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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284화 (284/300)

284화_졸업생 명사 특강

아주 짧게 일루시안에서의 일을 끝내고 잠깐의 휴가를 받아 집에서 쉬고 있었다.

휴가였지만, 실제로는 휴가가 아니었다.

한국에 있는 내 방에서 세계정부와 헌터 연합 그리고 각 단체와 의견을 조율하면서 바쁘게 지냈다.

이제 막 세계헌터협회의 소피 애니스톤과 통화를 끝냈을 때, 최실장이 들어왔다.

“유신님. 며칠 전부터 누군가가 집 앞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최실장님. 그런 사람들은 한두 명도 아니잖아요.”

지금 자신은 소피 애니스톤이 통화를 끊기 전에 했던 말로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순간이동 능력자입니다.”

“순간이동 능력자요?”

물론 집에 순간이동 방해를 걸어놔서 들어 올 수는 없지만, 확인은 해봐야 했다.

“영상이나 사진은요?”

“여기 있습니다.”

최실장이 건네준 영상에서는 수상한 사람이 집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골목길에 들어선 이후에 순간이동을 해서 사라졌다.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여기 얼굴을 확대한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을 확인하니, 확실히 누구인지 파악했다.

“김학도 선생님?”

“아시는 분입니까?”

“네. 아카데미 시절 담임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자신이 알고 있는 김학도 선생은 츤데레이면서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퍼주는 자였다.

그런 사람이 왜 갑자기 자신의 집을 서성일까?

그의 성격상 볼일이 있다면, 영상에서 본 것처럼 망설이는 게 아니라, 벨을 눌렀을 거다.

“최실장님. 김학도 선생님에 대해서 좀 알아봐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김학도 선생에 대해 부탁하고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최실장이 서류를 가져왔다.

서류를 천천히 읽어보니 김학도 선생이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선생님 성격에 이런 거 부탁하기 어렵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내일 한 번 만나와야겠네요.”

“조치 취해놓겠습니다.”

“조치요? 그냥 제가 알아서 만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이상한 소문인지 모르겠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텐데, 오늘은 학부모들에게까지 연락이 왔다.

“김학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미미 엄마 되는 사람인데요. 정말 선생님께서 그 유명한 교황청의 찬란한 검 하유신님을 가르치셨나요?”

“선생님 덕분에 하유신님이 그렇게 강해졌다면서요?”

“하유신님이랑 선생님이 그렇게 친하다면서요. 이번에 졸업생 명사 특강에 오시는 건가요?”

아무리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도무지 믿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김학도 선생님. 하유신님께 한 번 연락해서 이번 졸업생 명사 특강에 초대를…”

“교감 선생님. 다른 분들은 오해할지라도 교감 선생님은 아시잖아요.”

“아니…나도 알고는 있는데, 저렇게 학부모까지 원하니 연락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잖아.”

“바쁜 사람에게 그게 얼마나 실례인데요. 그리고 하유신 연락처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끊어내기 위한 말이었지만, 교감이 헤벌쭉하게 웃었다.

“그래서 내가 다 알아봤지.”

교감은 내게 쪽지 하나를 건네줬다.

“교황청의 찬란한 검께서 요즘 한국에 있어. 그리고 이게 집 주소야. 솔직히 예전에 그 난리가 났는데, 모를 수가 없지.”

“교감 선생님.”

“김학도 선생. 아니 학도야. 나 좀 한 번만 살려주라.”

“하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앞에 있는 교감이 자신의 은사님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화를 냈을 터인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해보고 안 되면, 그때 생각하면 되잖아. 그래도 한 번은 시도해 볼 수 있잖아. 응?”

“…네.”

어쩔 수 없이 쪽지에 적혀 있는 주소지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하유신은 예전과 다른 인물이 되었다.

솔직히 만난다고 해도 자신을 알아본다는 보장도 없었다.

자신은 일개 아카데미 선생이었고, 하유신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특별한 접점도 없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함이 몰려왔다.

그때 으리으리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거대한 집의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여긴가?”

서슴없이 벨을 누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 상황이 너무나 민망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시도만 하고 끝내 벨을 누르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하아~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벌써 며칠째 유신의 집 앞을 서성였다.

내일이면 졸업생 특강이 있는 날이었다.

분명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하유신이 오지 못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해서 말했지만, 그들은 내심 기대한 눈빛이었다.

“솔직히 마주친다고 알아는 볼까?”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은 그렇게 좋은 선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늘도 서성이다가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누구세요?”

뒤를 돌아보니, 후드집업을 뒤집어쓴 남성이 서 있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서 처음에는 하유신인 줄 알았는데, 하유신이 아닌 걸 알게 됐다.

앞에 있는 사내는 자신이 기억하는 하유신보다 최소 십센치는 더 키가 컸다.

“아…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니. 저 그게…”

하유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 더욱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와 다르게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여서 말을 더듬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기는 했다.

지금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상대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 후다닥 몸을 돌려서 이곳을 떠났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순간이동을 발동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기에 저기 커브 길을 지나쳐서 평소처럼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다.

“김학도 선생님?”

“응?”

후드집업의 사내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고, 상대는 후드집업의 모자 부분을 벗었다.

“하유신?”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봤던 자신의 제자 하유신이었다.

아무리 후드집업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더욱 민망했다.

“김학도 선생님 맞으시구나. 여긴 어쩐 일이세요?”

갑작스러운 하유신의 말에 더욱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저 그게…”

몇 번이나 연습했던 말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게 아니지. 선생님. 일단 커피라도 한잔해요.”

“응?”

“저기 괜찮은 커피숍이 있어요.”

하유신이 자신의 팔을 잡아서 끌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꽤 큰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들어갔다.

“선생님. 뭘로 하시겠어요?”

“아니. 나는 괜찮…”

“어서요. 성공한 제자가 쏠 테니 마음껏 고르세요.”

그제야 하유신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방긋 웃고 있는 게 진심으로 자신을 만난 게 기쁜 모습이었다.

이런 제자를 보니, 자신이 부탁하려고 했던 일이 더욱 부끄러웠다.

이제 다시 예전의 스승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무리 성공했어도, 스승이 제자에게 얻어먹는 게 말이 되냐? 내가 사마.”

“괜찮아요. 이 가게 대주주가 저거든요.”

“응? 이 비싼 동네에 이렇게 큰 가게가?”

확실히 집도 바뀐 것 같고, 이런 큰 커피숍까지 있으니 하유신이 성공했다는 게 확실하게 와닿았다.

“네. 정확히는 어머니 가게지만요. 집에만 계시는 게 적적하다고 해서 하나 차려드렸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가게에 잘 안 나오는 것 같지만요.”

“그…그렇구나. 그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하마.”

“역시 선생님도 저와 같은 얼죽아시군요.”

하유신이 웃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잔 주문했다.

그때 아르바이트생이 그런 하유신에게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께서 아들이 오더라도 돈 받으라고 하셨어요.”

“어? 내가 여기 대주주주나 다름 없는데요?”

“네. 그럴수록 계산이 더 확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역시 엄마.”

그 아들에 그 엄마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신이 민망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봤다.

“저기…선생님…제가 지금 헤헤.”

뭘 원하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이제 막 산책이나 운동을 끝내고 와서 지갑이 없을 게 뻔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그렇게 계산을 끝내고 하유신과 함께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대화의 대부분은 예전 아카데미 시절의 이야기였다.

삼자가 보기에 우리가 참 친하다는 모습으로 보여질 거다.

‘친하다? 녀석…날 많이 챙겨주는구나.’

유명인과 사람이 많이 다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정중앙에 앉아 있었다.

거기다가 여기가 하유신의 어머니가 하는 가게라면 분명 이곳에 오는 사람 대부분이 하유신을 보기 위해서인 거다.

“저기. 하유신님 맞으시죠?”

여고생 두 명이 얼굴을 붉히며 종이와 사인펜을 들고 다가왔다.

“네 맞습니다.”

“저…사인을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지금은 오랜만에 은사님을 만나서요. 가게 나가기 전에 해드릴게요. 양해 좀 부탁해요.”

“아.아니예요. 저희가 죄송하죠.”

“네. 그럼 이따가 봐요. 양해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하유신을 기다리는 여고생들을 보고 있으니 조금 남아 있던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이 아이가 자신을 이렇게 챙겨주는데, 자신이 못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나는 이만 가보마.”

“어? 벌써 가시게요?”

“다음에 또 보면 되는 거지.”

“네. 그럼 선생님. 나중에 제가 아카데미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보자.”

그래.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다.

명사 특강 빵꾸난 것은 자신이 메꾸면 된다.

교감이 아직 섭외도 되지 않았는데, 명사 특강을 열었지만, 자신도 아카데미 졸업생이니 자격은 충분했다.

“우우~ 선생님. 이건 우리 생도들의 향한 우롱입니다.”

“뭐가 우롱이란 말이냐?”

“이건 졸업생 명사 특강이지 않습니까?”

“나도 아카데미 졸업생이다.”

“명사는 아니잖아요.”

“우우~”

학생들의 버릇없는 모습을 보며, 길게 숨을 내쉬고는 마이크를 들었다.

“너희들의 버릇없는 모습이 참 안타깝구나.”

내 말이 끝나자, 학생 중 몇몇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뒤에 앉아 있던 학부모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보통 명사 특강 진행은 명사를 초빙해서 그들의 자랑을 듣는 거란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봤던 하유신에 대해서 자랑하려고 한다. 그는 너희들과 달랐다. 부족한 능력을 가지고 언제나 노력했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너희는 뭐지? 조금만 힘들면, 쪼르르 부모에게 달려가 힘들다고 떼를 쓰고 있어.”

학생들은 조용해졌지만, 뒤에 앉아 있던 학부모들에게서 웅성거림이 나왔다.

그래.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아카데미 선생으로서 여기에 서 있는 게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느끼게 됐다.

‘후련하게 모든 걸 다 말하자.’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속에 있는 말을 다 하려고 할 때였다.

강당의 문이 열리며 전투복에 검을 착용한 한 사내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누가 들어왔는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강당의 문이 열리며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상 나는 누가 들어왔는지 알게 됐다.

“하유신?”

내 목소리에 사람들의 고개가 급하게 꺾였고, 곧 하유신이 나타난 걸 알게 됐다.

“우와~!!!”

거대한 함성이 들려왔고, 하유신은 당당한 걸음으로 내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선생님. 졸업생 명사 특강은 초대받은 사람의 자기자랑이라고 했죠? 그럼 제가 제 얼굴에 금칠해도 될까요?”

“녀석…”

하유신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마이크를 넘겼다.

마이크를 받아든 유신이 웃으며 학생들을 바라봤다.

***

“안녕하세요. 김학도 선생님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졸업생 하유신이라고 합니다.”

말을 끝내고, 뒤편에 앉아 있는 학부모들을 살짝 노려봤다.

그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저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에서 한가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 소문을 들었을 거다. 하유신과 엮여서 좋았던 권력자는 없다는 걸.

그들을 더욱 압박하고 싶지만, 일단은 특강이 먼저였다.

“여러분. 궁금하실 겁니다. 제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강해졌는지. 그건 아주 간단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있는 모든 분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학생들을 바라봤다.

학생들은 아무도 떠들지 않고,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그건 바로 노력입니다. 제 능력은 [노오력가]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무능력자라고. 그런데, 제가 존경하는 김학도 선생님은 순간이동 능력자입니다. 우리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아카데미 선생과 세계에서 유명한 강자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고심에 빠진 거였다.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바로 전투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네. 그래서 저는 입학 후, 김학도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서 기본 검을 매일 각각 삼천 개씩 연습했습니다. 여러분 바로 그겁니다. 강해지는 건 많은 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금의 학생 여러분은 그걸 기억하세요. 저처럼 강해지고 싶으신 분은 가장 기본이 되는 기본기를 잊지 마세요.”

앉아서 나를 바라보던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럼 계속해서 강의를 이어 나가겠습니다. 김학도 선생님의 말씀처럼 원래 명사 특강은 자기 자랑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자랑 좀 해보겠습니다.”

학생들의 짧은 웃음을 뒤로하고 강의를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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