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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285화 (285/300)

285화_특별한 데이트(1)

이곳은 일본의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과 정원이 담백하게 꾸며진 곳이다.

“야쿠자 따위가 쓰기에는 정말 아까운 곳이지.”

오늘 이 아름다운 곳에 인간의 붉은 피가 더해진다는 게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위해서는 이딴 쓰레기들은 사라져야 했다.

그때, 부하 중 한 명이 대머리 노인을 끌고 와서는 내 앞에 무릎 꿇렸다.

“카즈야 레이님 데리고 왔습니다.”

그 노인은 제압된 상태에서도 눈빛이 죽지 않고 자신을 노려놨다.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나는 사무라이들의 ㅎ…”

단칼에 머리를 날려서 그런지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사무라이의 후예를 자처하는 거지. 사무라이의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으면서.”

피에 젖은 정원도 참 볼만하다고 느낄 때였다.

다른 부하가 나타나서는 고개를 숙였다.

“카즈야 레이님. 살아있는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처리했습니다.”

“마신석은?”

“다 챙겼습니다.”

“그래. 가자.”

야쿠자 따위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마신석을 사용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마신석을 이용하면 일본은 전세계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옛날 선조들이 이루었던 대일본제국을 다시 건설할 수도 있다.

“다음은 어디지?”

부하가 교황청에서 나눠준 마신석 탐지기를 확인하고선 대답했다.

“오사카 지역은 다 끝났습니다.”

“그럼 돌아간다.”

“네.”

생각해보면 교황청도 참 멍청했다.

마신석 탐지기가 있으면 비싼 값에 팔거나 로열티를 받으면 더 좋을 텐데, 이걸 공짜로 나눠줬다.

“뭐 사람을 쉽게 믿는 거겠지.”

“네?”

혼자 생각하던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아니다.”

본부가 위치한 곳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착하고 나서는 야쿠자들에게서 얻은 마신석을 손수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리가 끝나고, 마신석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참. 많이도 모았군.”

“카즈야 레이님. 정말 교황청에 하나도 안 보내도 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곳은 연구팀들의 총화가 들어가서 마신석의 존재를 가려준다. 이제 연구팀이 마신석 활용법에 대해서 알아보기만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부하들이 나가고, 잠시간 마신석들을 다시 둘러봤다.

모두가 다 꼼꼼히 봉인되어 있어서 문제는 없겠지만,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렇게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연구팀은 지금 뭘 하고 있지?”

“정리하고 있습니다.”

“정리? 도착한 지 벌써 며칠이 되지 않았나?”

“네. 사흘 전에 도착했습니다.”

“그럼 바로 실험을 시작해야지.”

내 말에 부하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힘들 것 같습니다.”

“힘들어?”

“네. 지금 연구원들이 실험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다고 일주일 후에나 연구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은 일본 제국의 부흥을 위해 몇 달째 밤낮없이 일하는데, 그들의 느려터진 행위에 분노가 치솟았다.

“내일.”

“네?”

왜 하나같이 자신의 말을 한 번에 알아먹지 못하는 걸까?

“내일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고 모레부터 바로 연구에 들어가라고 전해라.”

“가능할까요?”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면 못하겠지. 그리고 그런 존재는…”

왼쪽 허리춤에 매어져 있는 자신의 일본도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부하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후다닥 연구실 쪽으로 달려가는 부하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했다.

일본이 다시 부흥하고, 제국이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저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홀로 화를 가라앉히고 있을 때였다.

애애앵

기지에 긴급상황이 생겨서 빨간불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빨리 확인해 봐라.”

“알겠습니다.”

다른 부하가 빠르게 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일 때였다.

마신석을 보관하는 창고 문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하급 마족 한 개체가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봉인함 중 하나가 불량이었나 보군. 스트레스 받았는데, 잘 됐어.”

검병을 잡은 후 상체를 숙이고 하급 마족에게 달려가며 발도술을 펼쳤다.

카앙

자신의 도가 마족의 목을 가격했지만, 잘라내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단단하군. 그렇다면 이것도 받아봐라.”

말과 동시에 일본도에 기운을 불어넣으며 휘두르려고 했다.

그렇지만, 어느새 마족의 손이 얼굴을 꿰뚫을 것처럼 다가왔다.

급하게 몸을 뒤로 접어서 마족의 손길은 피했지만, 자세가 무너졌고, 마족의 공격이 쏟아졌다.

겨우 공격을 막아가고 있을 때, 뒤늦게 부하들이 이곳으로 내려왔다.

“카즈야 레이님 저희가 돕겠습니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부하들이 다가왔고, 그렇게 전투를 이어갔다.

한숨은 돌릴 수 있었지만, 자신과 부하들의 공격이 마족에게 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하급 마족의 근처에만 가도 공격의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몸이 무거워졌다.

‘이대로는 죽는다.’

마족의 틈을 만들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부하를 희생양 삼기로 결심하고는 어깨를 다치고 잠시 물러난 부하의 팔목을 잡았다.

“네가 대일본제국을 위해 희생해라.”

“네?”

“가라.”

그렇게 마족에게 부하를 던졌다.

마족이 부하를 죽이는 동안 필살의 기운을 담은 도를 마족의 가슴에 박아넣었다.

“됐어!”

죽어가는 부하의 원망 가득한 눈빛을 애써 무시하고, 마족을 죽였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을 때였다.

푸욱!

자신의 아랫배를 바라보니, 마족의 손이 박혀있었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고통 속에서 마족을 바라봤다.

마족은 가슴에 박혀있는 도를 웃으며 뽑아 들었다.

바닥에 쓰러져서 봉인함을 바라보니, 새로운 마족들이 속속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신석을 이용한다는 건 인간의 오만이었나?’

***

안절부절 못해서 회의실을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제이미. 가만히 있어.”

“소피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어. 한국까지 왔는데, 하유신은 벌써 한 시간이나 약속 시간을 늦고 있는데.”

소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갑자기 소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늦게 나도 마나의 파동을 느끼고는 크게 외쳤다.

“전투 준비!”

내 명령에 주변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헌터들이 책상을 뒤집어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전투 준비에 나섰다.

“제이미. 두 명이야.”

“알았어.”

사복검을 꺼내서 언제든지 상대를 말살할 준비를 끝낼 때였다.

순간이동으로 나타난 사람은 유신과 중년으로 넘어가려는 남성이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 보세요.”

“그러고 싶은데, 여기 분위기가…”

“괜찮아요. 괜찮아. 확실히 특수 상황에 대비하는 거니까요.”

“…그래. 알았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마. 오늘 정말 고마웠다.”

“아니에요. 다음에도 불러주세요.”

남성은 유신에게 미소를 지은 후 다시 사라졌다.

“상황 해제.”

세계헌터협회 인원들은 책상을 다시 세우고, 서류를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신을 바라봤다.

“순간이동으로 올 거면서 한 시간이나 늦었네?”

내 뾰족한 말에 유신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미안. 사실 오늘 모교에서 명사 특강을 하고 바로 온 거야.”

“그게 세계헌터협회와의 계약보다 중요할까?”

“정말 미안해. 내가 이렇게 사과할게.”

유신이 두 손을 비비는 시늉까지 하자, 마음이 풀어졌다.

그때, 소피가 다가와서는 옆구리를 찔렀다.

무슨 일인가 하고 소피를 바라보니, 계약서를 힐끔거렸다.

확실히 유신이 늦었기에 이번 계약은 우리에게 조금이지만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그럼 마나석의 주인인 하유신님. 계약에 대한 이야기부터 진행할까요?”

“네. 좋습니다. 세계헌터협회의 협회장 대리인이신 제이미 레스넌 양.”

자리에 앉은 유신이 우리 쪽에서 건네준 서류를 빠르게 읽었다.

“계약서에는 아무 문제 없군요.”

“그럼 거기에 적혀 있는 대로 계약하는 거죠.”

“제 질문에 진실을 말한다면요.”

진중한 표정을 짓는 유신도 멋있…이게 아니고, 갑자기 이상한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질문인가요?”

“이 정도 양의 마나석으로 세계헌터협회는 뭘 하려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것까지 알아야 하나요?”

“네. 제이미 레스넌양 그건 중요한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제 대비를 해야 하니까요.”

소피를 바라봤는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사실을 말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다른 서류를 꺼내서 유신에게 건네줬다.

“서류에 나와 있는 것처럼 마나석으로 일회용 무기와 함께…포션을 만들려고 해요.”

“그렇군요.”

아무리 유신이 늦게 왔더라도, 거래의 갑은 유신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황청의 주 수입원인 마나석으로 포션을 만든다고 하면, 거래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

그건 최대한 막아야 했고, 아버지인 아스본 레스넌도 유신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들어주라는 말까지 했었다.

“좋군요.”“좋아. 아니 좋다니요?”

“이대로 계약하겠습니다.”

“응? 이대로 한다고요? 불리한 계약인데…요?”

내 말에 소피가 이마를 짚으며 울상이 되었지만, 유신은 방긋 미소 지었다.

“그렇게 불리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포션을 만들면 교황청에 안 좋은 거 아닙니까?”

“뭐 그렇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소한 금액보다는 미래의 재난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하니까요.”

작은 이익보다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지 않기를 바라는 유신의 넓은 마음에 다시 한번 반하고 말았다.

그때, 소피가 다시 한번 옆구리를 찔렀다.

“그럼 하유신님. 사인 부탁드립니다.”

“벌써 했습니다.”

그렇게 두 개의 계약서에 서로 사인하고, 물품 거래까지 일사천리로 끝났다.

그때, 유신이 악수를 권했다.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손을 맞잡았다.

“제이미.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 그리고 늦어서 미안하고.”

다른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유신이 다시 내게 반말을 한다는 게 중요했다.

“갑자기 말투가 바뀌었네?”

“공적인 일은 끝났으니까.”

잡았던 손을 놓고, 허리에 손을 올린 후, 볼을 부풀렸다.

“공과 사를 구별하겠다는 소리야?”

“응. 그리고 이제 사적으로 묻는 건데, 시간 돼?”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무감각해지기로 생각했다.

유신이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할 일은 꿈에도 없다는 걸 훈련을 하면서 충분히 느꼈기에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시간? 왜?”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에게 데이트 신청하려고.”

“어…어? 어어??”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신이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유신이 자신에게 몸을 낮추고, 오른손을 내밀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이미 레스넌양 오늘 시간 되시면, 저와 데이트 하겠습니까?”

정말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 이루어졌다.

그때, 소피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쳤다.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도도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예.예스!”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 튀어나왔고, 회의실이 울릴 정도로 크게 말한 것 같아서 얼굴이 붉어졌다.

옆에 있던 소피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솔직히 제이미 레스넌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 장난치는 줄 알았다.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미녀가 다가오자 마음이 흔들리기는 했다.

그 마음을 숨기기 위해 6개월의 훈련 기간 동안 더 멀리했다.

“데이트라고 했는데, 우리 뭐부터 할 거야?”

“조금 이르기는 한데, 저녁 식사 괜찮아?”

“응. 난 유신이 선택한 거라면 다 좋아.”

제이미가 날 좋아한다는 걸 소피 애니스톤이 며칠 전 저녁에 전화로 화를 내며 알려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몰랐을 거다.

나의 무던함으로 인해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녀를 놓칠뻔했다.

“내가 예약한 곳이 있어. 그곳으로 가자.”

“응.”

기분 좋게 식당으로 향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띠링띠링

우리를 포함해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기에 곧바로 휴대전화를 열었다.

[긴급재난]

현재 일본 오사카를 시작으로 몬스터 웨이브 및 다수의 마족이 출현했습니다. 밖에 나와 있는 시민들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오사카에 마족이?”

바로 옆에 있는 제이미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표정은 누가 봐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제이미. 미안한데, 데이트는 나중으로 미뤄도 될까?”

“아니. 안돼. 이번에는 절대 포기 못해.”

우리가 있는 한국의 위치상 일본은 바로 옆나라였다.

언제 마족이 나타날 줄 모르는데, 데이트를 이어 나가기는 힘들었다.

그때, 제이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유신과의 첫데이트가 일반적이지는 않을 거라고 상상해왔는데, 설마 첫 데이트가 몬스터 사냥을 하러 가는 걸 줄이야.”

제이미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아공간에서 순간이동 구슬을 꺼내서 제이미에게 건네줬다.

“이건 뭐야?”

“선물. 그걸 깨면 우리 집으로 바로 순간이동 될 거야.”

얼굴을 붉히는 제이미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소피에게 말 안 해도 돼?”

“아무리 소피가 나랑 가장 친한 친구지만, 데이트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빨리 가자.”

“응. 위험하면 구슬 써야 해. 알았지?”

“알았어.”

내 의지를 느꼈는지 땅의 축복이 나와 제이미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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