안으로 들어와서는 세포 하나하나에 자리를 잡는 느낌이 들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 말을 한 교황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아닙니다. 교황의 명으로 이 지구의 평화를 지키고, 사람들을 구해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황을 만나고, 교황청의 대장간으로 이동했다.
카앙 카앙
맑은 쇳소리가 울려 퍼지고, 열 개가 넘는 화로에서 끊임없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화로 앞에선 대장장이들은 모두가 진중한 얼굴을 한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여기는 올 때마다 말 걸기가 참 힘드네.”
평소라면 대장장이들이 자신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렸을 거다.
그렇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시기였다.
주변을 둘러본 후, 대장간의 책임자인 파이토에게 다가갔다.
그는 내가 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망치를 두들기고 있었다.
“파이토님.”
그렇게 크게 부르진 않았지만, 포스를 이용해 파이토의 귀에 들어가게 했다.
내 목소리에 파이토는 망치를 내려놓고 두들기던 쇠덩어리를 다시 화로에 넣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작업을 망친 것 같으시네요.”
“아닙니다. 처음부터 망치질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셨던 것은 모두 준비가 끝났습니다. 따라오십시오.”
“네.”
파이토를 따라 이동한 곳은 거대한 창고였다.
창고 문이 열리자, 눈앞에 수백이 넘는 흑색단창이 보였다.
“이것들입니다.”
나는 흑색단창을 들어서 이리저리 확인해봤다.
단창의 창날 바로 뒤에 무언가 들어갈 작은 홈이 있었고, 거기에는 하급 마정석이 끼워져 있었다.
“그런데, 투창용으로 사용하신다고 했는데, 이게 왜 천 개나 필요한지 알 수 있을까요?”
“포스 미사일에 사용하려고요.”
“포스 미사일이요?”
“마정석을 각성시킨 후에 이걸로 포스 미사일을 사용하면, 위력이 배가 됩니다. 단창이라서 사정거리는 짧아졌지만, 더욱 빨리 날아가서 적들이 피하기 힘들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일회용으로 쓰기에는 광석과 마정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장장이로서의 이걸 만들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렇지만, 이 녀석들이 펼칠 활약은 파이토의 생각 이상일 것이다.
“이 단창 하나가 소모될 때마다 파이토님의 명성은 올라갈 겁니다.”
“명성은 이미 얻을 만큼 얻었습니다. 대신에 몸조심하십시오.”
파이토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흑색단창을 아공간에 모두 챙겨 넣었다.
“그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에도 제가 파이토님을 괴롭힐 테니까 그때도 부탁드립니다.”
몸을 돌려서 대장간을 나서려고 할 때, 파이토가 등 뒤에서 내게 외쳤다.
“하유신님을 위한 방어구를 준비할 테니, 꼭 살아서 오십시오.”
살아남아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