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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288화 (288/300)

288화_마왕 강림(2)

드디어 지구에서 자신을 소환하기 위해 준비를 끝내고 신호를 보냈다.

신호가 오자마자 가지고 갈 수 있는 최대치의 마기를 가지고 강림하려고 했지만, 지구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구시온 따위의 제단을 바꿔서 마계 서열 9위인 날 부른다고?”

다른 마왕. 그것도 자신보다 서열이 떨어지는 마왕의 제단을 통해 강림을 시도하고 있는 거였다.

평소라면 강림할 생각도 없이 그저 무시했을 거다.

그렇지만, 바알의 부탁도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봉인의 구슬을 가지고 차원의 틈을 넘어갔다.

자신의 제단이 아니었기에 차원의 틈을 넘기 위해 가지고 있는 마기의 대부분을 소모하고 말았다.

“겨우 봉인의 구슬은 챙길 수 있겠어. 그럼 몸 주인은 어디에 있을까?”

몸 주인의 의식 세계를 둘러봤다.

그러자, 곧 한쪽 구석에 하얗게 탈색된 존재가 보였다.

“네가 나를 찾은 것이냐?”

탈색된 존재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만 했다.

가진 마기는 최상급 마족인데, 정신력이 부족한 놈이었다.

이딴 놈 때문에 너무 많은 마기를 소모한 것에 대해 짜증이 치솟았다.

“이리 와라.”

손을 뻗어서 부르자, 탈색된 존재가 공중에 떠서는 내게 날아와 순순히 목이 붙잡혔다.

“이름은?”

“앤…드류…”

“좋다. 앤드류. 너의 소원은 뭐냐?”

“……”

아무리 기다려도 앤드류에게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허송세월을 보낼 수 없기에 아까운 마기를 사용해서 놈을 깨웠다.

“다시 묻겠다. 앤드류 너의 소원은 뭐냐?”

“내 손으로…전설들과 하유신을 찢어 죽이는 거다.”

“좋다. 그 소원을 들어주지.”

반대 손을 들어서 앤드류의 발목을 잡았다.

그 상태에서 빨래를 쥐어짜듯 앤드류를 비틀었고, 곧 형상도 갖추지 못한 영혼 찌꺼기를 집어삼켰다.

인간의 기억 일부와 감정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열등감에 젖어 있는 한심한 놈이었군.”

어떻게 이런 놈이 지구에서 강자 취급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큼 지구에는 실력자가 부족하기에 바알의 명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까지 가능해 보였다.

뭐가 어떻든 앤드류의 기억과 영혼을 차지했으니 이제 육체를 점령할 차례였다.

방금 삼킨 앤드류의 영혼을 이용해 자신의 영혼과 앤드류의 몸을 동기화시켰다.

그렇게 육체의 통제권을 얻은 후, 눈을 뜨자 어두운 동굴이었다.

쿠르릉

동굴 한쪽에 놓여 있는 바위가 움직이더니 시리 시온이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엎드리며 절했다.

“미천한 존재가 마왕 파이몬님을 배알합니다.”

자신을 이딴 쓰레기의 몸에 강림하게 한 반마족이었다.

잠시 그녀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바닥을 짚었을 때였다.

“어?”

무언가 이상해서 고개를 내려 확인해보니 어이없는 상황이 눈에 보였다.

한 손만 사라졌다면 대충이라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손이 아니었다.

“이놈의 양손은 어디로 갔지?”

“네. 그건…”

“아아 됐다. 내가 확인하지.”

반마족 따위의 말을 듣기보다는 앤드류의 기억을 뒤져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양손이 없는 이유와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앤드류가 왜 하유신이라는 인간에게 그렇게 복수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이번 강림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군.”

최상급 마족의 몸은 언제든지 상급 마족으로 강등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건 양손이 회복되지 않았다.

“신의 힘에 당한 상처군.”

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마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가지고 있는 마기가 너무나 빈약했다.

그리고, 기억 속의 하유신은 정말 위험한 존재였다.

인간 중에서 신의 힘을 사용하는 자는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지.’

봉인의 구슬에 순수한 마기가 있지만, 고작 팔을 고치는데,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그리고 여기서 마기가 조금만 더 부족하면 봉인의 구슬에 있는 자신의 군단을 소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대신할 존재가 눈앞에 보였다.

너무나 먹음직스러운 존재가 말이다.

“어쩔 수 없나?”

반마족 따위를 먹게 되면 소화불량에 걸릴 수 있겠지만, 저 정도 등급이라면, 손 하나 정도는 회복할 마기가 있을 것 같았다.

군침을 삼키며 시리 시온에게 다가갈 때였다.

“파이몬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엇이냐?”

“양손과 함께 마기를 회복할 수단을 마련했습니다.”

지구에서 마기를 회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회복할 수단이 있다고 하니, 시리 시온의 목숨을 취하는 걸 조금은 늦춰봐도 될 것 같았다.

“회복할 수단이라고? 어디 한 번 말해봐라.”

시리 시온은 품에서 주먹만 한 보라색 수정을 꺼내 자신에게 보여줬다.

물론 손이 없어서 그 수정을 들 수는 없었지만,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기를 이용해 인간의 원한을 마기로 바꾸면서 반마족을 만드는 방법이군.”

머릿속에서 시리 시온의 삶이 연장되었다.

지금까지 여러 차원을 다녔지만, 이런 기술은 본 적이 없었다.

“네가 직접 만든 것이냐?”

“제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래? 그 녀석들을 보고 싶군.”

내 말에 시리 시온이 입술을 짓씹었다.

“하유신과 지구에서 전설이라고 불리는 놈들에게 죽었습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냐?”

“아닙니다. 지금까지 만들어 둔 게 있고, 앞으로 만들 수 있는 양도 약 삼천 개 정도 됩니다.”

“오호~ 너 참 쓸모가 많구나.”

“정말 감사합니다.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일단 마기를 회복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놨습니다.”

지구에 강림했을 때만 해도 최악이었는데, 조금씩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 여자를 데리고 마계로 돌아가면, 다른 차원을 점령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가자. 마기를 회복하러.”

“네. 알겠습니다. 파이몬님 앞에서 약간의 잔재주를 부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시리 시온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에 손톱을 내리그었다.

차원의 문이 보랏빛을 뿜어내며 열렸다.

그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서자 다시 한번 시리 시온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착한 곳은 약 일백 개의 마신석이 쌓여 있었고, 마신석끼리 서로 호응하며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유쾌한 짓이지? 하하핫.”

웃음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본 후, 호흡을 하듯 한 번에 마기를 들이켰다.

순식간에 빨려 들어온 마기와 함께 마신석들은 빛을 잃었다.

마계에서 마시던 마기가 아닌 인공적인 마기였지만, 이렇게라도 마기를 보충할 수 있으니 좋았다.

“설마 이거 하나만 준비한 것은 아니겠지?”

“앞으로 여덟 군데가 남아 있습니다.”

“좋다. 빨리 이동해라.”

“알겠습니다.”

차원의 문을 열고 있는 시리 시온을 보니 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릴 것 같았다.

물론 박쥐 같은 반마족 따위에게 무한한 신뢰는 줄 수 없지만 말이다.

***

새벽까지 교황청의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응접실의 소파에 누워서 쪽잠이 들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순백의 새하얀 공간에서 눈을 뜨게 됐다.

그때, 앞에서 은은하고, 신성력이 가득 담긴 빛이 뿜어지자, 무릎을 꿇었다.

“마리 엘렌시아가 지구의 모든 만물의 어머니인 가이아를 뵙습니다.”

“아이야. 일어나거라.”

“네.”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 신성력을 뿜어내는 빛을 바라봤고, 그 빛이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

“이번에는 여인의 형상으로 나타나셨군요.”

“하유신이라는 아이가 이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유신이라면 충분히 그럴만 하죠.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마리 엘렌시아. 너는 언제나 당당하구나.”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부모라고 해서 자식에게 존경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내가 말하지만, 마리 엘렌시아. 나의 사랑을 받는 아이야. 나는 너의 그 태도가 너무나 좋구나.”

“한두 번도 아니고, 빨리 용건을 말해주세요.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는 건 그만큼 급하다는 거잖아요.”

“그래. 지금 마계의 마왕이 강림했단다.”

슬퍼 보이는 모습의 가이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 엘렌시아. 내 아이야. 놀라지 않는구나.”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지, 생각보다 강림이 빨랐네요.”

“그래. 지구를 부탁한다. 나의 아이야.”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이건 내가 너에게 줄 선물이란다.”

“선물이요?”

수십 번 가이아를 만나면서 이번을 제외하고, 딱 두 번만 가이아에게 선물을 받았다.

한 번은 처음으로 마왕이 강림했을 때, 다른 한 번은 일루시안으로 넘어갔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선물을 받았다.

가이아의 선물은 새하얀 빛으로 반짝이는 구슬이었다.

“일반적인 구슬이 아니네요.”

“운명을 벗어난 자. 하유신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구슬이란다.”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는 구슬이요? 구하면 구하는 건데, 구할 수도 있는 구슬이라니요?”

“하유신의 운명이 점점 내게서 멀어지는구나. 네가 나 대신에 하유신에게 그 구슬을 주면 된단다. 그리고, 그 아이를 잘 보살펴 주기 바란다.”

잠에서 깨고 나니 자신의 응접실이었다.

그리고, 손에는 새하얀 구슬이 있었다.

“대체 가이아. 당신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겁니까!”

가이아도 나름대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이아는 오지랖 넓게도 지구뿐만 아니라, 일루시안까지 챙기려고 했다.

일루시안의 생명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한때 그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제발. 이 구슬을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일단 이것과 관련된 일을 13기동 타격대에 알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구슬을 챙겨서 일루시안으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평소와 다르게 다급하게 루카스가 응접실 문을 열었다.

“성녀님. 지금 바로 화상 회의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화상 회의?”

“네. 지구의 전설들이 모두 가이아님을 만났다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 손에 쥔 구슬을 바라봤다.

바삐 일루시안으로 넘어가야 했지만, 그 전에 전설들에게 부탁할 일이 생겼다.

“바로 준비해줘.”

“회의실에 준비가 끝나 있습니다.”

“알았어.”

회의실로 이동해서 화상회의에 접속했다.

그러자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전설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내가 오기 전까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리. 가이아님의 말은 무슨 뜻이지?”

역시나 성질 급한 리암의 질문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리암. 앞뒤 문장 빼먹지 말고, 확실히 말해. 가이아께서 뭐라고 말하셨는데?”

“지구에 마왕이 강림했다고, 대비하라고 했다. 다른 전설들에게도 같은 내용이 전달됐고.”

“혹시 가이아께서 아스본 레스넌의 딸인 제이미 레스넌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어?”

“어?”

리암을 포함해서 모두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제이미 레스넌과 비슷하게 생겼어.”

“취향 한 번 확고하네.”

“응? 뭐가?”

“아냐. 일단 나 또한 비슷해. 너희들과 다른 꿈을 꾸기는 했어. 지금 지구에 마왕이 강림한 것은 맞아.”

말이 끝나자마자 전설들은 침묵했다.

그때, 벨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루시안에 있는 13기동 타격대를 부를 수 있을까요?”

“일단 나도 그 요청을 하러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렇지만, 기대하지 마.”

“네? 마리 엘렌시아님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말 그대로야. 저번에 갔다왔을 때 일루시안의 상황이 절정으로 치달았어. 그곳은 마왕이 아니라 대마왕인 바알이 강림했다고 했어. 그래서 쉽게 몸을 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그래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가보려고.”

전설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13기동 타격대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지하면서 견제 또한 했기에 13기동 타격대가 일루시안의 일을 빠르게 해결하지 못하게 된 거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예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 모든 걸 하유신이 일궈냈지.’

“지금 마왕은 방금 강림했기에 힘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야. 그동안 최대한 빨리 마왕을 처리해야 해.”

모든 전설이 동조하고, 바로 업무처리에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회의할 때 절대 들어오지 않는 루카스가 급하게 들어와서는 화상 회의장을 향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성녀님. 마족 군단이 나타났습니다.”

“군단? 그게 무슨 소리? 아니. 지금 어디에 나타났지?”

“이스라엘에 3만이 넘는 마족, 마물 군단이 나타났습니다.”

대체 어떤 수단을 써서 마왕이 강림과 동시에 그런 어마어마한 힘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대책을 마련할 때였다.

“모두 최대한 빨리 인원을 모집해. 이건 전 세계적인 비상 상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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